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54화 (154/227)

#154. 클럽 카스라르고 (3)

나이론은 부하 직원의 보고를 받고 잠시 멍할 수밖에 없었다.

“카스라르고에 경찰이 들이닥쳤다고?”

“예. 확실하진 않지만 정황상 그렇게 보입니다.”

그에게는 딜런 메디컬의 연구부장이라는 직책 외에도 사업가적 수완이 있었다.

각계각층 권력가들의 투자.

일대를 관할하는 특무대의 매수.

그리고 안정적인 약재의 공급.

몇 년간의 꾸준한 물밑 작업 끝에 제대로 된 사업을 시작한 게 1년 전이었다.

감히 건드릴 자가 없는 완벽한 사업 모델이었다.

그런데 경찰이라고?

‘프란 경위가 배신을 했나? 아냐, 분명 며칠 전에 같이 술을 마시며 관리비를 찔러주었는데 그럴 리가….’

특무대의 각 관할은 상호 불가침.

프란이 아니라면, 다른 이가 수사권을 침범해 18번 구역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카스라르고의 지하에 보관된 온갖 기밀 서류를 떠올린 나이론의 등에 식은땀이 죽죽 흐르기 시작했다.

“차를 대기시켜!”

더 이상 고민은 의미가 없었다.

현장에 가서 부딪치는 것밖에는.

나이론이 탄 차는 신호를 무시하며 정신없이 나아갔다.

끼이익─!

카스라르고 건물 앞엔 특무대 2번대가 대기하고 있었다.

평소의 정복이 아닌 사복 차림.

나이론은 보고를 받고 있는 30대 중반의 남자에게 한달음에 달려가 물었다.

“프란 경위,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경찰의 수사가 들어왔다는 말이 사실입니까?”

프란 경위는 부하 대원의 보고를 계속해 들으며 대수롭지 않은 투로 말했다.

“경찰이 숨어든 건 맞는 것 같습니다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작은 해프닝일 뿐입니다.”

아직 자세한 상황 설명을 듣진 않았지만, 나이론은 그 한마디로 마음이 조금 놓이는 것 같았다.

유리문 너머 평화롭게 티타임을 즐기고 있는 손님들을 보며 말했다.

“일단 안에 있는 손님들부터 대피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손님들이 더 들어오지 못하도록 접근을 제한하고 말입니다.”

프란 경위가 나이론의 어깨에 손을 턱 올렸다.

“굳이 일을 크게 키울 필요가 있겠습니까? 적은 아직 지하에서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잘 처리하면 아예 없던 일이 되는 겁니다. 내부적인 피해야 조금 있겠지만요.”

나이론이 입술을 달싹이자 프란 경위가 덧붙였다.

“아래에 있을 서류도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마 적이 노리는 것도 그것이겠지만, 가지고 올라오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믿음직스러운 모습.

역시 사소한 말썽이었을 뿐인가.

“그런데 적이라니, 상대는 경찰 아니었습니까?”

“아뇨. 적이 맞습니다.”

프란 경위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리고 부하에게 건네받은 영상 기기를 작동했다.

위잉-

원반 위에 홀로그램이 투사되었다.

침입자로 보이는 인원과 경비들이 뒤엉켜 싸우는 전투 현장이었다.

“최근 CCTV 외에 추가로 설치했던 영상 장치입니다. 내부의 모습을 지연 없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습니다.”

프란 경위의 손가락이 홀로그램 가운데 검을 휘두르는 여성을 가리켰다.

나이론이 물었다.

“경찰이 아닐 가능성도 있습니까? 적어도 제가 아는 얼굴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경찰이 맞습니다. 수사를 위해 종종 변용 마법이나 위장 도구를 사용하기도 하니까요. 결정적으로 검로가 몹시 눈에 익습니다.”

“짚이시는 인물이…?”

“자비르 경위로 생각되는군요.”

나이론이 헛숨을 들이 삼켰다.

“제, 제가 아는 그 자비르 경위 말입니까?”

“예. 청장님의 딸이자 특무대 0번대의 대장 자비르 경위가 맞습니다.”

프란 경위가 불편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녀의 활동 구역은 주로 벽 바깥입니다. 벽 안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은데, 설마 냄새를 맡았을 줄은 몰랐군요. 구역 담당자인 제게 언질도 없이 바로 수사를 개시할 줄도요.”

“그, 그러면 조용히 처리할 수가 없는 것 아닙니까? 청장님의 딸이라면….”

“그건 관계없습니다. 청장님이 딸에게 큰 관심이 없다는 건 경찰 조직 내의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죠. 충분히 사건을 덮을 수 있습니다.”

사건을 덮는다.

프란 경위의 평소 행동 방식을 알고 있는 나이론은 한 가지 생각에 닿았다.

설마.

그 생각이 맞는지 확인키 위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덮는다면 어떤 방식으로….”

“죽이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죠.”

나이론의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사람을 죽이는 게 두렵진 않았다.

평소에도 경쟁 상대를 제거하기 위해 온갖 암수를 사용해 왔으니까.

다만 일을 이렇게 크게 키우고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을까 의문이었다.

“저, 저는 과연 그래도 될지…. 자비르 경위를 잘 구슬려 설득하는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자비르 경위만큼 외골수인 인물도 없지요. 그럴 융통성이 있었다면 수사를 벌이기 전 제게 먼저 접촉을 해 왔을 겁니다.”

프란 경위가 얼굴을 기울여 나이론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리고 카스라르고의 ‘투자자’분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설령 정보가 조금 샌다 해도 충분히 무마할 수 있습니다.”

“…그랬죠. 제가 최근 불미스러운 일을 겪다 보니 담이 조금 작아진 것 같습니다.”

프란 경위의 얼굴이 다시 멀어졌다.

“그 일은 저도 들었습니다. 18번 구역의 농토가 넘어가게 되었다고요. 약재의 공급엔 차질이 없는 겁니까?”

“예. 걱정 마십쇼. 다 계획을 짜 두고 있습니다. 농토가 넘어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프란 경위의 흡족한 미소.

그를 따라 나이론 역시 웃었다.

“그럼 슬슬 저희 2번대가 움직이도록 하지요. 앞선 전투로 상대의 힘이 빠져 있을 테니까요.”

프란 경위의 손짓에 2번대 대원들이 카스라르고의 입구로 들어갔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나이론은 문득 특무대의 숫자가 정원보다 많은 걸 깨달았다.

‘분명 한 대의 인원은 10명일 텐데?’

나이론은 주위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뒷짐을 진 채 다른 대원들 앞에 서 있는 몇몇 인원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낭패 어린 표정.

얼핏 드러난 손목의 구속구.

제르비아가 밖에 배치해 두었던 0번대 대원들이었다.

그들 앞에는 제르비아의 지원 요청을 받고 도착해 있던 1번대 대장 맬리스 경위가 갈등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이론의 의아한 표정을 보고 프란 경위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적이 생각보다 많은 인물입니다. 자비르 경위는.”

프란이 아는 자비르는 결정적인 순간 유약해지는 인물이었다.

최악의 경우.

그녀 부하들의 목숨을 두고 협박을 가하면 되리라.

* * *

“내 허락 없이 감히 어디를 빠져나가려는 거지?”

카인의 목소리가 복도를 섬뜩하게 울렸다.

단 한 번의 마법.

단 한 번의 압도적 폭력.

그것으로 전투의 양상은 뒤집혔다.

“나, 난 죽기 싫어.”

쨍강─

하나둘 검이 바닥에 떨어졌다.

바람에 깊게 패여 갈려 나간 천장.

곳곳에 피를 쏟아 내는 하반신.

돌풍이 일으킨 폭음에 귀에서 피를 흘리며 경련하는 이들.

아비규환과 같은 광경에 전의를 유지할 수 있는 이는 없었다.

‘벽 바깥에 비해 쉽군. 실력은 월등히 뛰어날지 모르겠지만.’

악전고투하며 전장을 헤쳐온 바깥의 용병들이었다면 끝까지 달려들었을 터였다.

적에게 상황을 통제할 지휘관이 있었다면 조금 이야기가 달랐겠지만, 승패는 이미 결정이 난 상태였다.

푹!

제르비아와 특무대는 낙엽을 쓸 듯 거침없이 검을 휘둘러나갔다.

대원들은 팔목과 발목의 힘줄을 찔러 적의 움직임을 제약했다.

반면 제르비아는 싸늘한 눈빛으로 적의 목을 베어 나갔다.

그 거침없는 기세에 대원들조차 움찔할 정도였다.

‘…확실히 변했군.’

일상이 아닌 전장.

그녀의 행동 양식이 확연히 바뀌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의 그녀였다면 가능한 적의 목숨을 빼앗지 않고 제압하는 수를 택했을 테니까.

탁.

카인의 손이 막 검을 휘두르려던 제르비아의 손목을 붙잡았다.

“…….”

제르비아의 차가운 눈빛이 카인을 응시했다.

카인은 CCTV 쪽을 눈짓했다.

후속 조사에서 귀중한 입증 자료로 쓰일 녹화 영상이었다.

그 외에도, 제조실 창문 너머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일반 직원들도 있었다.

“후에 과잉진압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 손발을 못 쓰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딱히 적을 동정하거나,

그녀의 인간성이 옅어질 것을 걱정하는 건 아니었다.

후에 그녀가 진급할 때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알겠다.”

제르비아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그녀는 검을 고쳐 잡고 대원들과 같이 적의 손발을 찔러 나갔다.

카인은 부서진 엘리베이터 앞에서 벌벌 떨고 있는 지배인에게 다가갔다.

특무대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했을 때, 죽은 이들의 마나를 흡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쪽이 지배인인가.”

“예, 예, 예! 마, 맞습니다!”

카인은 지배인의 손에서 서류 가방을 스륵 들어 올렸다.

“잠금장치의 비밀번호가 뭐지.”

“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비상시 가방을 가지고 지정된 장소로 가라는 지시만 받아서….”

‘진실의 눈’ 특성이 발동했다.

거짓.

카인은 이곳이 CCTV가 없는 사각지대임을 확인했다.

“유감이군. 머리가 돌아간다면 지금 붙어야 할 쪽이 어디인지 알고 있을 텐데.”

카인의 손에서 푸른 전류가 뿜어져 나왔다.

파지직!

지배인은 한차례 몸을 부르르 떨고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그다음 카인은 서류 가방을 힘으로 비틀어 열었다.

우드득.

서류 뭉치를 꺼내 빠르게 넘겼다.

마약 클럽 운영에 관한 사항 전반이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특히 투자와 수익 분배서에 보이는 몇몇 이름에 카인의 눈이 이채를 발했다.

‘부잣집 도련님들의 취미라 할 수 있겠군.’

이안 벨델로프.

로우택틱, 컴뱃오토와 더불어 시총 순위를 다투는 군수 기업 스프리건의 차남.

캠벨 맥커스.

벽 안쪽에서 최근 몸집을 불리고 있는 경비 업체 맥커스 소드의 장남.

카인은 고개를 돌려 복도에 나부라진 경비들을 바라보았다.

‘자신이 투자한 사업에 회사의 경비를 끌어다 사용했군.’

스프리건과 맥커스 소드의 회장은 황실에서 작위를 받은 귀족으로, 정계에도 진출해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밖에도 여러 쟁쟁한 기업체 자식들의 이름이 보였다.

황제가 선별한 무도회 초청 명단에도 보였던 이름들.

이 사건을 터트리면 그들의 이름은 후순위에 있던 다른 이들의 이름으로 다시 쓰여지리라.

제르비아가 명단에 오를 가능성이 다시 한번 높아지는 일.

더욱이 경쟁 업체의 주가 하락도 노릴 수 있으니.

‘자료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적의 숨통을 더 빠르고 확실하게 조이려면.’

추가적인 자료가 필요했다.

아마 지배인이 미처 챙기지 못하고 집무실에 남겨 두었을.

그때 부서진 엘리베이터 문 너머 텅 빈 공간에서 무언가 소리가 울려왔다.

쿠구구─!

둔중한 무언가 사방의 벽을 긁으며 떨어져 내리는 소리.

쿵!

쇠사슬이 끊어진 엘리베이터가 바닥을 내리찍었다. 지붕 위에서 날카로운 검 두 자루가 카인을 향해 쇄도했다.

쨍!

점멸을 사용한 카인의 신형이 사라진 자리, 두 검이 맞부딪쳤다.

‘살기가 예사롭지 않다. 특무대인가.’

카인의 예상대로 검을 휘두른 이들은 프란 경위의 지시를 받아 내려온 특무대 2번대였다.

그들의 검은 멈추지 않고 카인을 추적했다.

쐐액!

챙!

카인의 등 뒤.

새로운 검들이 나타나 공격을 받아냈다.

“카프셀! 자비르 경위님의 이야기가 사실이었다니!”

“베먼, 돈을 받고 범법 행위를 눈감아 주다니 부끄럽지도 않나!”

서로 같은 특무대.

하나 다른 생각과 다른 번호를 지닌 이들 간에 순식간 공방이 벌어졌다.

“목소리를 들으니 헤롤드 부관님이시군요. 얼굴을 참 감쪽같이 속이셨습니다.”

“범법 행위라니, 현재 경들이 저지르고 있는 불법 침입 말입니까?”

비웃음이 이어졌다.

하지만 0번대가 퍼붓는 압도적인 공격에 여유는 오래가지 못했다.

‘뒤에 있는 자가 마법사인가. 하지만 아무리 강화 마법을 받았다고 해도…!’

특무대는 실력이 뛰어난 대일수록 낮은 번호가 부여된다.

0번대와 2번대의 차이.

거기에 카인의 강화 마법이 부여된 결과였다.

‘하지만 그래 봤자다. 전투는 무력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니까.’

복도 반대편 끝 계단.

쏟아져 들어오는 아군을 보며 2번대 대원은 속으로 미소 지었다.

“마법사를 우선으로 노려라!”

“자료를 먼저 확보해! 마법사가 들고 있는 가방 탈취를 우선으로 한다!”

새로 난입한 이들은 길을 막고 있는 제르비아와 나머지 한 명의 0번대 대원에게 검을 휘둘렀다.

챙!

제르비아는 이를 악물고 검을 받아쳤다.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약간의 머뭇거림과 주저함이 남아 있는 표정.

적 무리엔 2번대 외에도 1번대 대원들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미로 같은 복도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배신?

혹은 처음부터 적이었나?

충격은 컸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고스란히 분노로 치환되어 그녀의 검을 더욱 거칠고 매섭게 만들 뿐이었다.

“황제의 검을 휘두르는 자로서!”

그녀의 검이 푸른 마나를 뿜었다.

“부끄러운 줄 알라!”

챙!

적의 검 역시 마나를 두르고 있었지만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대로 반으로 갈라져 바닥에 뒹굴었다.

제르비아의 검이 적의 목을 노리고 허공을 갈랐다.

챙!

이어 난입한 1번대 대원들의 검.

그녀의 검을 튕겨낸 뒤, 역으로 합공을 펼쳐 왔다.

챙! 챙!

조금 전 외쳤던 제르비아의 일갈에도 1번대 대원들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그저 공격을 몰아칠 뿐이었다.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덮을 길은 상대의 숨을 끊는 것밖에 없다는 듯.

2번대에 비해 확연히 뛰어난 실력.

제르비아는 침착하게 다수의 적을 상대해 나갔다.

‘애초에 세상에 믿을 수 있는 이는 나 자신밖에 없다. 동료 따위는 필요 없다. 내 등 뒤는 내 스스로─.’

챙!

순간 그녀의 검로가 꼬였다.

스텝이 망가지며 자세가 뒤쪽으로 무너졌다.

바닥을 짚기 위해 반사적으로 뒤로 손을 뻗었다.

“……!”

하지만 예상과 달리 몸은 뒤쪽으로 쓰러지지 않았다.

물리적 형태를 갖춘 ‘무언가’가 등을 떠받치고 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것이 바람이라고.

그녀는 바람을 쿠션으로 이용해 자세를 틀었다. 그리고 검을 휘둘러 적의 공격을 쳐냈다.

돌아본 자리엔 카인이 이쪽을 향해 손바닥을 뻗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등 뒤는 걱정하지 마라. 이쪽 적은 내가 맡을 테니.”

그녀는 심장의 쿵쾅거림을 느꼈다.

그건 분명 전투의 고양감.

그리고 공기 중에 퍼진 각성 성분 때문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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