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05화 (105/227)

#105. 라크센 (1)

차를 몰아 55번 구역의 클랙필드로 달렸다.

중간중간 사냥개들의 차가 달라붙었지만, 모두 마법에 전복되어 풍경 뒤편으로 나가떨어졌다.

“아저씨!”

목적지인 언덕 위, 프로이드의 집 앞에 도착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차 소리를 듣고 나온 레니가 총총 뛰어 달려와 허리춤에 안겼다.

뒤로 놀란 얼굴을 하고 있는 프로이드가 보였다.

“어서 오게. 연락이라도 하고 오지 그랬나! 식사라도 준비해 놓을 것을!”

그는 이내 환한 미소로 다가와 반가운 몸짓으로 내 손을 꼭 붙잡았다.

“오랜만이군. 그동안 별일은 없었나.”

“당연하네! 자네가 신경 써 준 덕에 잘 지내고 있네. 다음 달이면 레니의 치료제도 수령할 수 있고 말이야.”

그는 손을 놓고 차 쪽을 보았다.

또 다른 일행이 없는지 살피는 눈치였다.

“밀시안은 따로 일이 있어 오지 않았다. 치료는 말끔히 받았더군.”

“아, 그렇군! 환자의 추후 경과까지 살피는 게 내 일이라 말이야. 일종의 직업병이지.”

그는 기분 좋게 웃고 우리를 집 안으로 안내했다.

* * *

쨍한 불빛의 스탠드.

그 아래 나는 팔을 올려놓았다.

메스가 손목 부분의 피부를 절개하고, 혈관과 힘줄 사이 자리한 작은 기계 장치의 모습이 드러났다.

딸칵, 딸칵.

“마모도가 엄청나군. 본래 부품의 수명은 3년인데, 이 정도면 1년도 안 되어 새것으로 갈아야 할 걸세.”

“아무래도 격렬히 몸을 쓸 때가 많았지. 돈이라면 필요한 만큼 지불할 수 있다.”

“아니, 아니, 그런 말은 아닐세. 은인에게 돈을 받을 수는 없지. 그리 구하기 어려운 부품도 아니고 말이야. 아직 부품 수명이 조금 남았으니, 오늘은 헐거워진 부분을 조이고 떨어진 힘줄만 다시 연결하는 정도면 될 것 같네.”

“그렇게 하지.”

작업이 끝나고 절개되었던 부위는 다시 봉합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혼자 수술을 했던 거야?

─네. 간단한 건 저 혼자서도 할 수 있어요!

─대단하네. 재능 있는 거 아냐?

─헤헤, 아빠도 그런 말 하셨어요.

간헐적인 삐걱 소리로 보아 그네를 밀어주고 있는 듯했다.

─근데 왜 카인한테는 아저씨라고 불러? 오빠라고 안 하고.

─어…. 그건 조금 부끄러워서….

─아깐 달려가서 폭 안기더만?

─그건 너무 반가워서 순간….

바람에 희미해져 가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프로이드에게 물었다.

“마탑의 학생들이 도착했을 텐데.”

“맞네. 그렇지 않아도 자치회에서 연락이 돌았네. 학생들의 견학에 최대한 협조하고 가급적 어떤 충돌도 없도록 하라더군.”

“그렇겠지. 대다수가 상류층의 자제이니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게 없을 테니까.”

“그래서 레니에게도 며칠간은 최대한 밖에 나가지 말라 얘기했네. 아, 요즘엔 트라우마가 많이 옅어져 가까운 곳 정도는 혼자 나가 돌아다니기도 했네.”

나는 좋은 대처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봉합이 끝나고 손목을 까딱이자 전보다 확연히 움직임이 부드러워진 것이 느껴졌다.

“저녁에 돌아오지.”

“알겠네. 식사를 준비해 놓겠네. 레니가 자네가 오면 직접 요리를 해주겠다고 벼르고 있었거든.”

나는 밖으로 나가 마당을 가로질렀다.

“저도 갈게요.”

“아니, 사람들 눈에 띄니 지금은 혼자가 낫다. 쉬고 있도록 해라.”

그녀는 잠시 갈등하는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내 마법 수준이 크게 상승했고, 웬만한 수준의 적들은 나를 해할 수 없게 되었음을 깨달은 그녀였다.

나는 홀로 언덕을 따라 내려갔다.

온갖 형태로 증축된 주택과 상업건물들 사이로 진입하자 곳곳에서 ‘끼릭,’ ‘딸칵,’ ‘티딕,’ 등의 부산한 기계 소리가 들려왔다.

건물 위로 솟은 배관에선 뜨거운 증기가 피어오르고, 공구를 든 주민들이 구름다리 위를 바쁘게 지나다녔다.

“손 비는 마법사 없어? 마법사! 비행체에 마나가 떨어져서 주입해야 한다고!”

“주문하신 마강석 샘플입니다. 대금은 이쪽으로 지불해 주시면 됩니다.”

기계 소리 사이로 사람들의 고함과 발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개중엔 마탑의 학생들에 관한 대화도 있었다.

‘50명이 넘는 인원이니 눈에 띄지 않을 레야 않을 수 없겠지.’

그때 무언가 내 가슴에 날아와 툭 부딪혔다.

손바닥에 떨어진 그것을 확인하자, 여러 기계 부품으로 만들어진 작은 새였다.

새는 충전되어 있던 마나가 다 했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며 날지 못하고 있었다.

“…….”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들자 일곱 살에서 여덟 살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이 눈치를 보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 아이들이 가지고 놀던 장난감인가.’

나는 기계 새에 적당량의 마나를 불어 넣어 아이들 방향으로 날렸다.

새는 삐걱거리는 날갯짓으로 아이들을 지나 반대편으로 날았고, 아이들은 ‘와아’하는 함성을 지르며 새를 쫓아 달려갔다.

주변을 둘러본 나는 곧 그 장난감의 출처가 잡다한 마법 용품이 놓인 가판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얼마입니까?”

나는 그 앞으로 다가가 상자 안에 수북이 쌓여 있는 기계 새를 보며 말했다.

“어? 조카들 선물로 주려고? 하나에 3천 실링이네. 한 번 마나를 충전하면 3시간 정도는 거뜬하게 움직이지!”

나는 기계 새 하나를 꺼내 마나를 주입했다.

“잠깐, 사용해 보려면 일단 돈을 내고….”

우웅.

아이들의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많은 양. 거기에 마법 하나를 각인했다.

새의 머리를 위로 향한 뒤 손을 놓자, 새는 하늘을 향해 ‘발사’되었다.

푸슉!

새는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높이로 순식간에 날아올랐다.

주인은 난데없는 광경에 입을 떡 벌렸고, 나는 눈을 감고 새에 각인해 놓은 마법을 발현했다.

팟.

검기만 하던 시야에 도시의 전경이 펼쳐졌다. 기계 새의 안구 역할을 하는 렌즈에 비친 풍경이었다.

‘건물 안인가. 학생 무리는 보이지 않는데.’

팟.

전경을 다 훑기 전, 도시의 전경이 사라지고 다시 시야는 검게 변했다.

마법의 출력을 이기지 못한 기계 새가 터져 버린 모양이었다.

나는 상자에서 새를 한 마리 더 꺼내 같은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새는 내가 거리를 지나는 학생 무리를 발견할 때까지 한 마리 한 마리 줄어들었다.

하나에 3천 실링.

나쁘지 않은 수준의 외식을 한 끼 할 수 있는 금액.

푼돈은 아니나, 마나를 ‘날갯짓’이라는 효율적인 추진력으로 전환해 줄, 마정석이 내재된 보조 도구의 값으로는 나쁘지 않은 금액이었다.

애초에 일정 단위 이하의 금액은 내게 크게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기도 했다.

나는 5만 실링짜리 지폐를 꺼내 가판대 위에 올렸다.

“거스름돈은 필요 없소.”

아직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주인을 뒤로하고 나는 내가 본 위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거리에 복작거리는 행인들의 구성성분은 다양했다.

바삐 돌아다니는 주민들, 외지에서 들어온 거래처 상인들, 마법 용품을 구하러 온 용병들, 명소를 돌기 위해 방문한 관광객 등.

그 사람들 사이를 지나, 나는 교수의 인도에 따라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고 있는 학생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탑의 신입생을 상징하는 흰색 망토를 두르고 있었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히스토리아 비공정 연구소」

연구소라는 현판이 붙어 있지만, 연식 자체는 다소 있어 보이는 5층 건물이었다.

교수들과 학생들의 모습이 연구소 안으로 완전히 사라지고, 나는 건물 벽으로 다가가 창을 통해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열 수 있는 구조의 창이 아니군. 단순한 장식용인가.’

벽에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우웅.

중요 시설이 일반적으로 그러하듯,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결계가 덧씌워져 있었다.

‘물리적 공격에 대한 방어, 그리고 좌표 변경 방식의 이동마법에 대한 방해인가.’

이미 완성된 마법은 원소 간의 결합이 끝난 상태이기에 파훼하기가 힘들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마법의 원리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그에 못지않은 원소를 다루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우웅.

나는 결계를 이루는 기존 원소들 사이로 내 마나를 불어넣었다.

갈라진 땅의 틈새로 물이 스미듯, 마나는 인도에 따라 결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이쯤이면 되겠군.’

흘려 넣었던 마나의 출력을 한순간 증폭시키자 결계를 이루는 원소들의 틈이 벌어졌다.

그 사이, 나는 「점멸」을 사용해 내부로 진입한 뒤 사용했던 마나를 흩어 버렸다.

중앙 공간이 뻥 뚫려 있고, 벽을 따라 난간과 계단이 설치된 구조였다.

내가 들어온 걸 눈치챈 이는 없었고, 연속으로 점멸을 사용해 5층 난간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안녕하세요. 히스토리아 비공정 연구소의 소장을 맡고 있는 타냐라고 합니다. 마탑의 학생 여러분에게 연구소를 소개해 드릴 수 있어 영광입니다.

곳곳에 드론을 비롯한 비행마법과 관련된 마법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사이로 널찍이 난 공간에서 소장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마이크를 차고 학생들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었다.

─히스토리아 연구소는 ‘비행’과 ‘중력’ 마법을 기계 공학에 접목해 실생활에 사용할 수 있는 공학품을 생산해 내고 있습니다. 주력 제품인 드론은 경찰과 경비 업체에 주로 납품되며….

작은 새들처럼 모여 선 50여 명의 학생 주위로 5명의 교수가 진을 치고 있었다.

로브의 후드를 걸친 이들의 얼굴 확인할 수 없었지만, 보지 않아도 누구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중요한 에피소드가 벌어지는 타이밍인 만큼, 등장인물을 내가 모두 세세히 설정해 놓았었기에.

정확히 말하면 원작의 2화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라크센에 빙의한 주인공.

하나 자신을 자각하지 못하고 지내는 반년이 요약된 것이 1화이기에.

‘그리고 이틀 뒤, 라크센은 자신이 빙의자란 사실을 자각한다.’

그의 가치관은 현재 백지와 같은 상태이며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확실하게 잡혀 있지 않다.

클랙필드에서 견학 중 호기심에 무리에서 떨어져 슬럼 구역으로 향하게 되고, 그곳에서 한 가족이 강도에게 무참히 살해당하는 현장을 마주한다.

바로 현실 세계의 자신이 겪었던 것과 유사한 현장을.

이때 ‘자각’ 특성이 활성화되고 100퍼센트로 고정되어 있던 동기화가 풀리며 서서히 현실 세계의 기억이 밀려닥친다.

‘현실 세계의 그는 본디 세상에 대한 증오로 가득했던 인물.’

일가족 살인사건의 피해자이자 유일한 생존자.

집안에 남은 막대한 빚과 자신을 방송 소재로만 생각하는 매스컴.

어딜 가든 따라붙는 동정, 혹은 불쾌감 어린 시선.

하나 어디에서도 제대로 내밀어 주지 않던 도움의 손길.

그는 생각하곤 했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런 무정한 세상 따위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고.

‘자각’이 활성화되고, 살인 현장을 마주한 그는 순간 이 세계도 현실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이 세계를 구원하는 자가 될지, 멸망시키는 자가 될지 갈등한다.

하나 선과 악은 한 끗 차이.

강도에게 살해당할 위기에 처해 있는 두 아이에게서 이미 죽은 자신의 동생들을 겹쳐 보고, 결국 그의 성향은 ‘선’으로 결정된다.

‘세계의 구원’이라는 과업을 받아 마탑을 자퇴하고 대륙을 떠돌게 된다.

나는 학생들 사이에서 라크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로브의 색과 같이, 백발에 백안을 하고 있는 공허에 찬 표정의 소년이었다.

학생들은 소장의 안내에 따라 실내를 이동했다.

소장의 말을 경청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따분하다는 듯 잡담을 나누는 학생들도 있었다.

라크센은 무리 끝 홀로였지만, 그 풍경은 어쩐지 그가 따돌림당한다기보단, 그가 동기 전체를 따돌린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었다.

소장은 꽤나 큰 부피의 설치물 앞에 서 뿌듯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쪽은 연구소 초창기부터 저희가 추진해 온 프로젝트의 현재 도착점입니다.

대형트럭만 한 크기의 설치물엔 날개와 바퀴가 달려 있었다.

앞쪽에 난 유리창엔 조종석으로 보이는 공간이 있었고, 뒤로는 수십 명 정도의 승객들이 탑승할 수 있는 공간이 보였다.

─‘프로젝트 투 더 스카이’입니다. 언젠가 인간이 탈것을 타고 하늘을 날 수 있는 날이 온다면, 그 선두에는 저희 히스토리아 연구소가 있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모두가 감탄하는 분위기에서,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물었다.

─비행마법은 대상의 무게를 줄이는 ‘경량화’ 마법과 위치를 옮기는 ‘염동’ 마법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하지만 현재까지 발견된 마법 공식으로는 차 몇 대를 잠깐 들어 올려 옮기는 것 정도가 한계라고 알고 있어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대마법사라고 해도 이런 쇳덩이를 장시간 띄워 움직이는 건 불가능해요.

─학생이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겠어요. 저희가 제품을 제작하는 데 물론 마법의 도움을 받긴 해요. 하지만 마법의 역할은 말 그대로 ‘보조’일 뿐이라 그보다는 기계 공학 그 자체로 보면….

─그래서 이 ‘탈 것’은 사람을 얼마나 태워 얼마만큼의 높이까지 올라갈 수 있나요?

장내의 모두가 숨을 죽였다.

교수들은 돌발 질문이 예의에 어긋날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불편한 눈치였고, 학생들은 질문에 대한 답이 궁금한 분위기였다.

소장은 당황한 눈치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최근 기록으로는 두 명의 조종사가 탑승해 25미터 상공에서 5분 24초간의 비행을 마쳤습니다.

학생들 사이 곳곳에서 ‘풉’ 하는 웃음이 터져 나왔고 소장의 얼굴은 붉게 물들었다.

아예 성과가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비행 시대의 선봉에 서겠다고 말을 꺼냈던 것 치고는 다소 초라한 성적이었다.

─기계 공학이 그럼 그렇지.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마법이라고들 하잖아.

또한, 비웃음에는 소장의 나이가 이십 대 후반 정도로 직위에 비해 상당히 어려 그에 대한 무시도 내포되어 있었다.

웅성거림엔 점차 도를 넘어선 내용이 섞여들었고, 분위기는 소란스러워졌다.

기계 공학을 내려치는 학생들의 말 자체엔 동감이 가는지 교수들은 설렁대며 학생들에게 주의를 줄 뿐 분위기를 수습할 뜻을 비치지 않았다.

라크센 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예상대로 학생들 사이를 천천히 지나 앞으로 나오고 있는 그가 보였다.

‘그가 학생들의 인성과 교수들의 방관을 들먹여 소란이 일어날 타이밍.’

나는 그의 모든 동작 하나하나를 주시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는 명확했다.

그의 성향이 ‘선’으로 결정된다면 걱정할 것은 없다.

그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 대륙의 범죄를 소탕하러 다닐 것이고, 그것은 내 과업에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나로 인한 나비효과가 종종 관측되었긴 하지만, 이야기의 주된 흐름과 설정은 변하지 않았다.

분명 그의 성향은 ‘선’으로 결정 날 것이다.

하지만 만에 하나.

정말 만에 하나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해 그의 성향이 ‘악’으로 결정 난다면.

그때 내가 해야 할 일 역시 명확했다.

‘내 손으로 직접 죽인다. 더 큰 악으로 자라나기 전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