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6. 클럽 카스라르고 (5)
“아아아악─!”
나이론은 뼈가 완전히 으스러진 손을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만한 약재를 가지고 이 정도 약밖에 만들지 못하다니, 역시 실력이 형편없어.”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이론은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을 느꼈다.
희뿌연 기체 사이.
상대는 이쪽을 내려다보며 안광을 흉흉히 빛내고 있었다.
약에 중독된 모습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저, 정신을 잃지 않고 멀쩡하게 서 있다고?’
말도 안 된다.
정말 말도 안 된다.
클럽 운영을 한동안 멈춰야 할 정도로 많은 양의 마약을 쏟아부었다.
블랙아웃.
카스라르고에서 판매하는 마약 중 가장 강도 높은 환각 물질.
뇌내 엔돌핀을 촉진해 고통을 완화하고 쾌락을 증진 시키나, 이성적 사고를 관장하는 편도체를 마비시켜 기억과 의식을 잃게 한다.
‘대체 어떻게…! 몸집이 아무리 큰 수인도 몇 분 못 버티고 쓰러질 양인데…!’
이래서는 안 되었다.
상대에게 ‘생물’로서의 양심과 상식이 있다면 이래서는 안 되었다.
게다가 이미 향초의 각성 성분에 노출되어, 신체가 약물을 더 빠르고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상태일 텐데.
다닥. 다닥.
나이론의 입술이 떨리기 시작했다.
원치 않아도 계속 이가 부딪쳤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남을 끌어내리려면 자신 또한 끌어내려질 각오를 해야 한다고.」
그날.
파티에서의 악몽이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나이론! 알아서 피하십시오!”
나이론을 구원하듯 한 줄기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황을 파악하고 다급해진 프란 경위와 맬리스 경위로, 어느새 거리를 좁히고는 실루엣을 향해 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챙!
그들의 검은 또 다른 검에 가로막혀 튕겨 나갔다.
다음 순간, 대응할 틈도 없이 실루엣에서 푸른 전류가 뿜어져 나왔다.
파직!
1번대와 2번대.
두 경위는 외마디 소리조차 지르지 못한 채, 눈을 까뒤집고 자리에 혼절했다.
의식을 잃어가는 그들의 마지막 눈동자에 방독면을 쓴 자비르 경위의 모습이 보여왔다.
‘특무대의 기본 휴대품에 방독면은 포함되어 있지 않을 텐데. 저 남자의 짓인가. 우리 수를 읽었나. 대체 몇 수를 앞서 있던….’
프란 경위의 눈이 완전히 감겼다.
유리벽이 열려 확장된 공간으로 기체가 빠지고, 그 안에 있는 이들의 모습이 점점 드러났다.
제르비아를 포함한 특무대 전원은 방독면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 안에서 방독면을 쓰지 않은 것은 오직 카인뿐이었다.
‘나쁘지는 않은 기분이군.’
카인은 손바닥을 쥐었다 펴 보였다.
각성 성분이 퍼져 온몸이 에너지로 넘치고 있었다.
‘신체 강화’ 특성 덕에 기본적으로 약물에 대한 저항력이 높아진 상태였다.
더불어 ‘불굴의 의지’는 모든 부정적 정신 간섭에 면역을 부여했다.
의식을 잃을 일은 없었다.
‘정신적 한계’가 아닌 ‘육체적 한계’에 이르는 것이 아닌 한.
카인은 나이론 앞에 무릎을 굽혀 시선을 좁혔다.
벌벌 떠는 상대의 품에서 독약을 꺼내 말했다.
“나이론, 아까 스스로 인간미가 있다 했지. 우린 공통점이 꽤 많은 것 같아. 나 역시 인간미가 있으니까. 병으로 고통받는 자를 위해 신약을 개발하는 이들로서의 기본 소양이겠지.”
뒤에서 그 말을 들은 제르비아가 실소를 흘렸다.
그녀로서도 카인이 어떻게 의식을 잃지 않고 버텼는지는 의문이었다.
‘카인. 또 내가 알지 못하는 마법을 사용한 건가. 아니면 정신력 하나로 버텨냈을 수도.’
후자의 경우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지만, 카인이 이제까지 보여온 행적을 고려하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다.
괴물 같은 능력이 따로 없다.
그런데 그런 인물의 입에서 인간미라는 말이 나오다니.
“나도 그쪽이 살아날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주지. 지금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발휘해서.”
카인이 병에서 알약 하나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
“이 약을 먹고 무사하다면 목숨은 살려주겠다.”
“마, 말도 안 돼! 그, 그걸 먹으면 분명 죽는…!”
나이론이 악을 질렀다.
이미 수십 차례의 임상실험을 거쳤기에 약의 성능은 다른 누구보다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왜지? 1퍼센트의 생존확률이 있지 않나? 충분히 승산을 걸어 볼 만한 확률이라 생각하는데.”
치사율 99퍼센트.
생존률 1퍼센트.
‘시, 실험 결과가 그랬지. 하지만 먹으면 죽어. 머, 먹으면 죽는다고. 1퍼센트라니, 그런 낮은 확률에 걸릴 리가 없잖아.’
나이론은 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상황을 타개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악마는 지금 바로 눈앞에 존재했으니까.
‘차, 차라리 지금 여기서 죽는 게 나은 선택 일지도.’
상황이 종료되고 닥쳐올 일들이 나이론의 머릿속에 그려졌다.
일단 딜런 메디컬의 몰락은 예정되어 있다.
경찰의 후속 조사와 함께 이제껏 저질러온 범죄가 세상에 낱낱이 드러날 테니.
그리고 범죄에 깊이 관련된 이는 모두 교도소로 끌려가 무기에 가까운 징역을 받을 것이다.
마약 사범이 호송되는 곳.
대륙 끝에 위치한 켄트락 교도소.
그 악명은 익히 들었다.
재산을 모두 몰수당할 테니, 수감 이후 자신을 지킬 수단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라리…!’
결심을 마친 나이론은 알약을 입에 털어 넣었다.
어떻게든 삼키자, 씁쓸함이 목 안쪽을 긁어내렸다.
“컥, 커걱.”
약효는 즉시였다.
나이론은 입에 피거품을 물고 바닥을 뒹굴었다.
온몸이 쉴새 없이 경련하고 눈은 흰자위밖에 남지 않았다.
“컥!”
몇여 분 뒤.
경련은 마침내 멈추었다.
바닥엔 그의 눈코입이 쏟아낸 온갖 분비물로 가득했다.
하지만 희미하게 들려오는 숨소리가 그가 죽지 않았음을 알리고 있었다.
“…1퍼센트의 확률을 뚫다니. 강운이군.”
카인은 냉랭한 시선으로 나이론을 내려보며 읊조렸다.
사실 악운이라 할 수 있었다.
약으로 인해 고통은 고통대로 겪고, 성치 못한 몸으로 교도소에 끌려가게 되었으니까.
제르비아와 0번대는 의식을 잃은 프란 경위와 나이론을 포박했다.
그들의 품에서 열쇠를 찾아 인질로 붙잡혀 있던 다른 2명의 0번대 대원을 풀어주었다.
상황이 정리되고, 헤롤드가 카인에게 다가와 말했다.
“마지막 순간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방독면까지 준비해두셨을 줄은…. 이런 상황이 닥칠 걸 모두 예상하신 겁니까?”
카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완전히 같은 상황을 예상한 건 아니지만, 비슷한 상황이 닥치지 않을까 생각은 했습니다. 그리고 지시를 내리던 중 하대는 죄송합니다. 워낙 상황이 급박했던지라.”
카인의 사과에 헤롤드가 당황하여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저희 중 불만을 가진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저희 대장님과 친우 분이시니 쭉 말을 편히 하셔도….”
헤롤드는 그렇게 말하다 자신이 너무 앞서 나갔다 생각했는지 고개를 돌려 상관의 눈치를 보았다.
제르비아는 고개를 까딱였다.
편한 대로 하란 메시지.
그녀가 말했다.
“요한. 마약에 상당히 오랜 시간 노출이 되었다. 몸에 이상은 없는가?”
“이상 없다. 몸에 과하게 에너지가 도는 걸 제한다면.”
0번대 대원들이 대화에 참여했다.
“죄송합니다. 고장 난 방독면을 저희가 착용했어야 하는데. 아무리 요한님이 괜찮다고 말씀을 하셨어도.”
“아예 쓰지 않으셨던 걸 보면 기능을 하나도 하지 못했던 것이겠죠. 부끄럽습니다. 기사 학교를 나온 저희보다 더 기사 같은 모습을 보이셨으니 말입니다.”
카인은 부드러운 미소를 보이며 답했다.
“그 상황에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내렸을 뿐입니다. 몸에 직접 신약을 시험할 때가 많으니, 향정신성물질에 대한 내성을 다른 분보다 더 많이 갖췄다 할 수 있을 테지요.”
카인은 덧붙였다.
“물론 마법의 도움도 조금 받긴 했습니다.”
“어떤 마법입니까?”
“쉽게 알려 들면 재미가 없을 것 같군요. 이번 겨울부터 마탑에 개설될 제 강의에 참석하시면 들으실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 강의 말입니까? 그럼 교수직을 맡으신다는 소문이 사실….”
카인은 고개를 끄덕여 긍정을 표했다. 라이티노에게 부탁해 확답을 받은 상태였다.
「교수 자리 하나를 마련해달라고? 당연하지! 쓸모없는 것들 엉덩이를 걷어차서라도 만들어주겠네.」
2황녀 율리아의 마법 교사가 되어 황실을 꾸준히 출입하기 위한 안배였다.
“요한, 그럼 우리는 먼저 올라가겠다. 지원 병력을 요청하고 지상층 인원을 통제하고 있지.”
제르비아는 대원 둘을 이끌고 계단 위쪽으로 사라졌다.
“저희는 지하에 남은 인원들을 정리하겠습니다.”
그와 반대로 헤롤드와 나머지 대원 둘은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복도에 찾아온 정적.
카인은 품에서 자신의 방독면을 꺼내 버튼을 눌러 간단히 조작했다.
삐─
초록색 작은 램프에 불이 들어와 방독면이 정상적으로 기능함을 알렸다.
“뭐, 제르비아 정도는 눈치챘을지도 모르겠군.”
0번대에게 말한 것과 달리 방독면은 고장 나지 않았다.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하는데, 방독면 점검 따위를 잊을 리 없지 않은가.
단순히 연기였다.
0번대 대원들의 호감과 신뢰를 사기 위한 연기.
‘제르비아, 그녀가 위로 올라가며 대원들 역시 한 자리씩을 차지하겠지.’
대원들 역시 미래에 이용할 수 있는 유용한 손발이 되어줄 터였다.
***
클럽 카스라르고 사건은 대륙 전역에 대대적으로 보도되었다.
“맥커스 회장님! 영업부장 캠밸 맥커스의 이름이 카스라르고 클럽의 투자자 명단에 올라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모션데일리의 제나일 기자입니다. 혹, 투자가 회장님의 지시하에 이뤄졌다는 이야기에는….”
“난 모르오! 다들 썩 꺼지시오!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뭣들 하나! 다 쫓아내!”
스프리건과 맥커스 소드.
두 거대 기업을 비롯해 여러 중견 기업의 회장들은 투자자 명단에서 자식들의 이름을 보게 되었다.
어떻게든 사건을 무마하려 했지만, 그러하기엔 특무대 2번대와 3번대를 비롯해 얽힌 이가 너무도 많은 사건이었다.
사람들은 크게 두 부류였다.
“벽 안쪽에도 마약이 유통되고 있었다고?”
마약 클럽을 모르고 있던 이들.
“마약이라니.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들은 다 감옥에 잡아넣어야지.”
혹은 몰랐던 ‘척’하는 이들.
대다수는 후자.
그들은 남보다 더 크게 분노했다.
이제껏 범죄를 방관한 사실을 누군가에게 들킬까 두려워 라도 하듯이.
“제국법 17조 2항에 따라 징역 98년을 선고한다.”
제국법은 준엄했다.
사건에 관련된 이들은 저마다 다른 형기를 가지고 사람들의 손가락질 속에 교도소로 호송되었다.
연좌제가 적용되진 않기에, 각 기업의 회장들이 형벌을 받지는 않았다.
다만 정계와 재계에서의 입지가 대폭 줄어들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가장 즉각적으로 반응이 나타난 곳은 주식시장.
스프리건과 맥커스 소드를 위시해 추문에 휩싸인 기업들의 주가는 폭락했다.
그로 인해 반사 이익을 누린 기업도 적지 않았다.
카인의 헥사메디컬.
피에타의 로우택틱.
불칸 회장의 오토컴뱃이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었다.
“자비르 경위님. 사건의 단초는 어떻게 잡으셨습니까?”
“사건에 경찰이 연루되어 있었고, 특무대 간에 전투가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맞습니까?”
기자회견장.
기자들은 제르비아에게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내려 했다.
“하나씩 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녀에겐 굳이 사건을 숨길 마음이 없었다.
“먼저 경찰이 비리에 개입한 것이 맞습니다. 특무대 1번대와 2번대가 마약 클럽의 운영을 방조했으며, 현재 제국법에 따라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기자 하나가 손을 들고 물었다.
“자비르 경위님 같은 참된 경찰이 있어 시민들이 안심하고 거리를 지날 수 있는 것이겠죠. 경위님의 거침 없는 행보가 앞으로도 이어지리라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질문의 의미는 명확했다.
‘앞으로 생겨날 적들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벽 안쪽 범죄가 카스라르고 하나로 그칠 리 없다.
모두가 흐린 눈을 하고 있을 뿐, 분명 수많은 비리와 부패가 존재할 터였다.
제르비아는 그중 하나를 척결함으로써 일종의 선전포고를 한 셈.
관련 세력의 견제가 분명 거셀 것이었다. 경찰 조직 안팎을 가리지 않고 말이다.
제르비아는 일말의 망설임 없이 질문에 대답했다.
“네. 제 걸음은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범죄가 사라지는 순간까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그밖에도 여러 질문이 나왔다.
내부 비리에 대한 경찰의 공식 입장이나, 클럽 지하에서 이뤄진 수사 과정과 같은 것들.
“경찰의 공식 입장은 아직 제가 답변 드릴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다만 이것 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제르비아는 한 호흡 쉬었다.
“이번 작전을 성공적으로 끝마칠 수 있던 것은.”
카메라 셔터조차 멈추고,
모두가 이쪽만을 주시하는 순간.
“모두 헥사메디컬의 대표 요한 키리프 덕입니다.”
그녀는 입술을 움직여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