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러스트우드 (5)
눈앞에 치솟고 있는 거대한 불기둥을 보며, 실버팽은 생각했다.
대체 무얼까.
온몸을 옥죄는 이 감각은.
두려움? 공포? 전율?
언젠가 이와 같은 감정을 마주한 적이 있다.
과거 용병으로 활동하던 당시.
차를 타고 이동 중 마주했던 허리케인.
원소의 밀도가 높은 황무지에선 대기 중의 원소 충돌이 잦아 비정상적인 자연 현상이 종종 일어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별 것 아닐 거라 생각했다.
직접 마주치기 전까지는.
회색빛으로 뿌옇게 물든 하늘.
닿는 모든 대상을 찢어발길 것 같은 바람의 덩어리.
수천의 수인이 동시에 내지르는 날카로운 비명 같은 바람 소리.
소름이 온몸을 내달렸다.
멀리 지나는 허리케인을 보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느꼈다.
자신은 그저 자연이 빚어낸 일개 피조물일 뿐이며, 자연의 거대한 힘 앞에서는 감히 항거할 수 없음을.
지금이 그때와 같은 기분이었다.
다른 게 있다면 지금 눈앞의 거대한 불기둥에선 지독한 적의가 느껴진다는 것.
그 적의가, 불기둥의 주인이 자연이 아닌 인간임을 알려 주고 있었다.
‘어떻게 한낱 인간 따위가….’
과거 용병으로 활동하며 수많은 인간을 만났다.
때론 동료로서. 때론 적으로서.
자신이 느낀 인간은 개개인으로서는 나약하기 짝이 없는 존재였다.
철을 가르는 손톱을 가지고 있지도, 쉼 없이 달리는 다리 근육을 가지고 있지도 않았다.
더러 마나를 다루는 이들이 있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마법사란 존재도 적지 않게 보아 왔지만 모두 알량한 재주 정도를 부린다 생각했다.
하지만 눈앞의 현상은 그런 재주 따위로 치부했던 것과는 궤가 다르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신….’
자연 현상을 창조해 낼 수 있는 이라면, 그는 신에 가까운 존재이지 않은가 하고.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둥의 범위는 지금 자신이 서 있는 곳 바로 앞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지독한 열기.
혹시나 화염에 휘말릴까 거리를 더욱 벌리려 했지만, 몸이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것은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위를 둘러보자, 범위 밖에서 전투 중이던 이들도 싸움을 멈추고 공포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콰과과과─!
영겁과 같은 시간처럼 느껴졌다.
하늘에 닿았던 불기둥이 윗부분부터 시작해 완전히 사그라지고, 붉게 물들었던 세상은 원래의 빛을 되찾았다.
“…….”
남은 자리엔 아무것도 없었다.
티르혼도, 함께 휘말렸던 녀석의 부하들도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완전한 무.
그저 검게 그을린 대지만이 조금 전 벌어졌던 상황이 꿈이 아닌 현실임을 증명하고 있을 뿐이었다.
“언제까지 그렇게 멍청하게 서 있을 셈인가.”
모두가 어떤 움직임도 취하지 못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들려온 목소리가 실버팽의 정신을 일깨웠다.
차에서 내린 카인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양 멀쩡한 옷차림으로 불기둥이 솟구쳤던 자리를 가로질러 다가오고 있었다.
아우우─
실버팽이 울부짖자 늑대 수인들이 한 차례 흠칫 몸을 떨었다.
적은 이미 우두머리를 잃고 전의를 상실했기에, 뒤에 이어진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 * *
바람이 불었다.
지고 있는 노을 아래, 선선히 식어 내린 바람은 수북이 쌓인 수인들의 시체 사이를 지나며 혈향을 한껏 머금었다.
휘오오─
그리고 한 남자의 팔에 부딪혀 비산하듯 부서졌다.
남자, 카인은 자신 옆에 서 있는 은빛 털의 늑대 수인에게 말했다.
“수인은 인간보다 후각이 훨씬 예민할 텐데. 썩 즐겁진 않겠군.”
“그리 신경 쓰이진 않는다. 평생에 가깝게 맡아온 게 피 냄새니까. 둔감해졌다는 말이 옳겠어.”
실버팽은 생각에 잠긴 눈동자로 부하들을 바라보았다.
몸 상태가 괜찮은 이들이 시체와 부상자를 수습하고 있었다.
더러 이쪽을 힐끔 쳐다보다 카인과 눈을 마주치고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
그것이 불을 다루는 이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된 감정이란 걸 알고 있었다.
숲. 터전을 집어삼키는 것은 불.
유전자에 각인된 원초적인 두려움은 어쩔 수 없을 테니.
그때 부하 중 하나가 다가와 보고했다. 마찬가지로 쭈뼛쭈뼛 카인의 눈치를 보았다.
“사망자는 쉰둘, 부상자는 예순셋입니다.”
“…….”
전쟁이 벌어진 시간은 채 1시간도 되지 않았지만, 사상자는 본래 인원의 절반을 훌쩍 넘었다.
비록 묘목은 지켜 냈을지라도, 오랜 시간 함께 해 온 이들의 주검이 싸늘하게 식어 있었다.
순간 지독한 현실감이 밀려들었다.
오랜 잠에서 깨어난 기분이었다.
“착잡해 보이는군.”
카인의 물음.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실버팽이 특유의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싸웠지?”
“네 신념을 위해 싸웠다. 결과는 눈앞에 보이는 대로지만.”
“도움을 주겠다는 너의 제안을 처음부터 받아들였다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는가?”
답을 이미 알고 있었기에, 질문보다는 스스로 되뇌는 자학에 가까운 말이었다.
“전쟁의 구도를 그리고 판을 짰을 거다. 적어도 사망자가 지금처럼 많이 발생하진 않았겠지. 사실 그대로 말하자면.”
전장 한쪽에선 투항한 적을 밧줄로 묶고 분류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실버팽이 한참 뒤에 말했다.
“카인, 내 꿈이 허무맹랑한 공상이라 생각되나?”
“숲을 재건하겠다는 꿈 말인가?”
“그래. 대수림이 있던 자리에 숲을 재건하고, 종에 상관없이 모든 수인이 안락하게 지낼 수 있는 터전을 만들겠다는 꿈.”
카인은 비웃지 않았다.
이 세계의 주요 인물들은 모두 머릿속에 저마다의 이상향을 그리고 살아가기에.
“멋진 목표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루기 요원한 꿈이지. 그 꿈이 존중받기에는, 세상은 온갖 악의와 무례한 것들로 가득하니까.”
“…….”
“때문에 세상은 신념만으론 살아갈 수 없다.”
“무슨 말이지.”
카인이 숨을 고른 뒤, 나직하고도 뼈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현실과 타협해라. 신념을 곧이곧대로 믿고 나가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장 네 주변에 있는 이들부터 챙겨라. 모든 수인을 위한다는 철없는 생각은 접어 둬라. 악의에는 악의로, 무례함에는 무례함으로 맞서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또한, 꼭 과거의 것을 고수할 필요는 없다.”
“…….”
실버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달궈진 바늘이 머릿속을 깊게 찌른 기분.
이제껏 자신이 보지 못했던 것이, 또 놓쳐 왔던 것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단기적인 목표를 먼저 이루고, 더 큰 꿈은 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나를 따라와라.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게 해 줄 테니.”
카인이 손을 내밀었다.
단기적인 목표는 오랫동안 터전으로 삼아 온 이곳을 떠나 라이카에게 생명수를 되찾는 일이 될 터였다.
여러 상념 중,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남자가 목표를 향한 길을 열어 줄 인도자가 되어 줄지도 모르겠다고.
물끄러미 카인을 바라보았지만 갈등은 그리 길지 않았다.
실버팽은 팔을 뻗어 카인의 손을 붙잡았다.
그때였다.
뒤편 언덕 위에서 누군가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다른 곳에 볼일이 있어 늦었더니 이미 개판이 되어 있군.”
카인과 실버팽의 고개가 돌아갔다.
언덕 위엔 2미터가 넘는 거대한 체구의 사자 수인이 두꺼운 담배를 입에 물고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탕!
재빠르게 총을 꺼낸 카인이 방아쇠를 당겼고, 사자 수인 역시 그에 못지않은 속도로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손아귀를 움켜쥐었고, 무언가 붙잡히는 소리와 함께 손가락 사이에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는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입에서 하얀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보스의 말이 사실이었군. 정말 살아 있을 줄이야.”
“오랜만이군, 라이카. 너를 직접 보내다니 보스도 간부 공석을 채우는 일이 어지간히 급했나 보군.”
두 사람의 어조는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서로가 이 장소에 나타날 것을 알고 있기라도 했다는 듯이.
“마법을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것도 네 작품인가?”
라이카의 시선이 분지 중앙의 그을린 땅을 향했다.
“화염 계열의 마법이군. 부하들에게 통신이 끊겼는데, 저 정도 규모의 마법에 휩쓸렸다면 재조차 남기지 못하고 사라졌겠어.”
라이카의 시선이 다시 카인을 향했다.
“평소에도 위험한 놈이라 생각은 했지. 그래서 교도소에 집어넣었던 건데 완전히 괴물이 되어서 돌아왔어. 비결이 뭐지?”
“라이카!”
그때 실버팽이 안대를 벗으며 길게 흉터가 나 있는 왼쪽 눈을 드러내며 외쳤다.
“네가 감히 무슨 염치로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지!”
평소의 차분하던 그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극도로 흥분한 모습이었다.
“누군가 했더니 익숙한 개 한 마리가 있었군.”
“죽여 버리겠다!”
실버팽이 자리를 박차고 뛰었다.
은빛 신형이 언덕 위를 향했고, 라이카는 피우던 담배를 버리고 그에 맞서 격전을 벌였다.
그 모습을 보며 카인은 생각했다.
‘당장 녀석을 제거할 수는 없겠지. 내 마나도 많이 소진되었고, 늑대 무리도 모두 지쳐 있는 상태이니.’
라이카의 출현.
그리고 과거 두 숙적의 조우.
가능성을 열어 두었던 상황 중 하나기에 딱히 당황스럽진 않았다.
라이카의 제거 역시, 애초에 목표의 달성 자체를 장기적으로 보고 있었기에 그리 아쉽지도 않았다.
‘애초에 녀석이 홀로 다니는 것은 이번뿐만이 아닐 테니.’
텅!
그때 가죽이 터지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실버팽이 언덕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변한 게 하나도 없군. 그렇게 과거에 안주해 있으니 소중한 걸 빼앗기는 거다.”
“감히, 감히!”
카인이 손을 뻗자 다시 달려나가려던 실버팽이 흠칫했다.
“아직 복수의 때가 아니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더더욱. 오른쪽 다리 근육이 돌처럼 굳은 느낌이 들지 않나?”
“그걸 어떻게….”
땅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생명체는 토양의 정기를 받아 태어난다.
정기가 부족한 땅에서 태어난 이는, 필연적으로 정상의 경우 겪지 않을 여러 병에 노출되게 된다.
가장 대표적인 경우가 마병.
그런 극악의 경우 외에도 육체를 좀먹는 질병이 적지 않았다.
가령 실버팽이 앓고 있는, 육체가 서서히 굳어 가는 석화증이 그랬다.
‘일단은 47번 구역으로 돌아가 정비한다.’
‘특정 방법’을 써야 하는 마병과 달리 다른 질병은 신약의 개발만으로 충분히 치유가 가능했다.
시간은 다소 걸리겠지만, 실버팽의 병을 치유한다면 높은 수준의 전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라이카와의 전쟁 외에도, 온갖 음지에도 투입되어 줄 든든한 전력이 말이다.
슈프림 시큐리티라는 집단이 존재하나, 그들은 양지에서 운용할 병력이었다.
슈프림 시큐리티의 대표라는 직함으로 활동할 ‘벽 안쪽’에선 대외적인 이미지가 중요하니까.
어느새 언덕 아래로 몰려든 늑대 수인들을 보며 라이카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집 잃은 개들이 한두 마리가 아니야. 내가 도륙내기 편하도록 이렇게 한곳에 모여 있는 건가?”
“그 오만함은 여전하군. 보좌 하나 없이 바깥을 돌아다니면서 그런 소리를 뱉나?”
라이카가 코웃음을 쳤다.
“보좌라. 그런 건 나약한 이들이나 달고 다니는 것이지. 앞선 녀석들이야 시간 여유가 없어 보내 놓기는 했지만, 살아 있어 봤자 거치적거리기만 했을 거다.”
끝도 모를 오만함과 영악함.
그리고 타인에 대한 불신.
그것이 녀석을 대표하는 단어였다.
홀로, 혹은 최소한의 수행원만을 대동하고, 또 실력 있는 이를 측근으로 두지 않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스스로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
그리고 자신의 등 뒤를 찌를 수 있는 건 적뿐 아니라 아군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에.
카인은 라이카의 시선이 찬찬히 전장을 훑는 것을 느꼈다.
전력을 분석하고 있는 것이다.
전투를 벌인다면 승산은 어떻게 되는지, 시간은 얼마나 소요되며, 또 자신은 얼마만큼의 피해를 입을지.
녀석은 오만한 동시에 영악했다.
배신자를 숙청하라는 보스의 지시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그것을 맹목적으로 따를 만큼 조직에 대한 충성도가 높지 않다.
‘녀석은 절대 불확실한 싸움을 걸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 ‘자신’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생각되는 싸움은 섣불리 걸지 않는다.
운신에 지장이 생기는 순간 자신의 구역에 있는 숲을 가꾸는 일과, 또 다른 생명수의 씨앗, 혹은 생명수 자체를 찾아다니는 일에도 문제가 생길 테니까.
“싸움을 건다면 받아 주지.”
예상대로, 녀석은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마음 같아선 그러고 싶지만 네 녀석이 또 무슨 함정을 파 두었을지 모르는 일이야. 카인, 네가 이곳에 있는 게 설마 우연이라고 말하지는 않겠지.”
라이카는 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고, 다시 연기를 뿜으며 말했다.
“내부에 첩자를 심었나? 아니면 예측? 길목마다 정보 길드의 끄나풀을 풀어놓았을 수도 있겠군. 47번 구역을 집어삼켜 돈을 좀 만졌을 테니까.”
“내게 대답해 줄 의무는 없는 것 같군.”
“과연 그러셔야지. 보스에게는 계속 반기를 들 생각인가?”
“멈출 생각은 없다. 조직 전체가 무너지기 전까지는.”
주변의 공기는 더 없이 경직되어 있었다.
그 속에서 오직 라이카와 카인만이 평온한 어투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마치 전체에서 분리되어 나온 일부 풍경처럼.
“독기 하나는 인정하지. 교도소를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모르지만, 돌아와 복수를 꿈꾸다니. 하지만 조언을 하자면, 보스를 적대하는 건 상당히 어리석은 일이라고.”
보스.
잠시의 정적 뒤, 카인이 말했다.
“나도 조언 하나 해 주지. 보스를 그리 믿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라이카는 웃음을 흘린 뒤 말했다.
“알고 있다.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지. 언젠가 보스 자리를 넘겨받을 테고.”
라이카는 담배를 모두 피운 뒤 언덕 반대편 방향으로 몸을 반쯤 돌렸다.
“오늘은 이만 물러나지. 하지만 곧 다시 부딪치게 될 거야. 이런 식으로 보스의 심기를 계속 거스르면, 전면전을 벌이라는 명령이 떨어지는 건 시간문제일 테니까.”
“그때 다시 보도록 하지.”
라이카의 모습이 언덕 아래로 천천히 사라지고, 그가 서 있던 자리엔 피다 만 담배만이 남았다.
곧 늑대 수인들의 긴장이 풀어지며 곳곳에서 신음이 새어 나왔다.
“…말려 줘서 고맙다.”
실버팽의 말의 카인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별말을. 상황이 정리되는 대로 바로 움직이지. 앞으로 많이 바빠질 거다.”
카인의 시선이 닿자, 늑대 수인들은 한 차례 몸을 움찔하고는 다시 전장을 수습하러 흩어졌다.
마치 카인 역시 자신들의 우두머리로 생각하는 것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던 카인은 멀리 대어둔 차량 쪽으로 실버팽과 함께 걸음을 옮겼다.
‘다음 목표는 헥사메디컬. 제르비아에게 돌릴 공을 만들고 신약을 개발할 시설을 확보한다.’
쉼 없이 움직여야 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이 계속해서.
차에 올라탄 카인은 다시 거칠게 액셀을 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