#159. 멋진 신세계 (3)
“움직일 생각 하지 마!”
남자의 외침.
큰 위협은 못 되었다.
마나유저지만 수준이 그리 높아 보이진 않기에.
하지만 그의 외투 속에 드러난 물건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째깍. 째깍.
배와 가슴에 둘러진 폭탄.
그 위에 부착된 타이머.
남자의 손에는 어느새 주머니에서 들려 나온 기폭 스위치가 들려 있었다.
“손가락 하나라도 까딱해 봐. 이걸 눌러 버릴 테니까.”
장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꺄아악!”
“비, 비켜요! 난 여기서 나갈 거야!”
비명을 지르는 이도 있었고, 폭탄과 멀어지기 위해 사람들을 밀치고 정문을 향해 뛰는 이도 있었다.
기자들은 그 와중에 특종을 놓치지 않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 대고 있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카인은 폭탄을 두른 남자에게 다시 시선을 돌렸다.
‘움직이지 말란 말은 사열대 위에 있는 이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인가 보군.’
남자의 목적을 알 것 같았다.
뚫어져라 제르비아를 노려보는 걸로 봐서는.
“각 조는 시민들의 대피를 최우선으로 움직인다! 진정하십시오! 저희 통제에 따르시면 됩니다!”
테러범이 시민들의 움직임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파악한 상급자들이 빠르게 지시를 내렸다.
바리케이드 쪽에 배치된 인원들은 혼란을 수습해 시민들을 광장 밖으로 대피시켰다.
사열대 아래에 도열해 있던 이들도 비전투인원은 모두 통제하에 광장을 벗어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인상적이군.’
상황에 대한 매뉴얼의 존재.
그에 대한 오차 없는 수행능력.
평소 훈련이 잘되어 있다는 방증이지만, 카인은 고개를 저었다.
‘WB-004. 월 브레이커. 본래 벽을 파괴하기 위한 용도로 제작된 폭탄. 남은 시간은 2분.’
알려진 폭탄 중 가장 넓은 유효 범위.
게다가 각 폭탄 사이에는 테러범들이 흔히 폭발 범위를 늘릴 때 쓰는 암폭석 주머니가 끼어 있었다.
즉.
아무리 빨리 달려도 본청 안에 있는 대다수는 폭발에 휩쓸릴 수밖에 없었다.
남은 시간은 118초.
제르비아는 머리가 팽팽히 돌아가는 것을 느꼈다.
이 자리의 최고 지휘권자는 청장.
하지만 그는 아무 반응이 없다.
새로운 치안국장의 위기대처능력을 시험하겠다는 듯 빤한 시선으로 상황을 지켜볼 뿐이었다.
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테러범과 타협 따위는 할 수 없다. 그것이 원칙이니까.’
평소라면 바로 검을 휘둘러 상대를 제압했을 터.
하지만 그 후 전문가를 불렀을 때, 폭탄을 해체할 여유 시간이 남아 있을지 의문이었다.
113초.
“원하는 게 뭐지? 요구 조건이 있나?”
답답하게도 테러범은 말이 없었다.
그저 분노 어린 시선으로 이쪽을 노려보며 숨을 씩씩 고르고 있었다.
110초.
‘대화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시간은 흐른다. 생각은 나중에 하고 일단 제압을….’
사열대로 올라오던 인원도,
사열대 아래의 인원도,
모두가 지휘관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107초.
청장이 입을 열었다.
하나 원하던 그 말은 아니었다.
“시민들은 모두 대피한 것 같군. 요한 키리프. 혹시 자네가 아는 자인가?”
“아뇨. 모르는 자입니다. 보통 요구 조건을 바로 말할 텐데, 감정이 북받친 탓인지 입을 열지 않고 있군요.”
상황에 맞지 않는 덤덤한 대화.
표창식이 중단되었기 때문인지 편하게 존대를 풀기까지.
제르비아는 순간 상황에 대한 강한 이질감을 느꼈다.
자신만 긴장하고 있을 뿐, 사실 그리 위험한 상황이 아니지 않을까 하는.
하지만 몇 번이나 눈을 감았다가 떠 보아도 테러범이 가슴과 허리에 감고 있는 것은 악명 높은 WB-004였다.
청장과 카인 모두 각자의 영역에서 전설적인 인물이다.
‘분명 뭔가 생각이 있겠지만.’
답답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고 있으니까.
102초.
그녀가 검을 뽑으려는 그때.
“자비르!”
테러범의 입이 열리며 쩌렁쩌렁한 외침이 튀어나왔다.
울부짖음에 가까운 외침이었다.
요동치는 감정을 삭이고, 필사적으로 뱉어 낸 것이 느껴졌다.
쨍강!
그는 제르비아 앞에 단검 하나를 던졌다.
“결론부터 말하겠다. 이 자리에서 자결해라. 스스로의 목을 찔러서. 그렇지 않으면 당장 폭탄을 터트리겠다.”
사열대 아래에 있던 0번대 대원들의 얼굴이 험악하게 일그러졌다.
행여 돌발 행동을 할까, 제르비아는 그들을 향해 손바닥을 펴 보였다.
그리고 테러범을 향해 말했다.
“원하는 것이 내 목숨인가?”
“그래. 네년 때문에 내 동생이 영영 감옥에 갇히게 되었으니까!”
“…….”
“그깟 마약에 손을 좀 대었다고! 남들은 멀쩡히 다 빠져나가는데, 왜 내 동생만!”
97초.
범죄자의 가족.
상황이 빠르게 이해가 되는 한편,
씁쓸한 감정이 올라왔다.
본청 부지에 들어오는 모든 시민은 검문을 거친다.
한데 몸에 폭탄을 두른 이가 들어왔다는 것은, 경찰 내부에 검문을 피하도록 도운 조력자가 있다는 얘기였다.
「경위님의 거침 없는 행보가 앞으로도 이어지리라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회견장에서 어느 기자에게 들었던 질문.
반향을 감수할 수 있느냐는 의미.
경찰 내부의 모든 이가 변혁의 바람을 반기지는 않을 테니까.
‘공격과 견제가 들어올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노골적인 움직임을 취해올 줄이야.’
그녀는 주위를 돌아보았다.
특무대 대원들의 초조한 모습과, 광장 멀리 떠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94초.
‘청장님이나 카인, 그리고 나 정도는 폭발을 버텨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다른 경찰이나 시민들은….’
91초.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찔러! 목이든! 심장이든!”
청장과 카인은 여전히 무반응.
때가 되면 무언가 행동을 보이리라 생각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예측일 뿐.
‘결국 지금 판단을 내려야 하는 것은 나다.’
88초.
“죽어! 죗값을 치르라고!”
죗값.
그녀의 입술이 비틀렸다.
상대는 본래 죄가 없었다.
범죄자의 가족이라 해도, 제국법은 연좌제를 따르지 않으니까.
하지만 폭탄을 두르고 표창식장에 난입한 순간 범죄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런 범죄자의 입에서 죗값이란 말이 나왔다.
이치에 맞지 않는다.
강한 불쾌감이 그녀의 몸을 사로잡았다.
84초.
“내가 죽으면 폭탄을 멈출 건가?”
“그래. 얼마든 멈춰 줄 테니, 어서!”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스스로 폭탄을 해체하겠단 건가?”
“내 동료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네년이 죽는 걸 확인하면 바로 중지 스위치를 누를 거라고!”
80초.
내부에 조력자가 있다.
그것은 분명하다.
자결을 한다고 폭탄을 멈출지는 미지수지만, 동료가 있다는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아마 주위 건물 어딘가에.’
WB-004.
기폭 스위치와 중지 스위치가 각 하나씩 존재하는 모델인 것도 사실.
78초.
“죽어! 제발! 그래야 내 동생의 억울함이 풀어지니까!”
77초.
내가 죽는다.
그러면 이 자리의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76초.
내가 죽지 않는다.
대신 부하들은 큰 부상을 입고 폭발 범위에 말려든 시민들은 죽는다.
75초.
자신이 죽는 게 옳다.
공리주의적으로 보았을 땐.
74초.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범죄 박멸이란 과업은 영영 이룰 수 없게 된다.
74초.
그녀는 결심을 내렸다.
과거의 나약한 자신은 버렸다.
삶의 새로운 행동 방침을 세웠기에, 그것을 따라가면 될 뿐이다.
그 어떤 예외도 없이,
그 어떤 상황에도 굴하지 않고.
‘상대를 제압하고 중지 스위치를 가진 적을 찾는다.’
그녀의 손이 섬광과 같이 움직였다.
서걱.
검기였다.
너무도 찰나에 일어난 일.
테러범은 순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인식하지 못했다.
“……!”
그러다 자신의 잘린 손목을 보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아아악─!”
“자리에 위치한 모두! 창문을 통해 광장을 관측할 수 있는 모든 건물을 수색하라!”
제르비아는 바닥에 떨어지는 테러범의 손과 스위치를 향해 뛰었다.
행여 스위치의 윗부분이 바닥에 닿아 눌리는 일은 막아야 했다.
우웅─!
하지만 그녀보다 한발 앞서, 카인이 일으킨 바람이 스위치를 감싸 허공에 멈춰 세웠다.
스위치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끼익!
그녀의 워커가 방향을 돌리며 밑창과 바닥이 마찰을 일으켰다.
한 치의 오차 없이 휘둘러진 검이 테러범의 남은 손목조차 베었다.
테러범의 몸이 무너져 내렸다.
바람이 감싸 안아, 폭탄에 충격이 가해지지 않도록 그의 몸을 바닥에 사뿐히 내려놓았다.
“제압해라!”
사열대 계단에 반쯤 올라와 있던 특무대가 테러범에게 달려들어 그의 몸을 구속했다.
제르비아가 외쳤다.
“사열대 인원을 제외한 모두는 중지 스위치를 든 공범의 위치를 찾아라!”
남은 시간은 이제 1분가량.
매초가 촉박한 상황이었다.
순간 카인의 눈빛이 번쩍였다.
카인은 허공에 생성된 얼음창을 잡아 그대로 어딘가를 향해 투척했다.
쐐애액─!
얼음창은 공기를 가르며 날아가 교통국 창문에 서성이던 그림자를 꿰뚫었다.
─아아악!
먼 거리에서 비명이 울려왔고,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이는 없었다.
여러 건물로 흩어지던 특무대 중 가까운 위치에 있던 이들이 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째깍. 50초.
하지만 시간 내에 도착해 중지 스위치를 누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45초.
테러범의 시야에 닿지 않는 곳에서 대기하던 해체 전문가가 사열대에 숨을 헐떡이며 도착했다.
그가 폭탄을 확인하고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WB-004. 해체하는 데 최소 2분이 소요됩니다.”
제르비아가 독촉하듯 말했다.
“더 빨리 해체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작업 속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회로가 워낙 민감해 자칫하면 그대로 폭발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안정성이 떨어집니다.”
그때 상황을 지켜보던 카인이 나섰다.
“도구를 이리 주지. 내가 직접 할 테니.”
“예? 하, 함부로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이건 숙련자도 쉽게 작업 못 하는….”
카인은 전문가의 말을 무시하고 그에게서 해체 도구를 빼앗듯이 넘겨받았다.
그리고 테러범의 가슴과 허리춤에서 풀어진 폭탄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그 과정이 너무도 자연스러워 현장의 누구도 제지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껏 대단한 소문을 뿌려 온 인물인 만큼, 정말 해체가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실낱같은 기대도 있었다.
35초.
폭탄의 단자함이 열리고 니퍼가 움직였다.
“조심…!”
니퍼는 복잡하게 얽힌 회로 사이를 통과해 들어가, 백색 회로를 정확하게 끊어 냈다.
그 거침 없는 동작에 해체 전문가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틱!
다음 움직임 역시 거침이 없었다.
틱! 틱!
사전에 입력된 명령을 정확히 수행하는 기계처럼, 니퍼는 회로 사이를 오가며 해체에 필요한 회로만을 끊어 냈다.
25초.
제르비아는 손바닥이 땀으로 젖어 드는 것을 느꼈다.
카인의 넓은 등.
그리고 WB-004.
5년 전의 기억이 그녀의 머릿속에 휘몰아쳤다.
31번 구역의 교각에서 일어났던 폭탄 테러. 다리는 무너지고 범인은 잡지 못했다.
추후 조사에서, 사용되었던 폭탄은 WB-004로 밝혀졌다.
그리고 자신은 폭탄을 찾기 위해 교각 하부의 계단을 오르다 평생 잊지 못할 광경을 마주했다.
쓰러진 오빠와.
그 앞에 피 묻은 검을 들고 있던 카인을.
「…….」
「…….」
시선이 마주쳤고, 어떤 대화도 오가지 않았다.
카인은 그대로 이쪽을 지나쳐 계단을 내려갔다.
자신은 그때 기사 학교의 생도였으나, 충격에 휩싸여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은 채, 멀리, 다리 다른 쪽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폭발음을 들었다.
‘카인. 너는 그때 거기서 뭘 하고 있던 것이지.’
카인과 협력 관계를 맺게 된 지금.
당시 일에 관해 물으려면 얼마든지 그러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입술을 떨어지지 않았다.
정확히 무엇이 두려운지는 자신도 알지 못했다.
그저 몰아치는 과거의 기억에 속이 울렁거릴 뿐이었다.
5초.
틱.
마지막 회로가 절단되고 폭탄의 타이머는 정지했다.
만일을 대비해 체내의 마나를 끌어올려 몸 주위에 둘렀지만, 시간이 지나도 폭탄은 터지지 않았다.
청장과 카인을 제외한 현장의 모두가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해체 전문가가 경악과 감탄을 금치 못하며 물었다.
“따, 따로 해체 기술을 배우신 겁니까?”
“이런저런 분야에 관심이 많아 익혀 둔 적이 있습니다.”
“이쪽 분야에서 활동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이런 광경은 처음 보았습니다.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내신 겁니다!”
그의 말은 진심이었다.
전문가의 입장에서 카인이 보인 솜씨는 정말 신기에 가까웠다.
─공범의 신변을 확보했습니다. 중지 스위치 역시 확보했습니다.
특무대의 무전기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상황의 종결.
카인은 굽혔던 한쪽 무릎을 펴고 일어나 해체된 폭탄을 내려보았다.
“…….”
기본적으로 모든 폭탄에 관한 지식이 있었고, 해체하는 것도 가능했다.
하지만 WB-004의 경우 더 빠르게 해체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여기서 보게 될 줄은 몰랐군. 레지스탕스 쪽에 공급했던 물건인데, 벌써 벽 안쪽까지 흘러들었나.’
바로 자기 자신이 직접 제조해 퍼트렸던 물건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