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 클럽 카스라르고 (2)
“도시 한가운데 마약 판매점이 있다면 어떨 것 같나?”
찻잔을 들어 올리던 제르비아의 손이 허공에 멈췄다.
“즉각 처벌이 가능한 대상이다.”
“처벌의 기준은 어떻게 되지?”
“제조와 판매에 직접 관여한 자는 손목을 자르며, 구매자 역시 징역이나 벌금형을 받는다.”
다음 지시를 내리려는 모양이지.
제르비아가 생각하고 있을 때 카인이 테이블 위에 비닐백 하나를 올렸다.
“17번 구역의 한 주점에서 이런 걸 팔고 있더군.”
제르비아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17번 구역?”
“번화가에서 버젓이 영업을 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카인은 사진을 내밀었다.
카스라르고의 입구와 그 아래 오가는 손님들의 모습이 찍혀 있었다.
“젊은 층 사이에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장소 같더군. 마치 유행처럼 말이지. 운영을 시작한 시기는 약 1년 전이다.”
“…….”
제르비아는 사진을 들고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이토록 드러내놓고 영업을 하는데 아직 철퇴를 맞지 않았다는 것은.
“…뒤를 봐주는 세력이 존재한다.”
“그래. 그리고 나는 그 세력이 특무대라고 생각한다.”
제르비아는 카인의 말에 부정할 수 없었다.
벽 안쪽은 특무대가 구역을 나누어 직접 관리하며 24시간 순찰한다.
마약 판매점, 그것도 번화가에 위치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부끄럽군.”
진심이었다.
경찰 내에 비리가 존재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벽 바깥에 국한된 이야기라고 생각해 왔으니까.
‘17번 구역이라면 분명 2번 대를 이끄는 프란이 관리하는 곳이다.’
과거의 자신이라면 분명 카인의 말을 부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47번 구역에서 동료들의 추악한 면모를 이미 목도한 적이 있다.
특무대라고 다를 것이 없다.
아무리 깨끗한 물도 고이면 썩기 마련이니까.
“바로 수사에 들어가지. 증거를 수집하며 조금씩 포위를 좁혀 나가겠다.”
“조금씩이라.”
카인의 목소리가 사진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제르비아를 멈춰 세웠다.
“……?”
카인은 창가에 놓여 있던 작은 화분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 일엔 기본적으로 딜런 메디컬이 관계되어 있다. 18번 구역의 농토에서 17번 구역의 카스라르고로 약재를 공급하고 있지.”
화분에는 이름 모를 화초가 피어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라 정계나 재계의 인사가 얽혀 있을 수 있다.”
제르비아는 그 말에 동의했다.
노골적으로 마약을 판매하고 있음에도 문제를 제기하는 이가 없다는 것.
사람들이 누군가의 눈치를 보며 쉬쉬하고 있을 가능성이 존재한단 말이었다.
“뭔가를 뿌리 뽑을 땐 아무리 공을 들여도 그곳에 기생하는 벌레들이 눈치를 채고 날아가는 법이지.”
카인은 화초의 목 부분을 잡는 시늉을 했다가 멈췄다.
잎사귀에는 작은 벌레들이 기어 다니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이해했다. 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최대한 은밀히 조사를 벌이겠다.”
카인은 고개를 저었다.
“조사라는 말은 적절치 못할 것 같군. 이럴 때 써야 할 방법은 따로 있으니까.”
“다른 방법이라니 어떤….”
화륵.
카인의 손에서 일어난 불길이 화초를 집어삼켰다.
엄청난 고열.
불길이 사라진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불태운다. 상대가 반응할 틈도, 빠져나갈 틈도 없도록.”
* * *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요한 님이 라이티노 님의 수제자라는 말이 사실이었군요.”
특무대 0번대.
제르비아의 부관 헤롤드는 자신의 바뀐 얼굴을 보며 감탄했다.
“제자는 아니지만 친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카인은 나머지 2명의 특무대 대원에게 변용 마법을 걸어 주며 말했다.
“마나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 정말 실력이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수준 높은 마법사와 작전을 함께한다니 든든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저희 대장님이 요한 님과 친분이 있는 줄도 전혀 몰랐고 말입니다.”
대원 하나가 제르비아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녀 또한 거울을 보며 마나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 인상을 쓰고 있었다.
“…….”
마나에 대한 그녀의 기감은 남보다 몇 배는 뛰어난 편이었다.
하지만 카인의 마법은 마나의 흔적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라이티노 장로님의 제자라고. 오히려 실력만으론 그 반대일 수도.’
카인과 제르비아.
그리고 0번대의 대원 셋은 카스라르고로 향했다.
「벽 안쪽은 법이 엄격한 만큼 모든 것이 서류로 남지. 카스라르고에 잠입해 사업 투자자들의 명단과 약재의 거래 내역을 확보한다.」
카인이 제르비아에게 전달한 지시였다.
「17번 구역을 관리하는 특무대는 2번대. 하지만 그들만 관여하고 있다고 확신할 수 없지.」
카인은 물었다.
「제르비아. 네가 움직일 수 있는 병력 중 정말 신뢰할 수 있는 이는 얼마나 되지?」
제르비아의 고민은 길지 않았다.
먼저 0번대의 10명 중 5명의 인원을 추렸다.
부관 헤롤드를 포함한 3명은 카스라르고에 함께 잠입하는 인원.
나머지 2명은 불시의 상황에 대비해 바깥에서 대기하도록 했다.
「1번대의 대장에게도 지원을 요청했다. 그 역시 믿을 수 있는 이들을 선별해 바깥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위잉-
내부로 진입하자 밝은 분위기 속에 담소를 나누거나 토론을 벌이고 있는 손님들이 보였다.
기사 학교의 생도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눈에 띄었다.
‘마약이 불법이란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텐데.’
그들이 지하로 내려가 마약을 즐기는 장면을 상상하자, 제르비아는 머리에 피가 몰리는 기분이었다.
입술을 짓씹었다.
범죄는 뿌리 뽑아야 했다.
주위 식생을 해치고 토양에 악영향을 주며 마구잡이로 자라나는 덩굴.
가시에 손을 다칠까 방치하면 걷잡을 수 없이 뿌리를 내리고 만다.
아무도 용기 내지 못 하는 일.
하지만 누군가 해야만 하는 일.
제르비아는 그 일이 자신의 몫이라 생각하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혹시 모를 의심을 피하기 위해 대원 셋은 다른 일행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객실로 이어지는 복도 앞에 모두가 멈춰 섰다.
“입장 전에 팔찌를 착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르비아와 대원들은 당황했다.
사전에 이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으니까.
회로를 차단하는 팔찌는 현장에서도 종종 사용하는 구속구였다.
‘이걸 착용하면 내부에서 무슨 일이 생겨도 대응할 수가 없다.’
제르비아는 갈등에 빠졌다.
자신의 판단을 기다리는 대원들의 시선이 느껴졌다.
“…….”
그녀는 카인은 보았다.
카인은 담담한 투로 팔찌를 받아 착용하고 있었다.
‘설마 나를 함정에 빠트리려는 건.’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맹약이 지속되는 동안은 상호 간에 해를 끼칠 수 없다.
찰칵.
제르비아는 팔찌를 착용했다.
그녀 스스로는 인지하지 못 했지만, 무의식중에 카인에 대한 신뢰가 쌓인 것도 있었다.
대장의 솔선수범에 대원들도 안심하고 팔찌를 착용했다.
제르비아와 카인.
대원 셋.
달콤한 향기가 풍기는 복도를 지나, 각 일행은 두 개의 방에 나뉘어 들어갔다.
제르비아는 묘하게 심장이 빨리 뛰고 정신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꼈다.
“마실 것을 조금 주문하지.”
카인이 벨을 눌러 종업원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곧 테이블 위엔 몇 병의 술과 몇 종의 마약이 놓였다.
“…도심 한복판에서 정말로 마약을 팔다니. 말이 안 나오는군.”
제르비아의 눈빛은 당장 마약 봉지를 태워 버릴 것 같았다.
이미 이야기를 들었지만, 사실을 직접 눈으로 접했을 때의 감정은 다른 법이었다.
“약을 해 본 적이 있나?”
“해 본 적 없고, 앞으로도 해 볼 일 없다.”
전투 시 가벼운 각성제를 복용하는 대원이 종종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하물며 단순히 쾌락만을 위한 이런 약물 따위는.
“가지. 먼저 노릴 곳은 지하 3층에 있는 지배인의 집무실이다.”
제르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 역시 카인만큼이나 이런 범죄 시설의 특성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
중요품의 보관은 지상보다 지하.
언제든 외부 세력에 대응할 병력이 상주한 곳.
제르비아가 말했다.
“먼저 팔찌를 풀 열쇠의 확보를….”
카인은 팔찌와 손목 사이에 손가락을 걸어 넣었다.
우드득. 텅!
단단한 금속 재질의 팔찌가 허무할 정도로 쉽게 우그러져 바닥에 뒹굴었다.
“……!”
경악에 찬 제르비아의 팔찌 역시 담담한 몸짓으로 끊어 버렸다.
순간 제르비아는 그간 카인을 조사하며 모았던 정보가 짜 맞춰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약간의 흥분.
너를 파악하고 있다는 우월감.
“카인, 역시 너는 수인의 혼혈….”
“헛소리 말고 일어나지.”
카인은 제르비아의 헛된 깨달음을 봉쇄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을 벌컥 열고 특무대 대원들이 있는 방으로 가 노크를 했다.
철컥. 끼익.
“요한 님, 그 팔찌는 어떻게…!”
카인은 놀란 그들의 팔찌 역시 끊어 버렸다.
멍한 얼굴로 손목을 매만지는 그들에게 아공간에서 꺼낸 검을 던졌다.
“훨씬 나을 겁니다. 옷 안에 숨겨 들어온 조립식 무기보다는.”
“…….”
제르비아는 직감했다.
내 아공간인 것 같은데.
울컥했지만 참았다.
녀석에게 돌려줄 마음이 있었다면 진작 그러했을 테니까.
“가지.”
카인과 제르비아가 앞장서 복도를 돌았다. 그들 뒤로 대원 셋이 따랐다.
“최대한 빨리 끝내지. 공기 중에 각성 성분이 퍼져 있어 시간을 오래 끌면 체내에 손상이 갈 수 있으니.”
제르비아는 그제야 자신의 심장이 빨리 뛰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잠시 멈춰 주십시오. 도검류는 입장 전 반납을…?”
복도 반대편에서 다가오던 직원은 이상함을 느끼고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퍽!
하지만 그보다 카인의 동작이 빨랐다.
카인의 손날에 목 뒤를 가격당한 직원은 의식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CCTV는 상관없다. 어차피 지하 3층까진 채 1분도 걸리지 않으니.’
카인은 거침없이 복도를 돌며 전진했다. 뒤에서 제르비아와 대원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요한 님은 어떻게 팔찌를 끊을 수 있던 겁니까?”
“요한에겐 수인의 피가 흐른다. 확실하다.”
“허…. 말로만 듣던….”
뭔가 대단한 오해가 퍼져 나가고 있지만, 계획에는 아무래도 상관없기에 대화에 끼지 않았다.
“침입자다!”
지하 3층.
복도 곳곳에서 검을 꼬나 쥔 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대원들이 몸의 긴장을 곤두세우며 말했다.
“개미 떼가 따로 없군요. 모두 벽 안쪽 경비 업체의 직원들일 테지요.”
“저희가 너무 벽 바깥에만 시선을 두고 있었나 봅니다. 내부에 이렇게 곰팡이가 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니.”
“적의 규모가 이 정도일 줄은 몰랐는데 말입니다.”
만만치 않은 전투가 되리라 직감할 수 있었다.
경비 업체의 수준은 범죄가 횡행하는 벽 바깥보다 오히려 범죄가 드문 벽 안쪽이 높았다.
‘까다로운 부유층의 입맛을 맞춰야 하기 때문이겠지.’
카인의 손에서 뻗어 나온 마나가 제르비아와 대원들의 몸에 스몄다.
라이티노에게 받은 시계 덕에 마나는 더 이상 흑색을 띠지 않았다.
그 색은 찬연한 푸른빛이었다.
대원들의 입에서 감탄이 터졌다.
“강화 마법은 몇 번 받아 본 적이 있지만 이 정도 수준의 것은….”
최악의 경우 이곳에서 뼈를 묻어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이런 마법과 함께라면.
대원들은 흥분감에 몸을 떨었다.
약간의 각성 성분과 강화 마법이 더해지며 그들은 현재 생애 최고 전투력에 도달한 상태였다.
‘…인정하기 싫지만.’
제르비아 역시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힘.
극대화된 오감과 반사 신경.
아마 평소의 배 이상 강해지지 않았을까.
‘그리고 마나의 색은 어떻게 다시 푸른빛으로 되돌린 걸까.’
그건 알 수 없었다.
만날 때마다 새로운 의문을 품게 만드는 남자였다.
챙!
좁은 복도의 이점을 살리며 전투를 벌였다.
숫자 차이가 컸지만 특무대의 무력은 적을 압도했다.
파직!
“감사합니다!”
간혹 흥분한 대원이 내보인 빈틈은 카인의 마법이 적절하게 파고들어 위기를 넘겼다.
적의 숫자는 빠른 속도로 줄어나갔다.
전투를 속행하는 중.
카인의 시선은 복도 끝에 위치한 엘리베이터에 향해 있었다.
‘직원용 엘리베이터는 두 곳에 존재한다. 한 곳은 고장 난 상태. 남은 곳은 저곳 하나.’
카인은 때를 기다리는 사냥꾼처럼 엘리베이터를 주시했다.
그리고 서류 가방을 양손 가득 든 남자가 그 앞에 나타난 순간.
‘저자가 지배인이군.’
휘오오오─!
미리 정제해 두었던 원소가 손바닥 밖으로 발현되며 소용돌이쳤다.
“모두 몸을 바짝 숙여라.”
카인의 목소리는 나직했지만 특무대 모두에게 확실히 전달되었다.
제르비아와 대원들은 즉각 몸을 숙였다.
지지지직─
거대한 기둥 형태의 돌풍이 허리 높이 위의 모든 것을 찢어발기며 엘리베이터를 향해 날아갔다.
“피, 피해라!”
휘말린 적은 문자 그대로 ‘삭제’되었다.
돌풍은 지배인이 막 누르려던 버튼에 충돌했다. 그리고 폭발했다.
콰드드드득─!!!
지배인은 손가락을 뻗은 자세 그대로 굳어 몸을 덜덜 떨었다.
그의 눈앞.
승강기는 괴물이 씹어 뱉은 것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이 우그러져 있었다.
손가락을 조금만 더 뻗었다면 자신 역시 폭발에 말려 비슷한 꼴이 되었으리라.
압도적 규모의 폭력.
모두가 숨을 죽인 고요한 복도.
카인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 허락 없이 감히 어디를 빠져나가려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