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32화 (132/227)

#132. 격동 (2)

끼에에엑─!

거대한 몸체의 샌드웜들이 지면을 뚫고 솟구쳤다.

실버팽과 잿빛늑대들은 본능적으로 몸을 날렸고, 샌드웜들은 애꿎은 허공을 물어뜯고 몸을 너울거리다 땅 아래로 사라졌다.

“마음껏 날뛰어 봐라. 뒤는 내가 봐 줄 테니.”

카인은 부유를 이용해 허공에 몸을 띄운 채였다.

늑대들의 발밑에 계속 돌을 던져 샌드웜의 공격을 유도했다.

“카, 카인 님! 잠깐―!”

“당황하지 마라! 놈들이 바깥으로 나왔을 때가 유일한 공격 기회다!”

상황을 파악한 실버팽이 노련하게 명령을 내렸다. 곧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카인은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나타난 샌드웜들은 통상보다 크기가 작은 편이었다.

‘이 정도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겠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유체들이니.’

콰직! 콰득!

뿌연 흙먼지 사이 피와 살점이 튀었지만 그중 늑대 수인들의 것은 없었다.

‘…그리고 내가 뭔가를 더 가르쳐 줄 필요도 없겠군.’

그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마나의 사용법을 파악해 움직이고 있었다.

갈수록 더욱 빨라져 가는 몸놀림.

장면 사이 이따금 보이는 그들의 얼굴에 짙은 희열이 묻어 나오고 있었다.

“…….”

그때 카인의 등 뒤로 무언가 솟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몸을 돌리자 이쪽을 내려다보는 샌드웜 한 마리가 보였다.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몸체.

짙은 갈색 비늘과 날카로운 이빨.

완전한 성체였다.

거기에 머리에 돋아난 작은 뿔들이 변종임을 짐작케 했다.

실버팽과 잿빛늑대는 전투에 몰입해 이쪽의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저 녀석들의 어미인가.”

끼에에엑─!

그 말에 반응이라도 한 것처럼 샌드웜이 카인을 향해 머리를 내리꽂았다.

“옛날 생각이 나는군.”

카인은 제르비아와 황무지를 횡단하던 때를 떠올렸다.

이 녀석은 확실히 그때 상대했던 일반적인 성체들보다 강해 보였다.

‘그녀는 강해졌다.’

47번 구역에서의 ‘각성’ 이후 그녀의 성장 한계는 새로이 열렸다.

‘그리고 나 역시도.’

날카로운 이빨투성이의 주둥이가 카인을 집어삼키기 직전.

펑─!

거대한 폭발음과 함께 샌드웜의 몸이 풍선처럼 터졌다.

비산하는 살점 아래, 쭉 뻗어 펼치고 있는 카인의 오른손이 나타났다.

“…성능이 나쁘지는 않군.”

손바닥에 밀착된 검은 장갑이 은은한 빛을 발했다.

조금 전 발사되었던 돌풍의 잔해가 주위에 일렁이고 있었다.

* * *

에스텔은 호텔 테라스에 앉아 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벽 바깥에서 돌아온 지도 벌써 3주.

수도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거리 곳곳을 돌아다니는 특무대 덕에 범죄는 찾아볼 수 없었으며, 사람들의 얼굴엔 평온만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수도라는 공간이 몹시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껴졌다.

“…….”

‘벽 바깥’의 뒷골목에서 은사에게 거둬진 후 삶에서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낸 공간임에도.

이곳의 평화가 오직 가진 자들만을 위한 것임을 알고 있기에, 자신이 이방인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테이블 위에 축 늘어졌다.

“지루해…. 교단 영감들은 고루한 인간들뿐이란 말이야.”

물론 더 단순한 이유도 있었다.

벽 바깥에서의 최근 몇 달은 그녀 인생 중 가장 격동적인 시간이었으니까.

그녀는 자신을 이곳에 보낸 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공허하던 자신의 삶에 살아갈 이유를 찾아 준 남자.

「엘렌 교수를 감시해라. 분명 접근해 오는 이가 있을 거다.」

중책을 맡겼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신뢰를 받고 있다는 말과 같았다.

임무에 충실히 엘렌 교수를 감시했고, 그녀에게 접근하는 한 인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옷과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용모는 식별할 수 없었지만, 조심스레 미행해 황실 궁전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했다.

“어서 빨리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그녀는 손가락을 물어뜯었다.

첫 번째 통신 이후 그는 자신이 먼저 연락을 취할 때까지는 대기하라고 했다.

그 후 꽤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녀는 초조함을 느끼고 있는 상태였다.

‘설마 버림받았나?’

말도 안 되는 생각.

곧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그를 믿었다.

단순히 맹약을 맺었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를 신뢰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불안하지.’

어느새 형성된 애착이 상당히 크게 작용하고 있음을, 그녀는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종의 분리불안이었다.

최근 몇 달 중 이렇게 오랜 기간 그와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으니까.

“…….”

그녀는 테이블에서 벌떡 몸을 일으켜 커피를 원샷했다.

룸서비스에 주류도 있었지만 시키지 않았다.

임무를 수행 중이기도 했고, 마병을 치료하고 살아갈 인생이 많이 남았으니 건강을 관리하는 것도 중요했다.

“에휴.”

커피를 들이부어도 정체 모를 초조함과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녀는 다시 테이블에 퍽 엎어졌다.

시간이 똑딱똑딱 흐르던 중 그녀의 입술이 멍하니 열렸다.

“보고 싶다.”

흠칫.

그녀는 자신이 뱉은 말에 순간 당황했다.

그 이유에 대해 고찰할 틈도 없이 문 쪽에서 노크와 함께 직원의 말소리가 들려왔다.

─ 1207호실로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입안에 들어간 금빛 머리카락을 뱉으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직원을 지나쳐 통신실에 도착했다.

숨을 고르며 장비 앞에 앉았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이에요.”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불안감이 가라앉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한마디를 들은 순간.

그녀의 가슴은 다시 미친 듯이 뛸 수밖에 없었다.

「감시를 중단하고 47번 구역으로 복귀해라. 네 마병을 치료할 때가 왔다.」

“…네, 예, 녜?”

에스텔은 순간 당황했다.

마병의 치료?

내가 잘 들은 게 맞나?

맹약의 조건으로 내걸었지만 치료가 실현되는 것은 막연한 먼 미래의 일로 생각했었다.

「별로 기쁘지 않은 얼굴이군.」

“아니, 그럴 리가! 그냥 조금 갑작스럽게 느껴져서요.”

「갑작스러울 것은 없다. 정해진 때가 되었을 뿐이지.」

평생토록 시달려 온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마침내.

드디어, 결국에는.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그녀의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알았어요. 곧바로 47번 구역으로 출발할게요.”

그녀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려 애쓰며 밀렸던 보고를 올렸다.

엘렌 교수의 하루 일과와 그녀 주위에서 발생한 특이 사항과 같은 것들.

이야기를 할수록 감정은 가라앉고 본래의 차분함이 돌아왔다.

“이틀 전에 엘렌 교수에게 접근한 사람이 있어요.”

예언자로 추정되는 이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황실이라. 가능성은 그쪽인가. 결국 그렇게 되었군. 고생했다.」

에스텔의 얼굴이 샐쭉해졌다.

“뭐야. 그게 끝이에요?”

「무엇을 더 바라지.」

“잘했다고 해 줘야죠. 임무도 성실히 수행하고 적의 단서도 찾아왔는데.”

「…잘했다.」

에스텔은 그제야 조금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환하게 웃었다.

“어쨌든 바로 47번 구역으로 출발할게요. 곧 봐요.”

「그러지. 출발하기 전 엘렌 교수에게는 수도를 벗어나지 말라고 일러둬라.」

“알았어요.”

카인은 통신을 종료한 뒤 고개를 갸웃했다.

‘왜 갑자기 기분이 좋아졌는지 모르겠군.’

다음 할 일을 위해 통신실을 나섰다.

문을 열자마자 복도 곳곳에 대기하고 있던 직원들이 서류를 들고 달라붙었다.

“대표님! 12번 거리 종합 상가 이월 상품 처리에 관한 건입니다.”

“주점 샬롯의 분점 오픈에 관한 검토서입니다. 결재 부탁드립니다!”

대부분의 업무는 밀시안에게 일임해 두었던 상태.

하지만 대표가 직접 결재해야 할 중요한 건들은 모두 카인이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휘릭! 펄럭!

카인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서류에 사인을 해 나갔다.

그 속도는 거침이 없었고, 준비가 미비한 서류는 ‘다시’라는 한 마디와 함께 죽죽 찢었다.

그때마다 직원들은 자신의 몸이 찢기는 것처럼 흠칫흠칫 떨었다.

“차량을 대기해 놓았습니다.”

복도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밀시안이 나타났다. 카인이 올라타고 문이 닫혔다.

“대, 대표님! 이것까지만 결재를 ─!”

“저희를 버리고 가시면 안 됩니다! 대표님!”

절박한 얼굴들이 사라지고 밀시안이 말했다.

“돌아오시자마자 쉬실 틈도 없이 업무를 보시다니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시키셨다면 제가 모두 끝내 놓았을 텐데요.”

“괜찮다. 중요한 일은 모두 직접 처리하는 것이 뒤탈이 없다.”

밀시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믿고 따르는 이는 완벽주의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슈프림 시큐리티 사옥을 나선 두 사람은 준비된 차량을 타고 연구 단지로 향했다.

“자네 왔나. 병원은 이제 시범 운영에 들어갔네. 문을 연 지 얼마 안 된 것치고 환자가 조금 많긴 하네만.”

환자의 대다수는 슈프림 시큐리티의 대원과 잿빛늑대였다.

지금은 전투원들의 치료 목적이 크지만, 후에 인력을 확충하여 일반인들을 대상으로도 문을 열 계획이었다.

“실버팽은 도착했나? 복귀 후 곧장 병원으로 가 치료를 받으라고 지시해 두었는데.”

프로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레니와 함께 올라갔네. 격렬한 전투였다고 들었네만, 그런 것치곤 앞서 도착했던 늑대 수인들에 비해서 몸 상태가 꽤 멀쩡하더군. 일단 검사를 받으라고는 해 두었지.”

실버팽과 잿빛늑대 넷.

회로를 구축하고 몸의 재생력이 크게 올라간 덕이었다.

그때 병원 옆에 위치한 연구소 입구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 나일스가 헐레벌떡 나타났다.

“석화증의 치료제는!”

그는 긴 계단을 급히 내려오다 발을 헛디뎠다. 엉덩방아를 찧고 그대로 미끄러져 카인 앞에 도착했다.

아픈 것도 모르고 그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치료제는 효과가 있었소?”

“…진정하지. 보고부터 먼저 듣겠다.”

“어, 음. 내가 조금 추태를 보였소.”

그는 무안했는지 헛기침을 하고 말을 이었다.

“치료제를 대량 생산할 준비는 마쳤소. 저 뒤쪽 공장에 설비를 모두 옮겨 놓았지. 약재만 제대로 공급이 되면 언제든지 가동할 수 있소. 헥사메디컬 창고에서 가져온 재료들은 종류와 양이 제멋대로니 말이오.”

속사포처럼 말을 쏟아낸 그는 품에서 약 꾸러미를 꺼내 카인에게 건넸다.

“현재 있는 약재 양으로 만들 수 있는 최대한의 석화증 치료제요. 그것 말고도 당신이 지시한 대로 몇 가지 샘플을 만들었소.”

사뭇 진지한 얼굴로 그가 말했다.

“전부 듣도 보도 못한 배합법이던데, 이번엔 암증이나 영면증 같은 병의 치료제라도 되는 것이오?”

카인은 아무 말 없이 꾸러미를 품에 챙겼다.

“설마 진짜…!”

“실버팽은 병원 안에 들어갔다. 치료제의 효과가 궁금하다면 직접 가 확인해보는 게 낫겠군.”

“……!”

나일스의 주의는 간단하게 다른 곳으로 돌아갔다.

“난 가 보겠소!”

고개를 꾸벅여 인사한 그가 병원 안으로 쏜살같이 사라지고, 자리엔 카인과 프로이드만 남았다.

“새로 심은 작물은 두 달 뒤에 수확될 예정이다. 그때부터 공장이 제대로 돌아가기 시작하겠지.”

공장과 연구 시설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카인이 말했다.

“대륙 전역에 치료제를 판매할 생각이라고 들었네. 나 같은 범인(凡人)이야 자네 같은 사람의 의도를 읽을 생각도 그럴 능력도 없네만.”

프로이드가 잠시 뜸을 들였다.

“조금 궁금하긴 하네. 허, 불치병의 치료제라니. 원래부터 사람들을 구원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구원.

그 단어에 반응해 카인의 입꼬리가 픽 올라갔다.

“누군가를 구원할 생각도 구원받을 생각도 없다. 그저 이득을 위해 하는 일일 뿐이지.”

“그렇구만.”

프로이드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병원 운영에 관한 짧은 대화가 이어졌다.

“또 찾아오도록 하지.”

“자네는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하겠어.”

카인은 이제 외곽에 위치한 농장을 순차적으로 돌 참이었다.

「…정말 그렇게 많은 보수를 받고 일을 할 수 있는 겁니까? 농장에서 작물 관리를 하는 것만으로?」

바마가 인도해 온 수인 혼혈들.

그들은 모두 제안을 수락했다.

고급 약재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 기계식 농법으로는 재배가 불가능했다.

많은 시간 작물 옆에 붙어 관리를 해야 하기에 일꾼에게 필요한 1순위 조건이 ‘체력’이었다.

그런 면에서 수인에 가까운 육체를 가진 그들은 고된 일에 최적이라 할 수 있었다.

카인의 기준에서 그들에게 지급하는 보수는 고급 인력에 대한 정당한 대가였다.

“대표님.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겠습니다.”

차에 탑승한 카인은 문득 창밖에서 자신을 향해 무언가 번쩍인 것을 느꼈다.

“잠시 기다리지. 파리가 꼬였군.”

카인이 문을 열고 내리자마자, 거리 반대편에 있던 검은 차량이 급히 출발했다.

위이이잉─!

정확히 말하면 그러려고 했다.

카인이 손바닥을 뻗어 염동으로 차량을 들어 올리지 않았더라면.

뚜벅뚜벅 다가오는 카인을 보고 탑승 기사는 어떻게든 차량을 출발시키려 하는 몸짓을 보였다.

하지만 타이어는 허공에서 맹렬하게 헛바퀴만 돌 뿐이었다.

─추, 출발시켜! 어서!

─차가 고, 공중에 뜬 것 같습니다!

차량 밖으로 새어 나오는 다급한 외침을 들으며, 카인은 뒷문 앞에 다가섰다.

똑. 똑.

창문은 선팅이 되어 안이 보이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반응이 없었다.

“…….”

카인은 근력을 강화한 뒤 창문을 향해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쨍!

강화 유리가 사방으로 튀어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구멍으로 손을 쑥 집어넣어 문의 잠금장치를 열었다.

끼이─

“오랜만이군. 레이몬드 서장.”

“오, 오랜만일세.”

47번 구역의 경찰서장 레이몬드는 들고 있던 카메라를 황급히 등 뒤로 감췄다.

‘여,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나았나.’

슈프림 시큐리티의 사옥을 찾아갔을 때의 악몽이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 악마 같은 남자와는 단지 시선을 마주하는 것만으로 온몸이 벌벌 떨려왔다.

서장이 쥔 카메라는 카인이 뻗은 손에 너무도 쉽게 딸려 나왔다.

콰직!

조금 전까지 카메라였던 것의 파편이 후두둑 떨어졌다.

“내 눈에 띄는 순간 너를 포함해 네 가족의 목숨은 없을 거라 경고했을 텐데.”

서장은 후회스러웠다.

이 남자가 47번 구역에서 세력을 넓히는 모습에 불안감을 느껴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뭔가 자료를 수집하려 하자마자 들켜버리다니.

우드득.

“끄아아악!”

카인의 손아귀가 서장의 어깨를 붙잡았다.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서장이 몸을 비틀었다.

“자, 잘못! 자, 자, 잘못했습니다!”

염동마법이 풀리며 차량은 조용히 바닥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기사는 핸들에 얼굴을 파묻고 덜덜 떨고 있을 뿐, 출발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내 사진을 찍어 무슨 용도로 쓰려 했지.”

카인은 고요한 눈빛으로 서장을 내려다보았다.

어떻게든 팔을 떼어 내려 하고 있지만, 일반인이 마법으로 강화된 근력을 어찌할 수는 없었다.

“위, 위쪽에 보고를, 보고를 올리려 했소. 끄윽!”

생각보다 멍청한 인간이었다.

파르테르와의 뒷거래를 녹음한 테이프. 상대가 자신의 약점을 쥐고 있는 걸 알면서도 이런 짓을 벌이다니.

‘위쪽에 보고를 올린다라.’

과거라면 모를까 지금은 상관없었다.

경찰이 파악할 수 있는 건 슈프림 시큐리티의 대표로서 여러 분야에 발을 걸친 사업가 ‘에반’의 모습밖에 없을 테니까.

우드득!

“끄, 끅! 제, 제발 놓아 주시오. 다, 다시는 다른 마음을 머, 먹지 않겠소!”

서장의 어깨가 계속 내려앉았다.

47번 구역 내에서 기반이 갖춰졌기에 이제는 서장을 깔끔히 묻어 버리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았다.

다만, 그러지 않는 것은 새로 부임할 서장과 다시 관계를 구축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언젠가 이용 가치가 다시 생겨날지도 모르니.’

카인은 블루서펜트 보스의 다음 움직임에 대해서 생각했다.

라이카가 죽었다는 사실은 예감하고 있을 것이다. 제이나에게 연락이 끊겼을 테니.

적이 라이카의 구역을 흡수하기 위해 전진해 오리라는 사실 또한 예측할 것이다.

‘그가 직접 나선다면.’

그건 위험한 일이다.

이미 오래전 회로레벨 4를 넘어 홀로 능히 군대에 맞먹는 인물이니까.

‘가능성은 존재한다. 하지만 극히 낮다.’

과거와 달리 보스는 지금 잃을 것이 많다. 외부에 쉽게 모습을 노출 시키려 하지 않을 것이다.

블루서펜트라는 범죄 조직을 관리하면서도, 접점을 크게 만들어 두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이다.

만일의 상황이 발생했을 때 꼬리를 잘라내고 사라지기 위해서.

‘쐐기를 박는 것이 낫겠지. 섣불리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

카인은 서장의 어깨에서 손을 떼었다. 서장에게 이용 가치가 생길 때가 바로 지금일 듯했다.

“미, 미안하오. 당신에 대해 모, 모은 자료는 오늘 찍었던 사, 사진 외엔 없소. 다시는 이런….”

카인은 바닥에 떨어진 파편 사이에서 필름 통을 주워 서장에게 건넸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상부에 보고를 올려라. 원래 네가 하려던 대로.”

“보, 보고 말이오?”

카인은 서장의 셔츠 앞주머니에서 수첩과 펜을 꺼내 보고를 올려야 할 내용을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서장은 당황했다.

상대의 돌발적인 행동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확실한 건 불안감이 계속 증폭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족들을 모두 34번 구역으로 이사를 보냈더군. 벽 너머로 입국시키기엔 여력이 되지 않았나?”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히 진행했던 일을 어떻게 파악하고 있는 걸까.

눈물이 찔끔 맺혔다. 손아귀로 목을 졸라 오는 기분에 숨이 턱 막혔다.

카인은 서장의 앞주머니에 수첩과 펜을 돌려놓았다.

“그리고 이렇게 전하는 걸 잊지 말아라.”

서장의 귓가에 얼굴을 바짝 붙이고 속삭였다.

“바, 방금 뭐라고 했소?”

그 말을 들은 순간 서장은 눈을 크게 뜨고 외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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