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라크센 (3)
견학 일정의 마지막 날.
노을이 지는 이른 저녁.
학생들은 자율 활동 시간을 맞아 제각각 무리를 지어 호텔 주변의 상점가를 돌고 있었다.
교수들이 펼쳐 놓은 결계 탓에 일정 반경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저 학생은 오늘도 혼자네요. 아직 사회의 물이 덜 들었다는 점만 빼면 당신이랑 비슷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세계가 확고한 느낌이랄까.”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댄 에스텔이 라크센을 보며 말했다. 그녀의 말을 딱히 부정하지는 않았다.
「세상은 제 생각보다 넓네요. 모르는 것들로 가득하고요.」
떠돌이 점술사로 위장해 그와 한 차례 대화를 나눈 후로, 빙의 당하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남은 것은 그의 성향이 ‘선’으로 무사히 판가름 나느냐 지켜보는 일뿐이었다.
그때 결계를 부분적으로 파훼하고 밖으로 나가는 라크센의 모습이 보였다.
“움직이는군. 먼저 출발할 테니 거리를 두고 따라와라. 별다른 신호가 있기 전까진 상황에 개입하지 말도록.”
“알았어요.”
옥상에 여럿 설치해 놓은 이동마법을 통해 그를 추적했다.
그 와중, 그를 쫓는 이가 나뿐만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엘렌 교수.’
망토 차림의 누군가가 그를 은밀히 뒤따르고 있었다.
후드 아래 드러난 연녹색 머리로 정체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가능성은 둘이었다.
행동 구역을 이탈한 학생을 붙잡기 위해서이거나, 혹은 다른 마음을 품고 있거나.
‘답은 이미 정해졌다만, 확인해 볼 필요는 있겠지.’
나는 일단 그녀에게 아무 제지도 가하지 않고 추적을 계속했다.
그녀는 그를 쫓고, 나는 그녀와 그를 쫓았다.
걸음을 옮길수록 건물과 사람들의 옷차림은 후줄근해져 갔다.
그는 보기 드물게 충격받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벽 안쪽’에는 ‘가난’이란 개념이, 그리고 당연히도 슬럼 같은 장소는 존재하지 않으니.
엄밀히 말해 가난은 허용되지 않는다.
애초에 돈 없이는 벽 안쪽으로 ‘입국’조차 할 수 없으며 후에 언제라도 높은 세금을 감당치 못하면 추방당한다.
건물은 점점 낮아져 옥상이라 부를만한 공간은 사라졌다.
나는 지상으로 내려와 골목길을 따라 추적을 계속했다.
─이 돈은 쓰면 안 된다고 했잖아요! 제발!
─씨발, 지금 그게 중요해! 내가 돈을 잃었는데! 조금만 더 부으면 딸 수 있다고!
곳곳에서 고함과 비명이 소란스럽게 날아들었다.
깨진 가로등.
벽에 휘갈겨진 낙서.
아무렇게나 버려진 쓰레기들.
이곳의 가로등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고, 때문에 대낮과 같던 도심과 달리 모든 풍경은 노을빛 그대로 물들어 있었다.
“…….”
주홍빛 노을 아래.
그의 혼란스러운 얼굴이 드러났다.
현실 세계의 그 역시 이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
서서히 ‘자각’이 활성화될 준비를 마치고 있을 터였다.
문득 그의 걸음이 멈춰 섰다.
바로 앞 골목 안쪽으로 핏자국이 점점이 이어져 있었다.
그는 홀린 듯 핏자국을 따라갔다.
미로 같은 골목이 끝나고 낮은 언덕이 나타났다.
가운데 자리한 낡고 작은 성당.
핏자국은 그곳의 문으로 이어져 있었다.
─꺄아악!
안에서 들려온 비명에 화들짝 정신을 차린 그가 서둘러 언덕을 뛰어올랐다.
그가 성당 안으로 사라지고, 엘렌 교수가 성당 벽을 돌아 반대편으로 향했다.
나는 약간의 시간 간격을 두고 성당에 접근해 ‘점멸’로 지붕 위에 올랐다.
‘그의 성향은 이곳에서 결정 난다.’
나는 워커를 신은 발로 지붕을 이루는 벽돌 조각 하나를 밀었다.
끼릭.
드러난 틈으로 나이프를 든 괴한과 난전을 벌이고 있는 라크센의 모습이 보였다.
그의 손에는 얼음으로 만들어진 장검이 들려 있었다.
‘…완성도는 최상이군.’
라크센의 뒤로는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두 명의 성인 남녀와 벽에 기대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아이 둘이 있었다.
이야기는 간단했다.
버려진 성당에 거주하는 일가족.
부상을 입은 흉악범 하나가 조직에 쫓겨 이곳에 숨어들고, 가족을 무참히 살해한다.
현실 세계의 그가 겪었던 것과 유사한 상황.
위기의 순간 라크센이 아이들을 구하고 ‘자각’이 활성화된다.
‘약간의 갈등은 있으나 결국 성향은 ‘선’으로 결정된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야기 흐름에 문제가 없었다.
“씨발, 이건 또 웬 애송이가!”
나는 계속 안쪽 상황을 주시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투과한 형형색색의 노을이 성당 내부를 비추었다.
한쪽 팔이 떨어진 여신상이 자애로운 미소로 두 남자를 지켜보았다.
챙!
얼핏 라크센이 밀리는 것 같아 보이나 걱정할 것은 없었다.
타고난 전투 감각이 일깨워지며 결국 승자는 그가 될 것이기에.
상대의 복부에 나 있는 부상도 전투의 승패에 한몫할 터였다.
이변이 일어난 것은 그때였다.
라크센이 쥔 검이 삽시간에 흐물흐물 녹아버렸다.
침착하게 얼음 조각을 다시 생성하려 했지만, 얼음 결정은 허공에 모여들다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결국 그쪽인가.’
맨 처음 얼음이 녹았을 때, 주위에 화(火)계 원소가 비정상적으로 몰려들었던 것을 나는 놓치지 않았다.
이후의 마법 시도 역시, 원소 간의 결합에 외부의 인위적인 압력이 가해지고 있었다.
누군가 마법 사용을 방해하고 있었다.
‘건물 뒤.’
인기척이 느껴지는 곳을 향해 뛰었다.
지붕 끄트머리에 멈춰 서자, 창을 통해 내부를 보고 있는 엘렌 교수가 보였다.
끼릭.
지붕이 흔들려 난 소리에 상대가 흠칫 고개를 들었고.
파직!
나는 곧바로 전격을 생성해 쏘아 보냈다.
섬뜩한 검푸른 빛의 전류가 그녀의 급조된 방호에 부딪혀 사방으로 튀었다.
파지직!
성당 벽이 흔들리고 바닥에 흙먼지가 일었다.
작은 전류 조각들이 꿈틀대며 땅 위를 기었다.
충격의 여파로 상대의 후드는 벗겨진 채였다.
엘렌 교수를 내려다보며 나는 말했다.
“자기 학생을 죽일 생각입니까?”
한껏 당황해 보였던 그녀는 이내 평정을 가장하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그때 그…?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죠? 그리고 마법 수준이….”
파직!
나는 대답 대신 다시 한번 전격 마법을 사용했고, 그녀는 이를 악물고 방호를 펼쳤다.
나는 곧바로 「점멸」로 그녀 바로 앞에 접근해 나이프를 꺼내 휘둘렀다.
탁! 탁!
그녀는 금속 재질의 짧은 지팡이를 꺼내 내 공격에 맞섰다.
“잠깐 일단 이야기를…!”
나는 그녀의 외침에 아랑곳하지 않고 사납게 공격을 이어나갔다.
‘죽이진 않는다. 제압한다.’
상황 판단은 빠르게 이루어졌다.
그녀는 지금 나타나서는 안 될 장소에 나타나 그녀의 성향상 절대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하고 있었다.
단순히 ‘나’ 하나로 발생한 나비효과로 보기엔 이야기의 ‘뒤틀림’ 정도가 과했다.
이제까지 관측된 나로 인한 영향은 모두 부수적인 설정이나 사건들의 작은 흔들림 정도였으니까.
이야기의 주 흐름이 바뀌었다.
‘배후가 있을 가능성이 크다.’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희열을 감출 수 없었다.
배후가 될 만한 인물은 많다.
하지만 내가 아는 설정상, 지금 이 타이밍에 그녀에게 이런 행동을 사주할 인물은 없었다.
‘만약 있다면 그는 이야기의 원 흐름에서 벗어난 변칙적인 존재여야 한다.’
그리고 내 지식 상 그럴만한 존재는 단 하나밖에 없었다.
‘백진우, 녀석의 빙의 가능성.’
내가 떨치지 못하고 있던 오랜 가정. 그것이 사실이고 녀석이 작품의 주인공을 죽이려 드는 거라면.
녀석 역시 자신이 빙의한 인물의 과업을 확인했을 것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자신의 행보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세계관 내 흑막.
녀석이 빙의했을 만한 인물의 범위가 삽시간에 좁혀졌다.
“잠깐, 웃…!”
“사정이 있다면 일단 눕혀 놓고 듣도록 하지.”
쨍!
그녀가 생성해 낸 얼음 결정들이 주위에 맺혔다.
하지만 바로 눈앞의 나이프를 막아내고 있는 탓에 집중하지 못하였고, 그리 높은 수준은 되지 못했다.
‘그래도 마법의 완성 속도가 빠르다. 파훼가 불가능할 정도. 역시 세계관 내 열 손가락에 드는 재능이란 건가.’
나는 나이프에 마나를 불어 넣어 쇄도하는 얼음 결정을 모두 깨트리는 동시 그녀를 몰아붙여 나갔다.
성장 환경상 그녀 역시 이런 식의 전투에 익숙할 터나, 이쪽에 비할 바는 되지 못할 것이었다.
찌직!
나이프가 방호를 깨트리고 그녀의 팔을 스쳤다.
찢겨 나간 옷 아래, 무언가 떨어져 나간 듯한 흉터 여럿과 맹약의 징표가 보였다.
‘맹약이라, 역시.’
나는 내 가정에 한층 더 힘을 실었다.
엘렌 교수를 사주해 라크센을 죽이려 했다면, 혹은 성향이 선으로 결정되는 것을 막으려 했다면.
‘전자가 옳다. 성향이 악으로 결정되는 것도 세계 멸망 자체가 목적이 아닌 흑막의 입장에선 꺼려지는 일이니.’
녀석이 원하는 것은 라크센의 확실한 죽음.
하나 의문은 남는다.
직접 움직이지 못할 사정이 뭔지.
내 존재는 의식하지 못했는지.
왜 더 이른 시점에 주인공을 제거하려 하지 않았는지.
전투를 지속하는 동시, 수많은 의문과 추론이 머릿속을 순식간에 오갔다.
그에 대한 나름의 답 역시 여러 갈래로 삽시간에 뻗어 나갔다.
‘하지만 계획이 얕다. 나라면 엘렌 교수 하나가 아니라 반드시 추가적인 안배를….’
구구구구-
그때 내 추측을 증명하듯이 발밑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총 세 갈래의 진동.
무언가 이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었다.
“……!”
엘렌 교수 역시 그것을 느꼈는지 놀란 얼굴을 했다.
품에서 피스톨을 꺼내는 동시, 몸을 뒤로 크게 회전시켜 그녀의 복부를 걷어찼다.
허공에 몸이 뜬 그 상태에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탄환이 날아가는 그 순간.
지면이 갈라지며 조금 전까지 그녀와 내가 있던 공간으로 무언가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그 ‘무언가’는 그대로 탄환에 머리가 꿰뚫려 괴이한 비명과 함께 바닥에 나부라졌다.
두더지 머리를 한 수인이었다.
안대가 두 눈을 가리고, 양손엔 거대한 클로가 장착되어 있었다.
발밑의 진동은 멈추지 않았다.
하나는 성당 내부로, 다른 하나는 엘렌 교수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라크센과 엘렌 교수 둘 모두를 노리고 있나.’
「엘렌 교수를 지켜라. 정보를 얻기 전까지 그녀는 죽어선 안 된다.」
「알겠어요.」
통신 마법으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는 에스텔에게 음성을 전달했다.
그리고 성당 쪽으로 달려가 손 위에 소용돌이치고 있는 바람을 벽을 향해 쏘았다.
쾅!
벽이 무너지고 안쪽의 풍경이 드러났다.
라크센은 바닥에 쓰러진 흉악범의 목 끝에 얼음으로 된 검을 겨누고 있었다.
조금만 힘을 주어 내리찍는다면 상대의 숨을 끊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구구구구-
진동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또 다른 두더지 수인이 뛰쳐 오를 경로를 계산해 피스톨을 들었다.
그리고 곧 한 가지 이변을 알아차렸다.
“…….”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쓰러진 상대만을 주시하고 있는 라크센.
본래 이야기의 흐름은 그가 결국 상대를 직접 죽이지는 않고, 경찰에 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에스텔과 같이 자신의 손으로 직접 살인을 저지르는 것을 꺼리며, 이는 그의 성향이 ‘선’으로 결정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하지만 지금 그의 눈빛은 먹잇감을 노리는 포식자의 그것이었다.
‘…엘렌의 방해가 그의 감정선에 영향을 주었는가.’
그의 검이 높이 치켜 올려졌다.
그리고 그대로 하강했다.
이야기의 주인으로서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그의 성향이 지금 악으로 결정되었음을.
구구구-. 콰직!
순간 두더지 수인이 바닥을 뚫고 뛰쳐 올랐고.
쐐액!
흉악범의 숨을 끊은 라크센이 몸을 돌려 수인을 향해 본능적으로 검을 휘둘렀다.
탕!
나는 순간적인 판단을 마친 뒤 방아쇠를 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