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102화 (102/227)

#102. 뱀이 기는 거리 (5)

연회장이라고 불러도 될 만한 넓은 식당 홀에 수십 명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대원들은 각 대 별로 다른 테이블에, 세 명의 대장은 한 테이블에 서로를 마주 보며 앉아 있었다.

“…….”

“…….”

“…….”

피곤한 기색으로 팔짱을 낀 채.

테이블 가운데 놓인 통신 구슬을 노려보며.

‘젠장, 어쩌다 상황이 이렇게 된 거지.’

비셔스 경사는 이를 부득 갈며 며칠 전 거리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떠올렸다.

「비셔스 경사, 카인은 언제 만날 생각이죠?」

그 말에 자신은 필요 이상으로 당황해 버렸다.

「카인이라고요?」

「이미 알고 계신 게 있을 텐데요.」

「무슨 소리를 하시는지 도무지 모르겠군요.」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자 그녀가 따라붙었다.

꼬리를 밟혔나?

내가 실수한 부분이 있던가.

대체 뭘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무언가 확신을 가지고 몰아붙이는 그녀의 태도에 그 두근거림은 더 거세질 수밖에 없었다.

「그만하십쇼! 대체 뭐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팔을 크게 휘둘러 달라붙는 그녀를 떨쳐내려 했다.

애초에 해를 입힐 생각도 아니었지만, 너무도 쉽게 그 동작을 피해 내는 그녀를 보고 순간 욱하는 감정이 들었다.

실력 차이.

기사학교 시절부터 줄곧 느껴오던 것이었다.

「허? 지금 나를 때리려고 한 거예요?」

묵혔던 감정이 터져 나왔고, 그것은 그녀도 마찬가지로 보였다.

툭툭 밀치는 것으로 시작된 몸싸움은 점차 격해지기 시작했고, 어느 순간 외투 안 주머니에 있던 물건들이 떨어졌다.

액셀러레이터가 담긴 비닐 백과 통신 마법이 걸린 구슬.

재빨리 주우려 했지만 그녀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스릉.

그녀는 물건을 챙겨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뒤 검을 빼어 이쪽을 겨눴다.

「이게 뭔지 해명해야 할 거예요.」

목소리에 묻어 나오는 냉기와 싸늘히 식어 내린 표정. 살아 있는 얼음덩어리를 대하는 것 같았다.

순간 돋는 소름과 동시에 뇌리에 적신호가 울렸다.

하지만 두 물건을 다시 빼앗아야 한다는 생각이 위험 신호를 덮었고, 순간 이성이 마비되었다.

「제 물건 내놓으십시오!」

「비셔스 경사! 이 각성제로 대체 무엇을 하려고 했던 거죠!」

자신 역시 검을 빼 들었고, 수차례 검이 맞붙었다.

허공에 순식간에 스파크가 튀겨 나가기 시작했다.

챙!

「지난 수사에서 압수한 물건을 아직 가지고 있던 것뿐입니다!」

「하!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심장이 세게 뛰어 숨을 쉬기 힘들었다.

각성제 쪽은 그녀가 어떻게 받아들이든 둘러대는 것이 가능했다.

하나 구슬 쪽은 검사를 하면 곧 통신 마법이 걸려 있다는 것이 확인될 테고, 그녀 정도의 머리라면 그것을 카인이 나타나는 시각과 연관 지을지도 몰랐다.

입술을 질끈 물었다.

무력으론 그녀를 이길 수 없다.

대체 어떻게 이 상황을 돌파해야 한단 말인가.

「두 분 다 진정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검과 검 사이에 검은 장우산의 끝부분이 나타나 있었다.

고개를 들자 제이슨, 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 문이 열려 있는 리무진이 보였다.

「시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조심스럽게 열린 창문이나 멀찍이 떨어진 골목, 겁에 질린 얼굴로 이쪽을 보고 있는 시민들이 보였다.

툭. 투둑.

차가운 빗방울이 뺨에 떨어지자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민중을 수호하는 검이라는 자가 도리어 불안감을 주고 있다니.

게다가 이런 일반인이 접근하는 것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니, 대체 얼마나 싸움에 몰두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폴라 경위 역시, 부끄러운 얼굴을 보니 자신이 느끼는 것과 감정이 크게 다른 것 같지 않았다.

「자리를 옮겨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펄럭.

검은 장우산이 펼쳐졌다.

호텔 응접실에서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폴라 경위는 여전히 경계 태세였고, 테이블 위로는 무거운 침묵만 흘렀다.

각성제와 통신 구슬이 여전히 그녀에게 있었기에 비셔스 경사는 무어라 먼저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제이슨 대표님. 이 쪽지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릴게요.」

폴라 경위가 테이블 위에 종잇조각 하나를 올려놓았다.

별다른 설명이 없었음에도, 그 자리의 모두는 그것이 무엇인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제이슨과 비셔스, 두 사람이 떨떠름한 얼굴을 할 뿐 아무 반응이 없자 그녀는 계속 말했다.

「저는 이 날짜가 제이슨 대표님과 카인의 접선일이라고 생각해요. 비셔스 경사는 정확한 장소와 시간까지 알고 있으리라 생각하고요. 여기 두 분간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든, 그렇지 않든.」

비셔스 경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할 말을 잃고 입술만 벙긋거릴 때 제이슨이 그를 보며 말했다.

「여기선 솔직히 말씀드리는 것이 맞는 것 같습니다, 경사님.」

그리고 비셔스 경사가 반응할 틈도 없이 폴라 경위를 향해 말했다.

「먼저 경위님의 추리는 정확합니다. 17일에 저는 카인과 만나 아직 매각되지 않은 건물과 토지에 대한 거래를 진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기 비셔스 경사가 그 사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셨습니다.」

「지금 무슨 말을…!」

「하지만 비셔스 경사가 그 사실을 다른 두 수사관님께 숨긴 것은 제 요청에 의해서, 그리고 전략적 판단에 의해서입니다.」

폴라 경위가 검 끝을 겨누어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비셔스 경사를 막았다.

「계속하세요.」

「예. 저의 경우 모든 수사관이 개입할 경우 거래가 끝나기 전 카인이 붙잡힐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큰 이득을 볼 기회를 놓치는 일이지요. 이것을 숨긴 점에 대해선 사과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비셔스 경사의 경우에도 역시.」

제이슨의 시선이 비셔스 경사에게 향했다.

「잠복 인원이 많을수록 카인이 눈치를 챌 가능성이 커질 거라 판단했습니다. 단독으로 작전을 진행하기를 원했지요.」

비셔스 경사는 제이슨이 카인과의 접선 일정을 밝혔다는 사실에 화가 치밀어 오르는 한편, 마음 한구석으로는 안도감이 드는 것을 느꼈다.

당연한 일이지만 다행스럽게도, 뒤가 켕기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녀석이 카인의 부하이니, 후에 신분 세탁을 도와주겠다느니 하는 뒷거래와 관련된 것들.

폴라 경위가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나, 적어도 논리적인 부분에서 책을 잡힐 부분은 없었다.

어쩌면 지금 사실을 밝혀 그녀가 더 진실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선을 긋는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더 옳은 판단지도 몰랐다.

「대표님은 후에 관련 조항으로 처벌을 받으실 거예요. 그리고 비셔스 경사, 대표님이 먼저 부탁했다고는 하지만 단서를 은닉한 건 당신이 가진 열등감 때문인 면이 크겠죠.」

참자. 참아야 한다.

「그래서 그런 일을 벌인 건가요? 공로를 독차지하고 싶어서?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피해를 주다니? 무엇을?

수사 상황을 공유하지 않은 건 나뿐만이 아닐 텐데?

「수사가 종료되고 본부로 돌아가면 징계를 피하지 못할 거예요. 제가 전부 낱낱이 보고를 올릴 테니까. 그런 비겁한 수를 쓰다니 당신이란 인간에게 크게 실망했어요.」

지금 내게 화를 내는 건가?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다른 누구도 아니라 바로 나인데?

「닥쳐!」

비셔스 경사는 자신에게 향한 검을 거칠게 밀어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등에서 피가 줄줄 흘렀으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그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으며, 검을 꺼내 폴라 경위에게 겨눴다.

「열등감이라니. 너 따위가, 너 따위가 뭘 안다고!」

폴라 경위는 기가 찰 뿐이었다.

동료에게 약을 먹이려던 이가 미안함도 모른 채 적반하장으로 외치고 있었다.

똑똑.

다시 한번 싸움이 벌어질 것 같은 분위기에, 노크가 울렸다.

폴라 경위가 이끄는 대의 대원이 구슬을 가지고 들어왔다.

「분석이 끝났습니다. 일회성 통신 마법이 각인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그는 응접실에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 흠칫 놀랬다가 천에 둘러싸인 구슬을 테이블 위에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갔다.

「일회성 통신마법. 카인이 자주 쓰던 수법이네요. 당일 이 구슬을 통해 정확한 장소와 시간을 고지해 오겠죠.」

비셔스 경사는 으득하고 이를 갈았다.

「폴라, 내가 입수한 물건이야. 정보를 공유할 생각 따위 없으니까 당장 내놔.」

「하, 교양 없기는. 기사학교를 졸업한 지가 언제인데. 비셔스 경사, 존칭을 제대로 사용하세요. 여긴 현장이고 우린 엄연한 계급이 있는 경찰이에요.」

「당장 내놔. 죽여 버리기 전에.」

폴라 경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죽인다는 말에 반응한 듯싶었다.

「무례하고 무식한 인간. 수작을 부려도 어떻게든 티가 날 수밖에 없지. 내가 지금 죽지 않고 살아 있어 유감이겠죠.」

공기가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터질 것 같은 긴장감 속에 문득 제이슨이 말했다.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두 분 다 의견 차이를 조금씩 좁힐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해 보는 것은 어떠실지요.」

달그락.

멀리, 음식 쟁반과 식기를 싣고 들어오는 수레 소리에 비셔스 경사는 상념에서 깨어났다.

‘벌써 자정으로부터 시간이 이렇게 지났나.’

카인과의 접선일, 17일 당일.

벽에 걸린 시계는 오전 11시 5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16일에서 17일로 넘어가는 자정에 모여 지금까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 상태였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에 저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카인과의 거래를 포기하겠습니다.」

제이슨이 내놓은 타협안은 그런 것이었다.

특무대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카인의 통신을 받는 즉시 동시에 출동하는 것.

하여 모이게 된 곳이 12번 거리 최중심에 있는 그 소유의 고급레스토랑이었다.

「나는 정보를 나눌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접선 장소와 시간에 대한 정보를 독차지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혼자서 카인을 잡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고요.」

처음엔 반발했지만, 결국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외에 별다른 타협안이 나오지 않았을뿐더러, 중간에 제이슨이 보낸 눈빛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약을 사용하십시오.

여분이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대화 중 그가 했던 말이 있었다.

「과정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결과만 기억할 뿐입니다.」

비셔스 경사는 그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일단 공을 세워 높은 위치에 올라가면, 그 후에 따를 소문들 따위 모두 힘으로 눌러 종식시킬 수 있었으니까.

폴라 경위 역시 차분한 고민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마음 같아선 비셔스 경사의 멱살을 잡고 당장 징계위원회로 끌고 가고 싶었지만, 일단 카인을 붙잡아 수사를 종결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어쨌거나 카인이 어디에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

12번 거리 어디든 빠르게 닿을 수 있는 위치에 병력을 대기시키는 것은 전략적으로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때문에 특무대 인원 대다수는 현재 이곳에 모여 있었다.

혹시 모를 카인의 의심을 피하고, 그의 진입을 관측하기 위해 다른 거리에 배치해 놓은 몇몇 인원을 제외하고는.

달그락.

폴라 경위는 고개를 들었다.

음식 수레가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자리를 비울 수 없기에, 이미 이른 오전에 이곳에서 한 차례 식사를 마친 상태였다.

“…….”

그녀는 시선을 흘긋 돌려 비셔스 경사를 보았다.

꽤나 피로한 얼굴로, 무언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그것이 꽤나 멍청한 얼굴이라 생각하며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기회를 줘 봤자 잡지도 못하겠지.’

이제껏 함께 진행했던 작전 중 비셔스 경사가 두각을 드러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능력이 부족하진 않지만, 다른 뛰어난 동기들이 너무 많은 탓이었다.

본인 스스로의 무력도.

대를 통솔하는 지휘관으로서의 능력도.

제이슨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은 그의 화술에 말려든 것도 있지만, 그런 이유도 있었다.

한 자리에서 모두가 동시에 출발을 해 봤자, 카인을 잡는 건 어차피 제르비아 경위나 자신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란 확신.

‘청탁 따위 어떻게 되든 상관없어.’

그의 가문의 위세가 만만치 않다곤 하나 자신의 직위라면 감당치 못할 정도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은밀히 시행하기만 한다면 자신이 보복을 가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업을 하다 보면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는 게 적이지요. 저의 경우 받은 손해는 반드시 돌려주는 편입니다. 상대가 사용한 방법 그대로 말입니다.」

제이슨 대표의 말이었다.

정확히 언제 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으나, 그 말은 머릿속 깊이 남아 있었다.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일치하는 말이기 때문이겠지.’

제이슨.

단순히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와 어투, 행동 양식 외에도 그에게는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다.

마치 또 하나의 자신과 대화하는 것처럼 이야기가 잘 통했으며 감탄이 나오는 구석이 많았다.

카인과의 접선을 은폐한 사실은 변호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인간 대 인간으로서 배울 점이 많은 인물이라는 건 분명했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에겐 때론 거친 수단도 필요한 법입니다.」

그녀는 테이블 바로 앞에 다가온 음식 수레를 보며 생각했다.

그 말이 꽤나 일리가 있다고.

조금 피로한 정신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 * *

달그락.

간단한 고기 요리와 빵.

그리고 수프와 물.

언제 출동할지 알 수 없기에 몸이 무거워지지 않도록 최대한 간소히 준비된 식사였다.

폴라 경위가 물었다.

“자비르 경위님은 안 드세요?”

“…저는 괜찮습니다.”

자비르 경위는 물컵을 들어 목을 축였다.

장기화된 수사로 피로가 누적되고, 눈앞의 두 사람이 벌이는 신경전에 머리가 지끈거려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모두가 협력해서 수사를 펼쳐도 카인을 붙잡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판국에….’

12번 거리의 중심이 되는 위치에 모여 대기하는 것은 분명 전략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하지만 지금 펼쳐진 경쟁 구도가, 그녀는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폴라 경위와 비셔스 경사.

블루서펜트에 대한 수사를 맡은 적은 있지만, 자신만큼 카인에 대해 깊이 파고든 적이 있는 이들은 아니었다.

현장에서 직접 카인을 마주한 경험도 없었다.

때문에 그녀가 보았을 때, 그들은 지금 현재 상황을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카인을 잡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단순히 누가 공로를 더 많이 차지할 것인가의 문제로 말이다.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릴 리 없어.’

상황에 대한 설명은 모두 들었지만 의심쩍은 부분이 다수 남아 있었다.

가령 카인은 왜 수사관들이 몰려 있을 게 뻔한 47번 구역을 접선 장소로 잡았는가.

억지로 이유를 찾자면 못 찾을 것도 없지만 아무래도 명쾌하게 이해되는 부분은 아니었다.

그녀는 입술을 잘근 물었다.

불안했고, 또 초조했다.

의심이 가는 부분을 짚고 넘어갈 새도 없이 일은 벌어지고 있었다.

“며칠 전 대원들을 데리고 새벽에 호텔을 통째로 비우신 적이 있던데요, 비셔스 경사.”

“그게 뭐 어쨌다는 겁니까. 제가 몇 발짝이나 양보를 한 상황인데 왜 자꾸 시비를 못 걸어 안달입니까?”

또한, 분위기로 보아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 일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제대로 자리에 앉을 틈도 없이 출발해버린 열차와 같았다.

하지만 하차할 수는 없었다.

내리는 순간 다시 올라타지 못할 거라는 것을 알기에.

그 끝이 끊어진 선로일 수도 있음을 알면서도.

달그락.

정적 속에 식사는 계속되었다.

다시 한번 입안에 물을 머금던 자비르 경위는 순간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약? 각성제?’

알 수 없는 고양감이 온몸의 혈관을 일깨우는 동시에, 회로의 마나가 굳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완벽한 무색무취.

온갖 종류의 불법 약물을 섭렵했지만 이런 종류의 각성제는 겪어보지 못했다.

“당장 식사를 멈추…!”

고개를 든 순간 그녀는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광경에 할 말을 잃었다.

“기사학교 때부터 기분 나빴어. 흘긋흘긋 쳐다보는 그 썩은 생선 같은 눈동자 말이야.”

“폴라, 뚫린 입이라고 제멋대로 지껄이네. 입이 한 번 찢어져 봐야 정신을 차릴까?”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에 찬 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핏줄이 선 눈동자로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챙!

순간 두 사람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테이블 위 허공에서 나타나 검이 맞붙었다.

그 충격으로 테이블이 반으로 갈라지며 엎어졌고 가운데 놓여 있던 통신 구슬이 허공을 날았다.

“……!”

자비르 경위는 구슬을 향해 몸을 날렸다.

시간이 아주 느리게 흐르는 것 같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구슬이 빛을 발했다.

약간의 잡음과 함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시계탑. 10분 뒤까지 기다리지.」

너무도 익숙해, 꿈에서도 잊을 수 없는 그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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