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라크센 (5)
마법사의 실험실을 탈출하던 중 급류에 쓸려 서로의 손을 놓친 남매.
오빠는 범죄 조직의 간부가 되었고, 동생은 마탑의 교수가 되었다.
백진우.
녀석이 그 설정을 알고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었다.
전체 플롯 중반부까지이긴 하나, 녀석은 내가 완성한 원고를 모두 읽었으니까.
“엘렌 교수.”
나는 그녀의 턱 밑에 총구를 가져다 댔다.
그대로 들어 올려, 그녀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나를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그리고 백진우가 알고 있지 못할 설정, 바마의 진짜 이름을 뱉었다.
“에드거를 만나고 싶나.”
그녀의 눈동자가 더없이 크게 떠졌다.
이내 충격이 잦아들고, 그녀는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고 싶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그녀의 과업이니까.
비늘을 제거하고 난 흉터를 부끄럽게 여기지만, 변용 마법이 아니라 어설픈 실력의 화장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용모를 완전히 바꾸었다간, 혹시라도 거리에서 마주친 오빠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당신도 내 오빠에 대해 알고 있는 건가요?”
“적어도 그 예언자라는 작자보다는 많은 걸 알고 있지.”
나는 남매에 대한 정보를 풀었다.
그들의 출생과 성장 환경, 그리고 헤어짐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들.
세상에 오직 둘만 알고 있을.
혹은 누구에게도 얘기한 적 없을 혼자만의 비밀들.
이야기가 끝났을 때 그녀의 눈빛은 멍해져 있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그 예언자도 그렇고…. 우리를 지켜봐 온 건가요? 오빠를 붙잡고 있어요?”
그녀는 한참 혼란스러운 감정을 곱씹다 내게 말했다.
“그것만 말해 줘요. 오빠는 살아 있나요?”
“살아 있다. 잃어버린 동생을 몹시도 보고 싶어하더군.”
그녀의 눈가에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녀의 입장에선 불가항력에 가까운 일일 터였다.
“맹약을 맺었겠지. 그쪽이 직접 마법을 사용했나?”
“그 사람도 마법을 쓸 줄 아는 것 같았지만, 맹약의 사용은 내가 직접 했어요. 라크센을 죽음으로 몰고 돌아오면 오빠에 관한 정보를 알려 주겠다고 했죠. 그게 거래 조건이었어요.”
나는 예언자에 관한 몇 가지 정보를 더 물었고, 그녀는 물기 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만 더 이상의 영양가 있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궁금한 걸 모두 풀었으니 이제 날 죽일 생각인가요?”
심문이 끝났을 때 어느 정도 감정을 해소한 듯 그녀의 눈빛은 차분히 가라앉아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 오빠를 만나겠다는 의지가 그 너머 반짝였다.
“날 죽이지 마요. 당신의 정체가 뭐고 또 뭘 원하는지 모르겠지만 살려 두면 당신에게 분명 도움이 될―.”
“죽이지 않겠다.”
그녀가 얼빠진 표정을 했다.
나는 그녀의 턱에 가져다 댔던 총을 거뒀다.
“왜죠? 분명 입막음을 하려 날 죽일 거라 생각했어요.”
“입막음을 하려던 건 그 예언자라는 작자이지. 수인들을 보낸 게 누구라 생각하나?”
“…….”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
“…자신의 정체를 극도로 감추고 대화 내내 저를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긴 했어요. 살인을 사주했다는 사실을 완전히 숨기고자 했다면….”
가능성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 스스로도 짚이는 구석이 있을 테니까.
‘선’ 성향의 인물들을 계획에 이용하고, 앞으로의 행보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모두 제거하는 것이 녀석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럼 저한테 원하는 게 뭐죠?”
“너는 맹약대로 라크센을 죽였다.”
나는 숨을 들이쉰 뒤 나직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나갔다.
“도중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수인들까지 네 손으로 직접 물리쳤다. 찜찜하긴 하나 슬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약물 중독자들이라 생각하기로 한다.”
“…….”
“시체는 모두 불태웠고 목격자도 없었다. 견학단은 실종된 학생을 찾아 수색을 벌이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결국 행방불명으로 처리 후 수도로 복귀한다.”
자신이 이후 취해야 할 행동임을 깨달은 그녀가 ‘아’하고 작게 입을 벌렸다.
“예언자를 만나 맹약 이행에 대한 보상을 받아라. 녀석은 원래 순순히 정보를 넘길 생각이 아니었겠지만, 맹약을 맺었으니 별수 없을 거다.”
“그다음은요…?”
“평소의 삶을 영위해라. 연구를 하고, 강의를 준비하고. 치안이 약한 곳에선 예언자가 언제든 너를 다시 죽이려 할 수 있기에, 수도는 벗어나지 마라. 별도의 내 지시가 있을 때까지는. 통신을 통해 연락하지.”
“그 예언자라는 자가 못 미더운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가 알려주기로 한 오빠에 관한 정보는 분명 사실일 거예요. 그게 맹약이니까. 그런데 그걸 듣고도, 수도에 박혀 있으라고요?”
나는 픽 웃었다.
“엘렌 교수, 무언가 착각하고 있군. 그쪽은 지금 상황을 따질 처지가 아니다.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죽을 테니까. 내 거처에 돌아가는 즉시 그쪽의 오빠까지 죽일 것을 약속하지.”
오빠의 죽음.
그 말에 그녀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하지만 난 그렇게까지 냉혈한이 아니다. 상대를 몰아붙이기만 하는 건 썩 좋은 방법이 아니기도 하지. 지시에 충실히 따르면 예언자 따위보다 더 큰 보상을 약속하겠다.”
“…….”
“책임지고 그쪽이 오빠를 만날 수 있게 해 주지. 양쪽의 목숨이 온전히 붙어 있는 채로.”
내 손에서 마나가 뻗어 나갔다.
그녀 팔에 새겨진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고 선명한 마법진을 그려냈다.
모든 마법을 통틀어 극악의 난도에 꼽히며, 사용자의 실력에 따라 계약 조건으로 걸 수 있는 한계가 천지 차이로 나게 되는 것이 맹약이었다.
그녀가 헛숨을 들이켰다.
“불멸자…? 고서적에서 읽은 적 있어요. 마법의 극에 이르러 모든 원소를 다루고, 영생을 누려 대륙의 모든 역사를 기억한 채 세상을 떠도는 존재가 있다고요.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교수라는 자가 그런 구전 따위를 믿다니 우스운 일이군.”
그녀는 다시 한번 얼굴을 붉히더니 입을 꾹 다물었다.
“엘렌 교수, 그쪽은 내 모든 지시에 충실히 따른다. 맹약의 완료는 에드거와 다시 만나는 때. 그 시점은 내가 정한다.”
“…당신이 한 말 책임질 수 있어요? 정말 오빠를 만나게 해 줄 수 있느냐는 얘기에요.”
“선택은 그쪽의 몫이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있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봐도 분명한 불공정 계약.
하지만 따르지 않으면 죽는다.
자존심 따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가족과 재회할 수 있다면 그깟 자존심 모두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그녀의 집념은 강력하니까.
“맹약을 수락할게요.”
우웅.
마법진은 반으로 나뉘어 나와 엘렌 교수의 가슴에 새겨졌다.
이로써 내가 가진 맹약의 징표는 총 넷이 되었다.
에스텔. 제르비아.
바마. 그리고 엘렌.
회로가 동시에 감당할 수 있는 징표엔 한계가 있었고, 나는 그 수를 다섯으로 보고 있었다.
‘회로엔 무리가 없다. 아직까지는.’
나는 손을 뻗어 엘렌 교수에게 치유 마법을 사용했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들이 말끔히 사라졌다.
그녀는 내가 치유 마법을 사용한 데에 몹시 당황한 눈치였으나 추가적인 질문을 던지지는 않았다.
“견학단으로 복귀해라. 너무 늦게 나타나지 않으면 의심을 살 수 있으니. 이곳은 내가 마저 정리하지.”
아공간에서 적당한 의류를 꺼내 그녀에게 던졌다.
그녀는 내 눈치를 보며 자리에서 일어나고는 옷을 들고 골목으로 사라졌다.
죄책감과 혼란, 충격 등의 여러 감정이 뒤섞인 표정으로.
“에스텔.”
“네.”
“견학단이 수도로 복귀할 때 뒤를 쫓아라. 그리고 그녀를 감시해라.”
“예언자라는 사람의 뒤도 캐야 하겠죠?”
“그래. 하지만 무리할 필요는 없다. 정보를 얻는 것보다 녀석에게 들키지 않는 게 우선이니.”
“알겠어요. 당신과 멀리 떨어지는 건 아쉽지만, 오랜만에 교단 본부에 들를 수 있겠네요.”
우리는 엘렌 교수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다 성당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라크센의 시체가 있던 자리를 향해 묵념을 올려 주고는, 다시 아이들에게 향했다.
그녀는 언젠가부터 내가 행하고 지시하는 일에 어떤 의문도 가지지 않았다.
그저 충실히 믿고 따를 뿐이었다.
나에 대한 신뢰가 높아졌다는 뜻이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무뎌져 웬만한 일에는 끄떡도 없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일종의 정신적 성장을 이루었다고 봐도 좋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머지않아 다가올 진실 앞에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버틸 정도의 수준에 이르러야 할 테니.
* * *
견학단은 실종 학생에 대한 일대 수색을 벌였으나 어떤 단서도 찾지 못했다.
교수들은 복귀 후 질책 받을 것을 크게 걱정하며 학생들을 이끌고 수도로 돌아갔다.
구역 경찰서에 언제든 단서를 찾으면 통신을 달라는 말을 남겨 놓고서.
“그럼 나중에 봐요. 당신이 지정한 날짜에 통신을 걸게요.”
에스텔이 탄 차는 견학단을 쫓아 클랙필드를 떠났다.
직후 직원들이 두 대의 차를 끌고 내 앞에 도착했다.
“이 아이들이군요. 책임지고 보육원에 인계하겠습니다. 이쪽은 대표님이 타실 차량입니다.”
아이들은 여전히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처음보단 심적으로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직원들과 아이들이 탄 차가 멀어지고, 나는 눈앞에 준비된 차량에 올라타 곧장 시동을 걸었다.
드드드-
전투용으로 개량된 SUV차량이었다.
기본적으로 장갑이 두껍고 차체가 높았으며, 험한 지형을 능숙히 달릴 수 있게끔 설계되어 있었다.
거칠게 액셀을 밟자 차량은 거대한 짐승처럼 순식간에 앞으로 튕겨 나갔다.
부아아아아─!
황무지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스쳤다.
목적지는 58번 구역이었다.
번호보다는 ‘러스트우드’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곳.
‘문자 그대로 해석하자면 녹슨 숲이 되겠지만.’
이름과 달리 그곳에 숲은 없다.
말라비틀어진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조차도.
황량한 대지 위에 쌓인 고철과 쓰레기더미들이 그와 비슷한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오전 중 나눴던 바마와의 통신을 떠올렸다.
「간부 후보의 명단이 내려왔다. 총 세 명. 나는 그중 하나를 포섭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른 두 명의 후보 쪽으로도 포섭을 맡은 라이카의 부하들이 파견될 거라 했다.
「후보 중 하나는 러스트우드의 티르혼. 그쪽에서 나름 입지적인 인물이라고 하더군.」
내가 직접 설정한 인물은 아니었다.
곧바로 정보 길드에 연락을 넣었지만, 보유한 자료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직접 가 몸으로 부딪쳐야 한다는 이야기.
하나 상관은 없었다.
미래의 위험요소가 될 인물이라면 사전에 제거하면 될 뿐이었다.
포섭을 나올 라이카의 부하들 역시도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
‘천천히 피를 말려 주지. 초조함에 먼저 달려들지 않곤 배기지 못하도록.’
새 간부를 뽑아 전력을 보강하려는 보스의 움직임을 가만히 지켜볼 생각은 없었다.
수 하나하나를 깨트려 47번 구역으로 먼저 공격을 감행해오는 것을 유도하고, 수비의 이점을 가진 상태에서 전투를 치를 생각이었다.
‘티르혼을 제외한 간부 후보는 둘.’
그중 하나를 맡은 바마는 일부러 갈등을 일으켜 포섭에 실패할 예정이었다.
다른 하나의 후보 역시, 제르비아에게 정보를 흘렸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그 정보…. 알겠다. 네가 말한 구역으로 가 모두 잡아들이도록 하지.」
통신용 홀로그램에 투영된 그녀의 얼굴은 차고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단순히 나에 대한 반감 때문이 아닌, 성정 자체가 변해 버린 탓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불필요한 감정들을 잘라내 버리고 목표를 향해 질주할 동력을 얻었다.
‘그래 봐야 나와 다시 직접 마주치면 감정의 동요를 보이겠지만.’
어찌 되었든, 내가 알려 준 정보는 그녀의 실적에 큰 역할을 할 터였다.
생각에 잠겨있던 사이, 멀리 고철 더미로 이루어진 작은 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러스트우드의 초입이었다.
다른 구역과 달리 황무지와의 경계가 되는 ‘벽’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고철 더미 사이로는 잡동사니로 기워 올린 집들이 보였다.
커다란 엔진 소리에 주민들이 곳곳에서 나타났다.
천천히 속도를 줄이자, 코를 벌름거리며 이쪽으로 접근해왔다.
안에 탄 나를 보며 그들이 말했다.
“인간이잖아?”
“인간이라고?”
“인간인걸.”
주위는 동물 머리를 한 수인들뿐이었으며, 근방에 인간이라고는 오직 나밖에 없었다.
나는 시동을 끄고 차에서 내렸다.
끼익-
“인간 맞아! 인간!”
“키힉, 킥! 잡아 먹히러 왔나?”
침을 질질 흘리는 수인들을 본 뒤, 시선을 돌려 주변 풍경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이곳은 여전하군.’
도착이었다.
한때 대수림이 존재했던 자리란 전설이 전해지는 구역이자.
대륙 대부분의 수인이 모여 살고 있는 생활 터전.
58번 구역, 러스트우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