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6. 마탑 (2)
라이티노를 본 샌더슨은 무언가 일이 잘못됐음을 직감했다.
’저, 저분이 왜 지금 여기에?“
아니, 이상할 건 없었다.
마탑의 교수가 마탑 교정에 나타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
하지만 타이밍이 문제였다.
“응? 이 자들은 누구인가? 자네 친구들인가?”
게다가 자신이 복수를 위해 찾아온 대상과 친분이 있어 보였다.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모른 척 돌아가면….’
“볼트기어의 차남이군. 전에 물건을 받을 때 몇 번 봤었지. 삼더슨? 생더슨이었나?”
“샌더슨입니다.”
옆에서 카인이 이름을 교정해주었다.
조심스럽게 발을 돌리던 샌더슨은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최악의 상황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지금이라도 잘 둘러대면….’
“뭐 하는 거야? 저 노인네가 뭐길래.”
“끌고 가서 밟아줄 놈이 있다고 했잖아. 뭘 망설여?”
‘씨발.’
샌더슨은 철렁했다.
기사 학교의 동기들로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이었다.
하지만 모두 내놓은 자식들.
세상 물정 아무것도 모르는, 철부지나 다름없었다.
가문에서 골칫거리 취급받는 자신보다 더한 인생 막장들이었다.
‘말만 기사 생도지 뒷골목 양아치들과 마찬가진데.’
그런 놈들이 마법계나 재계 거물의 얼굴을 제대로 알고 있을 리 없었다.
“저 쭉정이들이 지금 뭐라는 건가?”
흉악하게 변한 라이티노의 표정을 보고 샌더슨은 하늘이 샛노래지는 걸 느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저 요한이라는 놈이 대답만 잘 해주면….’
“저와 전에 다툼이 있던 자입니다. 앙갚음하러 무리를 끌고 온 것 같군요.”
역시 기적은 일어날 리 없었다.
그리고 눈치 없는 동료들은 준비한 몽둥이를 들고 뛰어 나감으로서 상황을 더욱 구렁텅이로 몰아가는 재주를 선보였다.
“노인은 됐고 저 새끼 붙잡아 차에 실어!”
샌더슨은 해탈한 웃음을 흘렸다.
라이티노의 전격 마법에 문자 그대로 ‘구워지는’ 동기들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직접 처리하려 했습니다만. 괜히 저 때문에 손을 더럽히신 것은….”
“자네가 마법을 쓰면 마나 색이… 크흠, 남들이 봐서 좋을 건 없지 않나.”
“그 생각을 하지 못했군요.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뭐, 배려까지야.”
라이티노는 언제 화가 났었냐는 듯 카인을 향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샌더슨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려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 신더슨이라는 친구는 내가 가만두지 않도록 하겠네. 어디서 배워 먹은 예의인지 모르겠구만, 감히 자네를 해하려 하다니.”
“샌더슨입니다.”
“샘더슨이든 삼다슨이든 뭐가 중요하겠나. 돌아가면 비서관에게 말해 납품업체를 곧장 바꾸도록 하겠네.”
샌더슨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제, 제발 그것만은…! 아버지가 아시면…!”
달려가 라이티노의 바짓가랑이라도 붙잡으려는 찰나, 카인이 입을 열었다.
“괜찮으시면 처리를 제게 맡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자네가 말인가?”
“예. 처리를 끝내고 갈 테니 먼저 라티움으로 가 계시지요.”
“뭐, 알겠네. 자네가 그렇게 말한다니.”
라이티노가 탄 차가 사라지고, 샌더슨은 악마에게서 해방된 기분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어쩌면 상황을 잘 모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어.’
차량이 사라진 걸 확인하고 몸을 돌려 다가오는 카인을 향해 샌더슨이 말했다.
“우리 대화를 좀….”
“대화라, 목적이 일치하는군.”
카인은 성큼성큼 거리를 좁혀 샌더슨의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갑작스런 행동에 샌더슨은 얼떨떨하여 가만히 있었다.
「라티움이 별거야! 우리가 납품을 멈추면 그쪽 생산 라인도 다 멈춰!」
“……!”
그리고 흘러나온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우린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군.”
악마는 떠난 게 아니었다.
진짜 악마는 여기에 있었다.
***
샌더슨과 유익한 대화를 마친 카인은 라티움에 도착했다.
광활한 부지 안에 조성되어 있는 연구 시설과 생산 단지가 눈에 띄었다.
마법공학기술의 정수가 모인 곳이자, 대륙에 유통되는 마공학품의 절대다수를 생산해내는 곳.
그곳이 바로 라티움이었다.
패를 제시해 본부 건물 라이티노의 집무실에 도착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 쭉정이들은 잘 처리했나?”
“예. 뒤탈이 없게 잘 처리했습니다.”
카인은 라이티노와 함께 시설 곳곳을 돌며 라티움을 견학했다.
마탑에서처럼 모든 풍경을 머리에 담고, 알고 있던 지식과 다른 것은 없는지 체크했다.
어느 정도 견학이 끝났을 때.
라이티노의 개인 연구실.
라이티노가 책상에서 물건 하나를 집어 카인에게 건넸다.
“시계군요. 연구소에 있으니 평범한 물건은 아닐 것 같습니다.”
“맞네. 한 번 착용하고 마나를 일으켜 보겠나?”
지시에 따라 시계를 찬 뒤 손바닥을 뻗었다. 방출된 마나는 흑색이 아닌 청색이었다.
“마나의 색이 바뀌었군요.”
“맞네. 내부 센서를 조정하면 원하는 색으로 변경이 가능하네. 요즘 젊은이들은 개성을 굉장히 중요시하지 않나? 연구는 다 끝났고 1년쯤 뒤에 출시할 제품이지. 자네에게 미리 선물로 주겠네.”
이후 라이티노는 시계의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축약하자면, 특정 광석에서 추출한 색을 외부로 발현되는 마나에 실시간으로 덧씌우는 원리.
‘과연 라티움. 마법공학에 있어 대륙 최고라 불릴 만하군.’
카인은 시계를 조작하며 감탄했다.
이제까지 많은 고민을 했지만 생각지는 못했던 수였다.
앞으로의 활동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흑색 마나였다.
높은 단계의 정제를 거치면 마나가 투명해 지지만 매번 그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 시계가 있다면.
무(無)정제, 혹은 1, 2단계 정제만을 거친 마법도 남들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오늘 베풀어 주신 배려 중 가장 큰 배려를 받은 것 같군요.”
“허헛. 뭘 이런 걸 가지고.”
겸연쩍게 웃은 라이티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 말일세, 내가 부탁 하나만 해도 되겠나?”
“말씀하십시오.”
라이티노의 부탁은 간단했다.
오랜 친우(親友)들과 가지게 될 회합 자리에 제자로서 동행해 달라는 것.
“진짜 제자가 되어 달라는 게 아니네. 물론 그러면 좋기야 하지만, 흉내만 내어줘도 좋네.”
다시 말해 체면치레를 하도록 도와 달라는 말이었다.
시기는 3개월 뒤.
회합 장소는 벽 바깥 황무지에 존재하는 ‘마법사의 성지.’
마도왕국의 수도가 존재했다 일컬어지는 지역으로 다른 곳보다 배는 되는 유적이 모여 있었다.
마나의 농도가 비정상적으로 짙어 ‘마나 폭풍’이나 ‘암전’ 따위의 이상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다.
때문에 마법사들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찾기도 하는 곳이었다.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군요.”
어차피 회합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남았고, 그리 어려운 부탁도 아니었다.
앞으로 라이티노를 이용해 취할 이득을 생각한다면, 그와의 관계 유지를 위해 수락하는 것이 옳았다.
벽 바깥을 거점으로 둔 ‘거물’ 마법사들과 인맥을 틀 기회이기도 했다.
“저, 정말인가! 나중에 번복하기 없기네!”
라이티노는 카인의 손을 덥석 잡고 싱글벙글 웃었다. 덕분에 한시름 덜었다는 투였다.
이후 대화를 나누던 중 라이티노는 직원의 보고를 받고 잠시 자리를 비웠다.
“…….”
카인은 품에서 작은 외투 조각을 꺼내 들고 연구실 한쪽에 있는 양팔 저울 형태의 기계로 향했다.
“어디에 있나 했더니 개인 연구실에 두었었군.”
외투 조각.
정확히는 제르비아의 ‘외투였던 것’으로 라이카의 결전에서 불타고 남은 조각이었다.
임시로 코트 안쪽 주머니에 붙여 아공간을 사용해오고 있던 상황.
강력한 잠금 마법이 걸려 있어 아공간의 좌표를 바꾸기 위해서는 전용 장비가 필요했다.
카인은 몇 번 기계를 조작해 사용법을 익히고는 저울의 한쪽에 외투 조각을 얹었다.
그리고 다른 한쪽에는 자신의 오른 손을 올렸다. 손바닥이 위쪽 방향을 보게 하여.
카인은 망설임 없이 기계의 스위치를 올렸다.
***
해가 지고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하는 하늘 아래.
온갖 종류의 고급 차량이 활짝 열린 정문을 통해 저택 안으로 줄지어 입장했다.
살짝 내려진 차량 창문을 통해 사용인이 방문객들의 신분을 받아 적었다.
“쉘링포드 와이너리의 포터스. 부인까지 총 2명이네.”
“방명록 작성에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시간 되시기를.”
저택 앞쪽, 광활한 넓이의 마당에는 수백 개의 원형 테이블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머, 유하임 부인도 오셨네요? 남편분도 같이?”
“헥사메디컬의 대표라는데 궁금해서 참을 수 있어야죠.”
“마탑의 라이티노 님과도 친분이 있다고 하더군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
분위기는 이미 한껏 달아올라 있었다.
피유유유─ 펑!
초청 악단의 경쾌한 연주 속,
불꽃놀이가 쏘아 올려졌다.
하늘로 치솟은 분수의 물살이 불꽃 아래 반짝이며 파편으로 흩어졌다.
사용인들이 술과 음식을 보충하기 위해 방문객과 테이블 사이를 바삐 돌아다녔다.
“이 그림은 에비앙 테르트 작가의 작품 같네요.”
“몇 점은 소실되었다고 들었는데 이런 곳에 있었군요.”
인파가 몰린 곳은 저택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와인과 샴페인 잔을 든 방문객들이 감탄사를 터트리며 갤러리를 관람하듯 저택 내부를 돌았다.
모두 이런 류의 파티가 익숙한 모습이었다. 자연스럽게 파티에 몸을 던지고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물론 모두가 즐기기만을 위한 목적으로 저택을 방문한 것은 아니었다.
“저택 주인이 어디 있는지 아시오? 신약의 개발자라는 소문이 진짜면 안면을 터놔야 하는데 말이오.”
“글쎄요. 저도 도착한 후 줄곧 찾고 있지만 보이지가 않네요. 사용인들도 모른다는 투고요.”
재계의 인사들 역시 소문만 무성한 헥사메디컬의 대표를 보기 위해 몰려들어 있었다.
‘꼭 연줄을 만들어놔야 한다. 소문이 진짜라면 앞으로 업계의 판도 자체가 달라질 테니.’
모두 같은 생각을 품고, 은연중 서로를 견제하면서.
그때 계단 쪽에서 훤칠한 키의 남성이 나타났다. 천천히 발을 디뎌 계단을 내려왔다.
따각. 따각.
누군가 신호를 준 것도 아니었다.
하나둘 고개를 돌려, 어느 순간 모두가 숨을 죽인 채 남자를 보고 있었다.
“세상에… 저렇게나 젊은 친구였다니.”
“저렇게 잘생긴 남자는 처음 봤어요. 몰락한 귀족가의 자제라는 말이 사실일까요?”
사람들은 수군거리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젊은 여성 중엔 넋을 잃은 이도 적지 않았다.
따각. 탁.
계단을 완전히 내려온 남자가 멈춰 섰다.
호위로 보이는 여성이 뒤쪽에 자리했고, 마찬가지로 고아한 외모에 사람들은 감탄을 터트렸다.
모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남자가 입을 열었다.
“저는 이 저택의 주인 요한 카리프라고 합니다.”
낮고 울림 있는 목소리가 공기를 타고 퍼졌다.
“모두 바쁜 시간을 내어 자리를 빛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부디 현생의 고단함은 잠시 잊고 즐겨주시기를.”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남자가 뿜어내는 압도적인 아우라에 몸이 굳은 탓이었다.
부드러운 미소.
하지만 목소리와 표정, 걸음걸이에서 드러나는 강인함.
단 한순간, 사람들은 이 남자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할 수 있었다.
벽 안쪽에 거주하는 이들은 기본적으로 모두 포식자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안에서도 다시 한번 계층은 갈리기 마련이었다.
군림 당하기보다는 군림하는 자.
이 남자는 최상위 포식자였다.
“질문이 있습니다.”
누군가 용기를 내어 손을 들었다.
“당신이 헥사메디컬의 대표라는 소문이 사실입니까?”
좌중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얼굴을 했다. 소문 중 가장 궁금한 부분이었다.
남자는 말없이 좌중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의 긴장과 기대가 극에 달했을 때 입을 열었다.
“맞습니다. 제가 헥사메디컬의 대표입니다.”
곳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남자가 손가락을 튕기자 다시 한번 거대한 폭죽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파티는 계속되었다.
“마이트 제약의 주디스라고 합니다. 여기 제 명함을….”
“포르투나 메디컬에서 영업 실장을 맡고 있는 비토입니다. 혹시 앞으로 치료제의 공급을 늘린다면 유통업체로는….”
카인은 파티가 잘 진행되는지 살피고 테이블 사이를 돌았다. 그때마다 사람들이 몰려 명함과 악수를 건넸다.
“검술 실력이 뛰어나다고 들었는데 사실인가요?”
“혹시 만나고 있는 영애 분이 있으신지….”
“몰락한 귀족 출신이시라 들었어요. 벽 바깥에서 오셨다고도요.”
이브닝 드레스와 같은 화려한 복장의 젊은 여성들도 카인의 주위에 몰렸다.
에스텔은 혹 카인에게 위해가 될만한 행동을 하는 이가 없는지 살피며 뒤를 따랐다.
‘슬럼 출신이라고 누가 믿겠어.’
카인은 이 자리의 누구보다 더 귀족스러웠다. 행동과 몸짓 하나하나에서 기품과 여유가 배어나왔다.
화려한 배경에 수려한 외모까지.
젊은 여성들에게 초유의 관심 대상이 되는 건 당연한 일이리라.
‘언제 봤다고 저렇게 가까이 달라붙는 거야. 저건 완전히 대놓고 추파를 던지네.’
그것과 별개로 조금, 아니 많이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파티의 분위기가 무르익어 가는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당신이 석화증을 치료했다는 말! 나는 믿지 않소!”
젊은 남자가 사람들을 헤치고 나와 카인의 앞을 가로막았다. 순간 물을 끼얹은 것처럼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석화증 치료제가 가짜라는 것 같은데요.”
“딜런 메디컬의 연구부장이에요, 저 사람.”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연구부장은 분위기에 아랑곳 않고 당당하게 말을 이어갔다.
“소문은 부풀려지고 과장되기 마련이오. 수백 년 동안 실마리조차 잡지 못한 석화증을 단번에 치료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웅성거림은 커져 갔다.
연구부장과 같은 생각을 품고 있던 이들이 동조하며 분위기는 양분되어 갔다.
“아무리 그래도 실제 효과를 본 사람이 있다고 하던데. 진짜이지 않겠어?”
“헛소문일 수도 있죠. 연구 논문을 발표하고 식약청 허가를 받았다지만 헥사메디컬은 전례가 있는 기업이잖아요?”
카인은 빤히 연구부장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후회가 없도록 하고 싶은 말을 지금 다 뱉어내라는 듯.
연구부장은 순간 움찔했지만, 주눅 들지 않고 계속 외침을 이어갔다.
“사람들이 모두 이야기하고 있소! 연구는 가짜고 치료 사례는 모두 바람잡이라고! 어느 시대든 사람들의 희망을 볼모로 사기를 치는 장사치들이 있기 마련이지. 하지만 당신은 도를 지나쳤소!”
분위기가 기울수록 연구부장은 의기양양해져 갔다. 모두가 카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사실 알만한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저 사람 말은 잘하네.”
“벽 바깥 하층민들 땅 빼앗아 부지 확보한 게 저 사람 아니었어?”
“안 좋은 소문이 많기는 하죠. 비오 메디컬 실장이 실종된 게 저 사람 짓이란 얘기도 있고.”
연구부장의 행동은 상대를 깎아내리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임을.
헥사메디컬은 연줄을 만들어야 할 신성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누군가에겐 박히기 전에 뽑아내야 할 걸림돌이기도 했다.
사람들은 기대와 걱정, 흥분이 뒤섞인 얼굴로 상황을 주시했다.
카인은 한 손에 샴페인 잔을 들고 그런 좌중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아까와 같이 사람들의 초조와 긴장이 극에 달했을 때에야 입을 열었다.
“여기 치료제가 진짜인지 궁금한 분들이 많은 것 같군요.”
모두가 침을 꿀꺽 삼키고 카인을 주시했다.
“증명하겠습니다. 이 자리에서.”
행동이 빠른 기자들은 이미 마법 장치로 영상을 촬영하고 사진을 찍었다.
“치료제가 진짜라는 사실을.”
카인은 몸을 딜런 메디컬의 연구부장 쪽으로 홱 돌려 말했다.
“그쪽은 뭘 거시겠습니까?”
“뭐, 뭐?”
“치료제를 입증 못 하면 전 모든 걸 잃습니다. 그러니 그쪽도 뭔가를 걸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연구부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남을 끌어내리려면 자신이 끌어내려질 각오 또한 해야 하는 법이죠.”
사람들이 수군거리며 카인의 말에 동조하고 있었다.
“다시 묻겠습니다. 당신은 뭘 거시겠습니까?”
대답을 재촉하는 카인의 목소리.
연구부장은 등 뒤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