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믿음과 현혹 (4)
에스텔은 카인의 손을 맞잡았다.
시간이 지나고 그녀의 호흡과 눈빛이 안정되었다.
“이제 여신이 아니라 당신에게 기도를 올려야겠네요.”
농담을 던지는 것을 보니 완전히 평소의 상태로 돌아온 듯 보였다.
카인은 맞잡은 손을 당겨 그녀가 일어나는 것을 도와주었다.
“…….”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유타스의 시체로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녀에게 있어서 첫 살인이었다.
그것도 다른 이가 아닌, 은사와 같던 이를 대상으로 한.
‘그녀는 과거에서 벗어났다.’
종교와 신.
교단에서의 지난했던 생활.
‘이제 더 강해질 일만 남았겠지.’
이 세계의 조연은 모두 고정된 무력값을 가지고 있다.
특정 조건을 달성해 정신적 성장을 이뤘을 때, 그 한계를 돌파할 수 있게 된다.
일종의 ‘각성’인 셈.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는 모르나 현 상황에 도움이 되는 일임은 분명했다.
“그래도 오랜 기간 알아 왔을 텐데. 가는 길을 빌어 줄 필요가 없겠나?”
“필요 없어요. 지옥에나 떨어지라지.”
에스텔은 코웃음을 치고는 기계 장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웅─
위로 향한 그녀의 손바닥에서 새하얀 빛이 일렁였다. 그와 함께 교단의 표식이 빛났다.
“신성 마법에 사용되는 마나가 여신상에서 나오는 거라고 했죠.”
“그래. 일종의 거대한 마나 탱크인 셈이지. 신성 마법이 구현되는 곳의 좌표로 마나를 전송하는 방식이다.”
“전혀 몰랐어요. 마나가 전혀 느껴지지 않으니까.”
“감응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면 볼 수도 느낄 수도 없다.”
카인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에스텔이 물었다.
“당신 눈에는 뭔가 보이나 봐요?”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천장을 통과해 이어져 나온 얇은 마나의 실들.
실들이 에스텔의 손바닥 위로 연결되고 있는 광경이 카인의 눈에는 똑똑히 보였다.
에스텔이 입술을 잘근거리며 말했다.
“…두 번 다시 신성 마법을 사용하지 않을 거예요.”
손등의 표식을 노려보는 모습이 그것조차도 지워 버리고 싶은 듯했다.
“교단 본부에서 지울 수 있을 거다. 배교자로 낙인찍혀 쫓기게 될 테니 당분간은 무리겠지만.”
카인의 흑색 마나가 에스텔의 손등을 감쌌다. 마나가 잦아들고, 표식은 사라졌다.
“눈속임일 뿐이지만 이편이 더 나을 거다. 심적으로나, 앞으로의 활동에 있어서나.”
“…고마워요.”
분위기는 차분히 가라앉았다.
카인은 지하 공간 한쪽에 있는 저택으로 향했고, 에스텔이 뒤를 따랐다.
끼기긱─
저택의 문을 열자 거대한 홀이 나타났다.
중앙에 위층으로 향하는 계단이 있는 구조로, 공간 곳곳을 덮은 크고 작은 식물들이 눈에 띄었다.
“이건 만져지네요. 전부 모형이에요.”
종류가 다양했다.
대륙에 존재했다고 알려진 모든 식물 종을 모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에스텔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라이카의 거처가 왜 이런 곳에 있는 거죠?”
“라이카는 파수꾼 역할을 했다. 자신이 지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 대가로 숲을 약속받았지.”
“숲이라니. 바깥에 있던 그 환상이요?”
“그래. 그만한 규모의 환상을 유지하려면 적지 않은 마나가 소모되지. 여신상에 저장된 마나의 총량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하지만.”
야수는 평생 가닿을 수 없는 꿈을 좇았다. 그리고 환상으로라도 공허함을 메우려 했다.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숲.
그곳에서 야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을까 생각하던 에스텔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라이카는 블루서펜트의 간부잖아요. 이곳은 교단이 만든 공간이고.”
끼익─
카인이 서재의 문을 열었다.
책장에 꽂힌 책은 전부 식생에 관한 것이었다.
숲에 대한 라이카의 집념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 부분이었다.
“내가 했던 말 기억하나? 신성 마법은 여신상에 저장된 마나의 사용처 중 하나일 뿐이라고.”
카인은 책장 중 한 칸의 책을 모두 허공으로 밀어냈다.
흑색 마나에 붙잡힌 책들은 카인의 손짓에 따라 처음과 다른 위치에 꽂혀 들었다.
드드드─
책장이 양옆으로 밀리며 새로운 공간이 나타났다.
다섯 개의 생명의 씨앗이 마법 장치에 의해 허공에 둥둥 떠 있었다.
카인은 그것들을 회수해 품에 챙겼다.
밖으로 나와 책장 옆면의 버튼을 조작하자 공간은 모습을 감췄다.
카인은 얼떨떨한 얼굴로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에스텔을 보며 말을 이었다.
“신성 마법에 사용되는 마나는 극히 일부일 뿐이다.”
“나머지는 그럼…?”
카인의 손가락이 벽 한쪽을 가리켰다.
“……?”
“북동쪽이다. 33번 구역에서 해당 방위로 쭉 나아가면 뭐가 나오지?”
“23번 구역을 지나 13번 구역이 나오겠죠. 그리고 더 가면….”
에스텔의 눈동자가 순간 커졌다.
“수도?”
“그래. 토양의 정기로 만들어진 마나 중 99퍼센트 이상은 수도로 전송된다. 정확히는, 황실 궁전의 지하에 있는 마나 탱크로 전송되지.”
“잠깐만요. 이야기의 진도가 너무 빨라요.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카인은 아랑곳 않고 이야기를 이었다.
“에스텔. 이 일에는 네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단체와 인물들이 얽혀 있다. 황실, 교단, 경찰, 각계각층의 인물들이 관여하고 있지.”
“그럼 블루서펜트라는 조직도…?”
“관계자 중 하나가 자금 조달을 위해 만든 조직에 불과하다.”
에스텔은 현기증을 느꼈다.
저도 모르게 입이 열리고 다음 질문이 나왔다.
“황실은 그 막대한 양의 마나를 모아서 어디에 쓰려는 거죠?”
“궁금한가?”
카인의 눈동자가 에스텔을 응시했다.
“예언자가 황실 궁전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았다고 했지. 내 생각이 맞다면 우린 앞으로 제국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보는 것만으로 빨려들 것 같은 심연과 같은 눈빛.
에스텔은 문득 두려워졌다.
답을 듣는 순간 영영 이전 세계로 돌아올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의 손바닥에 식은땀이 맺혔다.
“아, 아니에요. 다음 이야기는 됐어요. 나중에 마음의 준비가 되면 들을게요.”
“그렇게 하지.”
두 사람은 라이카의 금고를 찾아 귀금속과 현금을 회수했다. 재정에 적지 않게 도움이 될 양이었다.
저택을 나서 지상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향하려는 에스텔에게 카인이 말했다.
“과거를 완전히 떨쳐내기에 유타스 장로 하나로는 부족하겠지.”
카인이 기계 장치 쪽을 눈짓했다.
“장치를 파괴하면 이곳에 모이는 정기는 더 이상 마나로 변환되지 않을 거다. 적이 시설을 복구하는 데 적어도 1년은 걸리겠지.”
말뜻을 이해한 에스텔이 고개를 끄덕이고 메이스의 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기계 장치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가 메이스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콰직! 콰지직!
처음엔 망설임이 묻어나던 동작이 장치를 하나둘 부술수록 거침이 없어져 갔다.
“──!”
잔뜩 화가 난 얼굴로 욕설까지 하는 걸 보면 감정에 깊이 몰입한 걸로 보였다.
에스텔의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기에 카인도 조금 놀랐을 정도.
‘이곳을 부순다 해도 교단의 종자들은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겠지. 적어도 당분간은.’
대륙 전체에 퍼진 여신상.
마나 전송이 멈춘다고 해도 이미 각 여신상에 저장된 마나의 양이 적지 않을 터였다.
‘모두 소진되는 데 1년 정도의 시간이 걸리겠지. 그쯤엔 교단이 다른 곳에 시설을 갖춰 다시 마나의 생산을 시작할 테고.’
한동안 쉴 틈 없이 움직여야 할 것이 분명했다.
콰드득!
에스텔이 휘두른 메이스에 기계 장치에 연결되어 있던 관들이 뜯겨 나갔다.
푸시이이─
지상의 여신상과 연결된 관의 절단부를 통해 마나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통상 대기 중의 마나는 농도가 낮아 아무런 색을 띠지 않는다.
하지만 지금 기체 상태로 뿜어져 나오는 마나는 농도가 높아 여러 종류의 색을 동시에 띠고 있었다.
‘유적에서와 같이 회로의 질 자체를 높이는 건 불가능하다는 게 아쉽군. 현시대의 기술력은 마도왕국의 그것과는 아직 비교할 수 없으니.’
형형색색의 마나를 본 에스텔이 당황하여 말했다.
“어, 어? 이거 계속해도 되는 거예요?”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
지하 공간의 마나 농도가 급격히 상승했다.
체내로 흘러드는 마나의 양이 늘어나며, 지상에서 소모했던 마나가 급속 충전되었다.
“이런 데서 싸우면 하루 종일도 가능하겠는데요.”
“근접 계열은 그러하겠지. 마법은 주의해야 한다. 이렇게 마나의 농도가 높은 곳에선 원소가 제멋대로 엉켜 연쇄 폭발을 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적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마나는 더 이상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
이제 여신상은 완전히 빈 껍데기만 남아 있는 상태와 다름없었다.
에스텔도 기계 장치를 완전히 박살을 내놓고 후련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녀를 향해 카인이 말했다.
“이제 슬슬 올라갈 때가 된 것 같군.”
* * *
지상은 여전히 지옥도가 펼쳐지고 있었다.
불길과 비명, 피, 그리고 살점.
사교도 중에도 마나유저와 마법사가 존재했지만 심문관들의 압도적인 무위 앞에서는 상대가 되지 못했다.
푹!
콰직!
50명 정도에 불과한 인원이 그 십수 배가 되는 인원을 유린하고 있었다.
구구구구─
거대 여신상의 발등이 반으로 갈라져 열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주위에서 대기하고 있던 심문관들이 자세를 고쳐 잡았다.
구구구구─ 쿵!
다시 입구가 닫히고 나타난 것은 카인과 에스텔이었다.
유타스 장로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심문관들이 더욱더 긴장을 곤두세웠다.
“에스텔 사제! 어째서 흑마법사와 함께 있는 것이지!”
에스텔은 대답할 생각이 없었다.
진실을 깨달은 이상 교단의 인물은 모두 쓰러트려야 할 적일 뿐이었다.
그녀는 카인 앞으로 나서 방패를 전방으로 향했다. 조용히 속삭였다.
“조심해야 해요. 마법사를 상대하는 데 특화된 자들이에요. 이 정도 숫자면 아무리 당신이라도 위험할 수 있어요. 일단 앞쪽은 내가 방어를….”
“믿음직스럽군.”
카인은 픽 웃음을 짓고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에스텔 사제! 유타스 장로님마저 살해하였는가! 어서 대답을 하지 않으면─!”
그리고 지휘관으로 보이는 인물이 다음 대사를 뱉는 순간.
쐐액! 쐐애액! 쐐애액!
앞쪽을 향한 카인의 다섯 손가락 끝에서 바람 줄기가 탄환과 같이 쏘아져 나갔다.
“컥!”
“커헉!”
회로 내에서 4단계의 정제를 마친 마법.
아무 준비 동작도, 마나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기에 첫 대상이 된 심문관들은 대응조차 하지 못하고 심장이 꿰뚫려 쓰러졌다.
푸른 샘을 흡수하고 카인의 마나 양이 비약적으로 늘어났음을 모르는 에스텔 역시 놀란 눈을 했다.
쐐액!
심장을 관통한 다섯 개의 바람 줄기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방향을 틀어 다른 먹잇감을 향해 날아갔다.
“배교자와 흑마법사를 처단하라!”
다음 마법의 완성과 함께 다섯 개의 바람 줄기가 추가되어, 총 열 개의 바람 줄기가 전장을 어지러이 날았다.
“컥!”
피하지 못하고 머리나 심장을 관통당하는 이도 있었지만, 몸을 비틀어 피해 내는 이도 있었다.
그들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카인을 향해 철퇴를 내리쳤다.
쾅!
그리고 방향을 튼 에스텔의 방패에 가로막혀 그대로 튕겨 나갔다.
그 위로, 마법사를 상대하기 위한 온갖 투석구들이 날아들었다.
에스텔이 접근한 적을 상대하는 동안, 열 개의 바람 줄기는 카인의 세밀한 조정에 따라 적의 수를 줄여나갔다.
“2분대! 4분대! 회로차단진을 준비해라!”
명백히 밀려가는 전황.
지휘관의 외침과 함께 카인과 에스텔과는 비교적 먼 거리에 있던 심문관들이 등에 멘 관을 풀고 바닥에 떨구었다.
쿵!
신속하게 관의 뚜껑을 열고 사람 몸집만 한 말뚝을 꺼내 땅에 내리꽂았다.
파지직!
말뚝 끝에서 발산된 보랏빛 마나가 말뚝을 서로 연결했다.
마치 하나의 거대한 울타리 같은 모습.
거기서 멈추지 않고, 말뚝 사이 흐르는 마나는 허공의 한 점을 향해 움직이며 ‘막’을 형성해 나갔다.
파직!
그 끝에 완성된 것은 반구 형태의 결계였다.
그 중심에는 카인과 에스텔이 있었다.
“맙소사….”
에스텔의 입에서 신음이 흘러나왔다.
회로 차단 결계.
소문으로만 들었을 뿐 실존하는 줄은 몰랐던 기술이었다.
“회로의 마나가 멈췄어요…!”
“당황할 필요 없다. 전투에 집중해라.”
카인은 무심한 눈빛으로 저 멀리 박혀 있는 말뚝을 쳐다보았다.
전장을 휩쓸던 바람 줄기는 사라지고 강화 마법도 소실되었다.
‘결계라.’
절대 쉬이 쓸 수 있는 기술은 아니었다.
교단의 최정예라 할 수 있는 이단심문관이 수십은 모여 합을 맞춰야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
말뚝은 천문학적인 생산 비용과 막대한 마나 소모량을 자랑하며, 그마저도 일회성.
교단에 위협이 되는 ‘거대 악’을 상대할 때나 사용 허가가 내려지는 기술.
‘지휘관이 결단을 내렸다는 뜻이겠지.’
결계가 차단할 수 있는 회로 레벨에는 한계가 있다.
그리고 자신은 범위 안이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결계의 파훼법 역시 존재하나 지금 사용하기엔 비효율적이다.’
그럼에도 카인은 당황하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은 그저 머릿속에 그렸던 수십 가지 경우의 수 중 하나이기에.
‘회로를 사용할 수 없는 건 적도 마찬가지.’
챙!
카인은 검을 뽑아 들고 적과 맞섰다.
순수한 육체 능력의 격돌.
객관적으로 보면 카인과 에스텔은 불리한 상황에 있었다.
아무리 신체를 단련했다 한들 에스텔은 여성의 육체를 가지고 있었다.
카인 역시 신체를 극한으로 단련하고 온갖 무술을 섭렵했다고는 하나, 상대는 수십이었다.
그것도 똑같이 신체를 극한에 가깝게 단련한.
챙!
에스텔은 이를 악물고 철퇴를 쳐 냈다. 그리고 카인을 바라보았다.
아무 동요 없는 평온한 얼굴.
그저 평소와 같았다.
그녀는 흥분이 가라앉고 자신감이 솟는 것을 느꼈다. 곧 마음의 평정을 되찾았다.
‘역시.’
무언가 계획이 있는 것이다.
그는 늘 그래 왔으니까.
자신이 할 일은 목숨을 다해 그를 지키는 일이었다. 그가 생각한 계획을 실행에 옮길 때까지.
챙!
카인은 전투를 이어 나가며 습득 가능한 특성을 다시 한번 검토했다.
‘나쁘지 않은 수인 것 같군. 습득해 두면 앞으로도 여러 상황에 도움이 될 테니.’
[신체 강화]
분류: 일반-패시브
효과: 근력, 지구력, 민첩성, 유연성 등의 기본 신체 능력이 3단계 상승합니다.
요구 특성 포인트: 1
잔여 특성 포인트: 2
[특성을 습득하시겠습니까?]
[Y/N]
물을 필요가 없는 질문이었다.
[‘신체 강화’ 특성을 습득하였습니다.]
“더 몰아쳐라! 적은 지금 회로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특성 습득과 동시에 카인은 크게 검을 휘둘렀다.
챙!
다수 철퇴가 한 번에 튕겨 나가고, 그 묵직한 일격에 심문관들의 몸이 뒤로 밀려났다.
“회로를 사용할 수 없다고. 그게 뭐 어쨌다는 말이지.”
카인의 달라진 기세에 심문관들이 움찔했다.
다시 한번 달려들었지만, 그 전에 카인의 검이 먼저 움직였다.
쉭!
검이 적 하나의 목을 꿰뚫었다.
미처 눈으로 따라잡기 힘든 속도.
검이 빠지자 목에 뚫린 구멍에서 피가 콸콸 쏟아지며 심문관의 몸이 쓰러졌다.
“……!”
동요하는 적들을 보며 카인은 아무렇지 않게 검에 묻은 피를 털어 냈다.
촥!
그리고 멀리 일고 있는 흙먼지를 보며 생각했다. 슬슬 그들이 합류할 때가 되었다고.
“물러서지 마라! 2급 신성 마법의 사용을 허가한다!”
악에 받친 지휘관의 외침.
카인은 검을 고쳐 잡고 시선을 흘긋 위로 향했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 여신상은 여전히 자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미소의 방향은 북동.
수도, 황실이 있을 방향이었다.
‘기다리고 있지. 내가 곧 찾아갈 테니.’
카인은 검을 고쳐 잡았다.
그리고 달려드는 적을 향해 온 힘을 다해 휘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