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36화 (136/227)

#136. 믿음과 현혹 (1)

사교도들이 카인을 향해 부복했다.

얼굴을 바닥에 바짝 붙인 채 벌벌 떨었다.

“바, 바알 님이시여. 저희 같은 미천한 것들의 부름에 응답해 주셔서 감사하나이다.”

“저희는 바알 님께 추, 충성을 맹세할 준비가 되었으니….”

이 세계에 물론 악마는 존재하지 않지만, 괴담이나 전설 따위에서는 등장한다.

바알이라면 여러 악마 중에서도 최상위에 속한다 알려진 존재였다.

카인의 시선이 이제 숨이 끊겨 버둥거림을 멈춘 염소로 향했다.

‘이런 질 낮은 제물로 상위 악마를 소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가.’

이들 역시 하류층이리라.

무지는 대개 가난에 비례하는 법이었고, 카인은 그 사실을 몹시도 잘 알고 있었다.

마나와 마법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자신을 악마로 오해하지 않았을 터였다.

“며, 명령만 내려주신다면 시키는 대로 하겠나이다.”

오해를 했다면 이용하는 것이 옳지만, 가면의 종류로 보아 낮은 지위의 신도들이었다.

자신의 목적은 교주의 설교를 듣고 그와 독대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드는 것.

시간을 들이면 얼마든 가능하지만, 심문관들이 도착하기 전에 일을 끝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이들에게 큰 이용 가치는 없다.’

대신 더 좋은 생각이 카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고개를 들어라.”

“예, 예.”

사교도들이 고개를 들며 상체를 일으키는 순간 바람으로 이루어진 구체가 그들의 명치를 강타했다.

‘꺽’하는 소리와 함께 사교도들이 바닥에 엎어졌다.

카인은 페인트로 더럽혀진 가면과 수단을 그들 중 하나의 것과 바꾸었다.

그리고 복도로 나가 외쳤다.

“침입자다!”

철제 계단이 삐걱거리며 경비들이 달려왔다.

“침입자라고! 교단 놈들인가!”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기색.

카인은 방 안을 가리키며 급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의식 중에 훼방꾼 하나가 지붕을 뚫고 침입했습니다. 형제들을 모두 죽이고 저쪽으로 달아났습니다!”

카인의 실감 나는 연기에 경비들이 잔뜩 긴장했다.

일부는 방 안으로 들어가고, 나머지는 카인이 가리킨 복도 끝으로 향했다.

곧 건물 전체의 분위기는 소란스러워졌고, 카인은 복도의 안내판을 따라 대강당으로 향했다.

‘…허술하군.’

이곳까지 진입하는 중 어떤 검문도 받지 않았다.

대전당에 배치된 경비들 역시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이 티가 났다.

이들의 종교는 체계적인 것 같으면서도 한편으론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신도의 수를 불리기 위해 내실 없이 규모만을 키워 온 인상.

‘하지만 이만한 수의 신도를 끌어모았다면 교주는 분명 두뇌가 뛰어난 자라고 보아야 옳다.’

이단심문관의 도착.

스파이의 잠입.

어느 쪽이든 예상하고 대비를 하고 있어야 옳다.

하지만 이처럼 아무 방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신도들은 소모품이란 건가. 자기 목적을 달성하기 전까지 최소한의 방패 역할을 할.’

카인은 생각했다.

만약 교주가 목걸이를 탈취한 목적이 자신이 예상한 ‘그것’이라면 신도들은 그저 소모품일 가능성이 컸다.

복도를 돌고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건물 구조는 카인의 머릿속에 빠짐없이 입력되었다.

“곧 교주님의 설교가 시작됩니다! 신입 신도분들은 서둘러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강당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는 긴 줄이 이어져 있었다.

카인은 가장 뒤로 가 줄을 섰다.

덥석.

누군가 손을 잡아 돌아보자 에스텔이 있었다. 그녀가 속삭였다.

“교주의 거처는 못 찾았어요. 건물도 다 비슷하게 생기고 특정할 만한 단서가 없어서요.”

“이 건물의 5층 복도 끝. 걱정할 필요 없다.”

가면의 눈구멍 너머 동그래진 금빛 눈동자.

그녀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줄은 순식간에 줄어들어 두 사람의 입장 차례가 다가왔다.

문지기의 시선이 카인과 에스텔의 깨끗한 손등을 향했다.

“교주님의 설교에는 처음 참석하시는 것 같군요. 인생이 바뀌는 경험이 되실 겁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그는 두 사람의 손등에 특수 용액으로 된 도장을 찍어 주었다.

교단의 팔각별 위에 엑스표가 그려진, 명백한 적의를 드러낸 도장 문양이었다.

“설교에 여러 번 참석해 도장을 모을수록 더 높은 계급으로 올라갈 수 있답니다. 명령을 내릴 수 있는 하위 교도들이 생겨나지요.”

그는 대단한 비밀이라도 알려 주듯 속삭였다.

끼이익─

두 사람을 마지막으로 문이 닫혔다.

“지금 나만 그 생각한 거 아니죠?”

당황과 어이없음.

그 중간 어디쯤의 목소리.

“다단계군.”

카인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교주라는 자의 얼굴이 더욱더 궁금해지는 순간이었다.

어두운 통로 끝, 또 다른 문을 열자 눈부신 빛이 쏟아졌다.

드넓은 강당 안에 장의자가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못해도 200명은 되겠어요. 주교님들 설교에나 이렇게 모이는데.”

엄숙하고 고요한 분위기 속.

셀 수 없이 많은 악마 가면이 경건한 자세로 의자에 앉아 있었다.

카인과 에스텔은 가장 뒤쪽에 있는 빈자리를 찾아 앉았다.

곧 문어 형상의 기괴한 가면을 쓴 교주가 단 위로 올라왔고, 그 순간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아─!

엄청난 소리에 순간 에스텔이 움찔하며 양손으로 귀를 막았다.

소란이 잦아들고 교주가 입을 열었다.

─형제들이여. 설교의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우리같이 궁핍한 자들의 삶은 고통뿐이니, 또 다른 한 주를 버텨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요.

그의 목소리는 증폭 장치를 통해 강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나직하지만 굵고 힘 있는,

동시에 귀에 감겨드는 목소리였다.

─배는 주리고, 찬 바람은 뼛속을 스미고, 아무리 일해도 돈은 쌓이지 않습니다. 어떤 이들은 단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것만으로 사치스러운 식사와 잠자리를 누리고 있는 데 반해 말입니다.

연설이 계속되는 동안 교도들은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감정에 깊이 이입되었는지 눈물을 흘리거나 주먹을 쥐고 부르르 떠는 이도 있었다.

─아무리 기도를 올려도 여신은 입을 열지 않습니다.

교주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응답하지 않습니다.

점차 감정이 섞여 들어갔다.

─우리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도.

격앙된 목소리는 끝내는 울분에 찬 외침으로 변했다.

─당신의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쾅!

교주의 주먹이 세차게 단상을 내리찍었다. 피가 흘렀으나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과연 여신은 존재하는 걸까요?

그의 목소리는 순식간에 다시 평온해져 있었다.

그리고 잠시 흐르는 정적.

카인은 느낄 수 있었다.

사소한 어조 변화.

말을 끊는 타이밍.

묻어나는 감정.

모두 철저하게 계산된 것임을.

─곧 심판의 날이 다가올 겁니다. 악마의 창 아래 세계가 멸망하고, 부의 재분배가 이루어질 날이 말입니다.

팽팽한 공기 속에서 설교는 계속되었다.

악마의 침공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교단의 성경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었다.

기존 교리를 교묘하게 비틀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거나 대놓고 반박했다.

그 과정에서 교단에 대한 강한 적대감과 비난의 감정이 느껴졌다.

설교는 끝을 향해 치달았다.

교주의 마지막 말이 끝났을 때, 교도들은 하나의 문장을 연호하고 있었다.

─여신과 교단에게 죽음을!

─여신과 교단에게 죽음을!

분위기는 광기 그 자체였다.

무기만 쥐어져 있다면 당장 전쟁도 불사할 기세였다.

‘설교보다는 선전에 가깝군.’

카인은 교주라는 자의 화술을 인정했다.

무의식 깊은 곳 취약점을 자극해 응어리진 감정을 끌어내고, 그것들을 끝내 분노로 변환시키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거기에 적절한 논리와 설득력까지.

곳곳에 섞여 있는 바람잡이를 감안하더라도 가히 경지에 이른 솜씨라 할 수 있었다.

‘미숙한 부분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은 교주의 목을 바라보던 카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슬슬 나가지. 경비들보다 먼저 움직여야 하니.”

“아, 네.”

에스텔은 화들짝 놀라며 일어났다.

그녀의 머릿속엔 교주가 했던 말이 아직 메아리치고 있었다.

「우리가 이렇게 고통받고 있는데도.」

「과연 여신은 존재하는 걸까요?」

그녀는 심각한 얼굴을 한 채 카인의 뒤를 따랐다.

카인은 대강당을 나서자마자 빠르게 복도를 돌았다.

주위에 지나는 사람이 없을 때 창틀에 폭발 마법을 각인했다.

걸음을 멈추지 않으며, 벽 곳곳에도 몇 개를 더 각인했다.

“테러리스트의 위협을 받는 여주인공 역할을 해 보고 싶다고 했지.”

“어, 지나가는 말로 했던 건데. 그걸 기억해요?”

에스텔은 저도 모르게 픽 웃음이 나옴과 동시에 긴장이 쭉 풀리는 걸 느꼈다.

잠깐이지만 신에 대한 고민이 날아갔다.

‘내 표정을 읽고 일부러 던진 말이겠지 분명.’

자기감정은 죽어도 드러내지 않으면서 남의 감정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잘 읽어 내는 남자였다.

“맡겨 줘요.”

카인은 창문과 어느 정도 거리가 확보되자마자 각인했던 마법을 발동했다.

쾅!

창문이 폭발하고 잠시 뒤.

에스텔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카인과 함께 복도 귀퉁이를 돌았다.

교주의 대기실 앞, 무기를 움켜쥐고 뛸 준비를 하고 있는 경비 둘이 보였다.

“치, 침입자입니다! 형제들에게 다짜고짜 검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카인의 말에 그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를 박찼다.

“아까 전달받았던 그 침입자인가!”

“이, 일단 가 보지!”

경비들이 복도 저편으로 완전히 사라진 것을 확인한 뒤 카인은 대기실 문고리를 잡았다.

“연기 배운 적 있어요? 배우 해도 되겠네.”

“너도 나쁘지는 않은 연기였다.”

철컥.

문을 열고 들어가자 당황한 기색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있는 교주가 보였다.

“교주. 시간이 없으니 빠르게 설명하지.”

철컥.

카인은 손을 뒤로 뻗어 문을 잠갔다. 그 뒤 방 전체에 방음 마법을 걸었다.

“흑마법사…! 지금 무슨…!”

“나는 질문을 하고, 너는 대답한다. 뜸을 들이거나 거짓말을 할 때마다 손가락이 하나씩 잘려나갈 거다. 첫 번째 질문이다. 유타스 장로의 목걸이는 어디에 있지?”

교주가 옆에 놓여 있던 지팡이를 부리나케 집어 들었다.

수정 끝에서 흘러나온 흑색 마나가 교주의 몸을 덮어 방호를 형성했다.

아니, 형성하려 했다.

카인의 ‘간섭’에 의해 마나가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았더라면.

“그쪽도 흑마법사였군.”

“치, 침입자다! 밖에 아무도 없는가!”

뚜벅뚜벅 다가오는 카인을 보며 교주가 다급히 외쳤지만 응답하는 이는 없었다.

계속 마법을 사용하려 시도했지만 마나는 허공에 흩어지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마구잡이로 휘두른 팔은 카인에게 잡혀 비틀렸다.

우득─!

“끄윽!”

카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교주의 손을 통째로 책상 위로 끌어당겼다.

나이프를 꺼내 손잡이 부분으로 교주의 손등을 내리찍었다. 그 충격으로 교주의 손가락이 쫙 퍼졌다.

나이프를 고쳐 잡아, 그대로 손가락을 향해 내리그었다.

서걱.

새끼손가락이 책상을 뒹굴었다.

“끄아악!”

교주가 입에 거품을 물며 몸부림을 쳤다. 어떻게든 손을 빼내려 했지만 카인은 미동조차 없었다.

순식간에 벌어진 일.

크아악─!

사, 살려 줘─

연이어 바깥에서도 비명이 들렸다.

건물이 부서지는 소리와 병장기 소리가 이어졌다.

떠오른 가능성은 하나였다.

이단심문관.

‘서두를 거라 예상했지만 벌써 이곳까지 도착할 줄은.’

아무래도 작업을 조금 더 서둘러야 할 듯싶었다.

카인이 교주를 붙잡고 있는 동안 에스텔이 그의 몸을 수색했다.

하지만 목걸이는 나오지 않았다.

“다시 묻지. 유타스 장로의 목걸이는 어디 있나?”

“너, 너 누구야. 시, 심문관인가? 정보가 잘 못 되었나. 아, 아직 도착할 때가 아닌데. 흐, 흑마법사가 교단을 위해 이, 일을 할 리가….”

서걱.

“크아악─! 미, 미친 새끼가─!”

책상 위에 손가락 하나가 더 뒹굴었다.

“다음은 가운뎃손가락이다.”

“모, 목걸이는, 모 못 넘겨줘, 계, 계획이 코앞인데 내가 어떻게….”

세 번째, 네 번째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순간에도 교주는 카인이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끝내 다섯 손가락이 모두 잘린 순간 혼절하고 말았다.

“…독기 하나는 인정해야겠군.”

카인은 교주의 가면을 벗겼다.

생각보다 어린 얼굴이 나타났다.

기껏해야 20대 초중반.

이제까지 느꼈던 이 종교 집단의 허술함과 설교 중 느꼈던 약간의 치기가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가지. 교주의 방을 수색한다.”

대륙의 멸망과 방주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는지, 교주의 원래 신분이 무엇인지 흥미가 일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었다.

목걸이를 찾는 게 우선순위이므로.

“이 사람, 이대로 두고 가도 될까요?”

“사교도에게 어쭙잖은 동정을 베풀고 싶나.”

“…그건 아니에요.”

에스텔은 입술을 꾹 다물고 카인의 뒤를 따랐다.

그리고 대기실 문을 연 순간 눈이 마주쳤다.

마찬가지로 문을 열고 이쪽으로 들어오려고 하던 한 인물과.

두꺼운 철 투구.

몸에 칭칭 감은 쇠사슬.

그 끝에 달린 철퇴.

그리고 등에 짊어진 거대한 관 형태의 무언가.

그녀는 상대의 정체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사교도. 말살한다.”

모래처럼 까끌하고 메마른 목소리가 이단심문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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