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러스트우드 (4)
“인간? 잠깐, 카인이라고….”
실버팽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읊조렸다.
“이름 정도는 들어 봤나?”
“라이카와 같은 블루서펜트의 간부…. 교도소에 붙잡혀 들어갔다고 들었는데.”
“간부는 과거형의 이야기지. 조직에게 버림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보다 정보가 느리군. 외부 활동을 끊은 지 한참 되었나? 그렇지 않았다면 47번 구역에 카인이 나타났다는 소문 정도는 들어 봤을 텐데.”
실버팽은 생각을 정리하는지 잠시 말이 없었다.
“네가 정말 카인이라고 치지. 나를 찾은 목적은 뭐지? 수인으로 위장까지 해 가면서?”
“나는 제안을 하러 왔다.”
“제안?”
“오늘 오전, 라이카의 부하들이 티르혼과 접촉했다. 간부 자리를 제안했고, 녀석은 수락했지.”
“보고는 받았다. 인간 여섯이 러스트우드의 서쪽을 통해 진입했다고.”
나는 호흡을 골랐다.
차디찬 밤공기가 가슴 안에 밀려들었다.
“이틀 뒤, 전쟁이 일어난다.”
나는 도청 장치의 녹음본을 실버팽의 손에 던졌다.
블루서펜트와 티르혼의 대화 내용을 듣는 그의 얼굴은 담담하기만 했다.
“전쟁은 벌어질 일이다. 다만 언제 일어나느냐의 문제였지.”
“막을 수 없지만 피할 수는 있지.”
나는 실버팽에게 분지에서 철수할 것을 제안했다.
티르혼이 원하는 것은 토지.
추격을 해 오진 않을 테니 대규모의 유혈 사태는 피할 수 있었다.
실버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땅을 빼앗긴다면 의미가 없다. 우리는 나무를 심어야 하니까.”
“실버팽, 네 목표 역시 대수림을 재건하는 것이겠지.”
“…라이카가 그런 것까지 이야기했나.”
나는 실버팽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 밖으로 가지. 러스트우드에 집착하지 않고 밖으로 눈을 돌리면 더 좋은 땅이 많다. 라이카를 죽이고 생명수를 되찾을 수 있도록 내가 돕겠다.”
그는 내가 뻗은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다시 시선을 맞추며 말했다.
“네 목적은 복수인가. 공동의 적이라는 거군. 미안하지만 난 러스트우드를 떠날 수 없다. 바깥에 더 좋은 땅이 있단 걸 알고 있지만, 숲을 만드는 것은 이곳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과거 대수림이 있던 자리라는 전설 따위를 믿는 건가?”
“전설이 아니다. 사실이다. 선조로부터 이어진 내 피가 그렇게 말하고 있다.”
“전력 차가 크다는 건 알고 있겠지. 거기에 사방이 트인 분지는 소수가 다수를 상대하기 좋은 조건이 아니다. 최소한 주둔지를 옮겨 시가지에서 전투를 벌이는 게 옳다.”
“주둔지는 옮기지 않는다. 주민들을 전쟁에 말려들게 할 생각은 없다.”
“…….”
더 이상 설득이 불가능할 것임을 직감했다.
올곧기 짝이 없고, 잔꾀 따윈 부리지 않으며, 길을 돌아가는 방법을 몰랐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그의 지성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여느 인간보다도 뛰어난 머리를 지닌 것이 실버팽이니까.
‘일종의 신념이겠지.’
비효율적이고 이루기 어렵단 걸 알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신념.
답답한 구석은 있지만 미워할 수는 없는 인물이었다.
어쨌든 세상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은 이런 이들이니.
“마음이 확고하군. 그럼 내가 이곳에서 벌어질 전쟁을 돕겠다.”
“수인의 일은 수인이 해결한다. 제안은 고맙지만 마음만 받겠다.”
융통성이 아쉬웠다.
이런 부류의 인물은 스스로와 약간만 타협하면 훨씬 더 뛰어난 능률을 보이기 마련이었다.
‘결국 라이카와의 갈등도 올곧음 때문이었지.’
만약 그를 동료로 포섭해, 사고방식에 약간의 변화만 줄 수 있다면 큰 전력이 될 수 있었다.
“어쩔 수 없군. 혹시라도 마음이 바뀌면 연락하도록. 나는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곳에 머무를 생각이니까.”
나는 현재 내가 머무는 건물의 위치를 적은 종이를 그에게 건넸다.
“카인, 네가 참여한다 해도 큰 도움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수인의 싸움은 인간의 것과는 다르니까. 네가 부하를 얼마나 데려왔더라도.”
나는 픽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얼굴을 다시 흑표범의 것으로 바꾼 뒤, 그와 눈빛으로 인사 후 천막을 나섰다.
“비키지.”
내가 다가가자 아직 밖에 몰려 있던 수인들이 반으로 갈라졌다.
그 사이를 지나 나는 실버팽의 주둔지를 빠져나갔다.
그리고 생각했다.
어차피 계획에 큰 이변은 없다고.
의견을 쉽게 꺾지 않는 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이니까.
* * *
이틀 뒤 한낮.
나는 언덕의 꼭대기에 올라와 있었다.
“…….”
시선은 분지를 지나 반대편 언덕 꼭대기에 닿았다.
어마어마한 수의, 각양각색의 수인들이 흉흉한 기세로 분지를 향해 내려가고 있었다.
망원경을 사용해 시야를 확대하자 수인들이 주머니를 주고받으며 무언가를 입에 털어 넣는 것이 보였다.
‘각성제군.’
렌즈의 방향을 분지 중앙으로 돌렸다.
실버팽이 이끄는 늑대 수인들은 다가오는 적을 향해 송곳니를 드러내고 있을 뿐 별다른 도핑은 하지 않았다.
‘각성제는 아무리 약한 것도 후유증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지.’
약효를 등에 업고 육체를 과도하게 사용하다 불구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티르혼과 실버팽.
부하를 대하는 두 지도자의 태도 차이가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양측의 거리는 점차 좁혀져 갔다.
선선히 불어오는 가을바람도, 수백에 달하는 수인의 몸체가 뿜어내는 열기를 식히지는 못했다.
터질 것 같은 긴장감.
어느 순간, 신호를 주고받은 것처럼 양 진영은 서로를 향해 돌진했다.
구구구구─
대지가 울리고 고함과 비명이 분지를 가득 메웠다.
무기를 꼬나 쥔 녀석도 있었고, 본인의 손톱이나 이빨을 사용하는 녀석도 있었다.
할퀴고, 물어뜯고, 찢고, 베고.
피와 살이 튀기는 그곳에 복잡한 전술이나 전략 따위는 없었다.
그저 순수한 힘의 격돌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
망원경을 돌려 목표물을 찾았다.
티르혼의 거구는 어렵지 않게 눈에 띄었고, 전장 뒤로 접근해 오고 있는 라이카의 부하들 역시 발견할 수 있었다.
‘마법사가 끼어 있었나.’
그중 하나의 손 위엔 사람 머리만 한 화염이 일렁이고 있었다.
늑대 수인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빠른 속도로 쏘아졌고, 굉음과 함께 폭발을 일으켰다.
“…….”
주변으로 튀는 살점의 양으로 보아, 그 한 방으로 죽은 늑대 수인은 적어도 셋 이상이었다.
어쩌면 그들은 전사로서의 명예로운 죽음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신념.
혹은 소중한 것을 지키다 죽었으니.
‘명예로운 죽음이라.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
나는 뒤편에 둔 차량에 다가가며 생각했다.
세상에 명예로운 죽음 따위는 없다.
명확한 결과를 내지 못한 죽음은 그저 개죽음일 뿐이다.
부아앙-!
차량에 올라타자 시야가 높아졌다.
시동을 걸고 거칠게 액셀을 밟아 전장으로 향했다.
차체의 흔들림이 고스란히 몸에 전해져, 몸의 긴장과 전투 감각이 일깨워지기 시작했다.
‘마법사부터 제거한다.’
전쟁에서 가장 큰 변수이니 방치해 두었다간 지속적인 피해가 나올 것이 분명했다.
전장에 가까워질수록 수인들의 모습이 점차 확대되었다.
발을 구르는 소리와 고함 역시 귀를 찌를 듯 커졌으며, 그에 맞춰 내 심장 역시 빠르게 뛰었다.
지척에 다다랐을 때, 나는 끌어올렸던 원소의 결합을 마쳐 차량 주위로 흩뿌렸다.
파지직!
전(電)계 원소를 위시한 확대와 유지, 반발의 보조 원소들.
주위로 거대한 전류 망이 형성되어 방어막처럼 차량을 감쌌고, 나는 그 상태 그대로 티르혼의 진영을 향해 액셀을 밟았다.
전류가 튀는 소리와 엔진 소리가 합쳐져 섬뜩한 굉음을 자아냈다.
몇 녀석들이 이쪽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피하기엔 늦은 상황이었다.
켕!
케갱!
큰 몸집의 수인들은 전류 망에 부딪혀 까맣게 몸이 타버린 채 바닥에 쓰러졌고, 몸집이 작은 수인들은 감전과 함께 멀리 튕겨 나갔다.
멈추지 않고 계속 액셀을 밟았다.
차량 유리창 너머, 당황한 얼굴을 한 라이카의 부하들이 보였다.
─마, 마법을 써!
마법사의 손에 들려 있던 화염구가 차량을 향해 날아들었다.
전류 망과 부딪쳐 큰 폭발이 일었으나, 차량까지 대미지가 들어오진 않았다.
더 높은 단으로 기어를 바꾸고 액셀을 밟아 뿌연 연기를 돌파했다.
─피, 피해라!
유리창 바로 앞, 라이카의 부하들이 나타났다.
호위로 붙어 있던 다섯은 양옆으로 몸을 날려 차량을 피했고, 마법사는 점멸을 사용했는지 순간 모습이 사라졌다.
‘남동 방향으로 2미터 반.’
마나의 움직임을 읽고, 생각과 동시 몸이 움직였다.
우로 꺾은 핸들과 액셀을 염동을 사용해 고정한 뒤, 곧바로 문을 열어 점멸을 사용했다.
“……!”
바로 눈앞에 마법사가 보였다.
단검을 역수로 꺼내 쥐어 상대의 목에 찔러 넣었다.
푸슉!
원격으로 조정되고 있던 차량이 타이밍에 맞춰 반원을 그리며 돌아왔다.
액셀에 가한 염동을 해제해 속도를 살짝 늦추는 동시에, 열린 문의 손잡이를 잡아채 다시 차량에 올라탔다.
탁.
문을 닫고, 다시 액셀을 밟았다.
─인간! 적이다! 인간!
어떻게든 차량을 멈추기 위해 수인들이 달라붙었지만 모두 전기 파리채에 부딪힌 벌레처럼 나가떨어질 뿐이었다.
전류 망에 소비되는 마나가 만만치 않았지만, 죽은 수인들에게서 빨려 들어오는 마나 덕에 유지에는 큰 무리가 없었다.
다음 목표는 호위로 붙어 있던 라이카의 부하들이었다.
‘산책을 나온 정도로 생각했겠지. 이미 이긴 전쟁이라 여겼을 테니.’
운전과 동시 마나를 일으켰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녀석들의 발치에 바람을 생성해 자세를 흐트러뜨리고, 그대로 차로 들이박았다.
쿵!
감전되어 숨이 끊기거나, 뼈가 부러져 즉사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끼이익!
핸들을 크게 돌리자 거대한 바퀴가 바닥과 마찰을 일으키며 뿌연 먼지를 피워 올렸다.
방향을 바꿔 반대 진영으로 액셀을 밟았다.
묘목이 심어진 중앙 부근에 적에게 포위당한 은빛 털의 늑대 수인이 보였다.
그리고 멀지 않은 거리에서 날뛰고 있는 티르혼 역시도.
“…….”
학살 그 자체였다.
늑대 수인들이 쉼 없이 달려들었으나, 녀석이 크게 휘두른 팔에 한방에 나가떨어졌다.
이후 움직인 발에 짓밟혀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그 자리에서 숨이 끊겼다.
나는 액셀을 밟아 실버팽 쪽으로 질주했다.
파직! 텅! 텅!
전류 망에 부딪힌 수인들이 떨어져 나가며 양옆 창문에 스쳤다.
‘부상을 입었나.’
한쪽 무릎을 꿇은 실버팽.
그를 향해 높이 뛰어오른 적이 창끝을 밑으로 하여 낙하하고 있었다.
한 손으론 핸들을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론 리볼버를 꺼내 앞 유리를 겨누고 한쪽 눈을 감았다.
탕!
균열과 함께, 탄은 창을 관통했다.
공기를 찢으며 날아가 창을 내리꽂던 녀석의 미간에 명중했다.
힘없이 추락한 시체와 창.
순간 주위 모든 수인의 시선이 이쪽에 쏠렸다.
“인간, 적이다!”
녀석들의 대응 속도보다 차량의 속도가 빨랐다.
텅! 텅!
실버팽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수인들을 모두 밀어 버렸다.
차량이 멈췄을 때, 주변은 온통 타버리거나 이상한 각도로 팔다리가 뒤틀린 시체로 가득했다.
문을 열고 말했다.
“아직도 내 도움이 필요 없나?”
실버팽의 얼굴은 멍했다.
“부하들도 없이 온 건가? 어떻게 혼자서 이 많은 수의 적을….”
그는 뒤편에서 들려오는 둔중한 발소리에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차 뒤편의 짐칸에 올라탔다.
그 타이밍에 맞춰, 나는 전류 망을 잠시 해제했다.
끼이이! 쿵!
차량이 아슬아슬하게 급발진을 했고, 바로 뒤편에 멀리서 달려온 티르혼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그때 그 냄새! 과연 인간이었군!”
티르혼의 몸체엔 다른 수인의 것으로 보이는 피와 살점으로 가득했다.
눈동자엔 핏줄이 불거져 있었는데, 녀석 역시 각성제를 복용한 것으로 보였다.
쿵! 쿵!
녀석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차를 쫓아 왔다.
적과 아군을 가릴 것 없이 발치에 깔아뭉개면서.
운전석과 짐칸 벽 사이에 난 구멍으로 실버팽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의 도움을…. 고맙다.”
“감사 인사는 싸움이 끝나고 받도록 하지.”
이내 뒤편에선 요란한 총소리가 들려왔다.
사이드 미러에 총탄에 나가떨어지는 수인들의 모습으로 보아, 짐칸에 부착되어 있던 기관포를 작동하고 있는 듯했다.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라.”
“…….”
사실 내가 걱정할 것은 없었다.
수인의 균형 감각은 인간의 상상 이상이었다.
끼이익!
차량을 급히 회전시켜 티르혼의 다리 옆을 지났다.
아슬아슬하게 주먹을 피해 내는 동시, 문을 열고 녀석의 다리를 향해 총을 쏘았다.
탕! 탕! 탕!
각기 다른 속성의 마법을 품은 탄환이 녀석의 두 다리에 꽂혔다.
빙결과 전격 마법은 무용지물이었고 그나마 화염 마법이 효과가 있었는지 녀석이 몸을 움찔 떨었다.
‘들어간 마나에 비해선 효과가 미약하지만.’
“쥐새끼 같은―!”
티르혼의 주먹이 다시 한번 차량 바로 뒤편 바닥에 내리꽂혔다.
단단하기 짝이 없는 대지는 그대로 움푹 패어 자국이 남았다.
그 사이, 늑대 수인 몇몇이 녀석에게 달려들어 가죽을 물어뜯었지만, 큰 피해는 주지 못하고 양손에 붙들려 허리가 으스러졌다.
잔뜩 흥분하여 뛰쳐나가려는 실버팽에게 말했다.
“멈춰라. 네 부하가 리더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꼴을 보기 싫다면.”
“…….”
다시 방향을 틀어 티르혼을 향해 달리며 짐칸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녀석에게 약점 같은 게 있나?”
“몇 년 전 전투에서 발등에 큰 부상을 입긴 했다.”
“발등. 좋다. 전쟁에서 이기고 싶나?”
“…전세가 크게 밀리고 있는 상황이 부끄럽지만, 당연하다.”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지. 지금부터 내 지시에 따를 수 있나?”
본래 녀석은 인간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일종의 신념.
하지만 눈앞에서 부하들이 죽어가는 상황에 지독한 현실감을 느꼈을 것이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대답이 돌아왔다.
“알겠다.”
“차에서 뛰어내려 전장에 합류해라. 부하들에게 지시해 최대한 각개 전투를 벌여라. 내가 신호를 주면 전장을 이탈해라. 티르혼에게서 최대한 멀리.”
“얼마나 멀리 떨어져야 하지?”
“10미터. 아니, 20미터 그 이상.”
“그렇게 하겠다.”
동시에 실버팽이 짐칸을 박차고 뛰어내렸다.
울음소리로 자신의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려, 전투가 최대한 여러 곳에서 일어나도록 유도했다.
덕분에 차량으로 달려드는 적의 숫자는 크게 줄어들었다.
전류 망을 거두자 빠른 속도로 줄어들던 마나가 멈췄다.
‘이 마나는 다른 곳에 사용한다.’
탕! 탕!
유성처럼 티르혼의 주위를 오가며 사격을 계속했다.
목표 지점은 모두 발등.
불길이 일어나며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녀석의 움직임이 굼떠졌다.
“잡히면 사지를 찢어 죽이겠다!”
녀석의 손아귀가 아슬아슬하게 스쳐, 간혹 차체가 흔들리기도 했다.
아랑곳하지 않고, 차 문을 열고 한쪽 손을 핸들을 잡은 자세로 바깥을 향해 몸을 기울였다.
우웅.
손바닥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차량이 달리는 궤적을 따라 바닥에 스몄다.
마치 기름을 흩뿌리듯이.
‘자잘한 대미지로는 녀석을 쓰러트릴 수 없다.’
일격에 큰 대미지를 주어야 했다.
감히 반격조차 하지 못할 정도의 대미지를.
마법의 위력을 늘리는 방법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이다.
촉매를 사용하거나.
마나를 쏟아 출력을 높이거나.
혹은 마나의 정제를 거치거나.
나는 현재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법을 동시에 택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나를 쏟아부은 뒤에 남은 적을 상대해야 할 것도 고려해야 한다.’
티르혼을 쓰러트린 후 마나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일격 범위에 티르혼의 부하들까지 포함하는 것.
때문에 나는 지금 그 복잡성 때문에 통상적으론 잘 사용되지 않는 방법을 추가로 택하고 있었다.
마법진.
특정 장소에 마나를 새긴다는 점에선 기본적으로 각인과 같다.
하지만 차이는 존재한다.
마법 구현에 필요한 원소가 서로 끊임없이 맞물리도록 마나를 새겨 나가는 방식.
결과적으로 완성되는, 마나가 그려내는 거대한 그림.
원소가 일으키는 하나의 연쇄 폭발.
마법의 위력을 보존하는 동시 범위를 대폭 늘릴 수 있는 기예.
“죽여 버리겠다!”
티르혼은 잔뜩 흥분해 바닥에 빛을 발하는 마나의 선을 눈치채지 못한 듯 보였다.
‘이제 되었다.’
마법진의 중심 부분을 완성하고, 바깥으로 질주하며 나는 크게 외쳤다.
“실버팽! 지금이다!”
아우우─
그의 하울링과 동시에 전투를 벌이던 늑대 수인들이 전장을 이탈하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적들은 어리둥절 멈춰 있거나, 혼란 속에 추격을 했다.
끼이익!
늑대 수인들이 마법진의 범위에서 모두 빠져나갔음을 확인했다.
나 역시 범위 끝에서 차를 돌려 마법진의 중심 방향을 보았다.
자신의 부하 사이를 헤치며, 피 칠갑을 한 채 달려오는 티르혼의 모습이 보였다.
“죽여 버리겠다!”
녀석이 지척에 다다랐을 때.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마법진을 이루는 선을 따라, 흑적색의 마나가 원소의 연쇄 충돌을 일으키며 질주했다.
마법진이 완성되고, 대지에선 지독한 열기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애석하게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군.”
녀석의 주먹이 내 얼굴을 내리치기 직전.
거대한 화마가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콰아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