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10화 (110/227)

#110. 러스트우드 (1)

“인간이다! 인간!”

나를 둘러싼 수인들의 숫자는 점점 많아졌다.

어림잡아 열다섯 정도.

바로 곁까지 다가와 냄새를 맡으며 킁킁대는 녀석들도 있었다.

‘그리 강한 녀석들은 아니다.’

구역 전체가 낙후되어 있다고는 하나, 거주 위치에 따른 계급도는 엄연히 존재했다.

외곽에 있는 녀석들은 가장 힘이 약하고, 이성적 사고가 떨어지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 이거 구워 먹을까? 저, 저번에 그랬더니 머, 먹을 만했거든!”

“오늘은 굶지 않아!”

쥐머리를 한 녀석이 눈알을 데룩데룩 굴리며 말했다.

간혹 식인을 하는 녀석도 있었다.

그도 아니면 동족을 포식하거나.

‘이곳에 방문할 때 반드시 무장 병력을 대동해야 하는 이유겠지.’

대다수 수인은 마나를 다루지 못하지만, 기본적으로 인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육체 능력을 지녔다.

준비 없이 들어갔다가는 세상에 뼈조차 남기지 못하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질 수 있었다.

“불에 굽는 걸 좋아하나?”

나는 가장 가까이 붙은 쥐 머리를 향해 물었다.

몇몇 녀석은 차량의 짐칸 주위를 기웃거리고 있는 상태였다.

“조, 좋아하지! 구, 구우면 질긴 것들도 다 부드러워지거든!”

“취향이 비슷하군. 나도 스테이크 같은 고기류는 바싹 익혀 먹는 걸 선호하지.”

나는 녀석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얹었다.

화(火)계 원소가 끌어올려지며 팔 전체가 달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배합할 보조 원소는 증폭과 유지, 지속의 세 종.

화륵.

푸석푸석한 털 위에 순식간에 불길이 일어났다.

녀석이 열기를 깨닫고 몸부림을 치기도 전에, 불길은 순식간에 온몸으로 번져 녀석을 집어삼켰다.

탁.

검게 탄 녀석의 몸이 바닥에 나부라졌다.

채 5초도 되지 않아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다만 이 고기는 썩은 내가 심해 입에 대지 못할 것 같군.”

그 말과 동시에, 넋을 놓고 있던 수인들이 정신을 차리고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일반인이었다면 제대로 반응조차 하지 못했을 속도.

나는 끌어올렸던 마나를 몸 주위에 원형으로 퍼트리며 마법을 발동했다.

콰아-!

화염으로 된 기둥이 나를 감싸며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올랐다.

나를 향해 뛰어들던 녀석들은 맹렬한 기류에 휩쓸려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마, 마법사다!”

화염이 잦아들고 남은 녀석들은 혼비백산하여 사방으로 달아났다.

수인들의 사회는 철저한 약육강식.

이 상황에서 포식자가 누구인지 깨달았을 것이다.

철컥.

총을 꺼내 달아나는 녀석들의 등을 겨눴다.

탕!

사격은 간결하고도 신속했다.

탄환에 심장이 꿰뚫린 녀석들이 단말마를 지르며 쓰러졌다.

개중 눈빛이 그나마 가장 멀쩡했던 한 녀석은 일부러 다리를 맞춰 숨을 붙여 놓았다.

“…….”

탄환을 모두 소진한 탄창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주변엔 온통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다.

나는 다리를 부여잡고 몸을 비틀어대고 있는 녀석에게 다가갔다.

무릎을 굽혀, 눈높이를 맞췄다.

“티르혼에 대해 아는 것이 있나?”

“티, 티르혼?”

“그래. 이곳에서 꽤 유명한 놈일 텐데.”

“아, 알고 있지. 그, 그런데 티르혼은 왜….”

대답 대신 손바닥 위에 불꽃을 피워 올리자 녀석의 눈동자가 극도의 두려움으로 물들었다.

“더, 덩치가 커! 부, 부하를 많이 끌고 다니고. 아, 아! 중심가에 살아! 그, 근데 그쪽은 요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서 못 들어가 봤어!”

녀석은 자신이 아는 정보를 필사적으로 뱉어냈다.

불꽃이 얼굴 바로 앞에 가까워졌다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내내.

덕분에 나쁘지 않은 양의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러스트우드를 양분하는 세력은 티르혼과 실버팽 각각이 이끄는 무리. 이 시점엔 그렇게 되어 있군.’

티르혼과 반대로 실버팽은 내가 직접 설정한 인물이었다.

본래라면 후반부 라이카와 관련된 에피소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예정이었다.

나는 굽혔던 무릎을 펴 자세를 일으켜 세웠다.

손바닥에 쥐고 있던 불꽃을 꺼트리자 녀석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아는 건 다 대답했어! 나는 살려주는―!”

탕!

총을 품 안에 넣고 고개를 들었다.

고철 더미와 낡은 집들 사이, 중심지로 이어지는 길을 바라보았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라.’

러스트우드엔 크고 작은 세력이 존재한다.

분쟁과 갈등, 싸움과 투쟁.

일상과 같은 일이기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이런 소란을 벌였음에도, 주위에 확인을 나온 이가 아무도 없을 정도.

한데 그런 분위기에 익숙해졌을 주민의 입에서 ‘심상치 않다’라는 말이 나왔다면.

‘전쟁, 혹은 그에 준하는 무언가.’

흉흉한 전운의 바람이 느껴졌다.

수많은 사선을 거쳐 온 카인의 육체가 느끼는, 본능과 같은 감각이었다.

나는 잠시 주변을 바라보다 변용마법을 걸었다.

얇고 넓은 얼음판을 생성해 모습을 비추자 그곳엔 검은 표범의 머리를 한 수인이 서 있었다.

근접한 거리에서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직접 만져 보는 것이 아닌 이상 간파할 수 없는 정교한 마법이었다.

러스트우드에 인간이 방문하는 일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나, 홀로 돌아다니며 굳이 시선을 끌 필요는 없었다.

‘후각도 중요하겠지. 시각만큼이나.’

대체로 수인들은 고유의 체취가 존재하며, 민감한 후각을 가진 편이었다.

나는 죽은 수인 중 하나의 조끼를 잠시 걸쳐 입었다 벗은 뒤, 준비해 둔 특수 향수를 여럿 조합해서 뿌려 원하는 냄새를 만들었다.

청량하고 은은한, 실제로 맡는 이의 경계를 늦추는 효과가 있는 향이었다.

나는 수인들의 시체를 염동으로 띄워 올려 차량의 짐칸에 차곡차곡 쌓아 올렸다.

차량을 끌고 중심지로 향하는 동안, 어중간한 실력의 녀석들이 달려들지 못하도록 하는 경고였다.

드드드-

시동을 걸고, 주변의 풍경을 살피며 중심지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인간들이 사는 슬럼과 크게 다를 것은 없는 풍경이었다.

곳곳에 쌓인 고철 더미만 제외한다면.

‘인간들의 쓰레기 처리 차량이 버리고 간 것들이겠지.’

허름한 가방을 메고 고철과 쓰레기더미를 뒤지고 다니는 작은 몸집의 수인들이 여럿 보였다.

이곳 하류층 주민들의 생계유지는 대체로 저런 식으로 이루어졌다.

더미에서 미처 걸러지지 못한,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찾아내 인간의 도시와 커넥션이 있는 상인들에게 파는 것.

“아, 안 돼! 이건 내가 모은 거야!”

혹은 약탈하고, 잡아먹는 것.

하류층 안에서도 힘의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기 마련이니.

드드드-

중심부로 향할수록 고철과 쓰레기 더미의 비율은 줄어들고 그나마 봐 줄 만한 건물이 늘기 시작했다.

주거 외에도 다른 용도의 건물들이 보였다.

대다수가 술집이나 도박장, 마약 판매점과 같은 시설들이긴 했지만.

거리를 돌아다니는 수인들 역시 육식 계열 동물을 원형으로 한, 덩치 큰 녀석들이 대부분이었다.

차량이 이동하는 곳마다 빤한 시선들이 달라붙었지만, 짐칸에 실린 시체 때문인지 쉽사리 접근해 오지는 않았다.

‘그것 외에도, 확실히 분위기가 묘하군.’

눈만 마주치면 싸움이 벌어지는 곳인데, 수인들 서로가 눈치를 보는 분위기였다.

마치 누군가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몸을 사리는 느낌이었다.

끼익.

한 건물 앞에 차를 멈춰 세웠다.

다른 후줄근한 건물들과는 달리 고급 건축재로 지어진, 나름 규모가 있는 3층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넓은 공간이 나타났고, 줄지은 대기석에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는 덩치 큰 수인들이 눈에 띄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족제비 얼굴의 수인들이 홀로그램이 띄워진 마법 장비를 들고 대기석 사이를 바삐 돌아다니고 있었다.

“74번 구역으로의 파견입니다! 단순한 물자 수송 의뢰이고 소요 기간은 열흘! 보수는 20만 실링입니다!”

“107번 구역에서의 인간들의 싸움 지원입니다! 곧바로 출발하셔야 하고 자세한 내용은 가서 들으셔야 합니다! 보수는 50만 실링입니다!”

새벽의 인력 시장 같은 분위기.

러스트우드 전체에 퍼져 있는 그린호드의 지부 중 하나였다.

‘비좁은 느낌이군. 근방의 힘깨나 쓴다는 녀석들이 다 모여 있으니 당연한 일인가.’

어느 정도 지성과 무력을 갖춘 수인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가.

외부 의뢰의 수주였다.

대부분은 도박과 술, 마약 따위로 금세 돈을 탕진하고 일을 구하러 나오기 마련이지만.

물론 이곳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고 인간 도시로 떠난 수인들도 존재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현지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짙은 향수병에 걸려 돌아오는 선택을 내렸다.

그린호드.

본능에 각인된 숲에 대한 갈망.

초록빛을 꿈꾸는 짐승들.

비꼬는 의미에서 바깥의 인간들이 붙인 이름.

그것은 단순히 교역소를 운영하는 족제비 수인 집단만을 칭하는 것이 아닌, 의뢰를 받아 외부로 나가는 수인들 전체를 총칭했다.

“어이쿠!”

패드 모양의 장비를 들고 도도도 달리던 족제비 하나가 내 허리춤에 얼굴을 부딪치고 뒤로 나동그라졌다.

녀석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어 정신을 차리고는 동그란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에스텔이 보았다면 귀엽다며 와락 끌어안았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못 보던 얼굴이군요! 의뢰를 받으러 오셨나요! 성함이 어떻게 되시지요! 저는 쿤다라고 합니다!”

“재블러다. 의뢰보다는 알고 싶은 정보가 있다.”

보스의 직속이든 라이카의 부하든 30번대 구역에서 출발하기에 나보다 도착이 빠를 수는 없었다.

그들이 오기 전, 이곳의 동향을 파악해 계획을 세워둘 생각이었다.

의뢰소가 곳곳에 있기에, 구역 내 정보에 있어선 이들만 한 녀석이 없었다.

“어…. 저희가 제공하는 것은 정보가 아니라 의뢰인데요.”

나는 금화 하나를 꺼내 손가락으로 허공에 튕겼다.

녀석이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자리에서 폴짝 뛰어올라 앞발로 금화를 잡았다.

진짜인지 확인하려는 듯 이빨로 딱딱 깨물어 보고는 가슴을 가로질러 메고 있는 작은 가방에 잽싸게 넣었다.

“하지만 못 해 드릴 건 없죠! 업무 시간이긴 합니다만! 상관없습니다! 따라오시죠!”

녀석은 총총걸음으로 의뢰소 안쪽을 향해 뛰었다.

직원용 휴게실이라 쓰인 곳으로 나를 안내하고, 문을 잠갔다.

찰칵.

수인들은 원형이 되는 동물의 종별로 선천적인 성향이 정해지게 마련이었다.

이 녀석들의 경우 돈에 대한 그득그득한 욕심.

‘따로 관리자가 없는 이유겠지.’

의뢰 수당의 일부를 인센티브로 받는 시스템.

일종의 영업직이었다.

일한 만큼 돈을 벌기에 녀석들은 지금과 같이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다.

“그래서 어떤 정보가 궁금하신가요! 제가 잘 말하면 금화를 더 주실 건가요!”

금화를 한 닢 더 꺼내 테이블 위 허공에 뻗었다.

녀석이 짧은 양팔이 좌우로 움직이는 금화를 따라 왔다 갔다 했다.

“티르혼의 현재 위치. 그리고 구역 내의 분위기에 대해서.”

“러스트우드에 오랜만에 돌아오셨나 보군요! 티르혼과 그 부하들은 구역 안쪽 3번 거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알만한 이들은 다 아는 사실이죠! 최근엔 전쟁 준비 때문에 거점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는 모양이지만요!”

“전쟁이라고 했나?”

“예. 실버팽과 그 부하들을 상대로요! 다들 전쟁이 벌어질 거라 예상하고 있죠! 이념 간에 큰 차이가 있다고요! 정확한 내용을 알고 있는 이는 많지 않습니다!”

쿤다의 손에 금화를 떨어트리고, 새로운 한 닢을 꺼내 좌우로 천천히 흔들었다.

‘이념 다툼이라.’

실버팽의 신념과 가치관.

그것을 고려하면 다툼이 대략 어떠한 결을 띄고 있을지는 예상이 되었다.

“손이 크시군요! 부자! 부자!”

몇 가지 질문을 더 던지며 머릿속에 계획을 정리해 나갔다.

어느 정도 계획의 윤곽이 그려지자, 나는 내가 이곳을 찾은 가장 주된 이유가 되는 질문을 던졌다.

“최근 한 달 내로 들어왔을 의뢰에 관한 정보를 열람하고 싶다.”

“예? 의뢰요?”

“의뢰를 받아 나간 수인은 셋. 두더지 과의 아종으로 추정되더군. 눈에 안대를 두르고 양손에 클로를 장착하고 있었다. 의뢰 내용은 특정 대상의 암살.”

쿤다는 뭔가 짚이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녀석이 모른다 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모든 의뢰 내용은 데이터로 처리되어 보관되기에, 녀석이 그것을 열람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내가 궁금한 건 하나다. 의뢰인이 누구인가.”

“아뇨! 아뇨! 저희가 그런 걸 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규정상―.”

턱.

지폐 다발을 꺼내 테이블에 올리자 녀석이 순간 말하던 것을 멈췄다.

턱. 턱.

그 위로 다발을 계속 쌓아 올릴수록, 녀석의 입은 벌어져만 갔다.

턱. 턱. 턱.

“다시 한번 말하지.”

누군가 그랬다.

“나는 의뢰의 정보 열람을 원한다.”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 금액이 너무 적은 게 아닌지 의심해 보라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