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35화 (135/227)

#135. 신, 종교, 그리고 계략 (3)

번개같이 거리를 좁힌 에스텔이 크게 메이스를 휘둘렀다. 적들은 당황하지 않고 그녀의 공격을 피했다.

짧은 순간, 에스텔의 금빛 눈동자가 적들의 모습을 훑었다.

망치에 감도는 마나.

모두 어두운 계열의 색채.

그리고 공격을 피한 심상치 않은 몸놀림.

‘용병들? 이 정도 실력자들이 대체 왜 이런 사이비 종교에….’

그녀의 의지에 감응해 손등의 팔각별이 빛을 발했다.

동시에 메이스 주위로 순백의 고리가 생겨나 돌기 시작했다.

우웅─!

공격의 유효 범위가 늘어난 메이스가 거침없이 이단자들의 뼈를 분쇄했다.

“이, 이 악마 같은…!”

그 섬뜩한 모습에 사교도들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악마는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지! 뭐라는 거야!”

에스텔의 발밑에 사교도들이 하나씩 나뒹굴기 시작했다.

하지만 뒤쫓아온 적이 합류하며 그녀의 기세는 오래 가지 못했다.

“목걸이를 빼앗아라!”

어디선가 쏘아져 온 검은빛의 마나가 사교도들의 몸에 깃들었다. 그 순간 그들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강화 마법.

창가 쪽에 지팡이를 든 흑마법사가 서 있었다.

강화 마법을 유지하느라 다른 마법은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숫자가 너무 많아.’

적은 아무리 쓰러트려도 끝이 없었다.

마법의 도움을 받은 이들이 거칠게 몰아치며 에스텔의 몸이 조금씩 뒤로 밀렸다.

카인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다.

그와 함께 있었더라면 진즉 이 상황을 종결시켰을 테니까.

신앙에 대한 고민으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운 것도 그녀가 전투에 집중하지 못하는 데에 한몫했다.

부웅─!

망치가 그녀의 빈틈을 노리고 머리 뒤에서 날아들었다.

아차 싶었지만 피하기엔 늦었다.

그녀는 몸을 틀어 어깨를 내줄 자세를 취하고 상대를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서걱.

그때 어디선가 날아온 빛의 톱니바퀴가 적의 손목을 베었다.

“유타스 장로님!”

유타스가 분노 어린 얼굴로 사교도들을 노려보았다.

전투복으로 갈아입은 그의 손에는 현역 때 사용하던 장비들이 들려 있었다.

완연한 이단심문관의 모습.

그가 노호성을 내질렀다.

“사악한 자들이 감히 이곳이 어디라고! 여신님의 전당에서 행패를 부린단 말인가!”

장내의 적이 모두 움찔 떨었다.

유타스의 손에서 뿜어져 나온 빛의 톱니바퀴가 사방으로 쇄도했다.

“크악!”

“사, 살려 줘!”

전투보다는 일방적인 학살.

적들이 달아나기 시작했다.

서걱-

강화를 멈추고 공격 마법을 사용하려던 흑마법사의 손목이 날아갔다.

투석구가 날아가 그의 발목에 휘감겼다.

투석구에 새겨진 팔각별 문양이 한 차례 빛을 발했다.

우웅!

흑마법사는 이를 악물고 이동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하지만 마나는 지팡이 끝에 모여들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안쪽의 정리를 부탁하마!”

유타스는 깨진 창문을 뛰어넘었다. 노련한 사냥꾼처럼 부상을 입은 적들을 추적해 빠르게 숨을 끊었다.

“이쪽은 제가 맡겠습니다.”

그리고 카인과 마주쳤다.

어둠 속에 드러난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더라면 자신도 모르게 공격했을 터였다.

카인의 손에 들린 피 묻은 검과 그 아래 쓰러진 사교도를 본 유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유타스는 성당 반대편 방향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인은 언덕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황급히 달아나고 있는 사교도들.

그중 하나는 유타스의 목걸이를 손에 쥐고 있었다.

에스텔이 전투 중 떨어트린 것.

카인은 그것까지 알지는 못했다.

다만 상황이 나쁘지는 않게 돌아간다고 생각했다.

‘유타스를 직접 상대하는 것보다는 사이비 종교를 상대하는 것이 편하겠지.’

에스텔에게 목걸이를 가져오라 지시한 것은 이단심문관 출신을 직접 상대하기 껄끄럽기 때문인 이유도 있었다.

─이걸 교주님에게 가져가기만 하면 된다고! 보상으로 분명 세례를 내려 주실 거야!

거리가 멀지만, 마법을 사용한다면 지금 목걸이를 손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타스에게 흑마법사임을 들킬 수 있기에 다음 기회를 기약했다.

‘교주라.’

더욱 궁금해졌다.

그가 대체 누구인지.

* * *

“미안해요. 목걸이를 잃어버렸어요. 싸우는 중에 너무 정신이 없어서….”

에스텔은 카인 앞에서 안절부절못했다.

“괜찮다.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다.”

그 말에 도리어 죄책감을 느꼈다.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그녀를 괴롭게 만들었다.

“경황이 없어 고맙다는 말을 전하는 걸 잊었네요.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성당을 정리하는 사제들 사이에서 유타스가 걸어왔다.

부드러운 미소와 피 묻은 전투복이 대조되어 기이한 인상을 자아냈다.

카인이 말했다.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른 곳도 아닌 대성당에 침입할 생각을 하다니, 그 무모함과 무례함에 치가 떨리는군요.”

그 말에 유타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

“천벌을 받을 자들입니다. 아마 여신상을 부수고 예배 공간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었던 것 같아요. 금품이나 돈이 될 만한 집기들도 모두 가져갔지요.”

그의 시선이 카인과 에스텔의 손으로 흘긋 향했다.

“혹시 목걸이 하나를 보지 못하셨는지요. 교단에서 지급되는 낡은 목걸이입니다. 소란 중 떨어진 것 같은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는군요.”

에스텔의 등에 한 줄기 소름이 흘러내렸다.

짧은 순간 스친 유타스의 눈빛은 사제가 아닌 이단심문관의 것이었다.

‘…우리 둘을 의심하고 계셔.’

유타스의 목걸이가 평범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쯤 이제 그녀도 짐작할 수 있었다.

확신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용의 선상에 올랐다.

목걸이를 훔치려 했다는 사실을 들키면 단순한 처벌로 끝나지는 않을 터였다.

과거의 연이 깊다 할지언정 이단심문관에게 과연 그런 것이 중요할까.

“에스텔, 혹시 보지 못했니?”

유타스의 빤한 시선이 느껴졌다.

에스텔은 마른 침을 삼켰다.

이제까지 자신이 알던 사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녀가 입술을 떼려는 순간 카인이 끼어들어 말했다.

“저는 보지 못했습니다. 에스텔도 그럴 것 같군요. 아마 잔해 밑에 깔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저도 그럴 가능성이 가장 크다고 생각합니다. 누가 가져갔을 리는 없겠지요. 예배에 참석하기만 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목걸이니까요. 찾으면 언젠가 나올 거라 생각하긴 합니다만….”

그의 시선이 목걸이가 들어갈 만한 주머니 부위에 집중하여 끈질기게 두 사람을 훑어 내렸다.

“조심히 귀가하시기 바랍니다. 여신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기를.”

유타스는 고개를 꾸벅이고 포박당한 흑마법사 쪽으로 사라졌다.

─가세. 자네는 지하에서 내게 해 줘야 할 이야기가 많네.

─읍읍!

─허허, 그렇게 보채지 않아도 되네. 밤은 기니까 말이야.

흑마법사를 끌고 지하 계단으로 사라지는 유타스를 보며 에스텔은 한 차례 몸을 떨었다.

고문.

이단심문관이 필수로 갖춰야 할 기술 중 하나.

그것만 아니었더라면 그녀도 과거 이단심문관 제안을 받아들였을 터였다.

카인 역시 유타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꽤나 초조해 보이는군.’

언뜻 침착해 보였지만, 그의 어투나 작은 손짓에서 묻어나오던 불안과 초조를 카인은 놓치지 않았다.

* * *

날이 밝자마자 카인과 에스텔은 33번 구역의 외곽을 나섰다.

“저쪽이 본거지겠죠. 추정하기로 수백 명이라고 하던데 자릿수가 아예 다를지도 모르겠어요.”

멀리, 거대 여신상과 그 주위에 진을 친 천막과 건물들이 보여왔다.

“유타스 장로님이 심문관들이 언제 도착하는지 교단에 재촉을 넣었다고 해요. 내색은 안 하셨지만 많이 화가 나셨겠죠.”

분노보다는 초조함이리라.

‘슬슬 사교도들이 목걸이를 가져갔음을 확신했겠지.’

유타스가 강하다고는 하나 구역에 배치된 소수의 전투 사제만을 데리고 사교도 전체를 상대하기는 무리다.

하지만 심문관들이 도착하기 전 유타스가 움직일 가능성도 존재했다.

일이 잘못되면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목이 날아갈 테니.

‘교단도 긴장감이 많이 무뎌졌군. 열쇠를 가진 자를 이리 허술하게 관리하다니.’

안일함에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입구 쪽에 가까워지자 사교도 하나가 카인과 에스텔을 향해 고개를 꾸벅였다.

“구역 안에 다녀오시는 길인가 보군요.”

카인과 에스텔은 악마 가면과 검은 수단을 걸치고 있었다.

구역 내에 돌아다니는 사교도가 많아 유인해 빼앗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평신도들을 대상으로 한 교주님의 설교가 곧 시작되니 서둘러 착석하시기 바랍니다.”

수단은 다 같지만 가면은 달랐다.

모두 동물을 원형으로 한 악마의 얼굴로, 동물의 종류별로 지위가 나뉘는 모양이었다.

“대전당은 저쪽입니다.”

상대가 가리킨 방향엔 가건물이 있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허름하지만 층수가 많고 너비가 넓어 거대하다는 인상을 주었다.

“악마의 날개가 그대 앞에 펼쳐지기를.”

카인과 에스텔은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향했다.

“…긴장되네요. 저들 입장에선 우리가 이단인 셈이잖아요?”

건물과 건물 사이.

천막과 천막 사이.

수많은 사교도가 분주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제 몇 걸음만 내디디면 적의 본거지에 완전히 잠입하게 되는 셈이었다.

카인이 에스텔에게 손바닥을 위로 향하여 내밀었다.

“……?”

에스텔이 반사적으로 손을 얻었다.

말 잘 듣는 고양이처럼.

작은 빛과 함께 손등 위의 팔각별 문양이 사라졌다.

식당에서도 마법으로 문양을 감춰 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섭섭함이 에스텔의 머릿속을 스쳤다.

“가지.”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 카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사교도들은 저들끼리 모여 알 수 없는 주문을 읊기도 하고, 섬뜩한 웃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교리에 관해 토론을 벌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교단의 교리와 비슷해요. 핵심 부분만 비틀어 다른 교리처럼 보이게 만든 듯한데….”

안으로 들어갈수록 에스텔의 얼굴에 드리운 긴장감은 더해져 갔다.

동시에 신경 쓰이는 것이 있었다.

검은 수단 아래 드러난 낡고 오래된 신발들.

신도 대다수가 구역 외곽의 가난한 이들이라는 증거였다.

‘어쩔 수 없는 일인 걸까.’

결핍이 많은 이일수록 의지할 대상을 찾게 되고, 사교에 빠지기도 쉽기 마련이었다.

그런 에스텔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카인이 말했다.

“동정할 필요 없다. 어쨌거나 저들 모두 스스로의 선택으로 이곳에 들어왔을 거다.”

“…….”

그녀는 흠칫 놀랐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걸음을 옮길수록 대전당이 점점 가까워져 왔다.

“성당에 침입한 적이 목걸이를 가지고 달아났다고 했죠.”

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곧장 교주에게 바쳤을 가능성이 컸다. 그렇다면 목걸이의 행방은 둘 중 하나였다.

교주의 목에 걸려 있거나.

그의 처소에 보관되어 있거나.

설교에는 확실히 참석할 생각이었다.

목걸이의 행방을 확인하고 교주라는 자가 어떤 인물인지 파악하기 위해서.

하지만 설교가 시작되기까지 삼십 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흩어져 교주의 처소를 찾지. 나는 대전당부터 살피겠다. 신분을 들키지 않게 주의하며 주변 건물부터 확인해 나가도록.”

에스텔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른 방향으로 사라졌다.

카인은 다시 대전당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아직 완공된 것은 아닌지 3층 높이의 지붕에 인부들이 돌아다녔다.

교주의 처소가 대전당 건물 안에 존재한다면 그 위치는 가장 높은 곳이지 않을까.

가능성이 큰 곳부터 살피기로 결정한 카인은 건물 뒤로 돌았다.

그리고 지켜보는 이가 없는 것을 확인한 뒤 건물 돌출부를 밟아 빠르게 지붕 위로 올랐다.

주위에 떨어진 페인트통과 붓을 적당히 집어 들고 자연스럽게 걸음을 옮겼다.

“서두르자고. 악마님들이 강림하시기 전에 성전을 완성해야 하니까.”

“성전 안에 있으면 악마님들이 우리는 해치지 않을 거라고.”

카인은 인부 사이를 돌았다.

지붕이 아직 덮여 있지 않은 부분은 구멍 아래로 내부가 들여다보였다.

모여서 책을 펴고 교리 공부를 하는 이들도 있었고, 원형의 마법진 주위로 알 수 없는 의식을 벌이고 있는 이들도 있었다.

“거기.”

카인이 걸음이 멈춰 섰다.

뒤를 돌자 거대한 덩치의 염소 가면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일은 안 하고 돌아다니기만 하더군. 뭐 하는 거지?”

가면의 눈구멍에서 흉흉한 안광이 번뜩였다. 손에는 피 묻은 거대도끼가 들려 있었다.

“지붕에 칠이 필요한 곳이 있는지 살펴보는 중이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염소 가면이 뚜벅뚜벅 지붕 위를 걸었다.

한 번의 도약으로 달라붙을 수 있을 만한 거리에 멈춰 서고는, 카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칠흑 아래 하늘이 열리고 검은 비가 내리기 시작할 때.”

‘교리인가.’

뒤에 이어질 구절로 신원을 확인하려는 듯 보였다.

교단의 성경 구절과 유사했다.

몇 단어만 바꾸어 표절했다고 해도 될 정도로.

카인은 다음 구절을 예상해 입을 열었다.

“악마의 날개를 가진 이가 제물과 함께 지상에 내려와 그의 하인들을 그림자로 품어 부귀를 누리게 하리라.”

“그렇군.”

염소 가면은 만족스러운 투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적중했나.’

카인이 긴장을 늦추려는 찰나, 다시 몸을 돌려 거칠게 도약했다.

“훼방자에겐 죽음을!”

거대한 도끼가 공기를 찢어발기며 카인의 머리를 향해 떨어졌다.

카인은 끌어올렸던 마나로 즉시 움직임을 가속해 뒤로 뛰었다.

와지직!

지붕이 무너지며 두 사람이 추락했다.

“훼방꾼!”

떨어지는 순간 염소 가면은 도끼를 한 번 더 휘둘렀다.

흑색 마나로 이루어진 두꺼운 방호가 카인을 감쌌다.

팅─!

동시에 섬뜩한 검은 전류가 도끼를 타고 그 주인의 몸을 휘감았다.

염소 가면은 외마디 신음과 함께 한 차례 몸을 떨고 축 늘어졌다.

쿵!

두 사람이 아래층 바닥에 떨어지며 뿌연 먼지가 일었다.

어둑한 방 안, 카인은 굽혔던 한쪽 무릎을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발밑에 무언가 꿈틀거려 시선을 내리자 목에 단검이 박힌 ‘진짜’ 염소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전격 마법의 충격으로 간헐적으로 몸을 떨고 있는 염소 가면 옆에서.

그리고 자신을 중심으로 그려져 있는 기이한 모양의 마법진.

바닥에 눌어붙은 양초와 불꽃.

잔뜩 얼어 있는 사교도들.

카인이 상황을 파악하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후두둑!

허공에 던져졌던 페인트가 비처럼 쏟아져 내렸다.

카인의 방호에 가로막혀, 넘실거리는 흑색 마나와 함께 기괴한 풍경을 자아냈다.

사교도 중 하나가 침을 꿀꺽 삼키고 외쳤다.

“아, 악마님이 강림하셨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