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03화 (103/227)

#103. 뱀이 기는 거리 (6)

자비르 경위는 몸을 날려 구슬을 낚아챘다.

쿠당탕! 쨍!

몸에 부딪힌 수레가 넘어지며 식기와 쟁반이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구슬이 멀쩡한 걸 확인한 뒤 황급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케, 케이퍼!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일단 제압해!”

“이 미친 새끼들이!”

대원들이 있는 다른 테이블에서도 같은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테이블이 반으로 갈라지고, 식기가 깨지고, 음식 파편이 이리저리 튀었다.

홀에 있던 직원들의 것을 포함해, 곳곳에서 비명과 고함이 울렸다.

“꺄아아악!”

아비규환과 같은 상황이었다.

그녀는 품 안에 구슬을 넣고 격전을 벌이고 있는 폴라 경위와 자비르 경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챙!

그녀의 검이 다른 두 수사관의 검로 사이에 정확히 얽혀들었다.

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는 한 번이었으나 폴라 경위와 비셔스 경사 두 사람이 한 번에 떨어져 서로 거리를 벌렸다.

그리고 자비르 경위 쪽을 돌아보며 외쳤다.

“제르비아! 너도 이 자식이 마음에 안 들었잖아! 기사학교에서 너를 가장 심하게 괴롭힌 게 이 새끼였다고!”

“이 개 같은 년들! 자꾸 나를 그런 경멸하는 눈빛으로 보지 마!”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으득 이를 갈더니 다시 한번 맞붙었다.

방어를 도외시 한, 오직 상대를 죽이겠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공격들.

자비르 경위가 사이에 끼어 최대한 공격을 막았으나 양측이 상처를 하나도 입지 않도록 하는 일은 힘들었다.

“크악!”

다른 곳에서도 부상자가 속출하고 있었다.

‘방법이 필요해….’

마나회로가 굳어 가는 듯 약에 취한 이들의 움직임은 굼떠져 가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너무 느렸다.

또한 증상이 나타나는 것은 자신 역시 마찬가지로, 회로 속의 마나가 뻣뻣해지는 것과 동시에 주변 모든 것을 향한 적대감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체불명의 약물이기에 그 지속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다.

서로를 공격하는 대원들 사이를 쉴 새 없이 막아서면서, 그녀는 점점 본능에 몸을 맡기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째깍. 째깍. 띵.

그때 홀 한쪽 벽면에 있던 벽시계가 정오를 알리며 제 몸을 울렸다.

순간 정신이 번쩍 들고, 구슬에서 흘러나왔던 카인의 목소리가 다시 한번 머릿속을 울렸다.

「시계탑. 10분 뒤까지 기다리지.」

있는 힘껏 혀를 깨물자 아릿한 피 맛과 함께 약 성분이 달아나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이 아니면 카인을 조우할 기회가 없어.’

그녀는 짧은 시간 수없이 갈등했다.

이내 결심을 굳힌 듯 아직 정신이 멀쩡한 부관 헤롤드를 향해 외쳤다.

“헤롤드! 수습을 부탁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녀는 홀의 출입구를 향해 달렸다.

도중에 날아드는 수많은 검을 미끄러지듯이 피해 문을 열고, 통로를 지나 거리로 나갔다.

시계탑.

고개를 들자 높이 솟은 탑 꼭대기, 정오를 가리키고 있는 시계가 보였다.

그녀는 탑을 향해 곧장 뛰기 시작했다.

거리가 그리 멀지 않았고, 지나는 사람이 많아 바이크보다는 차라리 이쪽이 더 빠르다는 판단이었다.

하아. 하아.

자신 정도의 마나유저가 고작 이 정도의 전력 질주로 지칠 리 없을 텐데도, 그녀는 왜인지 숨이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지금 자신이 느끼고 있는 감정의 정체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희열감? 분노?

자신이 전과는 달라졌음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

그도 아니면 또다시 녀석에게 놀아난 데서 오는 무력감?

성분을 알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 속에 그녀는 시계탑 앞에 도착했다.

본래 잠겨 있어야 할 자물쇠는 풀린 채로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문을 열고 곧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끼릭. 끼릭.

중앙을 관통하는 거대한 기둥은 최상층의 시계와 연결되어 있어, 곳곳에 맞물린 톱니바퀴와 함께 마찰음을 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벽 쪽에 난 나선계단을 따라 뛰었다.

익숙한 장소였다.

익숙한 소리였으며.

익숙한 냄새였다.

과거, 카인과 이곳에서 있었던 일이 그녀의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있었다.

‘역시 이 모두 녀석이 꾸민 짓….’

마침내 최상층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벽면에 가득 찬 톱니바퀴를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벽면에 크게 뚫린 공간 앞, 당장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위치에서 도시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마주할 수 있었다.

“…아무도 오지 못할 줄 알았는데. 예상외군.”

남자가 천천히 몸을 돌려 얼굴을 드러냈을 때도, 그녀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놀라지 않았다.

다만 검을 빼어 들어 언제든 공격이 가능한 자세를 취할 뿐이었다.

“이 모두 네가 꾸민 짓이겠지, 카인.”

그녀의 검 끝이 카인을 겨눴다.

그의 등 뒤에 난 거대한 구멍을 통해 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새들이 푸득 날아오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대체 어디 있다 나타난 거지?”

“난 너희 곁에 있었다. 수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줄곧.”

카인이 손가락을 튕겨 날린 명함이 제르비아의 발치에 떨어졌다.

그곳에 쓰인 ‘제이슨 바이서’라는 이름을 본 순간 그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불가능해.”

“가능하다. 현실엔 네가 학교에서 배운 이론만으론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 제르비아.”

“그런 말로 나를―!”

“묻지, 제르비아. 이곳에 나타났다는 말은 내 경고를 무시했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어느새 품에 들어갔다 나온 그의 손에는 작은 유골함이 들려 있었다.

검을 쥔 그녀의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팟!

순간 제르비아의 모습이 자리에서 사라지고.

탕!

그와 동시에 카인은 피스톨을 꺼내 쏘았다.

그녀는 검으로 탄환을 튕겨내며 그대로 카인을 베었다.

“의외군. 그래도 조금은 망설일 줄 알았는데.”

벤 자리에 카인은 없었으며 목소리는 뒤에서 들려왔다.

몸을 돌려 그대로 검을 그었지만, 이번에도 그는 자리에서 사라져 다른 곳에 모습을 드러내 있었다.

“제국의 경찰은 범죄자의 협박 따위에 굴하지 않는다!”

팟!

그녀는 곧바로 카인을 향해 몸을 날렸고, 몇 차례 더 같은 상황이 연출되었다.

햇살이 비치는 실내엔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가 함께 제르비아의 분노에 찬 발소리, 그리고 검이 매섭게 허공을 찢어 베는 소리가 울렸다.

정말 유골함이 부서지는 것을 불사하고 달려드는 그녀의 움직임에, 카인의 눈가엔 이채가 어렸다.

“언제까지 그렇게 도망만 다닐 생각이지! 비겁한 자식!”

“비겁하다니, 누가 비겁하다는 거지?”

쐐액!

“음식에 약을 넣다니, 그런 뒷골목의 잡배들도 안 할 짓을!”

“뭔가 오해를 하고 있나 보군. 음식에 약은 넣은 건 그들이다.”

바닥을 박차려던 제르비아의 다음 동작이 순간 멈칫했다.

“그들에게 약을 준 건 나다. 하지만 결국 선택을 내린 건 그들이다. 난 그들이 자신의 무의식 속 욕망에 충실하도록 조금 도움을 주었을 뿐이지.”

“헛소리하지 마라.”

“그들은 내가 준 각성제가 액셀러레이터라고 알고 있었지. 알다시피 무향이지만 액체에 용해되었을 때 회색빛을 띠지. 식당 조리실에서 물병에 약을 탔을 때 무색을 띠는 것을 보고 약이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르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아차릴 기회가 있었을 거다. 부작용 역시, 단순히 마나운용에 제약을 받고, 고양감이 생성되는 정도로 그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도 예측할 수 있었지.”

“헛소리…!”

“정신적으로 피로하긴 했겠지만 두 수사관이 그 정도 색의 차이를 분간해내지 못하진 않았을 거다. 그들은 선택을 내린 거다. 약을 통해 상대를 무력화하고 공적을 독차지하기로. 순간 망설였을지는 모르겠지만, 결국 내린 선택은 그러했지.”

“입 닥쳐!”

제르비아는 분에 찬 호흡으로 씩씩거렸다.

분명 여러 번 당했던 수법임에도, 머릿속을 어지럽히려는 말임을 뻔히 알면서도 말려들 수밖에 없었다.

“조리실엔 CCTV가 설치되어 있다. 나름 사각지대를 통해 움직였지만, 그 둘이 눈치채지 못할만한 곳에도 설치가 되어 있지. 돌아가면 확인해 볼 수 있을 거다.”

“내 동료들이, 네놈들 범죄자처럼 협잡 짓을 벌였다는 말을 믿을 것 같나?”

카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제르비아, 그러는 너도 동료들을 버리고 공을 독차지하려 홀로 이곳에 오지 않았나? 식당엔 지금쯤 사상자가 속출하고 있겠지. 네가 남았다면 몇 명쯤은 더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제르비아는 순간 누군가 가슴을 세게 내리친 것만 같은 기분을 느꼈다.

“아니, 나는 너 같은 범죄자를 잡으려….”

“공을 독차지하겠다는 마음이, 네 무의식 속에 단 1퍼센트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나?”

말려들면 안 된다.

이것 또한 녀석의 수작일 뿐이다.

“여전히 말과 행동이 맞지 않아. 너는 모순 덩어리다.”

휙!

순간 그녀를 향해 유골함이 던져졌다.

전혀 예상치 못했던 카인의 행동에 그녀는 순간 당황하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날아드는 탄환에 반사적으로 유골함을 품에 감싸며 등을 돌렸다.

쾅!

방어막에 부딪힌 탄환이 작은 폭발을 일으켰고, 그 여파로 벽과 천장에서 돌조각들이 떨어져 내렸다.

그녀의 호흡은 점점 가빠져 갔다.

이대로 가면 심장이 터져 버릴지도 모른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래. 애써 아닌 척 연기하지만, 결국 혈육의 유골함을 지키고 싶어하지. 그게 네 본심이다.”

아니, 그렇지 않다.

이미 떠난 이의 잔재 따윈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그런 어설픈 마음가짐으론 나를 죽일 수 없다고 말했을 텐데.”

아니, 나는 너를 죽인다.

그래야만 공허하던 내 삶의 의미가 채워질 수 있으니까.

그녀는 유골함을 든 손을 오른편 계단 난간 너머 허공으로 뻗었다.

카인을 응시하며 그대로 손을 놓아 버렸다.

한참 뒤 아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쨍!

그녀는 영혼이 빠져나간 사람 같은 눈동자를 한 채 읊조리듯 말했다.

“카인, 이 자리에서 너를 즉결처분하겠다.”

카인의 눈동자에 이채가 어렸으나 곧 사라졌다.

마치 모든 일은 자신의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듯이.

“…….”

그녀의 눈동자는 고요하기 그지없었다.

마치 한 차례의 거센 폭풍이 그녀의 불필요한 감정을 모두 걷어낸 것 같았다.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얼핏 ‘무감정’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카인은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그저 한없이 정제되어 육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분노란 걸.

그 증거로 지금 그녀에게선 피부가 에일 정도의 살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예상외군. 엄연히 내가 유도했던 상황이긴 하나.’

혈육의 유골함을 스스로 깨트렸다.

그것은 그녀가 마음에 박혀 있던 말뚝을 뽑아 버리고 정신적으로 한 단계 성장했음을 의미했다.

본래 원작 후반부 다른 인물, 다른 방식에 의해 이뤄질 일이 앞당겨진 상황이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그녀가 조연으로서 가지고 있던 마나회로의 ‘성장 한계’가 해제되어 새로운 천장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녀의 정신이 무뎌지고 단단해져, 후에 마주칠 거대하고도 불편한 진실을 견딜 수 있는 최소 조건이 만족 되었다는 것.

‘가족이란 요소가 그녀의 발목을 잡는 일은 이제 일어나지 않겠지. 정말 특수한 상황이 아니고서는.’

탕!

그녀가 바닥을 박참과 동시에, 총성과 같은 소리가 탑 내부를 울렸다.

순간 사라졌던 그녀의 신형이 카인 앞에 나타났다.

쐐액!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검이 휘둘러졌다.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동작이었다.

카인이 사라진 자리엔 잘려나간 옷자락이 휘날렸다.

“이제야 조금 진심이 보이는군.”

그녀는 카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바로 검의 방향을 바꿔 공격을 이어 나갔다.

챙!

무시무시한 공격속도에 시계탑 내부 곳곳에 각인해 놓은 이동마법을 발동시킬 타이밍을 놓치는 때가 많아지고 있었다.

피하지 못한 공격은 총을 꺼내 마나를 둘러막아 냈으나, 모두 몇 번의 방어 직후 부서져 버렸다.

그때마다 새로운 총을 꺼내 방어에 사용하고, 기회가 될 때마다 방아쇠를 당겼다.

챙! 끼기긱!

한 차례 공격을 방어한 피스톨이 검신을 타고 쭉 미끄러져 내렸다.

직후 그녀의 얼굴 바로 앞에서 쏘아졌다.

탕!

탄환은 그녀의 귀 옆을 지나 반대편 벽을 향해 날았다.

콰드득!

두꺼운 벽을 관통해 동전 몇 개를 합친 크기의 바람구멍을 남기고 사라졌다.

단 1밀리미터만 가까웠어도 날아가는 건 그녀의 귀였겠지만, 카인은 그게 전혀 아까운 공격이 아니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공격을 멀찍이 피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총알의 궤도를 읽고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냈을 뿐이었다.

계속해 공방이 오갔다.

실내에 각인해 놓은 이동마법의 숫자가 급격히 소진되고 있었다.

두 사람이 보이는 감정은 기이했다.

자잘한 상처가 늘어감에도 카인은 여전히 여유로웠고, 상대를 제대로 몰아붙이고 있음에도 제르비아는 무표정했다.

“납골당에서 마주쳤을 때, 그리고 아까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군.”

카인의 그 말에 그녀의 눈동자가 순간 흔들렸다.

움직임 역시 흔들려, 탄환 한 발이 어깨를 스쳐 지나가 찢긴 옷자락과 함께 약간의 피가 튀었다.

하나 지금 그녀가 통각을 느끼는 부위는 어깨가 아닌 가슴이었다.

둔탁하고 무거운 무언가가 가슴 깊은 곳을 꾹 누른 것 같았다.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어. 칭찬해 줘야겠네.」

과거 오빠가 해 주곤 했던 칭찬.

왜 녀석의 목소리서 그 말이 겹쳐 들린 걸까.

‘아니, 어찌 되었든 상관없어.’

범죄를 박멸하겠다는 목표를 위해서, 앞길을 가로막는 비효율적인 요소는 모두 배제하기로 결심을 굳히지 않았나.

그녀가 다시 맹렬히 검을 휘두름에 따라 카인의 몸은 점점 벽에 난 거대한 창 쪽으로 밀려났다.

한 발짝만 더 뒤로 물러서면 바깥으로 추락할 그 순간.

부웅!

천장 높이, 탑의 기둥 상단 돌출부에서 두 개의 인영이 떨어져 내렸다.

챙!

두 개의 날붙이가 카인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오던 검과 부딪히고, 역으로 검의 주인을 반대 방향으로 몰아붙여 갔다.

“위험했습니다.”

“진짜, 꼭 이렇게 아슬아슬한 순간에 신호를 줘야 해요?”

에스텔과 밀시안이었다.

형형색색의 마나를 품은 무기들이 제 주인들의 의지에 따라 어지러이 몸을 꺾고, 부딪히고, 얽혀나갔다.

챙! 챙! 챙!

초반 전투의 우세는 제르비아가 점하고 있었으나, 카인의 강화마법이 에스텔과 밀시안 두 사람에게 더해지며 전투는 호각을 이뤄갔다.

실내의 모두가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는 순간 치명상을 입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에스텔 사제. 그리고 저자는 카인의 부하. 데이터베이스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어.’

사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은 없었다. 목표에 방해가 되는, 베어 넘길 대상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그런 생각과 달리, 움직임은 점점 속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체내에 남아 있는 각성제 성분이 혈관을 타고 퍼지며 회로의 마나를 굳게 만들고 있었다.

푹!

격렬한 전투가 지속되던 어느 순간 밀시안의 검이 그녀의 방어막을 꿰뚫는 동시 어깨를 관통했다.

스륵.

검이 어깨에서 빠져나가자 그녀의 신형이 무너져 내렸다.

그녀는 바닥에 자신의 검을 박아 몸이 완전히 쓰러지는 것은 막았다.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있는 상태였다.

밀시안의 검이 그녀의 목 밑에 드리워졌다.

사실 위협을 하지 않아도 그녀는 더 이상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회로는 딱딱히 굳고 운용 가능한 마나는 모두 소진했다. 체력 역시 한계에 달해 있는 상태였다.

그것은 자리에 있는 모두가 마찬가지로, 한동안 거친 호흡 소리만이 오갔다.

오직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던 카인만이 여유가 있었다.

그가 다가서 무릎 꿇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

“…….”

여기까지인가.

결국 녀석을 이기지 못했는가.

제르비아는 몽롱한 정신으로 생각했다.

「죽여라. 죽음 따윈 두렵지 않다.」

막 경찰이 되어 현장에 투입되었을 때, 녀석에게 사로잡혔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어쩌면 녀석은 자신의 정신을 흔들기 위해 접선 장소로 이 탑을 골랐는지도 몰랐다.

아니, 분명히 그럴 것이었다.

그게 녀석이니까.

‘또 같은 말을 뱉어야 하겠지.’

카인, 녀석을 잡지 못하고 죽는다.

분명 후회와 미련, 분노가 남지만 과거와 달리 후련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다.

동료와 가족, 자신을 나약하게 만드는 모든 요소를 뒤로하고 오직 녀석의 숨만을 끊기 위해 휘둘렀다.

가슴 속에 쌓여 있던 끈적한 응어리들을 모두 쏟아 낸 기분이었다.

“…….”

녀석의 눈은 고요하기만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바라보는 상대를 빨아들여 정신을 흐트러트리는 눈동자였다.

제르비아는 눈을 감았다.

이제는 저 눈동자를 마주할 일도 없을 터였다.

목을 베려면 베라는 듯, 그녀는 턱 끝을 살짝 들어 올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목에는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제르비아, 이 도시의 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카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눈을 뜨자, 거대한 창문 앞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카인의 모습이 보였다.

거리를 어떻게 생각하느냐니.

여러 소리가 희미하게 잔잔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아이들의 뜀박질과 웃음소리.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고요히 굴러가는 차량의 바퀴 소리.

평화롭다.

그렇게 평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도심에 위치한 거리에만 적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외곽을 포함한 도시 전 구역에 해당하는 이야기였다.

기능을 하지 못하는 구역 경찰을 대신해, 사설 병력이 치안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대개 사설 경비를 고용해도 자신의 시설 주위에만 배치할 뿐이다.

아무런 보수 없이 도시 전역을 돌아다니며 치안을 유지하는 것은 다른 구역에서는 절대 보지 못하는 풍경이었다.

‘녀석 같은 범죄자가 왜 그런 짓을 하는지는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녀는 힘을 끌어모아 대답했다.

“…평화롭다. 내가 돌아본 그 어느 도시의 거리보다도.”

녀석에게 무언가 꿍꿍이가 있을지언정, 눈앞에 보이는 ‘사실’을 두고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정적이 흘렀다.

제르비아가 무어라 말을 뱉으려 할 때, 한 타이밍 앞서 카인이 말했다.

“대륙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풍경이 당연한 세계를 만들고 싶은 생각 없나?”

“…뭐?”

카인이 몸을 돌려, 제르비아의 눈동자를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

“손을 잡지, 제르비아. 내가 너를 경찰이란 조직을 쥐고 흔들 수 있는 위치에 올려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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