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 클럽 카스라르고 (1)
차량은 도로를 타고 17번 구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기록을 보니 방문 이력이 있으시더군요. 저희 클럽을 다시 찾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벤, 정확히는 벤의 얼굴을 한 카인이 답했다.
“첫 방문 때의 기억을 잊을 수 없어서 말입니다. 업무가 통 손에 잡히지 않더군요.”
카인의 대답에 기사는 기분 좋은 웃음을 터트렸다. 자부심이 묻어나는 웃음이었다.
“아무래도 그런 특등 상품은 저희 클럽에서밖에 구할 수 없지요.”
카인은 적당히 웃음을 지으며 그의 기분에 맞춰 주었다.
‘18번 구역이라. 냄새가 나는군.’
카인은 벤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황녀와의 밀회라니 대담하기 짝이 없군. 그녀의 손에 쥐여 주었던 볼트는 사랑의 증표라도 되는 건가?」
잠시 신변을 구속해 놓았던 벤을 찾아가 윽박을 질렀다.
완벽하게 뒤를 캔 이가 아니면 알 수 없는 세부 사항을 들은 벤은 파랗게 낯빛이 질렸다.
「이 일이 세간에 알려지면 참 재밌겠어. 일단 세부적인 조사가 들어가야 알겠지만, 헛소문으로 끝난다 해도 황녀의 이미지엔 큰 타격이 가겠지.」
벤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한참 고민한 끝에 말했다.
「…제 목숨 따위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소문만은 제발 퍼트리지 말아 주십시오. 그분에게 해가 되는 일은 제가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벤이 입술을 짓씹었다.
「내가 네 자식을 죽일 테니까.」
순간 돌변한 벤의 태도에 카인은 흥미가 일었다. 자기 목숨줄을 쥔 상대에게 되려 협박이라.
「황녀를 사랑하나? 일개 정비사 따위가?」
「내 목숨을 다 바쳐 사랑하지. 그분 눈에서 눈물이 나게 만들기만 해 봐. 내가 네 사지를 찢어 놓을 테니까.」
그의 감정이 진짜임은 굳이 ‘진실의 눈’ 특성이 아니라도 알 수 있었다.
순수한 사랑이었다.
요즘 시대에 찾아보기 힘든.
카인은 물끄러미 벤을 내려보다 말했다.
「자비를 베풀어 이 일에 대해선 함구하지. 벽 바깥에 나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어차피 죽임을 통한 입막음은 비효율적이었다.
‘벽 안쪽’ 주민을 흔적 없이 제거하는 일은 바깥과 달리 까다로우니.
불가능하진 않다.
다만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후에 악수로 돌아올 여지를 남기지 않겠다는 계산이었다.
「볼트기어의 지사는 벽 바깥에도 존재하지. 생활엔 무리가 없을 거다.」
벤은 잠시 망설였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카인은 그편이 벤에게도 더 나은 선택이 되리라 생각했다.
계속해 벽 안쪽에 남았다면.
거짓 사랑이란 불길 속에 타 죽은 부나방 신세로 삶을 마감했을 테니.
샌더슨을 통한 감시 외에도 몇 가지 안전장치를 해 둔 상태.
앞으로 크게 신경 쓸 일도 없었다.
끼익.
차량은 18번 구역 번화가의 한 빌딩 앞에 멈춰 섰다.
「카스라르고」
세련된 필체의 간판이 돋보였다.
고대어였다.
지식과 토론의 장이란 뜻의.
“그럼 유익한 시간 되시기를.”
차량이 떠나고 카인은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1층과 2층은 카페.
3층과 4층은 바.
5층은 지붕과 벽 전체가 통유리로 된 전망용 층.
중앙이 뚫려 있어 위층에서 아래층을 내려다볼 수 있는 구조였다.
전체적으로 밝은 분위기였다.
잔잔한 음악이 흐르고 유리 지붕을 통해 햇살이 비쳤다.
각 층은 미술품과 장식물을 이용해 세련된 감성으로 꾸며져 있었고, 손님 역시 절대다수가 젊은 층이었다.
“그래서 내가 이번 검술 심사에서….”
대화로 미루어 보아 학생들도 존재하는 듯했다.
“그래서 지금 벽 안쪽의 귀금속을 전부 사들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지.”
소문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으며.
“지금 정책이 잘못되었다곤 생각 안 해. 모두가 평등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래도 내 생각은….”
곳곳에선 사회나 정치 문제에 관한 토론이 이어졌다.
다만 이야기가 심도 있게 들어가지 못하는 거로 보아 썩 깊이는 없어 보였다.
단지 ‘있어 보이기 위한’ 겉핥기식 대화라는 인상이 강했다.
카인은 5층에 올랐다.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우리 토론에 너무 열을 올렸는데, 잠깐 머리 좀 식히러 갈까?
─좋지.
아래층 테이블의 한 무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B1.
엘리베이터는 지하 1층에서 멈췄다.
이어서 다른 테이블의 손님들도 하나둘 지하로 사라졌다.
‘예상은 했지만 그리 감추는 분위기가 아니군. 오히려 대놓고 장사를 하고 있는 편에 가깝다.’
하기야.
그러니 픽업 서비스 같은 것도 운영하고 있으리라.
손님들은 한참이 지나도록 지하에서 올라오지 않았다.
위층의 분위기를 충분히 살폈다고 생각한 카인은 빈 잔을 카운터에 반납하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띵.
은은한 조명 아래.
미로처럼 꼬인 복도.
호텔처럼 호수가 붙은 방이 이어졌다.
“첫 방문이십니까?”
종업원이 카인에게 다가와 물었다.
특수하게 제작된 것 같은 모양의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카인은 고개를 저었다.
“시스템을 설명해 드릴 필요는 없겠군요. 원하시는 방을 사용하시면 됩니다. 맡기신 신분증은 퇴실하실 때 객실 열쇠 반납과 함께 찾아가시면 됩니다. 그리고.”
종업원은 팔찌 하나를 내밀었다.
“체내의 회로를 차단하는 팔찌입니다. 간혹 즐거움에 과하게 취하신 손님분들이 난동을 부릴 때가 있어 이번 주부터 착용을 의무화하라는 지침이 내려왔습니다.”
카인은 팔찌를 받아 살폈다.
금속 재질의 팔찌로 한 번 착용하면 열쇠 없이는 풀 수 없게 되어 있었다.
‘강도가 그리 높진 않군.’
망설임 없이 팔찌를 착용했다.
신체 강화 특성을 습득했기에 경우에 따라 뜯어 버릴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카인은 벤의 신분증을 종업원에게 건넨 뒤, 아무 방의 열쇠를 받아 복도를 지났다.
─꺄하하하!
─으하! 으하하!
방 안에서 사람들의 웃음과 고함이 터져 나왔다. 더러 남녀의 교성이 들려오기도 했다.
조명은 점점 어두워지고 소음은 커져 왔다. 벽에 설치된 향초는 달콤한 향기를 풍겼다.
향기가 콧속의 점막에 닿자마자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각성 기능인가.’
이런 고농도의 각성 성분엔 장시간 노출되어 좋을 것이 없었다.
숨을 참았다.
철컥.
문손잡이를 돌리고 방 안으로 들어와 숨을 내쉬었다.
“후우.”
여느 호텔의 특실과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천장에 설치된 거대한 환풍구.
그리고 테이블 위에 준비된 메뉴판만 제외한다면.
「블케인 블랑」500,000C
「테카 노아」750,000C
「소포아 소비네」1,250,000C
메뉴판엔 수십 종의 술 이름이 적혀 있었다.
모두 실존하는 높은 등급의 술이지만, 그걸 감안해도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카인은 종업원을 불러 적당한 술을 주문했다.
곧 와인 한 병이 배달되었다.
주사기와 정제수, 그리고 비닐백에 담긴 하얀 가루와 함께.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종업원의 발소리가 복도에서 완전히 사라지고, 카인은 나직이 읊조렸다.
“…알 만하군.”
카인은 비닐백을 열어 손가락 끝에 가루를 묻혔다. 향과 촉감, 알갱이의 크기를 살폈다.
‘내가 알고 있는 마약은 아니다. 적어도 벽 바깥에 유통된 적은 없는 약이란 얘기겠지.’
벽 바깥의 척박한 농토에서 나는 작물로는 절대 이 정도 수준의 상등품을 만들어 낼 수 없다.
생각을 역산하면 벽 안쪽에서 작물의 재배와 마약의 제조가 동시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컸다.
‘입국 관리처의 눈을 피해 작물이나 약을 들여오는 것보단, 오히려 감시가 덜한 내부에서 작업을 진행하는 것이 안전할 수 있겠지.’
아니.
18번 구역엔 감시란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버젓이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걸 보면.
‘경찰의 비호를 받고 있겠군. 이곳의 존재는 젊은 층 사이에 공공연하게 퍼져 있을 테고.’
벽 안쪽에는 따로 구역 경찰이 존재하지 않으며, 특무대의 각 대가 구역을 나눠서 관리한다.
카인은 종업원이 방을 나가기 전 귀띔해 주었던 말을 떠올렸다.
「막 가공되어 나온 상품을 곧바로 손님들의 테이블 위에 올리는 것이 저희 클럽이 자랑이지요.」
「후유증 따위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숙취 없는 술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될 것 같군요. 물론 쾌락은 술 같은 것과 비할 바가 못 되지만요.」
과연 후유증이 없는 마약이 존재할 수 있을까. 카인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막 가공되어 나온 상품이라.’
카인은 약과 주사기를 챙겼다.
방을 나가자마자 각성 성분이 떠도는 끈끈한 공기가 몸에 달라붙었다.
숨을 참고 물속을 걷듯 복도를 나아갔다.
숨을 참는 건 문제가 없었다.
밑바닥 생활 당시 물고문을 당하는 건 일상이었으니까.
카인은 과거 3분 정도는 여유롭게 숨을 참을 수 있었다. 성인 남성 평균인 1분 30초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
하지만 회로 구축 후 늘어났을 폐활량을 고려하면, 현재 5분 정도는 무리 없이 버티는 것이 가능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십니까?”
“아닙니다. 아무것도. 지인의 방이 끝쪽에 있어 그리로 향하고 있습니다.”
“예.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종업원 하나가 곁을 지나는 순간 카인의 손이 번개같이 움직였다.
종업원은 허리춤의 열쇠 꾸러미가 사라진 줄도 모르고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허술하군. 이렇게 사각지대가 많아선 CCTV가 큰 의미가 없지.’
물론 일반적인 기준이 아닌, 카인의 기준이었다.
탁.
직원용 탈의실 안으로 카인의 모습이 사라지고 문이 닫혔다.
끼익.
오래지 않아 문이 열리고, 카트를 끈 직원이 나타났다. 카인이었다.
달그락. 달그락.
카인은 카트를 끌고 빠르게 복도를 이동했다. 더 이상 종업원들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에 속도가 붙었다.
복도 끝에 도착해, 간이 승강기를 타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예상대로군.’
반대편 복도 끝엔 지하 3층으로 향하는 간이 승강기가 다시 한번 존재했다.
손님용 엘리베이터엔 버튼이 지하 2층까지 밖에 존재하지 않았다.
즉.
지하 3층부터는 직원용 공간이란 이야기였다.
‘마약을 제조하는 공간일 테지.’
직원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존재할 가능성이 컸다.
간이 승강기는 막 제조한 마약을 운반하는 용도이리라.
카인은 간이 승강기를 타고 지하 3층으로 향했다.
위잉. 철컥.
승강기는 아까와 달리 한참을 내려간 뒤에야 멈췄다.
침침한 조명. 다시 나타난 복도.
허리에 검을 맨 경비가 미소 지으며 카인에게 목례했다.
공모자를 바라보는 것 같은,
동료의식이 엿보이는 눈빛이었다.
“…….”
카인은 같은 목례로 답한 후 그를 지나쳐 복도 안쪽으로 카트를 끌었다.
달그락. 달그락.
위층 객실과 달리 각 방에는 작은 유리창이 달려 있었다. 카인은 첫 번째 방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거대한 테이블 위.
비커와 저울을 비롯한 온갖 도구와 기계 장치들.
그 주위를 흰 방진복을 입은 인원들이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도 같은 식이었다.
CCTV를 관리하는 통제실과 무장 인원들이 상주하는 경비실도 보였다.
달그락. 달그락.
카트는 마지막 방 앞에 멈춰 섰다.
카인은 주위에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이 창고인가.’
선반에는 족히 백여 종은 될 법한 약재가 라벨이 붙은 상자에 담겨 분류되어 있었다.
비교적 최근에 입고된 걸로 보이는 몇 종은 그 생김새와 이름이 몹시 익숙했다.
‘…과연.’
카인은 해당 약재들을 카트에 있던 비닐백에 소분해 담았다.
의식을 집중하자 손바닥 위에 있던 비닐백이 모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아공간이었다.
제르비아의 외투 조각에서 카인의 손바닥으로 좌표를 옮긴.
작업을 마치고 카인은 눈에 보이는 모든 풍경을 기억에 눌러 담았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창고를 빠져나갔다.
* * *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셨기를.”
차량은 카인을 처음 태웠던 그 위치에 그대로 내려주었다.
부우웅─
차량이 사라진 걸 확인한 뒤 카인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지하에선 느낄 수 없던 신선한 공기가 비강에 빨려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카인은 아공간에서 약재가 담긴 비닐백을 꺼내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며칠 전 사용인에게 받았던 보고를 떠올렸다.
「18번 구역 딜런 메디컬 소유의 농토에서 현재 수확되고 있는 작물의 리스트입니다. 토지를 인계받는 대로 새로 뿌릴 작물의 씨앗은 지시대로 모두 확보해 두었습니다.」
카스라르고에 약재를 대는 곳이 어디인지 명확해지는 순간이었다.
공교롭고도 흥미로웠다.
한 번 마주치면 얽혀드는 것이 인연이라지만 이런 식으로 다시 부딪치게 될 줄이야.
카인은 지하에서 받았던 마약을 꺼내 한 차례 향을 맡은 뒤 바람에 날려버렸다.
냄새가 났다.
지독한 비리와 범죄의 냄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