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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옥한 천재마법사-133화 (133/227)

#133. 신, 종교, 그리고 계략 (1)

“그럼 그렇게 보고를 올리는 걸로 알고 있지.”

멀리 사라지는 카인의 모습을 보며 서장은 멍한 얼굴을 했다.

“추, 출발할까요?”

기사의 물음에도 한참토록 아무 대답을 하지 못했다.

카인이 남긴 말이 아직도 귓가에 울리는 듯했다.

「보고를 올려라. 슈프림 시큐리티의 에반이라는 자가 블루서펜트 보스의 정체에 관한 단서를 쥐고 있는 것 같다고.」

원래 무슨 일을 하던 인물인지, 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었다.

* * *

두 대의 차량이 황야를 가로질러 33번 구역으로 향했다.

운전대를 잡은 에스텔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난 분명 적인 줄 알았다고요. 사옥 안에 버젓이 수인이 돌아다니는데 직원이 겁에 질려 있으니까.”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았으니 처벌 같은 걸 내리지는 않겠다. 둘 다 뼈 하나 부러진 데서 끝난 걸 다행으로 여겨라.”

뒷자리에 팔짱을 끼고 있던 실버팽이 말했다.

“다시 싸우면 내가 이길 수 있다. 아직 마나를 사용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밀렸을 뿐이지.”

그의 팔에는 골절용 붕대가 감겨 있었다.

에스텔이 뒤를 돌아보며 선글라스를 슬쩍 내렸다. 눈가 옆에 얕은 생채기가 드러났다.

“그래서요? 다시 싸워 볼래요?”

에스텔은 어제 47번 구역에 도착해 슈프림 시큐리티의 사옥으로 향했다.

복도를 돌아 카인의 집무실로 가는 중, 직원 하나를 벽 쪽에 몰아세우고 있는 늑대 수인 하나를 발견했다.

비교적 최근에 생긴 걸로 보이는 몸의 상처. 그 앞에 겁에 질려 떨고 있는 직원.

침입자다!

솔직히 순간 기쁜 마음이 든 것도 사실이었다.

「역시 이 사람 옆에는 방패 역할을 하는 내가 딱 달라붙어 있어야 하는구나.」

「적이 건물 한가운데까지 들어왔는데 경비들은 뭘 하고 있는거람. 밀시안 님도 그렇고.」

그녀는 메이스를 꺼내 들었고, 곧 작은 싸움이 벌어졌다.

어제의 기억을 떠올린 실버팽이 으르렁거렸다.

“얼마든지. 그리고 반복해서 말하지만 난 길을 묻고 있었을 뿐이다. 건물이 워낙 복잡해 나가는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직원에게 상냥하게 물었어야죠. 그렇게 사람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물어보는 게 아니라.”

“내 눈빛은 원래 이렇다.”

“그럼 고쳐요.”

실버팽이 눈에 힘을 주어 에스텔을 노려보았다. 에스텔 역시 지지 않고 노려보았다.

그녀가 불편한 이유는 실버팽이 어제 자신을 ‘카인의 호위’라 칭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 다 그만. 에스텔, 앞을 보고 운전해라. 난 바위에 차가 부딪쳐 허공에 몸이 뜨는 경험을 하기 싫으니까.”

카인이 나직이 말을 이었다.

“실버팽, 나를 찾아올 때는 분명 사전에 연락을 취하라고 했었지.”

“그건 잘못했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쓰는 도구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하겠다.”

실버팽이 조금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에스텔, 상식적으로 실버팽이 적이었다면 복도에 지나다니던 직원들 분위기가 다르지 않았겠나.”

“…그건 그래요. 내가 조금 들떠 있었… 아니, 상황을 잘못 판단했어요.”

에스텔 역시 얌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일은 최대한 조용히 움직일 계획이라 최소한의 인원만을 편성했다.”

카인과 에스텔, 실버팽과 회로를 구축한 잿빛늑대 넷이 일행의 전부였다.

라이카를 제외하면 33번 구역에 있는 블루서펜트 잔당은 이 정도로 충분하리라는 판단이었다.

“두 사람 다 내가 인정한 호위다. 서로를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해라.”

“알겠어요.”

“알겠다.”

분위기가 진정되고 에스텔은 다시 운전에 집중했다. 곧 33번 구역의 외곽이 보였다.

그녀는 구역 중심 대성당에 있을 그리운 얼굴을 떠올렸다.

‘오랜만에 유타스 장로님을 뵐 수 있겠어.’

뒷골목에서 자신을 거둬준 은사 아델 사제. 그의 친우가 유타스였다.

아델 사제가 임무 중 불의의 사고로 목숨을 잃었을 때 함께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던가.

존경할 만한 인격자였고, 그 결과로 현재는 한 구역의 성당을 총괄하는 장로를 역임하고 있는 상태였다.

“잠깐, 저기 뭔가 이상한 게 있는데요?”

외곽 근처, 검은 사제복에 기괴한 형상의 악마 가면을 쓴 이들이 산양을 불에 태우고 있었다.

끼에엑─! 끼엑─!

산양의 고통스러운 울음소리가 이곳까지 들려왔다.

가면을 쓴 이들이 주문 비슷한 이상한 중얼거림과 함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이단…? 사교도…?”

그로테스크한 광경에 에스텔이 저도 모르게 읊조렸다.

“너희 인간은 하나의 종교만 가진 것이 아니었나. 여신을 불러내는 의식 따위로 보이지는 않는데.”

실버팽의 말대로였다.

대륙에 허락된 유일한 종교는 여신 테유메사 교단뿐이었다.

종종 이교도들이 곰팡이처럼 피어나기도 하지만 모두 별 볼 일 없는 잡배 수준에 불과했다.

차량이 의식 현장 옆을 지나갈 때 소리를 들은 교도 하나가 고개를 돌렸다.

카인과 그의 시선이 마주쳤다.

뿔이 달린 악마의 눈구멍,

그 너머 보이는 탁한 눈동자.

카인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그건 이제껏 크게 어긋난 적 없는 동물과 같은 감각이었다.

차량은 도시 안으로 진입했다.

33번 구역의 풍경은 다른 곳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거리 곳곳을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는 악마 가면의 사교도들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라이카의 아지트를 찾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릴 거라고 했죠?”

“그래. 구역의 분위기를 파악하는 게 우선일 듯하군. 실버팽, 먼저 거처를 잡고 대기하고 있어라.”

“알겠다.”

실버팽은 차에서 내려 잿빛늑대와 함께 거리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에스텔은 계속 차를 몰았다.

도심으로 향할수록 사교도들의 숫자는 줄어들긴 했지만 완전히 사라지진 않았다.

“대체 숫자가…. 사교도와 마주치는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만 이렇게 버젓이 돌아다니는 모습은 처음이에요.”

그건 카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짠 주요 설정 중 악마 가면을 쓴 사교도에 관한 것은 없었으니까.

차는 언덕 위를 올랐다.

고고한 모습으로 도시 전체를 어느 정도 내려다보고 있는 대성당이 나타났다.

안에 들어서자마자 벽면 가득 새겨진 종교화가 보는 이를 압도했다.

“사람이 없어요. 예배 시간이 아닐 때도 보통은 방문객들로 붐비는데 ….”

정갈하게 도열한 장의자 사이를 지나 성당 앞쪽으로 향했다.

거대한 크기의 여신상 아래 사제복 차림의 한 노인이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뒤쪽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형형색색의 빛이 비쳐들어 경건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기도를 끝내고 뒤를 돈 노인의 눈이 크게 떠졌다.

“에스텔…?”

그는 못 믿겠다는 듯 한 차례 눈을 비비고는 환한 미소를 지었다.

포옹을 하는 두 사람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다. 감격스런 재회의 순간이 지나고 거리를 벌렸다.

“이게 몇 년만인지. 완전히 숙녀가 다 되었구나.”

“오랜만이에요. 유타스 사제님. 아니, 이제는 장로님이시죠.”

두 사람은 이후에도 서로의 근황에 대한 간단한 대화를 나눴다.

“그렇구나. 긴 휴가를 냈다고. 그런데 이 분은…?”

에스텔이 입을 열려는 찰나 카인이 먼저 대답했다.

“한니발. 용병입니다. 에스텔이 일을 쉬는 동안 함께 대륙을 여행하고 있습니다.”

에반에 이은 두 번째 가짜 신분.

얼굴은 이미 다른 이십 대 남성의 것으로 바꾼 상태였다.

“만나서 반가워요. 유타스라고 합니다. 여신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푸근한 미소와 함께 유타스가 손을 내밀었다. 수많은 흉터가 그가 거쳐왔을 고난한 삶을 짐작케 했다.

꾸욱─

고개를 꾸벅이고 악수를 받자 악의 없는 악력이 느껴졌다.

악수가 끝나자 유타스는 카인을 향해 만족스런 웃음을 지었다.

마치 시험을 통과한 딸의 연인을 바라보는 듯한 얼굴.

젊은 남녀를 번갈아 쳐다보는 그의 눈빛엔 은근한 기대와 흐뭇함이 묻어났다.

“에스텔을 잘 부탁드려요. 어릴 때는 말괄량이에 사고뭉치였지만 자라면서 많이 나아진 편이랍니다. 성년식에는 대주교님의 술을 몰래 마신 적도….”

“아니, 지금 오랜만에 만나자마자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예요?”

에스텔이 빽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얼굴은 민망함에 잔뜩 붉어져 있었다.

카인은 유타스의 팔각별 목걸이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다 본론으로 들어갔다.

“거리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군요.”

“아, 그들 말입니까.”

유타스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최근 나타난 사교도들입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어느새 수백 명으로 규모가 늘었더군요.”

그의 표정은 더없이 진지했다.

“저는 여신님 외의 다른 신을 믿는 것이 잘못이라 생각지는 않습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지요. 하지만 선량한 시민들을 현혹해 악마를 섬기게 만든다면 그건 잘못된 일이라 생각합니다.”

수심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간 사교도를 쫓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 왔으리라.

“외곽에서도 대놓고 의식 비슷한 행위를 하던 걸요. 경찰은 아무 대응도 하지 않고 있나요?”

“구역 경찰이 나서봤지만 큰 소용은 없었단다. 사교도들 사이에 마나를 다루는 실력자들이 섞여 있어 힘으로 진압하는 것도 여의치 않았지.”

에스텔 역시 심각한 얼굴을 했다.

카인과 함께하며 그녀의 신앙심은 옅어졌지만, 사교도에 대한 적대감은 무의식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

카인이 물었다.

“단순한 사교로 보기에는 의식이 꽤나 정교하더군요. 거리에 보이는 인원도 숫자가 만만치 않고 말입니다.”

“예. 직접 본 적은 없지만 교주라는 자의 언변이 아주 뛰어나다고 합니다.”

집회에 다녀온 후 교도가 된 이들의 입을 통해 빠르게 소문이 퍼지고 있다고 했다.

이제까지 쌓아온 신에 대한 믿음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새로운 눈이 뜨이게 되는 순간이었다고.

“그래서 성당에 사람이 이렇게 적었군요. 교단에 연락은 취하셨나요?”

유타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도에서 이단심문관들이 오고 있단다. 부디 피를 흘리는 이들이 많지 않아야 할 텐데….”

그의 걱정스러운 눈빛은 사교에 빠진 선량한 시민들을 향한 것일 터였다.

몇 가지 궁금한 것들을 묻고 카인과 에스텔은 성당을 나섰다.

성당 안으로 들어오던 신자와 엇갈렸고, 곧 뒤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신부님, 죄송합니다. 저같이 가난한 이가 매번 이렇게 헌금 없이 신의 말씀을 들어도 될지….”

“고개를 드십시오. 돈 따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신을 믿고 따르고자 하는 마음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문을 나서자 언덕 아래 펼쳐진 풍경이 보였다.

“방금 그 사람은 손등에 새겨진 표식이 네 개이더군.”

“소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을 텐데 눈썰미가 좋네요.”

교단에 대한 기여도와 신앙심의 정도에 따라 부여받는 표식.

일반적으로 다섯 개까지 부여받을 수 있으며, 개수에 비례한 위력의 신성 마법을 사용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손을 보니 성당 안에서 미사만 올렸을 유형의 인물은 아닐 테고.”

“맞아요. 젊으셨을 땐 이단심문관으로 왕성하게 활동하셨어요. 교단 내에서 꽤 유명하셨죠.”

에스텔이 카인의 옷자락을 꼭 붙잡았다. 카인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알아서 잘할 거란 건 알지만, 흑마법사란 사실은 들키지 않는 게 좋아요. 이단심문관은 마법사를 상대하는 법에 통달한 집단이에요. 말하자면 전문적인 사냥꾼에 가까워요.”

그녀의 눈동자가 불안감으로 흔들렸다.

“내 마병을 치료하는 것도 좋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나중으로 미뤄도 괜찮아요. 나는 당신이 다치는 게 싫어요.”

카인이 잠시 에스텔을 바라보다 말했다.

“걱정 끼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하지.”

이단심문관이 위험한 존재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흑마법사에 관한 연구를 오랜 기간 해 온 그들은, 이제까지와의 적들과는 분명 성격이 달랐으니까.

“마나회로를 감추는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으니 탐지 장비에 들킬 염려는 없다. 먼저 마법을 드러내지 않는 이상은.”

카인의 말에 에스텔이 조금 안도한 얼굴을 했다.

“마병을 치료하려면 이곳에 있는 무언가를 부서야 한다고 했죠. 뭐든 상관없어요. 부수고 깨트리는 건 내 전문이니까요.”

손에 메이스를 쥐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녀는 허공에 팔을 붕붕 휘둘렀다.

“그래. 부수어야 하지.”

카인의 시선이 멀리 외곽 너머로 향했다.

20번대 구역으로 넘어가는 장대한 ‘벽’과 황야에 우뚝 선 수십 미터 높이의 여신상.

그녀 주위로 사교도들이 친 천막과 가건물이 가득했다. 모닥불 주위로 교도들이 빙글빙글 돌았다.

알 수 없는 웅얼거림이 이곳까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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