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 멋진 신세계 (2)
경찰청 사무국 소속 디올 경사는 저택의 화려한 내부를 보며 감탄을 터트렸다.
‘맙소사. 이건 골덴하트의 「저무는 하늘」이잖아.’
벽면을 따라 이어진 액자들.
평소 미술에 큰 관심과 함께 식견을 갖추고 있었기에, 진품임을 금세 알아볼 수 있었다.
‘저기 몰타의 「잠든 폐허」도 있어. 모두 소실되어 행방이 묘연했던 작품들로 알고 있는데…!’
넋을 잃고 그림을 감상해 버렸다.
경찰청의 서신 전달이라는 본래 임무도 순간 망각해 버린 채.
그의 걸음이 한 그림 앞에서 멈춰 섰다.
절벽과 절벽 사이.
크게 뛴다면 건널 수도 있을 것 같은 거리.
안절부절못하는 얼굴의 사람들 뒤로는 짐승 무리가 쫓아오고 있었다.
건너편엔 천사 가면을 쓴 자가 절벽 사이 허공을 향해 긴 막대를 뻗고 있었다.
‘힘껏 뛰어 막대를 붙잡으란 건가?’
시선을 그림의 아래쪽으로 내리자 가시에 꿰뚫려 죽어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쳐다보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것 같은 강렬한 화풍.
디올 경사의 발은 그림 앞에서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누구의 작품일까. 내가 아는 한 이런 화풍을 지닌 화가는 없는데.’
혹시나 싶어 그림 구석구석을 살펴보았지만, 화가의 이름 같은 것은 적혀 있지 않았다.
디올 경사가 인상을 찡그리던 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이 마음에 드시나 보군요.”
깜짝 놀라 뒤를 돌자 흑발의 사내가 서 있었다.
요한 키리프.
실제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소문대로야. 앞에 있는 것만으로 압도되는 분위기라더니.’
요한에 대한 소문은 경찰 사이에도 익히 퍼져 있는 상태였다.
범죄 박멸이란 포부를 아직 품고 있는 젊은 경찰들 사이에서는 특히.
‘이 사람이 클럽 카스라르고를 박살 냈다는 거지.’
특무대 2번대의 눈치를 보느라 건드릴 생각을 못 하던 마약 클럽.
그런 범죄의 온상이 뿌리 뽑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동기들과 함께 얼마나 환호했던가.
동경과 선망의 대상인 자비르 경위의 입에서 ‘작전의 주역’이란 말이 나온 인물.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비단 자신만이 아니라, 경찰 내에 아직 피가 끓는 모든 이가 그러하리라.
“아.”
디올 경사는 자신이 아직 상대의 말에 대답하지 않았음을 깨닫고 황급히 입술을 떼었다.
“마음에 듭니다! 미술에 관심이 많은 편인데, 이토록 강렬한 인상의 그림은 보지 못해서요.”
“가실 때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예, 예?”
미소와 함께 뱉어진 상대의 말.
말투가 진지해 농담인지 진담인지 알 수 없었다.
“받을 수 없습니다. 작가가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비싼 작품을….”
거장의 작품이 틀림없었다.
아마 무명시절 알려지지 않고, 실험적인 색채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비싸지 않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이니까요. 돌아가실 때 챙겨 드리지요.”
“예?”
카인이 싱긋 웃었다.
“디올 경사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본청의 서신을 가지고 오셨지요. 안쪽에 응접실이 있습니다. 따라오시지요.”
발을 돌려 뚜벅뚜벅 걸어가는 카인의 뒷모습을 보며 디올 경사는 당황스런 마음을 금치 못했다.
직접 그린 그림이라고?
내 이름은 또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 * *
“그럼 그 날짜에 경찰청 본청에서 뵙겠습니다.”
저택의 출입문 앞.
디올 경사는 눈을 빛내며 카인과 악수했다.
잘 포장된 그림 하나가 그의 겨드랑이 사이에 끼어 있었다.
부아앙─
디올 경사가 돌아간 후.
카인의 뒤편에 서 있던 에스텔이 말했다.
“재밌어요.”
“뭐가 말이지?”
“경찰의 추적을 받던 당신이, 이제는 추앙을 받고 있는 셈이잖아요.”
그녀는 거리를 좁혀 카인의 슈트를 다듬었다.
딱히 매무새가 흐트러지진 않았지만, 그녀의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본청에서 수여하는 표창이라니, 경찰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업적일걸요.”
“글쎄. 모든 경찰이 그렇진 않을 거다. 꿈 따위는 버리고 자기 자리에 고여 그대로 썩어 버린 이들이 워낙 많으니까.”
카인이 조소를 흘렸다.
에스텔은 카인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거리를 두고 그의 옷매무새를 살폈다.
그리고 다시 한 걸음 다가와 옷을 정돈했다.
“…왜 자꾸 옷을 만지는 거지. 딱히 흐트러지진 않았는데.”
“이미 완벽하지만, 더 완벽하게 하고 싶은 마음인 거죠. 벽 안쪽에 들어와서는 사람들 앞에 나설 일이 많아졌으니까요. 아 됐다!”
그녀는 뿌듯한 목소리와 함께 만족스런 얼굴을 했다.
그리고 잠시 끊겼던 앞의 대화를 연결했다.
“그래도 특무대가 대대적으로 재편될 예정이라 하니까 바뀌는 게 있지 않을까요? 자비르 경위가 몇 계급 특진하고 그에 맞는 직위를 받는다고 하니까요.”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는 기대를 할 수 있겠지.”
제르비아의 실행력은 차고 넘쳤다.
적절한 권한만 주어진다면 비리와 부패를 불도저처럼 밀어 버리고 변혁의 바람을 일으킬 터였다.
‘치안국의 부국장. 이번 일을 통해 최소 그 정도 위치까지는 올라갈 것이다.’
“그럼 난 연무장에 있을게요. 필요하면 불러 줘요.”
에스텔은 저택 뒤편으로 사라졌다.
부우웅─!
곧 길고 둔중한 무언가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봉이었다.
본래 사용하던 메이스를 62번 구역의 대장간에서 녹여, 다시 미스릴로 만든 5단 접이봉.
「앞으로 당신을 경호할 때 무기 반입이 금지된 곳이 많을 거라 생각해요. 최대한 숨겨 가지고 들어갈 수 있는 무기가 좋겠죠.」
딱히 날붙이를 피한 건 아니었다.
이미 유타스를 총으로 쏘아 죽이며 살인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한 그녀였으니까.
교단의 수배자로 특정될 수 있기에 기존에 사용하던 메이스는 불가.
그 다음으로 익숙한 무기가 봉.
부피를 최대한 줄여 보관할 수 있다는, 실용적인 이유에서 택한 무기였다.
부우웅─!
그녀의 전투력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모든 시간을 연무장에서 보냈다.
카인의 스케쥴에 맞춰 저택 밖으로 나갈 때를 제외하고는.
무언가에 홀린 사람처럼 봉을 휘두르고,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카인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가장 큰 이유는 교단의 진실을 깨달은 뒤의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서겠지.’
그다음 이유.
자신이 믿고 따르는 이를 지키겠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
「강해질게요. 두 번 다시 당신이 다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퍽 기특한 말이었다.
에스텔이 사라진 방향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인은 걸음을 돌려 저택 안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카인은 몰랐다.
그녀가 현재 가진 강함에 대한 갈망은, 첫 번째 이유보다 두 번째 이유가 비교도 안 되게 훨씬 더 크다는 것을.
* * *
경찰청 본청.
깃발이 펄럭이는 게양대.
청장은 사열대 위에서 아래로 시선을 멀찍이 던졌다.
치안국과 정보국, 사무국을 비롯한 모든 기관의 경찰이 넓은 광장에 도열해 있었다.
주위를 둘러싼 바리케이드 뒤로는 입장 허가를 받은 시민들이 몰려 있었다.
번쩍이는 카메라 셔터는 기자들의 것이리라.
“올라오게.”
청장의 말과 함께 한 쌍의 남녀가 사열대 위로 올라왔다.
청발과 흑발.
제르비아와 카인이었다.
‘현재 모일 수 있는 경찰 전 인원이 모인 건가. 수백 명은 되겠어.’
제르비아는 약간 긴장했다.
초조와 떨림, 기대와 흥분이 함께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경찰 내 가장 높은 곳에 올라 범죄를 박멸하겠다는 목표에 한 발짝 가까워지는 순간이었으니까.
더욱이 표창식은 본청 밖에 있는 거대한 전광판을 통해서도 생중계되고 있으리라.
기존에도 유명세가 있긴 했지만, 이토록 많은 사람 앞에 얼굴을 드러내는 일은 그녀로서는 처음이었다.
반면 카인의 얼굴은 평온했다.
그저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표정이었다.
카인과 청장의 시선이 마주쳤다.
“…….”
“…….”
둘 모두 건조한 시선.
그 사이 무언의 대화가 오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청장은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마이크를 다시 확인하고 카인에게 감사장을 건네며 말했다.
“요한 키리프. ‘클럽 카스라르고’ 작전 수행에 있어 지대한 공을 세웠음을 인정하는 바, 이 감사장을 수여합니다.”
카인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 감사장을 받았다.
그리고 청장이 내민 손을 꽉 붙잡았다.
짝짝짝짝짝─!!!
동시에 등 뒤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격려를 위한 가벼운 포옹과 함께 어깨를 맞부딪친 순간.
“편의를 봐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하고 싶은 대로 해 보게. 나는 슬슬 경찰이라는 조직에서 손을 뗄 참이니.”
두 사람의 대화는 박수에 묻혀 다른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았다.
포옹이 끝나고 두 사람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한 발짝씩 물러나 제자리로 돌아갔다.
청장의 시선이 다음으로 제르비아에게 향했다.
마찬가지로 건조한 눈빛.
딸을 바라보는 애정이나, 공을 세운 부하 직원에 대한 뿌듯함 같은 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자비르 칼타. ‘클럽 카스라르고’ 작전을 수행해 악질적인 범죄를 근절하고, 구역 치안에 기여하여 타의 모범을 보인 바, 이 표창장을 수여한다.”
제르비아가 한 걸음 다가가 표창장을 받았다.
악수를 하고, 가벼운 포옹을 나눴다.
“잘했다.”
귓가에 청장의 사무적인 목소리가 울렸다.
왜일까.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 듣기를 그토록 원해 왔음에도,
생각만큼 기쁜 마음이 들지 않는 것은.
“감사합니다.”
그녀는 한 발짝 물러나 곁눈질로 카인을 보았다.
“…….”
그녀가 진짜 ‘잘했다’는 말을 듣고 싶은 상대는 따로 있었다.
무의식 깊이 자리한 생각으로, 아직 그녀 스스로는 인지하고 있지 못하지만.
“그리고 이 자리에 모인 시민 여러분께 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청장이 사열대 앞으로 나서자 좌중의 소란스러움이 멎어 들었다.
“아시다시피 저희 경찰 내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있었습니다. 범죄와 결탁해 비리를 저지르고 있던 자들이 존재했다는 사실 말입니다.”
사실상 오늘 이 자리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말이었다.
경찰청의 공식 입장.
기자, 시민, 그리고 상부의 결정을 알지 못하는 중하위 계급의 경찰까지.
모두가 궁금해하며 많은 추측과 논전을 벌이던 화두였다.
“현재 경찰 내에서 세밀한 조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범죄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던 걸로 판명된 자들은 모두 제국법에 따른 징역을 받아 켄트락 교도소에 수감될 것입니다.”
모두가 숨을 죽여 청장의 말을 경청했다.
“그리고 후속 조치로 경찰 조직을 재편하겠습니다. 내부에 숨어 있는 부패와 비리를 척결해, 신뢰할 수 있는 민중의 검으로 쇄신하겠습니다.”
카인은 픽 웃었다.
상황이 꽤 재밌게 느껴졌다.
숨어 있는 부패와 비리라면 스스로를 지칭하는 것인가.
또 블루서펜트 보스의 입에서 범죄를 처벌한다는 말이 나오다니.
“그리고 쇄신의 선두에는 그간 무수한 공을 세우고 타의 모범이 되어온 젊은 인재가 있을 것입니다.”
청장이 제르비아를 향해 몸을 돌려 절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자비르 경위. 현 시간부로 특무대 0번대 대장의 직위를 해제한다.”
사람들은 당황하여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청장의 다음 말이 나온 순간 웅성거림은 한 차례 더 커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당황이 아닌 충격과 놀라움의 의미였다.
“3계급 특진으로 총경의 계급을 부여하며, 현 시간부로 치안국 국장에 임명한다.”
청장의 말은 그만큼 파격적인 발언이었으니까.
제르비아는 당황했다.
카인 역시 조금 놀랐다.
‘2계급 특진과 치안국 부국장 정도로 예상했는데. 의외군.’
오히려 계획이 더 앞당겨지는 상황이기에 꺼릴 것은 전혀 없었다.
예상외의 상황을 만든 변수가 무엇일지는 생각을 조금 해 보아야겠지만.
앞선 두 번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자비르와 요한의 이름이 쉴새 없이 연호 되었고, 때문에 시민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무리 사이.
두꺼운 외투를 입은 한 남자가 경찰과 바리케이드를 뚫고 사열대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을.
카인의 눈이 번뜩였다.
경찰을 피하는 몸놀림과 가까워져 오는 속도로 보아 수준급의 마나유저였다.
남자는 순식간에 사열대 위로 올라왔다.
제르비아를 똑바로 노려보는 시선엔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짙게 드러났다.
경비를 맡은 경찰들이 뒤따라 사열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움직일 생각 하지 마!”
남자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사열대를 울렸다.
그는 곧이어 자신의 외투를 활짝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