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11화 (111/227)

#111. 러스트우드 (2)

총 1,000만 실링.

이곳의 직원들이 받는 연봉의 배는 될 금액이었다.

“이 정도로도 안 된다면 별수 없겠지.”

“아뇨! 아뇨! 안 된다고 누가 그랬습니까!”

나는 돈을 회수하기 위해 테이블 위로 뻗던 손을 멈칫했다.

“말이 그렇다는 거지요! 말이! 킬케라 삼 형제를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제가 받았던 의뢰는 아닙니다만 기록을 열람하면 다 나오죠!”

녀석은 조그마한 앞발로 지폐 다발을 가방에 부리나케 쓸어 담았다.

행여 내 마음이 바뀔세라 걱정하는 모양새였다.

금세 불룩해진 가방을 자기 이름이 쓰인 캐비닛에 끙끙 욱여넣고는 밖으로 나가는 문 앞에 섰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금방 오겠습니다!”

녀석이 돌아오기까지는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손에는 작은 파일철과 디스크 하나가 들려 있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이걸 보셔도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돈은 못 돌려드립니다!”

“알고 있다.”

1,000만 실링. 적은 돈은 아니나 현재 실시간으로 계속 불어나고 있는 나의 전체 자산을 고려하면 부담스러운 금액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앞으로의 행로를 결정지을 중요한 일에는 돈을 아낄 생각이 없었다.

녀석은 문에 귀에 대어 바깥에 다른 이가 없는지 확인하고 다시 문을 잠갔다.

그리고 테이블로 다가와 들고 있는 패드 옆면에 디스크를 삽입했다.

“대부분의 의뢰는 통신으로 수주 받습니다! 이 분도 그렇습니다! 선입금만 받으면 의뢰인의 신분이나 의뢰 내용은 상관없다는 방침이라 서요!”

우웅.

기계음과 함께 패드 위에 홀로그램이 출력되었다.

후드로 전신을 가리고 가면을 쓴 남자의 모습이었다.

그는 통신이 연결되고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죽이기를 원하는 이들이 있다. 숫자는 둘.」

남자와 의뢰소 직원간의 대화가 이어졌다.

암살 대상으로 예상했던 두 사람 지명되고, 이어 자세한 인적 사항과 견학 일정 등이 언급되었다.

「…일 처리는 최대한 확실하고 조용하게. 비용은 그쪽 계좌로 입금하지.」

남자치고는 미성이라 할 수 있는 목소리.

음색 자체는 변조되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내 머리는 자연스럽게 가능한 설정의 인물을 몇 떠올렸다.

황실의 제4황자 율리어스.

수도 지하 감옥의 마인 녹턴.

마탑의 증폭원소학 교수 다비테.

여타 몇 명의 조연들.

하나 음색이 변조되었어도 자연스레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들이 있다.

떨림과 강세, 어조와 같은 사소한 요소들.

나는 그것들 모두를 머릿속에 각인했다.

“확인은 이 정도면 되었다.”

파일 철의 서류도 영상의 내용을 수기로 기록해 둔 정도였다.

의뢰 금액과 날짜, 예상 기한 따위.

“예? 정말 이걸로 괜찮습니까? 더 자세한 정보를 달라고 하셔도 드릴 건 없지만, 정말 이 정도로요?”

“돈을 돌려달라고 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마라.”

백진우. 녀석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소한 단서를 획득한 것만으로도 1,000만 실링의 값어치는 충분했다.

휴게실 밖으로 나가 복도를 지나자 아까와 다름없이 분주한 의뢰소 풍경이 나타났다.

쿵!

문득 외부와 연결된 옆쪽 벽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하 참. 또 누가 밖에서 싸우나 보네요.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라 저희 건물은 벽에 강화재를…!”

밖에서 무언가 다시 한번 날아드는 게 느껴졌다.

나는 쿤다의 목덜미를 붙잡고 그대로 뒤로 몸을 날렸다.

쿵!

벽이 무너지며 사자 머리의 수인 하나가 날아 들어왔다.

잔해 사이에 쓰러진 녀석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육체적 고통 때문이 아닌 무언가에 대한 공포 때문임을, 눈을 보고 쉽게 알 수 있었다.

“어, 어, 벽이! 벽이! 이러면 또 우리 돈에서─!”

내 손에 들린 이 족제비는 아직 머릿속에 돈 생각뿐인 듯했지만.

나는 손을 놓아 녀석을 낙하시킨 뒤 벽에 난 거대한 구멍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내 구역에서 싸움을 일으켜도 된다고 했지.”

두껍고도 무거운, 젖은 진흙 같은 목소리.

구멍을 통해 들어온 목소리는 건물을 울렸고, 실내에 있던 모든 수인들이 긴장한 기색을 보였다.

적지 않은 수가 목소리의 주인이 누군지 알고 있는 듯 보였다.

“부, 분명 이전까지는 아무 신경을…!”

사자 수인이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말하자, 구멍 너머에서 다시 상대가 말했다.

“나는 말이야. 너 같이 목 주위에 갈기가 돋아 있는 것들을 보면 화가 나. 당장 쳐 죽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된다고.”

다만 그 내용은 사자 수인의 의문에 대한 답은 아니었다.

구멍 사이로 갈색 털로 뒤덮인 거대한 하체가 나타났다.

곧 무릎이 굽혀지고, 양쪽으로 여러 갈래의 뿔이 돋아난 거대한 머리가 나타났다.

‘티르혼.’

원형이 되는 동물 종은 엘크.

분류상으론 사슴과에 속하나 여느 맹수보다도 몸집이 커 육식에 가까운 인상을 주는 동물.

드러난 모습으로 추정컨대, 몸을 일으켰을 때 그 신장이 5미터를 훌쩍 넘으리라 생각되었다.

‘변종인가. 엘크라는 종 자체가 본래 몸집이 거대하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니.’

녀석은 긴 팔을 구멍 사이로 뻗어 사자 수인에게 향했다.

“누, 누가! 누가 도와줘!”

사자 수인의 양발은 부러져 있었다.

붙잡히지 않기 위해 바닥에 허리를 비비며 어떻게든 몸을 뒤로 뺀 덕에 거리는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았다.

하나 도와주는 이는 없었다.

“데려와라.”

오히려 그 말에 행여 자신에게 불똥이 떨어질까, 겁에 질린 표정으로 사자 수인에게 달라붙어 녀석을 앞으로 밀었다.

“하, 하지 마! 살려 줘! 살려 줘 제발!”

사자 수인을 붙잡은 거대한 손아귀가 구멍을 통해 쑥 사라졌다.

다시 무릎이 펴지고, 거대한 머리가 사라지고, 곧 무언가를 ‘아드득’씹는 소리와 함께 목 아래만 남은 사자 수인의 몸뚱이가 툭 떨어져 내렸다.

아드득. 아드득.

몇 번 소리가 반복되고 티르혼은 둔중한 발소리를 내며 사라졌다.

부하로 보이는 수인들이 시체를 치웠고, 의뢰소의 분위기는 한동안 얼어붙어 있었다.

* * *

러스트우드엔 구역 전체를 관조할 고층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다.

때문에, 나는 일정 간격을 두고 티르혼과 부하들을 미행하고 있었다.

‘어쨌든 녀석이 먼저 나타나 준 덕분에 찾아야 할 수고를 덜었군.’

몸집이 워낙 눈에 띄어 내가 찾으러 돌아다녔어도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겠지만.

─준비가 끝나는 대로 보고해. 인원은 최대한 나눠서 배치하고.

─알겠습니다, 티르혼 님.

녀석은 새로이 나타난 부하들에게 보고를 받기도 하고, 반대로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땅이 울리는 착각이 일었으며, 거리의 주민들은 행여 녀석의 눈에 거슬릴까 봐 주위 건물로 숨어들었다.

그런 주민들의 모습을 보며 부하 중 하나가 킬킬거리며 말했다.

─저런 놈들은 결국 용병 짓이나 하다 비명횡사하는 게 고작이겠죠. 술과 약에 취해 비루하게 죽거나. 외곽에 사는 쓰레기들보단 그나마 낫다곤 하지만 말입니다. 돈을 모으고 미래를 대비한다는 게 뭔지나 알겠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지만, 굳이 입 밖에 낼 필요는 없다. 곧 우리의 충실한 돈줄이 되어 줄 고객님들이니까.

녀석들의 걸음은 야트막한 언덕에 닿았다.

다닥다닥 돋아난 건물 사이를 지나 꼭대기에 오르자, 아래로 작은 분지가 나타났다.

‘저곳이군.’

분지의 땅 색은 다른 곳보다 훨씬 진한 갈색을 띠고 있었다.

한가운데에 무언가 뽑혀 나간 듯 작지 않은 크기의 구덩이가 움푹 패어있었다.

주위론 100여 개 가까이 묘목이 심겨 있었으며, 30마리 정도 되는 늑대 수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멍청한 놈들. 생명수가 뽑혀나간 지가 언제인데 저 비싼 묘목들을.

─허공에 돈을 뿌리는 일밖에 안 되지. 고작 생명수 한 그루가 있었다고 이곳이 과거의 대수림이었다는 전설을 믿다니.

생명수.

어떤 척박한 환경에도 뿌리를 내리며 주변 토양의 비옥도를 향상하는 기능이 있다 알려진 나무.

아직 탐사되지 않은 오지나 유적지에서 드물게 발견되며, 그 씨앗과 묘목은 천문학적인 금액에 거래되었다.

가히 부르는 게 값이라 해도 좋을 정도.

─그래도 집념은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몇 년 전 라이카가 생명수를 뽑아 달아났을 때 저 녀석들이 숲을 복원하느니 뭐니 하는 짓거리를 멈출 거라 생각했으니까요.

저들 두목의 비위를 맞추듯, 주위 부하들이 킬킬거렸다.

─엄밀히 말하면 라이카도 숲을 복원할 수 있다고 믿는 몽상가 중 하나였다. 저 녀석들과 무슨 갈등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며칠 내로 끝이다. 쓸모없는 과거의 잔재는 모두 불타 없어지고, 그 자리에 우리가 지낼 높은 궁전이 세워질 거다. 낡은 집들도 밀리고 제대로 된 향락 시설이 들어서겠지.

─오오! 기대되는군요!

몇 마디 더 대화를 주고받던 녀석들은 언덕 아래로 향했다.

녀석들이 사라지고, 나는 그 자리에 올라 분지 방향과 시가지 방향을 번갈아 내려다보았다.

‘알 것 같군.’

이 구역의 낙후 이유는 간단하다.

절대다수의 수인들이 발전이란 개념을 모르며 그저 매일매일 주어지는 하루에 맞춰 살아가기에.

인간이 수인들을 멸시하는 이유다.

간혹 어떤 수인들은 구역을 일으켜 세울 만한 지성을 갖추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 말은 인간이 보내는 시선의 속뜻을 알아차리고 분노할 능력을 갖췄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인의 일은 수인이 해결한다.’

지성을 갖춘 수인들이 되뇌는 문구다.

자연스럽게 인간의 도움 따위는 거부한다.

‘하나 그런 자존심을 버리고 인간과 손을 잡을 수 있는 개체가 있다면.’

분명 녀석은 구역 내에서 독보적인 존재가 될 것이다.

그 과정에서 개발을 반대하는 세력과 충돌은 불가피하겠지만.

나는 분지에 유난히 눈에 띄는 은빛 털의 늑대 수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 자리를 떠났다.

* * *

야심한 밤.

나는 티르혼의 거처로 향했다.

탁. 탁.

밤공기를 타고 거리에 울리는 발소리는 내 것밖에 없었다.

야행성 수인이 적지 않아 평소라면 어느 정도 돌아다니는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전쟁 전 긴장된 분위기로 너나할 것 없이 외출을 꺼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크기는 하군.’

나는 멀지 않은 거리에 보이는 티르혼의 거처를 보며 생각했다.

거대한 크기의 건물.

그 주위로는 나무판자와 철조망을 엮어 만든 울타리가 쳐져 있었다.

입구로 다가가자, 경비를 서고 있던 자칼 머리의 두 수인 중 하나가 조잡한 창을 겨누며 말했다.

“뭐냐. 근처에서 못 보던 얼굴인데. 이 시간에 돌아다니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나?”

나는 화들짝 놀란 얼굴을 하며 말했다.

“어, 어, 거리에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아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습니다만 무슨 일이 있는 겁니까?”

“요즘 분위기가 어떤지도 모르다니 밖에 있다 돌아왔나?”

“예. 외지에서 의뢰를 끝마치느라 시간이 조금 걸렸습니다. 반년 정도 만에 돌아왔습니다.”

녀석의 경계가 조금 풀어졌다.

직접 제조해 몸에 뿌린 향도 어느 정도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되었다.

“눈치가 빠른 친구는 아닌 것 같은데, 선심 써서 말해 주지. 며칠 내로 큰 전쟁이 벌어져. 어디든 들어가 한동안은 외출은 삼가는 게 좋을 거다.”

나는 놀란 눈을 하고 충격받은 투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우물쭈물하며 갈 기색을 보이지 않자, 녀석이 말했다.

“뭐냐, 안 가고?”

“그, 제가 중독증이라 말입니다. 하루라도 카드를 안 치면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해져서…. 다른 도박장은 모두 아예 문을 안 열거나 일찍 닫고…. 여기서 새벽에 카드를 치신다는 소문을 듣고….”

나는 울타리 안쪽에 작게 나 있는 초소 건물을 흘긋 바라보았다.

불이 켜진 그곳에선 말소리가 두런두런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디서 그런 소문을…. 좋은 말로 할 때 돌아가, 어서.”

녀석이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나는 개의치 않고 품에서 술병과 고액의 지폐 뭉치를 꺼냈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입장료가 필요하다면 낼 수도 있고요. 안에서 쓸 군자금도 충분합니다.”

만만치 않은 금액.

술 역시 이런 곳에선 쉽게 구경할 수 없는 고급이었다.

두 녀석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되었군.’

수인들은 욕망에 충실하다.

때문에 원하는 행동을 끌어내기가 인간에 비해 훨씬 쉽다.

그 후 이어진 설득은 형식적이었다.

경비 중 한 녀석이 나를 초소 건물로 안내했다.

“손님이 오셨어. 카드를 좋아하시는 모양이니 잘 모시고 있으라고.”

경비는 안에서 카드를 치고 있던 수인들에게 눈짓을 보냈다.

봉이니 털어먹으라고.

그런 신호가 그들 사이에 순식간에 오갔다.

“오! 좋지! 게임은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재밌으니까.”

나는 자연스럽게 무리에 끼어 카드를 치기 시작했다.

적당히 연기를 하며 돈을 잃어 주자 녀석들의 경계가 풀려 분위기가 부드러워졌다.

“잘 안 풀리는군요. 목이 좀 타는데 마셔도 되겠습니까? 같이 드시지요.”

술병을 꺼내 보이자 녀석들이 서로 눈치를 보았다.

“근무 중에 술은 조금….”

“야, 야, 그래도 저 술 브랜드가…. 티르혼 님은 한 번 잠들면 일어나지 않으시잖아.”

“그렇긴 하지. 그 겁쟁이 늑대들이 먼저 쳐들어올 리도 없고.”

짧은 갈등이 있었지만, 결과는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함께 술을 마셨고, 나를 제외한 녀석들은 적당히 취기가 올랐다.

나는 돈을 계속 잃었고, 녀석들의 얼굴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아, 오후에 도박장을 돌아다니다 그런 얘기를 듣긴 했습니다. 구역에 새로운 유흥 시설들이 들어설 거라고요.”

“아, 들었어? 뭐, 알만한 놈들은 다 아는 이야기지. 티르혼 님이 거액의 투자를 받을 예정이거든. 그 늑대 놈들만 밀어 버리면 말이지.”

뒤에 나온 내용들은 예상한 것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다만 기존의 추측을 확신으로 만들 수 있었다.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그래. 다녀오라고.”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즈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초소 밖으로 나갔다.

“화장실? 저기 뒤편에 있어.”

경비들이 티르혼의 거처 건물 뒤쪽을 가리켰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화장실로 가는 척하다 점멸을 사용해 거처 건물 창문 안쪽 방으로 진입했다.

방의 크기는 거대했다.

다만 티르혼의 몸집이 편히 드나들 수 있는 정도까진 아니었다.

녀석 전용으로 만든 건물이라기보다는 실내가 그나마 넓은 기존 건물을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소초의 수인들 말로는 티르혼 혼자 사용하는 건물이라 했지.’

나는 준비했던 도청 장치들을 꺼내 방안 보이지 않는 곳에 설치했다.

그리고 빠르게 다른 방들을 돌아다니며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라이카의 부하들은 늦어도 내일 도착해 티르혼과 접촉할 것이다.’

라이카의 부하들을 미리 제거하는 것은 크게 의미가 없다.

티르혼이 살아있는 이상 포섭을 위해 계속 사람을 보내올 테니.

간부 후보 대상을 아예 제거하는 것.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었다.

2층 복도를 지나던 중 건물 내부 방향으로 난 창을 들여다보았다.

건물 중앙은 층이 통합되어 있었다.

‘이곳이 녀석의 침실.’

어둠 속에 가린 거대한 실루엣 하나가 보였다.

배 부분으로 추정되는 곳이 천천히 오르내리고 있었다.

지금 녀석을 제거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

하나 여러 가지 변수를 고려해야 했다.

녀석이 한 번에 죽지 않을 가능성.

실버팽과 대적할 정도라면 무력 수준이 평범치는 않다는 이야기니까.

또한, 녀석을 제거하고 러스트우드를 안전히 빠져나가는 것도 염두에 두어야 했다.

‘굳이 녀석에게 손을 쓸 필요가 없어질 가능성도 존재하니.’

간부직 제안을 거절할 가능성.

소문으로 파악한 녀석의 성향상 확률은 높지 않았지만, 있을 수 없는 상황은 아니었다.

일단 대화를 엿듣고, 판단은 그 이후에 내려도 늦지 않았다.

이곳 외에도 접선이 이루어질 만한 구역 내의 다른 건물들에도 도청장치의 설치를 마쳐둔 상태였다.

후에 전투를 벌이게 될 시, 녀석이 이끄는 무리의 움직임을 읽는 데도 사용될 터였다.

‘이쯤이면 되었겠지.’

녀석의 침실 방향으로 난 창틀에 마지막 도청 장치를 설치했다.

몸을 돌려 건물을 빠져나가려던 순간, 나는 전신을 감싸는 기묘한 감각에 막 떼었던 발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천천히 침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달빛에 드러난 눈동자.

티르혼의 현현한 안광은 나를 향해 있었다.

‘깨어 있었나.’

머릿속에 미리 그렸던 여러 상황 중 하나기에 당황하진 않았다.

다만 침착하게 마나를 끌어올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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