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뱀이 기는 거리 (4)
탕!
허리에 총을 맞은 녀석이 복도 한쪽으로 나부라지고, 그 위로 총알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투두두두-!
불을 뿜고 있는 십 수 개의 총구가 녀석 쪽으로 가까워져 왔다.
총알이 쏘아질 때마다 번쩍이는 불빛에 녀석의 모습이 드러나 보였다.
“키, 키, 키키킥!”
털이 수북한 몸체는 사람의 것과 비슷한 형태이나 머리는 완전한 쥐의 것이었다.
실핏줄이 터진 눈동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고 온몸의 털은 가시처럼 바짝 곤두서 있었다.
마치 고통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녀석은 기괴한 웃음소리와 함께 몸을 삐걱거리며 일으켰다.
투두두두-!
사격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녀석은 총을 맞으면서도 조금씩 몸을 움직였다.
그때마다 총을 든 인원들은 열을 맞춰 몸을 조금씩 뒤로 뺐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경찰, 혹은 군인을 연상케 하는 질서정연한 움직임에 폴라 경위는 순간 취하려던 다음 행동도 잊고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키, 키키- 너 지금- 무슨.”
순간 쥐머리 수인이 사격이 가해져오고 있는 방향을 향해 무어라 말을 뱉었으나 요란한 총소리에 섞여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다.
파직.
마나로 두른 방어막이 깨지고, 무수한 탄환이 녀석의 몸을 순식간에 걸레짝으로 만들었다.
“사격 중지.”
녀석이 바닥에 쓰러진 뒤에도 계속해 불을 뿜던 총구는 누군가의 지시와 함께 사격을 멈췄다.
“괜찮으십니까?”
한 남자가 폴라 경위의 앞으로 다가와 물었다.
익숙한 목소리.
흐릿한 비상등 아래 그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의 등 뒤로는 자신의 이름을 외치며 뒤늦게 올라오고 있는 특무대 대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 * *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고 슈프림 시큐리티의 경비들과 특무대 대원들은 각자의 자리로 복귀했다.
제이슨은 폴라 경위를 곧바로 의무실로 안내했고 그녀는 그곳에서 스스로 상처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다.
“하멜락. 저희 직원의 말로는 슬럼가의 술집이나 도박장에서 자주 모습을 보이던 수인이라더군요. 일단 크게 다치시지는 않아 다행입니다.”
“대표님은 어떻게 이곳에….”
“호텔 벽에 무언가 기어오르는 것을 보았다는 보고를 받고 달려왔습니다.”
폴라 경위는 복도 끝에 활짝 열려 있는 창문을 떠올리고는 수긍했다.
“잠을 주무시는 중에 보고를 받고 나오신 건가요?”
“아뇨. 집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해가 뜰 즈음 2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습니다.”
“…그 정도는 되어야 사업체 수십을 운영하는 대표가 될 수 있는 거네요.”
폴라 경위는 생각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면에서는 참 대단한 인물이라고.
‘일단 그가 카인의 대리인이라는 가정은 보류하는 게 맞겠지.’
그가 카인의 부하, 내지는 한패라면 방금 상황에서 자신을 도울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그대로 큰 부상을 입게끔 내버려 두었으면 수사의 추진력이 단번에 약화할 것은 명백한 일이었다.
‘카인이 붙잡혀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17일에 무언가 일이 벌어지기 전까지 우리가 절대 카인을 잡지 못할 거라 생각하거나.’
일단 그에 대한 경계는 조금 늦춰도 될 듯싶었다.
어쨌거나 위기상황에서 자신을 도와준 이었고, 그에 대한 감사함도 있었다.
“호텔을 운영하는 주인의 입장에서 면목이 없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뇨. 대표님 잘못이 아니에요. 수인들은 기본적으로 신체 능력이 뛰어나 몇 미터 정도의 담은 훌쩍 뛰어넘고 아까 그 녀석처럼 높은 벽을 기어오르기도 하니까요. 저희 대원들이었어도 이런 심야를 틈탄 침입은 알아차리기 힘들었을 거예요.”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은 모두 저희 측에서 부담하겠습니다. 혹 후유증이 남는다면 그에 대한 것도 모두요.”
“…….”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작은 상처는 아니지만, 거친 현장을 누비던 그녀 입장에선 며칠 푹 쉬며 안정을 취하면 금세 회복될 상처였다.
때문에 그녀는 상대의 지나칠 정도의 예의 바름에 도리어 조금 민망함을 느꼈다.
‘다른 사업가들과는 조금 다르긴 한가.’
이제껏 경험한 이기적인 인간들에게선 단 한 번도 찾아볼 수 없던 면모였다.
그가 선량한 시민이라면, 오히려 피해를 준 것은 자신일지도 몰랐다.
쥐머리 수인은 분명 자신의 머리카락 색을 언급했다.
처음부터 자신을 목표로 호텔에 침입했다는 이야기였다.
“일단 벽을 타고 고층까지 침입했던 점을 보면 약에 취한 상태에서 불특정다수를 대상으로 벌인 일 같지는 않습니다.”
마치 속마음을 읽은 것처럼 제이슨이 말했고 폴라 경위는 순간 뜨끔 하는 기분을 느꼈다.
“네. 아마 저를 노리고 들어온 걸 거예요. 보통 이런 경우 제가 잡아넣었던 범죄자와 친분이 있어 원한을 품고 오는 녀석들이 많은데, 이번 경우는 카인이 보낸 살수라는 특수한 경우도 가능할 것 같네요.”
그녀는 ‘카인’이라는 이름을 언급하는 순간 상대의 표정 변화를 물끄러미 살폈다.
하나 그는 죄스러운 표정만 짓고 있을 뿐 별다른 반응은 드러내지 않았다.
“괜찮으시면 제 외투를 빌려드리겠습니다.”
“……?”
폴라 경위는 얼굴에 의문의 빛을 드러냈다가 곧 자신이 몸을 덜덜 떨고 있음을 깨달았다.
“손톱을 무장으로 사용하는 수인 중엔 끝부분에 독을 바르거나 아니면 아예 자체적으로 손톱에서 독성물질이 분비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더군요.”
“…몇 번 겪어봤어요. 조금 휴식을 취하면 금방 나아질 거예요.”
그녀는 제이슨이 건넨 외투를 받아 걸쳤다.
그리고 문밖에 대기하고 있던 대원 하나에게 자신의 방에서 옷을 가져올 것을 지시했다.
“감사해요. 제 옷이 올 때까지만 빌릴게요.”
“알겠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상처의 소독과 붕대 감기는 마무리가 되었다.
그리고 노크 소리와 함께 특무대 대원이 들어왔다.
“침입자가 가지고 있던 소지품입니다.”
그는 비닐 백에 담긴 몇 가지 물건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졌다.
회색빛 가루가 든 봉지.
바늘의 굵기가 제각각 다른 주사기 몇 개.
손때가 잔뜩 묻은 동전 몇 개와 보드카 술병.
그리고 뚜껑을 뜯지 않은 물병 하나.
제이슨이 그 중 가루가 든 봉지를 보며 말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이 가루는….”
“액셀러레이터.”
“예?”
“그 각성제의 이름이에요. 수인들이 도핑용으로 보통 복용해요. 보통은 액체에 녹여 복용하는데 높은 효과를 원한다면 물에 녹여 주사기로 그대로 혈관에 주입하기도 하고요.”
“아, 그럼 하멜락이 복용한 약이 이것인가 보군요.”
제이슨은 이제야 알아차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폴라 경위는 주사기를 집어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 온몸에 소름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혈관의 두께 차이 때문에 수인과 인간은 사용하는 주사기가 달라. 이쪽의 얇은 바늘은 분명 인간용인데….’
사용 흔적이 가득한 수인용 주사기 외에, 사용하지 않은 인간용 주사기가 셋이나 봉투에 담겨 있었다.
그녀는 생각에 잠겼다.
액셀러레이터를 내용물로 채운 주사기를 나에게 사용하려고 했던 걸까.
액셀러레이터를 주입받으면 인간 역시 고도의 흥분, 즉 각성 상태에 들어간다.
다만 인간이 경우 일정 시간 마나를 운용하지 못하는 부작용을 겪으며, 복용치가 일정 수준을 넘길 경우 회로가 망가지기도 한다.
하지만 번거롭게 왜 그런 짓을?
수사를 방해할 목적이라면 차라리 목숨을 앗아가면 깔끔한 일일 텐데.
다시 생각에 잠겼다.
바꿔 말하면 암수를 보낸 이는 이쪽이 목숨을 잃지는 않고, 단순히 전투 불능 상태에 빠지길 원했다는 말이 된다.
‘대체 왜 누가 그런 짓을.’
“하필 비셔스 경사가 자리를 비웠을 때 일이 벌어진 것이 안타깝군요. 한 층을 같이 쓰고 계시니 방에 계셨다면 분명 가장 먼저 달려 나와 도움을 주셨을 겁니다.”
폴라 경위의 정신이 번뜩 들었다.
경황이 없어 놓치고 있던 부분이었다.
“비셔스 경사가 자리를 비웠다고요.”
“예. 직원들 말로는 1시간 정도 전에 대원들 모두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고 하는군요.”
탐문을 나갔다고 하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도시의 밤이 긴 만큼 특정 시간대에만 얻을 수 있는 정보도 있는 법이니까.
하지만 그 탐문이 공교롭게도 암습이 벌어진 지금 이 시간대에 이루어지고 있다니.
‘…설마.’
며칠 전 카인의 글씨가 쓰인 종잇조각을 보였을 때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비셔스 경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만약.
정말로 만약.
이미 카인에 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고, 내가 그 정보에 접근하는 것을 막으려 일을 벌인 거라면?
정말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이제까지 미심쩍었던 모든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
폴라 경위는 생각에 깊이 잠겨, 제이슨이 자신의 표정 변화를 물끄러미 관찰하고 있음을 알지 못했다.
똑똑.
“대표님. 복도의 전등이 조금 손상되었습니다. 확인하시고 교체 여부를 결정해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네.”
제이슨이 직원에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다녀오겠습니다. 쉬고 계십시오, 경위님.”
끼익. 탁.
문이 닫히고 의무실에는 폴라 경위 홀로 남았다.
그녀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뉘었다.
어깨에 감싼 붕대를 다시 확인하고, 하멜락이 가지고 있던 물건을 살피는 사이 몇 여 분이 다시 흘렀다.
그 사이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하멜락을 고용해 보낸 이가 비셔스 경사라면.
“아냐. 아무리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생각….”
무심코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던 그녀는 손끝에 무언가 잡히는 것을 느꼈다.
꺼내어 확인하자 마스터키였다.
호텔의 모든 방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열쇠.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오래지 않아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고, 그녀는 부리나케 열쇠를 자신의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들어오는 제이슨을 보며 자세를 바로 했다.
방금 자신이 한 일을 들킬까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시체의 처리나 직원들의 입단속과 같은 몇 가지 이야기가 더 오갔다.
“그리고 오늘 일은 다른 두 수사관의 귀에 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하면 좋겠어요.”
제이슨의 얼굴에 의문의 빛이 드러났다. 하나 곧 수긍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무언가 수사관님의 생각이 있으시겠지요.”
“감사해요. 이미 날이 거의 밝긴 했지만, 남은 시간 편안한 밤 되시기를.”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외투를 다시 제이슨에게 돌려주었다.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갔다.
끼익. 탁.
“…….”
제이슨은 그녀가 사라진 자리를 바라보다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예상대로 마스터키는 사라져 있었다.
‘원래 계획대로 진행하면 될 것 같군.’
폴라 경위는 모를 것이었다.
12번 거리의 지리를 파악하기 위해 나간 비셔스 경사는 다른 두 수사관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일부러 이 시간대를 골랐음을.
하멜락은 그 시간에 맞춰 투입된 것이란 사실을.
그리고, 비셔스 경사의 방에서 발견될 몇몇 증거들은 모두 타인에 의해 꾸며진 것들이란 사실을 말이다.
* * *
그날 밤으로부터 이틀 뒤.
태양이 내리쬐는 오후의 거리.
“대체 왜 자꾸 따라오시는 겁니까?”
비셔스 경사는 뒤쪽을 돌아보며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외쳤다.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곳에 뒤를 따라오고 있는 폴라 경위가 보였다.
“수사의 기본은 불필요하게 겹치는 동선이 없도록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아직 5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교육 때 배웠던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겁니까?”
“…….”
그 자리에 멈춰 선 폴라 경위가 팔짱을 끼고 말없이 비셔스 경사를 노려보았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할 수가.’
그날 밤, 그녀는 마스터키를 이용해 비셔스 경사의 방에 들어갔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조심스럽게 방을 수색했고 서랍 깊은 곳에서 두 가지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소량의 액셀러레이터가 든 비닐 백.
그리고 무언가의 대금을 치른 것으로 보이는 정체불명의 영수증.
물건이 사라지면 의심을 살 것이기에 당연히 가지고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두 물건을 발견했을 때의 충격은 뇌리에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동료가 공적에 눈이 멀어 자신을 해하려 했다.
생각하기도 싫은 일이고, 일어나서도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드러난 상황이, 또 증거가 생각을 자꾸 부정적인 방향으로 몰아갔다.
제이슨 대표는 분명 카인과 연결점이 있다.
그리고 비셔스 경사는 그 연결점을 제르비아 경위와 자신보다 빨리 파악해냈을 것이다.
폴라 경위는 숨을 깊게 들이쉬며 결심을 내렸다. 이 상황을 정면 돌파하기로.
짜증스런 얼굴의 상대를 빤히 쳐다보며 입술을 떼었다.
“비셔스 경사, 카인은 언제 만날 생각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