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라크센 (4)
탕!
성향이 ‘악’으로 결정되었다면 후에 어떤 재앙으로 자라날지 모른다.
판단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챙!
검과 클로가 맞닿는 타이밍.
공기를 찢으며 날아간 탄환은 라크센의 심장을 관통한 뒤 그대로 반대편 벽에 박혀 들었다.
“…….”
수인은 클로를 앞으로 모은 자세 그대로 타일 바닥을 뚫고 사라졌고, 라크센의 신형은 종잇장처럼 허물어졌다.
나는 라크센과 눈을 마주쳤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은 분노였다.
앞으로 펼칠 자신의 계획을 방해한, 정체 모를 상대에 대한 분노.
구구구-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진동이 느껴졌기에, 더 이상 깊이 생각할 틈은 없었다.
‘온다.’
적은 바닥의 진동을 통해 상대의 위치를 가늠하는 것으로 보였다.
최후의 최후까지 기다리다 바닥을 박차 몸을 뒤로 띄웠다.
그와 동시, 표적 범위가 넓은 샷건으로 무기를 바꿔 들었다.
철컥.
바로 앞, 조금 전에 서 있던 자리의 바닥이 갈라지며 클로가 나타났다.
녀석의 몸이 맹렬하게 솟구쳐 오르고 나는 방아쇠를 당겼다.
탕!
팔을 포함한 녀석의 한쪽 어깨가 완전히 날아가 버렸다.
녀석은 다른 방향의 바닥을 뚫고 사라졌다.
‘밖에서 처음 나타났던 녀석보다 움직임이 더 빠르다.’
단번에 몸 전체를 날리지는 못했지만 크게 지장은 없었다.
즉사에 가까운 피해이니 과다출혈로 얼마 버티지 못하고 숨이 멎을 터였다.
그걸 증명하듯, 발밑에선 더 이상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
멀리, 겁먹은 두 아이의 시선이 느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부모는 죽고 사방은 피와 먼지로 가득하니.
나는 아이들 주위에 방호를 펼쳐 두고 몸을 돌려 밖으로 향했다.
“그런 싸구려 무기로 어딜 넘봐! 내 건 미스릴이라고!”
에스텔은 내가 지시한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었다.
메이스를 휘둘러 수인으로부터 엘렌 교수를 보호하는 동시,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계속해 퇴로를 차단하고 있었다.
─적에게 집중해도 좋다.
내 음성의 전달과 함께 그녀의 움직임이 가속되었다.
곧 빠른 속도로 수인을 몰아붙여 나갔다.
탕!
잠시 생겨난 틈을 타 점멸을 사용하려던 엘렌 교수에게 총을 쏘았다.
그녀는 점멸을 취소하고 급하게 방호를 사용해 탄환을 막았다.
“가용한 마나가 많다 해도 정제를 거칠 시간을 벌어 줄 호위가 없다면 쓸모없는 일이지.”
방호 위에 사격을 계속하며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방호는 금이 갔다가 원복 되기를 반복했고, 그녀 주위로 작은 불덩이와 얼음 결정이 피어났다.
“죽어!”
그녀가 악을 쓰며 외쳤다.
붉고 푸른 원소들의 결정체가 나를 향해 쇄도했다.
가능한 것들은 탄환을 맞춰 깨트리고, 나머지는 마법으로 움직임을 가속해 피해 냈다.
다시 엘렌 교수 쪽을 보았을 때, 그녀의 앞엔 사람 몸집만 한 얼음 구체 하나가 말 그대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화르륵.
화(火)계 원소.
빙(氷)계 원소.
상극의 원소는 마주하는 순간 강한 반발을 일으킨다.
보통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를 배척하나, 한데 묶어 둘 수만 있다면 그 위력은 일반 마법의 그것을 아득히 넘어선다.
상충되는 에너지 그 자체가, 모두 파괴력으로 전환되기에.
‘두 개의 주 원소 모두를 다룰 줄 알고, 그 실력이 극에 이르렀어야 한다는 전제지만.’
잠깐의 틈을 타 마법의 시전을 마친 모양이었다.
엘렌 교수는 표독스런 얼굴로 외쳤다.
“제발 죽어!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마!”
구체가 빠른 속도로 날아왔다.
그 어마어마한 열기에 전투 중이던 에스텔과 수인이 흠칫 돌아볼 정도였다.
‘거리가 가깝다. 점멸을 사용해 피한다면 여파에 피해를 입을지도.’
순간 파훼 가능성이 떠올랐지만 이내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완성된 마법의 파훼.
이론상 불가능하진 않다.
하지만 그녀 정도 수준의 이가 사용한 마법을 무로 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아도 좋았다.
‘적어도 지금 내 레벨로는.’
생각은 빠르게 다음 판단으로 건너뛰었고, 나는 총을 버리고 손바닥을 앞으로 뻗었다.
파지직!
화(火)계 원소.
빙(氷)계 원소.
두 원소가 맹렬히 소용돌이치며 한 점에 모여들었다, 순식간에 팽창하며 화염에 둘러싸인 얼음 구체를 생성해 내었다.
“마, 말도 안 돼!”
엘렌 교수의 경악에 찬 외침이 들려왔다.
구체는 점점 커져 그녀 것의 배는 되는 크기에 달했다.
파직!
쏘아진 구체는 중간에 부딪힌 ‘작은 구체’를 집어삼켜 한층 더 몸집을 불렸다.
그리고 엘렌 교수의 방호에 닿는 순간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쾅!
빛이 번쩍이고 땅이 흔들렸다.
소란이 멎고 먼지가 가셨다.
둥글게 팬 땅 위, 옷 곳곳이 불에 그을린 엘렌 교수가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있었다.
“경고하지. 더 이상 반항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말도 안 돼. 이건 말도….”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그녀를 향해 다시 걸음을 옮겼다.
잠시 얼이 빠져 있던 에스텔 역시, 수인을 제압해 메이스로 명치를 찍어 바닥에 눕혔다.
쿠구구구-
그때 머리 위에서 무언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들자, 성당 지붕에 선 외팔의 수인과 밑 부분이 갈려 이쪽을 향해 기울고 있는 성당의 첨탑이 보였다.
‘아직 살아있었나. 질긴 목숨이군.’
손바닥을 뻗어 원소를 끌어올렸다.
“위험해요!”
에스텔의 급박한 외침에도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엘렌 교수는 망연자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쿠구구-!
성당의 첨탑이 이쪽을 덮쳐 왔다.
신을 모시는 전당에서 소란을 피운 이들에게 징벌을 내리듯이.
그리고 내가 발현한 염동에 의해 떨어지던 각도 그대로 허공에 정지했다.
‘무생물, 그리고 힘이 빠진 녀석 정도라면.’
“키힉!”
황급히 몸을 내빼려는 수인을 염동을 이용해 그대로 잡아채었다.
투명한 손아귀처럼 허공에 붙잡힌 녀석 주위에 바람을 일으켜 압력을 가했다.
‘정보를 캐낼 놈은 하나로 충분하다.’
펑!
북을 세게 치는 것 같은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은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터져 버렸다.
사방으로 비산한 피는 엘렌 교수의 얼굴에도 떨어져 내렸다.
“아, 아아….”
상점가에서 자재를 붙들었던 것이 누구인지 이제야 깨달은, 두려움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 * *
“이 아이들, 보육원으로 데려가도 될까요?”
“…좋을 대로.”
에스텔은 아이들에게서 과거 슬럼에 버려졌던 자신의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약자에 대한 친절, 그리고 보살핌.
그녀의 기본적인 성정이었다.
47번 구역에 머무는 동안에도 성당의 보육원에 자주 방문하고는 했으니.
화륵.
그녀가 아이들을 진정시키는 동안 나는 성당 안과 밖을 돌아다니며 수인의 시체와 곳곳에 떨어진 살점을 불태웠다.
슬럼가이기에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 하나,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옳았다.
이런 큰 소란이 벌어졌음에도, 주변에 나타난 이가 아무도 없다고 할지라도.
“…….”
라크센의 시체 앞에 섰다.
그는 탄환에 심장이 꿰뚫리던 순간 그대로 눈을 뜨고 있었다.
딱히 죄책감 같은 건 느껴지지 않았다.
이미 목적을 위해 무수히 많은 살인을 저질러 온 내가 가지기엔 우습고도 사치스러운 감정이었다.
화륵.
허공에 들어 올려진 그가 화염에 휩싸였다.
삽시간에 검은 재로 화해 첨탑이 있던 곳에 뚫린 거대한 구멍으로 바람을 타고 날아갔다.
작품의 주인공이 죽었다.
태풍의 눈이 되어, 대륙 곳곳에 파란을 몰고 올 예정이던 남자가 죽었다.
그렇다면 태풍은 일어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속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이야기의 흐름은 뒤틀렸다.
앞으로의 미래는 결코 이전과 같이 흘러가지 않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태풍은 이미 불고 있었는지도.’
나는 과거 62번 구역에서 노파로 분한 ‘그녀’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가운데 카드는 젊은이의 현재를 나타냅니다. 태풍이군요. 그것도 태풍의 눈.」
「보통은 본인이 폭풍의 눈이란 것을 자각하지 못합니다. 폭풍 안과 밖의 시선은 각기 다르기 마련이니까요.」
「어때요. 젊은이의 현재와 과거에 조금 대입이 되나요?」
고대 마도 왕국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영생이라는 형벌을 받고 있는 그녀.
그녀의 예언은 정확하다.
직관적이지 못한 은유의 방식을 취하나, 후에는 결국 그 말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를 깨닫게 된다.
결국 태풍은 내가 이 세계에서 눈을 뜬 첫 순간부터 불어 닥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각하지 못했을 뿐, 나를 중심으로 하여 아주 거대한 규모로.
‘그리고 백진우가 빙의한 흑막을 중심으로도.’
라크센은 두 태풍 사이에 말려 사라진 셈이다.
바람을 일으키며, 새로운 태풍의 눈으로 채 자라나기 전에.
나는 하늘로 흩날리는 재를 바라보다 무너진 벽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심문을 통해 내 추측을 사실로 확인할 시간이었다.
“키히힉!”
살아남은 수인은 하나였다.
에스텔에게 제압당한 녀석으로, 양다리가 부러져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그 옆, 조금 떨어진 위치엔 엘렌 교수가 주저앉아 있었다.
경계심 어린 눈동자로 나를 주시하며, 타버린 옷 사이 드러난 피부를 어떻게든 가리려 하고 있었다.
철컥.
수인에게 다가가 녀석의 턱 밑에 총구를 겨눴다.
“단독으로 벌인 짓은 아닐 텐데. 배후를 밝혀라.”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녀석은 그저 주둥이에서 침을 질질 흘리며 광기 어린 웃음을 뱉어낼 뿐이었다.
“…….”
원하는 답을 얻어낼 수 없다는 판단에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탕!
녀석의 머리가 터지며 사방으로 살점과 피가 튀었고, 허공에서 일어난 불꽃이 그것들을 집어삼켰다.
애초에 수인 중 제대로 대화가 통하는 녀석을 찾기란 힘든 일이었다.
항상 약이나 술에 취해 있는, 본능에 따라 움직이는 야생 동물에 가까운 녀석들이니.
목이 사라진 수인의 시체를 허공에 띄워 흔적도 없이 불태워 버렸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자, 엘렌 교수가 몸을 움찔 떨었다.
나는 주변에 나부라진 나무판자와 바위들을 염동으로 끌어와 의자를 만들어 그녀 앞에 앉았다.
그녀의 피부 곳곳엔 뱀의 비늘과 유사한 문양의 작은 흉터가 있었다.
그것을 가리느라 내 쪽에 온전히 정신을 집중하지 못하는 듯 보였고, 나는 인상을 찡그리며 외투 하나를 꺼내 던졌다.
“이쪽은 대화가 조금 통했으면 좋겠군. 같은 질문이다. 누구의 사주를 받았지?”
그녀는 주섬주섬 외투로 몸을 가리며 말했다.
“…당신 정체가 뭐죠?”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는지 반항할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원하는 답이 아니었기에, 나는 리볼버를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탄환이 그녀의 귓가를 스쳐, 머릿결 일부를 관통했다.
“질문엔 질문으로 답하지 않는다.”
그 사이,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온 에스텔이 내 옆에 다가섰다.
“사주 같은 건 받지 않았어요. 정말 나 혼자 단독으로….”
탕!
탄환이 그녀의 어깨를 관통하고 그녀가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네 말이 거짓임을 판별할 재주 따위가 없다고 생각하나. 마지막 경고다. 다음으로 구멍이 뚫리는 건 이마가 될 거다.”
엘렌 교수가 입술을 질끈 물었다.
어깨를 감싸 쥐고, 이내 결심한 듯이 말했다.
“…사주를 받았어요. 견학 중 언제든 라크센을 죽이라고요. 죄책감과 갈등에 시달리며 일정 내내 따라다녔죠. 그리고 성당에서 강도와 싸우는 걸 봤을 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어요. 어쨌든 강도의 손에 죽게 만들면 내 손을 직접 쓴 건 아니니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거라고요.”
그녀가 호흡을 고르고 말했다.
“사주한 사람의 정체는 몰라요.”
에스텔을 돌아보았다.
진실이란 뜻으로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다시 엘렌 교수를 보며 말했다.
“기억하고 있는 모든 걸 말해라. 인상착의, 성별, 목소리, 머리 색, 키, 사소한 손버릇이나 말투 하나하나 전부.”
“…단 두 번 만났을 뿐이에요. 가면에 후드로 온몸을 가려 알 수 있는 건 없었어요. 목소리는 평범한 남자 목소리였고요.”
백진우가 빙의했을 흑막의 범위가 다시 한번 좁혀졌다.
나는 기본적으로 녀석이 ‘나’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 가정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 빙의한 인물은 오직 자신 혼자라 믿고 있을 거라 말이다.
‘엘렌 교수에게 주인공 살해를 사주하고 교수까지 입막음하려 했다면.’
나쁘지 않으나 허술한 점이 많다.
이쯤이면 되었으리라 생각하는, 녀석 특유의 게으르고도 나약한 성격이 반영되었으리라.
애초에 녀석은 그리 섬세한 성격이 아니었다.
이성보다는 감성적.
한 번 어떤 일에 꽂히면 주변을 보지 못한 채 앞으로만 달려가는 스타일.
쉽게 흥분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자주 보였던 녀석.
‘그러니 내 작품을 빼앗고자 절벽 위에서 노트북을 두고 그런 사투를 벌였겠지. 비바람과 함께 천둥번개가 치는 날에.’
아무리 그런 녀석일지라도, 나를 의식했다면 이보다는 철저한 계획을 세웠을 것이다.
‘제외할 수 있는 건 블루서펜트와 레드스컬의 보스 정도인가.’
양 조직의 보스는 ‘벽 바깥’의 온갖 정보를 섭렵하고 있다.
카인의 존재를 일찍이 감지했을 것이고, 지금보다는 더 확실한 움직임을 취해 왔을 것이다.
아무리 녀석이 눈치가 없다 한들.
이제껏 내가 보인 행보는 이야기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 있었으니까.
“마탑에서 강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가 먼저 접근을 해 왔어요.”
“어떤 이야기를 했지?”
“자신을 예언자라고 칭했어요. 자기는 미래를 볼 수 있고 내가 원하는 모든 걸 들어줄 수 있다고요.”
그러니 녀석은 ‘벽 바깥’의 소식을 잘 모르는 ‘벽 안쪽,’ 특히 수도의 인물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시 한번 범위를 좁혔다.
남성.
아직 바깥의 모든 정보를 수집할 수는 없는 위치.
수인을 셋밖에 보내지 않은 것을 보면, 애매한 위치의 권력을 쥐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처음에는 당연히 믿지 않았어요. 정신이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그쪽에 관해 많은 걸 알고 있었겠군. 다른 사람은 절대 알 수 없는 것들까지도.”
땅을 보고 이야기하던 그녀가 크게 놀라며 얼굴을 들어 올렸다.
“라크센을 죽이는 대가로 네 오빠를 찾아 주겠다고 했나?”
더 없이 커진 그녀의 눈동자.
그곳엔 주체할 수 없는 미소로 떨고 있는 내 모습이 비쳤다.
“그걸 어떻게….”
나는 크게 놀란 그녀의 얼굴을 보고 녀석의 존재를 확신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