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40화 (140/227)

#140. 믿음과 현혹 (5)

“물러서지 마라! 2급 신성 마법의 사용을 허가한다!”

신성 마법은 표식을 부여받은 이라면 누구든 재량껏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높은 등급의 경우에는 지휘관의 허가가 필요했다.

고위력 마법일수록 여신상에 저장된 마나가 많이 소모되어, 수도로 전송되는 양이 줄어들기 때문.

지휘관의 외침과 함께 심문관들은 거리를 벌리고 자세를 고쳐 잡았다.

그리고 다 같은 목소리로 외쳤다.

“모든 대지의 어머니, 여신이시여.”

“저희에게 악을 섬멸할 힘을 내려 주시기를.”

“악을 멸할 힘을!”

신성 마법은 회로의 활성화 유무와 관계없이 신의 은총에 따라 내려지는 것.

회로를 사용할 수 없는 상대와 달리 이쪽은 그에 준하는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사악한 흑마법사와 배교자여. 너희들의 악행도 여기까지다.”

지휘관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남은 일은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과 같았다.

“……?”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순백의 빛은 그들의 철퇴에도, 갑옷에도 깃들지 않았다.

“이게 무슨….”

지휘관은 반사적으로 여신상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여신의 자애로운 미소를 확인한 순간.

콰득!

투구 아래로 드러난 그의 목덜미에 실버팽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박혔다.

우득!

송곳니가 움직이며 목과 어깨가 거칠게 뜯겨 나갔다.

초점이 풀린 지휘관의 눈동자.

그의 눈에 담긴 세상의 마지막 풍경은 사방으로 흩뿌려지는 자신의 핏방울이었다.

찢긴 목으로 피가 콸콸 쏟아지며 붉은 웅덩이를 만들었다.

뒤이어 도착한 잿빛늑대들 역시 달리던 자세 그대로 심문관들을 향해 도약했다.

“크악!”

“수인들이 어째서 여기에―!”

달라붙어 목을 물어뜯고, 상대의 몸을 박차고 뛰어 날아드는 철퇴를 피했다.

잿빛늑대는 넷에 불과했지만, 전장을 휘젓기엔 충분했다.

수인의 신체 능력은 인간의 것을 아득히 뛰어넘었기에, 회로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인간은 결코 수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도착이 조금 늦었다. 라이카의 잔당을 마저 처리하느라.”

“아니, 잘 맞춰 도착했다.”

카인은 적의 갑옷 사이에서 검을 빼내며 대답했다.

아직 기도문을 외워 신성 마법을 사용하려는 심문관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도 신을 찾다니. 인간은 알 수 없군.”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에 신을 찾는 것일 수도 있겠지.”

어찌 되었든 여신이 그들의 기도에 응답할 리는 없었다.

‘여신상은 일정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지. 저마다 일정 반경 내의 표식에 반응하도록 되어 있고.’

거대 여신상에 저장되어 있던 마나는 모두 소실된 상태.

적어도 이 근방에서는 신성 마법을 사용하지 못할 터였다.

전장을 벗어나, 또 다른 여신상의 감응 범위 안에 들기 전까지는.

‘하지만 저들이 방법을 알 리가 없겠지. 여신상의 비밀을 아는 자는 교단 내에서 극소수니까.’

카인은 학살하는 자에서 학살당하는 자로 신분이 바뀐 심문관들을 바라보며 실버팽에게 말했다.

“남김없이 처리해라. 단 한 명도 살아서 돌아가지 못하도록.”

* * *

“쉰 하나. 네가 말한 숫자와 일치한다.”

“지휘관 한 명에 다섯 분대. 그렇게 생각하면 빠져나간 사람은 없을 거예요.”

카인은 심문관들의 시체 더미를 향해 손을 뻗었다.

형형색색의 마나가 허공에 원을 그리다 그의 손바닥으로 빨려들었다.

[회로 레벨: 3]

[마나 6,731 / 8,157]

상승치는 약 1,000.

한 번의 전투로 얻은 양임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수치였다.

“그나저나 이 사람들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에스텔이 주위를 보며 말했다.

붉게 지는 노을과 시체 위에 앉은 까마귀들.

그 참혹한 풍경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어느새 주위로 다가와 땅에 몸을 바짝 엎드리고 있었다.

“악마님이 우, 우리를 구하셨어.”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자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건 경외심 외에 두려움 탓도 있으리라.

조금 전 카인이 마나를 흡수하는 모습을 보고는 그들은 전보다 더 심하게 몸을 떨었다.

“…….”

주위를 한 바퀴 돌던 카인의 시선이 바닥에 쓰러진 한 인물에게서 멈췄다.

카인이 그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자 몰려 있던 사교도들이 바다가 갈라지듯 양옆으로 비켜섰다.

그 끝에 교주가 있었다.

한쪽 어깨와 가슴이 우그러져, 피를 울컥울컥 토해 내고 있는 모습.

“교, 교주님! 이대로 가시면 안 됩니다!”

“교주님 없이 저희는….”

이미 상처가 위중해 누구도 응급 처치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혹은 그럴만한 전문 지식이 있는 자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몰랐다.

‘그래도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우기는 했나 보군.’

손가락이 잘리지 않은 멀쩡한 쪽 주먹 아래, 반으로 갈라진 스태프가 떨어져 있었다.

카인을 본 교주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당…신은…쿨럭!”

토한 피가 그대로 교주의 얼굴을 덮었다.

카인은 교주의 얼굴 앞에 주먹 크기의 중력장을 형성해 그의 코와 입안의 피를 모두 빨아들였다.

그리고 땅에 던져 버렸다.

철퍽!

“고맙…소.”

“신도들에게 지시해 여신상을 부수라고 했다지.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가 궁금한데.”

정신이 오락가락하는지 넋 나간 웃음뿐. 예상대로 원했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나는… 나는, 원래… 영업 사원이었소.”

그는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토해 냈다.

숨을 헐떡대면서도 최선을 다해.

마치 지난 삶을 참회하고 세상에 자신의 마지막 족적을 남기려는 듯이.

문장은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지만, 중간중간의 단어로 대략적인 이야기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버지는 교단의 독실한 신자로 어느 날 실종되었다.

슬픔에 잠겨 있던 그는 아버지의 다락방에서 일기장을 발견하였고, 아버지가 교단의 실체를 파헤치다 죽임을 당한 것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그는 결론을 내린다.

아버지가 남긴 자료와, 지리학과 신학이라는 자신의 전공 지식을 살린 추가적인 연구를 토대로.

「황폐해진 땅이 복원되지 않는 이유는 여신상 때문. 또한, 전 대륙의 여신상을 선으로 연결하면 일정한 형상이 나타나게 된다.」

유타스 장로의 목걸이가 거대 여신상의 지하로 향하는 열쇠라는 것까지 알아낸 그는 그곳에 저장된 모든 마나를 흡수해 힘을 늘릴 계획을 세운다.

단지 교단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제법이군. 아주 조그마한 단서로 거기까지 파고들다니. 마나를 흡수한다는 계획은 터무니없지만.’

유적의 푸른 샘과 같은 성질의 마나라면 모를까, 여신상에 저장된 마나는 회로 자체를 강화하는 데는 사용할 수 없었다.

교주는 마지막 힘을 짜내어 교도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했다.

“미…안합니다…. 나…는…당…신들을… 그저 이용… 쿨럭!”

교주를 내려다보는 카인의 눈에 이채가 감돌았다.

‘아주 쓸 만해.’

얄팍한 속죄 따위, 카인은 관심 없었다.

관심이 동하는 것은 교주의 추리력과 집념이었다.

손가락이 모두 잘리는 순간까지 버티던 오기.

교도들을 휘어잡던 카리스마와 화술.

거기에 마법적 재능까지 어느 정도 갖췄다.

길에 떨어진 좋은 장비를 보았는데 줍지 않을 이유가 없다.

주인이 존재하는지 모르나, 설사 그러해도 이 정도의 상등품이라면 힘으로 강탈했을 것이다.

“누구나 세상에 죽이고 싶은 이가 한둘쯤은 있는 법이지.”

그리고 교단에 대한 복수심까지.

망가진 것은 상관없었다.

물건이 고장 났다면 고쳐서 쓰면 되는 법이니.

“내가 네 복수를 도와주겠다. 서로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군.”

카인의 손에서 흑색 마나가 방사형으로 뻗어 나왔다.

‘정제 단계를 최대로 높일 필요는 없겠지. 내 몸 상해가며 치료해 줄 필요는 없으니.’

마나로 이루어진 실이 교주의 몸에 스며 검고도 환한 빛을 발했다.

심각한 부상이지만 마나를 쏟아붓는다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었다.

프로이드에게 맡겨 수술을 받게 한다면 충분히 회복될 수 있으리라.

“악마? 아니. 서, 성자님…?”

상처가 수복되어 가는 놀라운 광경. 지켜보던 누군가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사교도 중에는 기존 교단의 신자가 존재했고, 그들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전 종교의 교리였다.

「내 사도를 보내어 너희의 병든 육과 영을 치유할지니, 너희는 그를 믿고 따를지어다.」

동시에 혼란스러웠다.

눈앞 남자의 손에서 흘러나온 것은 순백의 빛이 아닌 칠흑의 빛이었으니.

하지만 눈앞의 기적은 분명─.

털썩.

사교도 하나가 무릎을 꿇고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털썩. 털썩.

그것을 시작으로 다른 이들의 몸 역시 쓰러졌다.

숫자는 계속 늘어났다.

어딘가에 숨어 있던 이들도 빛을 보고 다가와 홀린 듯이 엎드렸다.

털썩. 털썩.

그 숫자는 이제 백여 명 가까이가 되었다.

경건하고도 엄숙한 분위기.

누구 하나 고개를 들거나 입을 여는 이가 없었다.

그 중심.

에스텔과 실버팽은 사교도들이 무슨 짓을 저지를까 바짝 긴장하면서도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건.”

“쉿, 조용히 하세요.”

그저 숨을 죽이고 그 광경을 지켜볼 뿐이었다.

쿠구구구─

그리고 그들의 등 뒤로, 마나로 지탱되고 있던 거대한 여신상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 * *

햇살이 작게 비치는 어두운 방 안.

타닥. 타닥. 탁.

깊은 생각에 잠긴 남자의 손가락이 천천히 책상을 두드렸다.

“…….”

방 안에는 남자 홀로였다.

신분 노출을 꺼려 이쪽 세계에서는 직속 부하를 만들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가 있다면 제이나가 있었지만, 지금 그녀는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뿐만 아니라 라이카도.

책상을 두드리던 손가락이 옆으로 움직여 경찰청의 심볼이 박혀 있는 파일철을 잡았다.

서류를 펼쳐 다시 확인했지만, 보고에 적힌 내용은 역시 자신이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47번 구역. 슈프림 시큐리티의 대표가 블루서펜트 보스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쥐고 있는 것 같다고.”

카인이 얼굴을 바꾸어 여러 신분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모든 신분을 파악하진 못했다.

하지만 그중 확실한 하나.

슈프림 시큐리티라는 경비 업체.

그곳의 대표.

파르테르와의 전쟁이 끝나고 퍼틸랜드의 용병을 흡수해 만든 집단이 분명했다.

전후 과정을 살펴 추측하자면 말이다.

‘내 정체를 알고 있다라.’

카인이 의도하여 흘린 정보라고 보아야 옳았다.

자신이 알기로 47번 구역의 경찰서장은 이런 정보를 포착해 알아서 보고를 올릴 만큼 영리한 인물이 아니었다.

선전 포고이자 협박이다.

하지만 확률적으로 보았을 때는 거짓 엄포일 가능성이 높다.

자신은 이제까지 이쪽 세계에서 활동해 오며 단 한 번도 꼬리를 밟힌 적이 없었으니까.

그럼에도.

찜찜함을 벗어던질 수 없었다.

만약 카인이 정말 내 진짜 신분을 알고 있다면?

‘녀석이 보인 능력을 고려하면,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순 없겠지.’

카인을 얕본 적은 없었다.

그가 보인 능력을 토대로 최대 무력을 가늠했고, 다만 라이카에 미치지는 못한다고 판단했다.

철저하게 판을 분석해 다음 수를 내렸다. 그리고 그 수는 처참하게 박살이 나 버렸다.

‘힘을 숨긴 건가. 예상치 못한 변수야.’

사실 이대로 카인에게서 손을 떼고 조직을 정리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게 옳았다.

이성적으로.

또 합리적으로 생각하자면.

블루서펜트를 통해 투자했던 것 이상으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약속의 날까지 더 많은 돈을 준비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남자는 턱을 매만지며 고민에 잠겼다.

상황을 분석하고, 자신이 선택할 최선의 수를 내리기 위해서.

* * *

슈프림 시큐리티의 사옥.

총과 슈트로 무장한 두 명의 대원이 정문을 지키고 있었다.

47번 구역은 치안이 크게 안정된 상태였다.

순찰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있지만, 주민들의 감사 인사가 대원들의 가슴에 더 큰 사명감을 불어넣은 것도 있었다.

「정말 고마워요. 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단한 건 아니지만 이거 드시고 하세요!」

떠돌이 용병 때는 들어보지 못한 진심 어린 감사.

대원들은 현재 자신의 생활에 몹시 만족했다.

“우리 근무 동안 대표님이 한 번 지나가 주시면 좋을 텐데 말이야.”

그리고 그들 입장에서 대표는 떠돌이 생활에서 벗어나 삶의 의미를 찾게 해 준 은인과 다름없었다.

“워낙 바쁘신 분이니 요즘엔 얼굴 뵙기가 힘들지. 술을 사는 걸로 근무를 바꿔 들어왔는데, 아쉽네.”

사옥 경비가 인기가 많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대표에 대한 충성심.

그리고 사옥을 지킨다는 자부심.

그때 멀리서 평범한 행색을 한 노인 한 명이 다가왔다.

초대받은 손님은 아닐 것이었다.

사업차 방문하는 손님들은 대개 정장이나 사무복 차림이었으니까.

“어르신. 혹시 무슨 용무가 있어 오셨습니까?”

어쨌든 대원들은 공손하게 질문을 던졌다.

“…어?”

“……!?”

노인은 눈 깜짝할 새 대원들을 지나쳐 건물 안으로 향하고 있었다.

“모, 몸이…!”

선 자세 그대로 마비된 것처럼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목덜미에 무언가 눌린 것 같은 화끈거림이 느껴졌고,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노인은 미끄러지듯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벽에 붙은 안내판을 보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복도를 돌았다.

노인의 당당하고 자연스러운 걸음걸이에 별달리 막아서는 직원은 없었다.

거대하고 고급스러운 문 앞에 선 순간,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시지요.

노인은 피식 웃었다.

마치 이쪽이 올 것을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한 목소리.

끼익─

문이 열림과 함께 책상에 앉은 한 남자의 모습이 보였다.

등 뒤 창에서 쏟아지는 눈부신 햇살.

품에 들어갔다 나온 노인의 손엔 어느새 레이피어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탓.

순간 노인의 신형이 사라지고, 날카로운 검 끝이 책상에 앉아 있는 남자의 목을 향해 날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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