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15화 (115/227)

#115. 큐어올 (1)

“대표님. 6분대 분대장 마르코입니다. 지시하신 대로 차량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언제든 출발 가능합니다.”

러스트우드의 서쪽 외곽.

뒤쪽에 컨테이너가 탑재된 수송 차량 세 대가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이틀간 한자리에 있느라 몸이 근질거렸겠군.”

“아닙니다. 지시만 내리셨다면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대기할 수 있었을 겁니다.”

“고생했다.”

탁탁.

카인이 치하의 의미로 어깨를 두드리자 그의 얼굴에 뿌듯한 감정이 가볍게 묻어 나왔다.

“그럼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차량 주변으로 돌아갔다.

카인의 옆에 있던 실버팽이 실소를 흘리며 말했다.

“애초에 내가 제안을 거절할 가능성은 생각지도 않았나 보군. 무슨 수를 쓰든 제안을 수락하게끔 만들 자신이 있었거나.”

“준비성이 철저하다고 해 두지. 그보다 정말 잔류 인원을 두지 않아도 괜찮겠나?”

“괜찮다. 더 이상 묘목을 기를 생각은 없다. 생명수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던 것을, 과거에 집착해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이었지.”

실버팽은 몸을 돌려 도열해 있는 늑대 수인들 쪽을 바라보았다.

“잿빛늑대는 부상자를 포함해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 47번 구역으로 향한다.”

그 말에 이견은 없었다.

오랜 기간 따라왔던 우두머리기에 그의 선택을 존중하고, 믿고 함께할 뿐이었다.

대원들의 안내에 따라 줄을 지어 컨테이너 안쪽에 마련된 좌석에 탑승했다.

“도착하고 곧바로 라이카와의 전쟁이 벌어지진 않을 거다. 그에 앞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고, 내 지시에 따라 다른 일을 해야 할 수도 있다.”

“…알고 있다. 라이카의 목숨을 확실하게 끊고 생명수를 되찾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그리고 대외적으로는 나와 잿빛늑대 사이에 접점은 없는 것으로 처리될 거다. 음지의 조직과 관련이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 나로서도 양지에서 활동하는 데 제약이 걸릴 수 있으니. 접선할 때는 내 진짜 얼굴이 아닌 다른 얼굴을 사용하겠다.”

마르코를 비롯한 대원들이 슈프림 시큐리티의 로고가 새겨진 전투복이 아닌 사복 차림을 하고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이동은 은밀히 이루어질 것이나, 혹시라도 소문이 나서 좋을 것은 없기에.

“이해했다.”

“이해가 빨라서 좋군. 그럼 출발하지.”

* * *

47번 구역에 도착한 나는 ‘잿빛늑대’가 탑승한 차들을 38번 거리로 보낸 뒤 도시 중앙으로 향했다.

얼굴을 에반의 것으로 바꾼 뒤, 슈프림 시큐리티 본사 건물로 돌아와 밀시안의 보고를 받았다.

“지시하신 대로 채용 공고를 내어 운용 가능한 분대의 수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습니다. 물론 신원이 확실한 자들만 선별해 뽑고 있으며, 훈련이 끝나는 대로 실전 투입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귀로는 보고를 들으며, 눈으로는 그가 건넨 서류들을 빠르게 훑었다.

그 밖의 시설 운영에 관한 것들로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과연 여러 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풍부한 이답게 안정적인 일 처리였다.

“88번 거리, 건물을 안내할 직원들은 대기시켜 놓았나?”

“예. 미리 가 손님들을 맞이할 준비를 마쳐 놓도록 했습니다.”

수인들의 거처는 슬럼 외곽에 있는 고층 아파트였다.

연식이 오래되어 외관은 낡았으나, 내부는 한 차례 정비를 마쳐 신식 주거 시설과 다름없는 상태였다.

「후미진 곳에 있다면 오히려 좋다. 나와 부하들 모두 용병 생활을 오래 해서 도시에 대한 호기심도 그리 크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 눈에 띄지 않는 걸 선호하니까.」

인근 주민들과 마주칠 것이긴 하나, 잿빛늑대 모두 높은 지성을 갖춘 개체들이었기에 사고가 일어날 걱정은 없었다.

“그리고 미스릴 원석은 두 개까지 확보해 놓았습니다.”

“잘했다. 조만간 62번 구역의 대장간으로 가 네가 사용할 검을 제작하도록 하지.”

“가, 감사합니다.”

“전에도 한 번 꺼낸 적 있는 이야기다. 뭘 그리 동요하지.”

밀시안은 잠시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솔직히 말해 현실감이 들지 않습니다. 마나유저라면 누구나 미스릴로 만든 무기를 꿈꾸니까요. 그것도 저라는 개인에 맞춘 전용 무구라니….”

나는 픽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만큼 내가 시키는 일이 많아질 거란 얘기다.”

“좋습니다. 뭐랄까, 카인 님에게 정말 인정받은 것 같아 조금 감격스러운 기분입니다.”

몇 가지 지시를 더 받은 뒤, 밀시안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집무실 밖으로 사라졌다.

서류를 마저 검토하며, 나는 생각했다.

‘결국 효율성의 문제지.’

회로레벨이 오르고 직접 마법을 사용하는 부담이 준 뒤로는 마탄의 효율이 전보다 감소한 상태였다.

탄환에 각인할 수 있는 마법 종류에는 한계가 있고, 다수의 적을 상대할 때는 범위가 큰 마법을 직접 시전하는 것이 효율적.

일인 살상용으론 이미 리볼버 한 정이 있기에, 더 이상의 무기는 필요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믿을만한 이에게 무기를 주는 것이 전력의 상승폭에 있어서 효율적이었다.

나는 소매를 걷어 손목시계의 시간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오후 12시.

일정대로라면 마탑의 견학단이 오전에 수도에 도착하고, 에스텔이 연락을 취해 올 시간이었다.

아래층에 마련된 통신실로 가 기다리자 얼마 지나지 않아 통신기기의 단자에 불이 들어왔다.

버튼을 누르자, 에스텔의 얼굴과 그녀가 있는 방 안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이에요. 거의 사흘만인가요?」

“그렇지. 수도에는 잘 도착했나?”

「그럼요. 오전에 도착해서 마탑 주위에 숙소를 잡았어요.」

이번에 그녀가 몰입한 역할은 첩보원인 듯 보였다.

새카만 선글라스에, 마찬가지로 검은 롱코트를 걸친 것을 보면.

“가는 동안 별다른 특이 사항은 없었나?”

「마탑 교수가 다섯이나 붙어 있는 무리를 누가 건드리겠어요. 별일 없었어요. 벽 안쪽에 들어온 이후로는 평화로움 그 자체였고요. 곳곳에 경찰이 배치되지 않은 곳이 없으니까요.」

이후 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며 질문을 던지고, 다음 지시를 내렸다.

「계속 지켜볼게요. 그 ‘예언자’라는 자가 맹약을 지키기 위해 엘렌 교수에게 분명 다시 접근해 올 테니까요.」

“부탁하지.”

이후 통신을 종료했다.

예언자의 접근.

100퍼센트 단정할 수는 없었다.

녀석이 엘렌 교수에게 약속한 정보는 바마가 현재 살고 있는 구역의 대략적인 위치였다.

굳이 만나서 구두로 정보를 전달할 필요 없이, 서신 같은 것을 보내도 될 터였다.

‘서신을 받아 여는 순간 맹약은 해제되겠지. 어쨌든 그녀는 라크센의 죽음에 기여를 했고, 약속한 정보 역시 전달되었으니.’

모습을 직접 드러내진 않을 수 있지만, 맹약을 이행하는 과정에선 흔적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통신을 종료하고 밖으로 나갔을 때, 직원 하나가 신문 뭉치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말씀하신 대로 자리를 비우신 동안 주변 구역에서 발행되었던 모든 종류의 신문을 모아 왔습니다.”

집무실로 돌아가 모든 기사를 빠짐없이 훑었다.

내가 특히 눈여겨본 것은 ‘헥사메디컬’에 관한 기사들이었다.

─신약 ‘큐어올’ 대량생산체제 착수. 내년 하반기부터 시제품 판매 시작 가능할 것으로 보여.

─사업 발표회 임박. 연일 치솟고 있는 주가. 선발 주자들을 제치고 업계 1위로 올라서나.

사업 발표회.

날짜는 정확히 열흘 뒤였다.

삐빅-.

그때 책상 위의 스피커에 불이 들어왔고, 버튼을 누르자 1층 데스크 직원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님이 방문하셨습니다. 대표님을 뵙기로 했다고요.

“올려보내라.”

─예? 그래도 신분 확인을….

“괜찮다.”

오늘 예정된 방문객은 하나.

본래 약속은 2시간 뒤이나, 그보다 일찍 도착한 모양이었다.

‘구미가 당길 수밖에 없는 제안이겠지.’

러스트우드로 떠나기 전, 지금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오고 있을 그녀에게 통신으로 제안 하나를 보냈던 상태였다.

「함께 판을 한 번 짜 보지.」

대략적인 계획만을 설명하고, 오늘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되어 있었다.

곧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나타났다.

검은 정장 바지.

흰 티 위에 걸친 자켓.

목선 아래까지 흘러내린 붉은 머리.

“오랜만이에요. 에반 님?”

피에타는 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활짝 웃었다.

“마지막으로 보았던 게 3달 전이었던 것 같군.”

“맞아요. 그쯤 되었죠?”

그녀는 테이블 위에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는 집무실을 둘러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

“집무실이 엄청 고급스럽네요. 못 뵌 사이에 신분이 또 바뀌셨어요? 슈프림 시큐리티 대표님?”

“전쟁의 전리품 정도라고 할 수 있겠지.”

“맞아요. 엄청 큰 전쟁을 치르셨더라고요. 소문이 들리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그녀가 책상으로 다가가 명패를 만지작거렸다.

“슈프림 시큐리티 대표, 에반. 잘못되었네요. 에반이 아니라 카인이라는 이름이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눈치를 챘나 보군.”

“이런저런 상황을 종합해 보면 바로 답이 나오는 문제죠. ‘블루서펜트의 전 간부 카인이 나타났다’는 직접적인 소문이 돌기도 했고요.”

내 진짜 신분을 알아차렸다 한들, 그녀가 정보를 흘리고 다닐 일은 없었다.

내게 품은 인간적인 호의 이전에, 관계를 깨는 것보단 유지하는 쪽이 더 이득이 될 것임을 사업가로서 잘 인지하고 있을 터였다.

“범죄자와 일을 하는 것이 꺼려지나?”

“아뇨. 그랬으면 오늘 여기에 오지도 않았겠죠. 과거 무슨 일을 하셨든 신경 안 써요. 에반 님 덕에 회장 자리에 올랐고, 바마와 연결해 주신 덕에 ‘벽 안쪽’ 사업의 영업 이익도 대폭 증가했고요.”

그녀는 싱긋 웃고는 테이블 앞 소파에 앉았다.

“양지에서 활동하시는 분은 아닐 거라 예상하기는 했었죠. 블루서펜트 같은 큰 조직의 전 간부일 거라고까진 생각하지 못했지만요.”

그녀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이름은 계속 에반 님이라고 부를게요. 카인 님의 진짜 신분을 알 사람은 다 알겠지만, 굳이 정보를 흘리고 다닐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하지.”

딸깍.

“그럼 이제 전에 말씀하셨던 사업 얘기를 할까요?”

그녀는 가방 안에 있던 서류뭉치를 꺼내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다.

양이 꽤 되어 분류에 시간이 걸릴 것 같았기에, 나는 염동을 사용했다.

촤르륵-

검은 마나에 감긴 서류들이 새처럼 날아와 내 주변 허공을 오와 열을 맞추어 가득 메웠다.

빠르게 눈으로 훑으며 계획에 쓸모없을 것 같은 자료는 바닥에 떨구고, 필요한 것만을 추려 나갔다.

“그편이 보기 편하겠네요. 늘 느끼지만 마법은 볼 때마다 놀라게 돼요.”

그녀는 옆으로 다가와 내가 추린 서류들을 살폈다.

“헥사메디컬이 개발한 신약이 실패작이라고 하셨죠.”

“그래. 몸에 새겨진 마병의 문양을 흐릿하게 만들지만 그건 눈속임일 뿐이지. 5년 이상 장기적으로 복용해야 효과가 있다는 말도 한탕 챙겨 사라질 시간을 벌기 위한 수작이다.”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들이 없던 건 아니에요. 설립된 지 채 1년도 안 된 신생 기업이 마병의 치료제를 개발했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요?”

“연구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것을 밝히기 위해 경쟁 업체들이 뒤를 캐고 다녔겠지.”

“맞아요. 별 소득은 없었지만요. 심증은 있는데, 식약청의 승인을 받아서 아무 말 못 하고 있는 상황이죠. 모두가 벼르고 있어요. 사업 발표회 때 어떻게든 빈틈을 찾으려고요.”

추린 서류 한 뭉치가 내 손에 날아들었다.

헥사메디컬이 40번대 구역 일대에 소유하고 있는 농장과 연일 치솟는 주가 등락표에 관한 자료였다.

펄럭-

이어서 염동으로 커튼을 양옆으로 펼쳤다.

방 안에 일순간 빛이 들어오고, 통유리로 된 벽 너머 47번 구역의 풍경이 나타났다.

“신규 투자자들이 유치될 수 있는 기회이니 헥사메디컬도 만반의 준비를 갖춰 앞으로의 계획을 발표할 거다. 약용 작물을 재배할 토지는 얼마나 확보했는지, 신약의 연간 생산량과 가격은 어떻게 될지.”

나는 곳곳에 눈에 띄는 경작지를 보며 말했다.

안쪽엔 고용인들이 밭 사이를 바삐 돌아다니고, 높게 둘러쳐진 외벽 위엔 슈프림 스큐리티의 대원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앞으로의 계획을 위해서는 농지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

설정상 마병은 일반적인 방법으론 치료할 수 없다.

하지만 토양의 정기 부족으로 인한 다른 질병들은, 신약 개발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다.

실버팽의 석화증을 치료함은 물론, 신약을 발표해 판매를 개시한다면 추가적인 자금원을 확보하는 셈이다.

‘무력으로 점거하는 것은 가장 최후에 택해야 할 수.’

무력 점거는 역풍이 불고 만다.

현재 헥사메디컬이 가진 대외적인 이미지는 마병을 앓는 이들의 ‘구원자’이니.

나 역시 제약 회사를 만들 생각이니, 농지 확보는 합법적 과정에서 이루어져야 했다.

“신약이 실패작이라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사업 발표회 때 그 사실을 터트리는 것이 헥사메디컬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수 있겠지.”

“네. 그리고 에반 님은 그 폭탄을 확실히 준비할 수 있다고 하셨고요.”

“물론이다.”

마병의 치료제와 관련된 에피소드.

그와 관련된 설정은 이미 내 머릿속에 정리되어 있었다.

중요 인물과 극비 자료의 위치 같은 것 하나하나 모두.

나는 창가에서 등을 돌려 피에타를 보며 말했다.

“판을 한 번 짜 보지. 영악한 장사치들의 돈을 한꺼번에 집어삼킬 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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