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7. 믿음과 현혹 (2)
“이단에게는 영원한 고통을.”
거대한 철퇴가 에스텔의 머리를 향해 매섭게 떨어졌다.
그녀는 카인에게 건네받은 메이스를 그대로 위로 올려쳤다.
챙!
심문관의 몸이 크게 뒤로 밀려났고, 카인이 발사한 탄환이 에스텔의 얼굴 옆을 지났다.
콰직─!
탄환은 정확히 심장부에 명중했다.
하지만 두꺼운 갑옷에 막혀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짧은 순간 카인은 분명 볼 수 있었다.
각인되어 있던 「칼날 바람」이 발동과 함께 갑옷에 빨려들어 사라진 것을.
‘마법을 흡수하다니 말도 안 되는 물건이군.’
그들이 ‘마법사의 최후’라 불리는 이유가 달리 있는 것이 아니었다.
어떤 상황에도 물러서지 않을 강인한 육체와 정신.
전신에 두른 마법사 사냥에 최적화된 장비.
흑마법사를 잡기 위해 혹독하게 훈련된 사냥꾼이 바로 그들이었다.
“잔재주를.”
거대한 철퇴가 다시 들어 올려졌다.
다행이라면 장비의 무게 때문에 움직임이 그리 빠르지 않다는 점이었다.
“에스텔!”
카인의 외침과 함께 에스텔이 방패와 함께 심문관을 들이받았다.
강화 마법을 받은 뒤 이루어진 강력한 태클에 심문관의 거대한 몸체가 기우뚱 뒤로 밀려났다.
투구의 방향이 카인 쪽으로 끼긱 돌아갔다.
“흑마법사.”
심문관은 흑색 마나가 에스텔의 몸에 깃들던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사제.”
에스텔의 방패를 감싼 순백색 마나 역시도.
“배교자는 처단한다.”
심문관이 다시 몸을 움직이려는 순간 거센 돌풍이 그의 가슴에 쇄도했다.
갑옷이 움푹 패이며 심문관은 벽 끝에 처박혔다.
“가지. 이 녀석들 상대로 시간을 낭비할 틈이 없다.”
“알았어요.”
두 사람은 쓰러진 심문관을 지나 교주의 방이 있는 최상층으로 향했다.
갑옷이 흡수할 수 있는 마법에도 분명 한계가 있었다.
진심을 다하면 쓰러트리는 것도 어렵지는 않다.
하지만 시간과 자원의 낭비가 될 거란 것이 카인의 판단이었다.
“지원을 나온 심문관 숫자에 대해 유타스에게 들은 것이 있나.”
“최소 분대 셋 규모라고 했어요.”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대로였다.
‘최소 60명이라.’
그 정도 숫자의 마법사 사냥꾼에게 둘러싸이는 일은 카인에게도 썩 달갑지는 않은 상황이었다.
단순한 무력 차이 이전에 존재하는 것이 상성 간의 우위.
여차하면 피해를 감수하며 싸워야 하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푸른 샘을 통해 기껏 완전한 상태로 회복한 육체를 손상시키며 말이다.
“…….”
복도 멀리 사라지는 두 사람의 등 뒤로, 심문관이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마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기계처럼.
끼긱.
돌아간 투구를 원위치로 돌리고, 두 사람이 사라진 방향을 향해 빠르게 걷기 시작했다.
* * *
아수라장이었다.
「사, 살려 주십시오!」
「나, 나는 죽기 싫어!」
「꺄아아악─!」
불길이 치솟고 피가 튀었다.
「이단에게는 죽음을.」
매캐한 연기 아래 철퇴가 휘둘러졌다. 벽이 무너지고 교도들의 머리가 터져나갔다.
에스텔은 그 풍경을 애써 못 본 척하며 카인의 뒤를 따랐다.
심문관들을 피해 최상층에 도착해 교주의 방문을 벌컥 열었다.
“전 서랍부터 찾아볼게요.”
“아니. 이쪽이 더 빠를 것 같군.”
카인의 손에서 뻗어 나온 흑색 마나가 방 안의 물건들을 휘감았다.
염동.
침대며 탁자, 서랍 같은 것들이 허공에 떠올라 뒤집혔다.
내부에 들어있던 온갖 물건들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목걸이는 보이지 않는데요. 아, 여기 금고가 있어요!”
카인은 에스텔이 가리킨 금고 자물쇠를 향해 총구를 겨눴다.
탕!
자물쇠는 산산조각이 되어 바닥에 떨어졌다.
금고의 문을 열자 수북이 쌓여 있는 교단의 목걸이가 보였다.
“스무 개가 넘어요. 다 똑같이 낡고 닳아서 구별할 수가… 모두 미끼일 가능성도 있겠죠.”
에스텔이 긴장된 얼굴로 말했다.
비명과 발소리.
심문관들의 알 수 없는 웅얼거림.
여러 소리가 복도에서 이쪽으로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카인은 에스텔 옆으로 다가섰다.
금고 안의 목걸이를 모두 쏟아 낸 뒤 그중 하나를 거침없이 집어 품에 넣었다.
“미끼라. 교주가 그 정도로 철두철미한 성격은 아닌 것 같군. 나가지.”
어떻게 진짜를 구분한 거죠.
에스텔은 입술을 떼려다 스스로 이유를 깨닫고는 질문을 삼켰다.
한 번 본 것을 잊지 않는 그의 기억력.
목걸이에 난 미세한 흠집과 닳은 정도를 보고 진짜를 구분했으리라.
쉬익─
그때 문 뒤에서 들려온 소리에 카인과 에스텔은 본능적으로 몸을 숙였다.
콰드득!
횡으로 휘둘러진 철퇴가 벽과 문을 분쇄하며 나타났다.
두 사람의 머리 위를 아슬아슬하게 스치며 커다란 원을 그렸다.
철퇴의 경로에 있는 사물과 벽이 사정없이 갈려 나가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꽤 마음에 들었나 보군.”
사슬로 이어진 철퇴를 머리 위로 빙빙 돌리고 있는 심문관을 보며 말했다.
“배교자. 처단한다.”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나.”
카인의 눈짓에 에스텔이 자리를 박찼다. 흑색 마나가 몸에 깃들자 기운이 충만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챙! 채챙! 챙!
메이스가 거침없이 허공을 갈랐다. 철퇴를 튕겨내고 심문관의 갑옷을 두들겼다.
미스릴로 만들어진 메이스에 갑옷이 움푹움푹 패어가는 동안 철퇴는 단 한 번도 에스텔의 몸에 닿지 못했다.
하지만 아무리 두들겨도 심문관은 쓰러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비켜서라.”
뒤에서 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법이 준비되었다는 뜻이었다.
에스텔이 몸을 피함과 동시에 섬뜩한 흑염이 심문관을 향해 쏘아졌다.
화륵.
검은 불꽃은 순식간에 심문관의 몸 전체를 집어삼켰다.
흡수할 수 있는 한계치 이상 위력의 마법에 갑옷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과연. 버티는 건 이 정도 선인가. 단발성보다는 지속성 피해로.’
카인은 갑옷을 파괴할 수 있는 최소치의 마나값을 머릿속에 저장했다.
“이단. 배교자.”
갑옷 안에서 생살이 녹아내리고 있음에도 심문관은 아무렇지 않게 철퇴를 휘둘렀다.
불길에 닿은 벽과 기둥이 녹아내리고 천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카인은 심문관의 공격을 피해 뒤로 돌아갔다.
정제를 마친 풍(風)계 원소를 다수의 보조 원소와 융합해 마법을 완성했다.
카인이 심문관에 등에 손바닥을 가져다 댄 순간.
텅─!
고밀도로 압축된 공기가 폭발하며 심문관의 몸이 거칠게 튕겼다.
충돌한 벽을 그대로 허물며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충격으로 투구가 벗겨지고 흉터와 화상, 바느질 자국이 가득한 흉물스러운 얼굴이 드러났다.
쿵!
바닥에 떨어진 심문관은 불붙은 몸을 몇 번이고 일으키려다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어느 순간 불길에 완전히 잡아먹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
새카만 시체를 내려다보는 에스텔은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얼굴을 보고 놀랐나. 저들은 통각을 느끼지 못하도록 어릴 때부터 특수한 훈련을 받는다.”
카인이 그녀의 옆에 다가와 지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니에요. 그럴 리가 없어. 유타스 장로님이 말한 것 중 그런 얘기는….”
“유타스 장로가 이단심문관으로 활동했던 것은 꽤나 옛 시대의 이야기지.”
연고가 없는 아이를 데려와 이단심문관으로 키우는 것이 현재 교단의 방식이었다.
일종의 개조이자 세뇌.
감정과 통각의 거세.
전투병기의 양성이었다.
하지만 카인은 거기까지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받을 충격이 많이 남아 있었다.
─신이시여, 저희를 보고 있다면 제발….
─커헉!
─사, 살려줘!
들려오는 비명 소리.
에스텔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지옥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 * *
두 사람은 심문관과 사교도들 사이를 헤치며 여신상을 향해 나아갔다.
─열쇠부터 확보해! 단 한 놈도 살려 두지 마라!
멀리, 심문관들을 진두지휘하는 유타스 장로의 모습이 보였다.
쿵쾅거리는 가슴에 에스텔은 가면을 고쳐 쓰고 후드를 더 깊게 눌러 썼다.
이단심문관의 악명은 익히 들었지만 그들의 전투를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 살려 주십시오. 제발….
아이를 끌어안은 교도가 심문관을 향해 애원했다.
하지만 철퇴에는 귀가 없었다.
여자와 아이의 머리를 으깨버린 뒤 확인 사살을 위해 몸을 내리찍었다.
생전 볼 거라 예상하지 못했던 끔찍한 광경. 에스텔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이와 같은 풍경을 본 적이 있다.
20번대 구역의 외곽부터 존재하는 ‘벽’ 그곳에 새겨진 벽화.
신의 사도와 악마의 대전.
그곳에서 악마는 인간을 유린한다.
하지만 지금, 에스텔은 악마가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었다.
사교도라고는 하나 아무 저항 없는 이들을, 심문관들은 무참히 살육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머리가 어지럽고 호흡이 가빠왔다.
머리 위로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
에스텔은 여신을 올려보았다.
여신은 평소와 같이 자애로운 미소로 지상의 모든 것을 굽어보고 있었다.
비명, 피, 불길, 붕괴와 살육.
내장과 공포, 그 모든 것을.
에스텔은 난생처음으로 여신상을 보며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녀의 미소가 더 이상 자애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나라도 도와야 해. 죄 없는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어.’
에스텔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여신상 앞에 도착한 카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에스텔─!”
평소와 비교되지 않을 정도의 싸늘함이 카인의 얼굴에 묻어나왔다.
에스텔이 갈팡질팡하자, 카인은 그녀에게 다가가 뺨을 올려붙였다.
짝!
시야가 번쩍이고 뺨이 화끈거렸다.
다른 세계로 가 있던 정신이 조금씩 현실로 돌아오는 기분이었다.
앞에서 카인의 으르렁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스스로의 삶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면서 누구를 동정하고 누구를 돕겠다는 거지?”
“나는….”
“지금이 아니면 네 마병을 치료할 기회는 두 번 다시 없다.”
“나는 저 사람들이….”
카인은 에스텔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에스텔. 이기적으로 행동해라. 어느 상황에서든 네가 우선이다. 동정해야 할 사람은 너 자신이다.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은 너다.”
한 글자씩 힘주어 귀에 때려 박듯 뱉어냈다.
“자신의 삶을 바로 잡지 못한 상태에서의 봉사와 헌신은 선이 아니다.세상에 보탬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알량한 자기만족일 뿐이지. 어리석고 멍청한 일이다.”
“나는….”
에스텔의 눈동자에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오랜 시간 마병에서 벗어나기를 원해 왔지. 하지만 그런 정신으론 마병을 치료한 후에도 네 인생을 살지 못할 거다.”
카인은 에스텔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몸을 돌렸다. 다시 여신상의 발치를 향해 성큼성큼 멀어졌다.
우웅─
카인이 꺼내든 목걸이가 빛을 발했다. 여신상의 발등이 그에 공명하듯 같은 색의 빛을 발했다.
곧, 발등이 갈라지며 지하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났다.
카인은 마지막으로 에스텔을 한 번 돌아본 후 계단 아래로 사라졌다.
입구가 서서히 닫혀가기 시작했다.
잠시 망설이던 에스텔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계단을 향해 뛰었다.
* * *
계단 아래는 깊고 깊은 지하로 이어져 있었다.
벽에 줄지은 고급 전등과 잘 다듬어진 계단이 마치 근미래의 첨단 공간 같은 인상을 주었다.
“여긴 대체 어디에요? 여신상 밑에 이런 공간이….”
에스텔은 무섭고 두려웠다.
동시에 직감했다.
이 계단 끝에 마주하기 싫은 진실이 도사리고 있으리라.
“…….”
카인은 아무 대답이 없었다.
대신 등 뒤로 손을 뻗어 주었다.
에스텔은 그 손을 잡았고, 마음이 조금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문득 성경의 한 구절이 그녀의 머릿속을 스쳤다.
「네 떨고 있는 자야. 내가 너를 위해 손을 내미니 너는 그 손을 잡아 두려움은 없으라.」
그렇게 침묵 속에 두 사람은 한참 계단을 내려갔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에스텔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긴 대체…?”
숲이 펼쳐져 있었다.
광활하게 펼쳐진 짙푸른 숲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