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8. 뱀이 기는 거리 (1)
“제가 이곳의 주인입니다.”
새로운 칵테일 두 잔이 바 테이블 위에 놓였다.
간헐적으로 거품이 터지는 걸로 보아 탄산이 들어간 것으로 보였다.
제르비아는 얼굴에서 놀란 기색을 지우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관리 차 매장에 들렀다가 우리를 발견하고 다가온 건가.’
바 안에 있지만 일반 사복차림.
운영하는 시설이 한두 곳이 아니라 했으니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공교롭게도 이런 상황, 이런 시간대에 마주칠 줄은 몰랐지만.
제이슨이 비셔스에게 명함을 꺼내 건넸다.
“본의 아니게 대화를 조금 엿듣게 되었군요. 슈프림 시큐리티의 대표, 제이슨 바이서입니다. 비셔스 경사님.”
경사라는 두 글자에 미세한 강세가 실려 있었다.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면 눈치 채지 못할 정도.
단어에 반응한 비셔스의 얼굴 근육이 꿈틀거렸다.
본인조차 인지하지 못한 미세한 움직임이었으나, 제이슨의 눈빛은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과연.’
수사관들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없었다.
정보 길드가 아무리 뛰어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당일 편성되어 파견된 이들의 신상 정보를 낱낱이 조사해 의뢰인에게 전달하기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하나 계획에 크게 지장은 없었다.
사람의 말투나, 표정, 몸짓 따위는 그 주인에 대해 많은 것들을 말해 주기 마련이었다.
아무리 감춘다 한들.
스스로의 의지와는 관계없이.
“…뭐 그리 숨길 일도 아니죠. 비셔스입니다. 제게만 명함을 주시는 걸 보니 이쪽 경위님과는 이미 안면을 트신 것 같군요.”
비셔스가 명함을 받아 외투 안쪽 주머니에 넣었다.
제르비아가 말했다.
“부지런하십니다. 보통은 중간 관리자를 두어 운영을 따로 맡기는 경우가 많던데요.”
“관리자가 있긴 합니다만, 중요하게 살필 부분이 있을 때는 매장에 직접 나오는 편입니다. 아무래도 서류로 보고 받는 것과 현장에서 직접 보는 것은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다른 법이니까요. 어쨌든 수사에 노고가 많으신데 목들 축이시지요.”
두 사람은 새로 놓인 잔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 모금 삼켰다.
쓴맛이 섞인 오묘한 단맛과 함께 강한 청량감이 입안에 번졌다.
비셔스가 감탄하며 말했다.
“색과 향으로 보아선 블루 마티니 같은데 맛이 조금 독특하군요? 기존 것보다 청량감과 단맛이 훨씬 강한 것이….”
“메뉴판에는 없는 음료입니다. 기존 것에서 레시피를 조금 바꿨지요.”
“놀랍군요. 그랬다간 보통 맛을 망치기 마련인데. 혹시 관련 자격증이 있으십니까?”
“그런 건 아닙니다만, 주류에 대해 잘 알고 있긴 합니다. 사업을 하다 보면 물보다 더 많이 마시게 되는 것이 술이더군요.”
제르비아 역시 칵테일의 맛이 뛰어나다는 데 동의했다.
묘하게 중독성이 있는 맛이었고, 자신도 모르게 몇 모금을 더 홀짝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비셔스가 한 말을 듣고 칵테일을 뿜을 뻔했다.
“제이슨 씨, 당신이 블루서펜트 간부 카인의 대리인이라는 소문이 있더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녀는 어이없는 눈동자로 비셔스를 쏘아보았다.
상대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 서서히 수사망을 좁힐 생각은 하지 못하고, 저런 식으로 대책 없이 부딪히는 방법을 택하다니.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그를 꺼리는 이유 중 하나가 정반대 성향의 수사 방식 때문임을 떠올렸다.
“…….”
도리어 질문을 받은 제이슨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고요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그리 떳떳지 못한 일이라 가급적 숨기려 했습니다만, 역시 소문이 도는 걸 완전히 막을 수는 없는 모양이군요. 자리를 바꿔서 이야기하시죠.”
제이슨은 직원 하나를 불러 귓속말을 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홀 안쪽에 나 있는 복도로 사라졌다.
“가시죠.”
제이슨이 몸을 돌려 직원을 따라 움직였다.
멀어지는 그의 뒷모습을 보던 비셔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떤 행동을 취할지 망설이는 제르비아를 향해 고개를 까딱했다.
“안 가고 뭐 하십니까?”
“…그런 위험한 질문을 던지기 전엔 상의란 걸 하는 겁니다. 비셔스 경사.”
비셔스의 입가가 씰룩였으나 그녀는 눈치채지 못했다.
“안 가시면 저 혼자 가겠습니다.”
제이슨을 쫓아 멀어지는 비셔스를 보며, 그녀는 한숨을 내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안내된 곳은 복도 안쪽 끝에 위치한 고급스러운 방이었다.
“귀빈용으로 따로 마련해 둔 방입니다. 수사관님들을 모시기엔 부족하지 않은 곳이라 생각합니다.”
벽에 걸린 고가의 그림들.
천장에 달린 화려한 샹들리에.
테이블과 소파까지도 공산품과는 비교 되지 않는 고가품으로 보였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돈이나 그밖의 것으로 저희를 매수하려는 거라면 한참 잘못 생각하시는 겁니다.”
제르비아의 말에 제이슨이 껄껄 웃었다.
“설마 그럴 리가요. 다만 소문이 잘못된 부분이 있어, 제대로 된 사실을 알려드리려 모신 겁니다. 아무래도 듣는 귀가 많은 곳에선 입 밖에 내기 꺼려지는 이야기라서요.”
곧 직원 하나가 주류와 음료가 올려진 쟁반을 놓고 사라졌다.
실내에 다시 차오른 고요를, 제이슨이 깨트리며 말했다.
“먼저 파악하신 소문이 정확히 어떤 내용인지가 궁금하군요.”
비셔스가 곧장 답했다.
“슈프림 시큐리티의 전신은 퍼틸랜드이다. 대표는 퍼틸랜드의 지휘를 맡았던 카인의 대리인이다. 두 가지 정도입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군요.”
쪼르륵.
잔이 따라졌지만 누구도 먼저 잔을 들어 올리는 사람은 없었다.
비셔스와 제르비아는 허리춤 검집 근처에 손을 가져다 대어 언제든 전투에 임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나올 내용에 따라 처우가 달라질 것을 암시하듯이.
하나 정작 위협을 받고 있는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투였다.
“먼저 카인의 대리인이라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닙니다. 토지와 건물을 매입하며 얼굴을 본 적이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매도인과 매수인이 관계였죠.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습니다.”
“…….”
“그리고 퍼틸랜드가 전신이라는 소문은 어느 정도 맞는 이야기입니다. 카인과 거래를 할 때 넘겨받은 것은 건물과 토지뿐만이 아니었으니까요.”
“용병들을 모두 그대로 쓰셨군요.”
“예. 시설을 지킬 경비들은 필요한데, 그만한 인력을 새로 뽑는 것도 꽤 품이 많이 드는 일이지요. 물론 교육을 진행하는 데 어느 정도 시간과 비용이 들긴 했습니다만.”
“…….”
“…….”
두 수사관은 순간 맥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의 말이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다른 이도 아닌 그 카인이 허술하게 흔적을 남겼다는 가정보다는.
물론 의심을 완전히 지운 것은 아니었지만, 경계가 처음보다 조금 누그러진 것은 사실이었다.
“원하신다면 용병들과 새로이 작성한 계약서를 보여드릴 수 있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렇게까지는.”
“부탁드립니다.”
각각 비셔스와 제르비아의 반응이었다.
“그럼 서류를 준비해 서로 보내겠습니다. 경위님 앞으로 준비해 드리면 되겠지요.”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아닙니다. 도와드릴 것이 있다면 도시에 머무는 동안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아, 그리고 카인에 대한 소문들이 몇 더 있긴 합니다.”
이야기가 더 흘렀지만, 모두 품을 팔아 직접 확인해야 하는 날것의 정보들이었다.
도시의 어느 거리에서 카인이 목격되었다든가.
외곽에 푸른 뱀 문신을 한 이들이 돌아다니는 모습을 보았다든가.
그 외의 잡다한 소문들.
두 수사관은 각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을 수첩에 적은 뒤 침묵에 잠겼다.
“혹 수사에 필요하시다면 방 안에 있는 기기들을 사용하셔도 됩니다.”
제이슨이 말했다.
테이블 위 패널을 조작하자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도시의 조감도가 나타났다.
“놀랍군요. 경찰청 본부에서나 볼 수 있는 물건인데. 이거 꽤 비싸지 않습니까?”
“번뜩이는 아이디어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기 마련이니까요. 이 방은 종종 사업가분들을 모시고 회합을 가지다 회의실로 급변하기도 합니다. 사용해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조작에 따라 다른 기능을 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제이슨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제르비아 쪽을 보았다.
그녀는 뭐라 말하려 입술을 달싹이다가, 아무래도 수사에 도움은 될 거란 판단을 내렸는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럼 편히 머물다 가시기를.”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
제이슨은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끼익- 탈칵.
고개를 들었을 때, 그는 복도 입구를 지나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는 한 여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단정한 인상.
이십 대 중반의 외모.
조금씩 걸음을 멈춰서며 방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이었다.
누구인지 추측할 수 있었다.
허리춤에 맨 검과 복도 입구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이쪽을 지켜보고 있는 직원들의 모습이 아니더라도.
“일행을 찾으시는 것 같군요. 가장 안쪽 방으로 가시면 될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녀는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고 제이슨을 지나쳐 안쪽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 앞에 멈춰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 소리를 듣다가, 문을 열고 들어갔다.
탁.
복도엔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 순간 제이슨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원래의 싸늘한 표정으로 돌아와 직원들을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가서 일들 해라.”
“예, 옙!”
그들은 도망치듯 자리에서 흩어졌다.
* * *
「확실히 그쪽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비셔스 경사님은 빠져요. 저번 수사에서 가장 실적이 떨어지지 않았나요?」
「…….」
「…두 분 다 조용히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나는 방 안에 설치한 도청기를 통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수사에 관한 이야기가 오갔으나, 중요한 부분은 모두 암어로 소통되어 썩 영양가 있는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그만큼 교육을 잘 받은 엘리트들이란 증거였다.
아직 나를 의심하고 있든, 무의식에서 나온 행동이든.
하지만 그밖에 알 수 있는 것이 많았다.
그들 사이에 깔려 있는 미묘한 상하 관계나 경쟁의식과 같은 것들.
특히 폴라 경위라는 여자는 비셔스가 의견을 피력할 때마다 대놓고 면박을 주고 있었다.
똑똑.
“서신이 도착했습니다.”
나는 직원이 가져온 봉투에서 서류뭉치를 꺼냈다.
정보 길드에서 보낸, 수사관들에 관한 자료였다.
조사 기간이 짧고 보안등급이 높은 정보였기 때문인지 간단한 인적사항 외에는 기재된 것이 많이 없었다.
‘그래도 지금은 이 정도로 충분하겠지.’
나는 서류를 훑으며 추측의 빈틈을 메워나갔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겠습니다.」
비셔스의 목소리였다.
동시에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
나선계단의 윗부분에서, 아래층 주점의 홀을 내려다보았다.
비셔스가 화장실로 향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계단을 내려가 간격을 두고 그를 쫓았다.
화장실 입구에 멈춰 서, 마음속으로 몇 초를 세고 안으로 들어갔다.
쏴아아-
세면대에서 손을 씻고 있는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옆자리에 슬쩍 다가가 머리와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수사에 진전은 있으십니까?”
“쉽지 않군요. 대원들이 모아온 정보도 가뜩이나 한정적인데, 그것마저도 공유를 하지 않으려 해서 말입니다.”
“이해합니다. 목표 대상이 카인이라는 거물이니, 공을 독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든 생길 수밖에 없지요.”
“상황 파악이 빠르시군요, 대표님.”
“뭐, 경쟁이야 경찰이 아니라도 모든 집단에 다 적용되는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뒤처지면 살아남지 못하는 경쟁 사회이니까요.”
나는 넥타이의 위치를 다시 잡으며 말을 이었다.
“수사관님들을 본 직원들이 저들끼리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 악명 높은 카인이 정말 잡힐지, 또 잡는다면 어느 수사관님이 녀석을 잡을지 말입니다. 실례가 될 수 있는 이야기,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아닙니다. 그 정도는 다 이야기할 수 있죠.”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가 은근한 기대감을 띤 목소리로 물었다.
“대표님은 저희 셋 중 누가 카인을 잡을 거라 생각하십니까? 아, 나가실 때 폴라 경위를 보셨는지 모르겠군요.”
“보았습니다. 그분과는 대화를 나눈 적 없어 판단할 정보가 부족하긴 합니다만, 저는 일단 비셔스 경사님이 가능성이 가장 높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감추려 하나 감추지 못하는 기쁨의 표시였다.
“혹시 이유를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다른 두 분보다 한 계급이 낮은데도, 똑같이 특무대의 대장을 맡고 계신다는 점이 이미 능력을 증명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의 표정은 순식간에 떨떠름하게 변했다.
특무대의 대장은 무력 수준만 인정받는다면 계급에는 크게 제한이 없다.
세 사람 모두 경사일 때 대장직을 맡았고, 비셔스만 진급이 누락된 상태였다.
“…일단 좋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나는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있는 마법 장치로 다가가 손을 말리며 말했다.
“그것 외에도 비셔스 경사님이 능력이 뛰어난 분인 걸 알 수 있는 부분은 많았습니다.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나 단서를 정리하는 방식이 그랬죠.”
“하, 하하….”
그는 멋쩍은 웃음을 흘렸다.
나는 슬슬 준비해둔 대사를 꺼낼 타이밍임을 느끼고 입을 열었다.
“경사님. 다른 두 수사관에게 열등감을 품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그는 입을 벙긋거리다 말했다.
“갑자기 무슨 말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평정심을 가장한 목소리란 걸 쉽게 알 수 있었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듯, 그의 얼굴 근육은 지속적인 미세한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아닙니까? 제가 느끼기로는 분명 그랬는데요.”
“그만하시죠.”
그의 얼굴이 점점 굳어갔다.
“사람의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만하시라고 했습니다.”
“짧은 순간이지만 수사관님들이 대화를 나눌 때 눈빛들을 보고 알 수 있었죠. 자신의 감정을 숨기는 건 정신 건강에 그리 좋지 못한 일입니다.”
쐐액!
다음 순간, 어느새 뽑혀 나온 검이 내 목 끝에 닿아 있었다.
“이 씨발 새끼, 닥치라고 했어.”
당장이라도 나를 죽일 것 같은 눈빛이었다.
그의 거친 숨에 따라 검 끝이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제야 감정에 솔직히 지셨군요. 질문 하나 하죠.”
나는 빙긋 미소 지으며 말했다.
“카인을 단독으로 잡고 싶은 생각 없으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