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97화 (97/227)

#097. 슈프림 시큐리티 (2)

갈색머리 남자의 눈빛은 고요했다.

자신이 붙잡아 올린 소매치기를 흘긋 바라보며 손아귀에 힘을 주었다.

“아아악!”

비명이 거리에 울렸다.

쓰고 있던 후드가 벗겨지며 앳된 외모가 드러났다.

청소년과 성인, 그 중간 정도의 얼굴, 십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자, 잘못했어! 제, 제발! 아악!”

손목이 바스라질 것 같은 고통에 소년은 허공에서 몸부림을 쳤다.

손에서 떨어진 지갑은 그대로 갈색머리 남자의 손에 안착했다.

하나 그 후에도 남자는 손아귀의 힘을 풀지 않았다.

당장이라도 소년의 손목이 부러질 것 같았다.

“아악!”

“잠깐만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어요!”

멈춰선 행인들의 시선에도 아랑곳 않던 남자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

남자, 카인은 생각에 잠겼다.

제르비아, 그녀가 왜 이곳에 있는 걸까.

“팔 놔요!”

생각에 빠져있던 사이 어느새 다가온 그녀가 팔을 밀쳤다.

생겨난 잠깐의 틈, 손아귀에서 풀려난 소년은 손목을 부여잡고 쏜살같이 자리에서 도망쳤다.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던 카인은 제르비아에게 시선을 옮겨 지갑을 건네며 말했다.

“본보기를 보이는 게 좋았을 겁니다. 어딘가에 지켜 보고 있던 동료무리가 있었을 테니까요.”

“제국 치안법에 따르면 미성년에 대한 금품 절도 처벌은 사회봉사 및 교육 이수입니다. 손목을 으스러트리는 게 아니라요.”

“…경찰이신 것 같군요. 치안법을 언급하시는 걸 보니.”

카인의 시선이 흘긋 그녀의 허리춤에 매어진 검 집으로 향했다.

그것 역시 신분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될 수 있었다.

“치안이 썩 좋지 않은 곳입니다. 특히 이런 번화가는 소매치기들이 장난을 치기 좋은 장소이지요.”

“…일단 도움을 주셔 감사합니다.”

제르비아는 지갑을 받아 외투 안쪽에 넣었다.

분명 회로와 마나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을 한 손으로 들어 올리는 괴력이라니.

순간 떠오른 것은 카인이었다.

녀석은 교도소에서 회로를 숨기고 마법을 사용했다.

‘정확히 말하면 회로를 감지할 수 없었지.’

바깥에서 수차례 조우했을 때도 회로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특정 마법을 사용할 때는 체외로 방출된 마나가 느껴졌다.

‘만약 이 남자가 마법으로 얼굴을 바꾼 카인이라면.’

그랬다면 자신이 그에게서 마나를 느끼는 것은 물론이고, 외투 속 탐지기가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최근 라티움에서 제작된 신형 탐지기가.

하아.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일반인이 보이지 못할 정도의 괴력은 아니다.

도움의 손길을 건넨 이를 조금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고 곧바로 카인이라 의심하다니.

머릿속이 온통 녀석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한 탓이었다.

어서 녀석을 붙잡아야 이런 상황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터였다.

“말씀 좀 물어도 되겠습니까. 제가 이 도시에 도착한지 얼마 안 되어 말입니다.”

“얼마든지요.”

그녀는 다른 주민들에게 했던 질문을 몇 가지 던졌다.

최근 일어났던 전쟁이나 이곳 주민들의 특성, 도시의 분위기와 같은 것들.

남자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모든 질문에 친절히 답해주었다.

“아, 그리고, 슈프림 시큐리티라는 기업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이 있습니까?”

그녀는 시선을 옆으로 돌려, 다음 행선지로 자신이 방문하려 했던 곳을 보았다.

「슈프림 시큐리티」

건물 입구에 고급스러운 글씨체로 쓰인 명패.

소문과 정보에 따르면 전쟁 중 두 조직 간의 마지막 결전이 벌어진 장소라고 했다.

파르테르가 본거지로 쓰고 있던 장소라고도.

남자는 그녀의 시선이 향한 곳을 확인하고, 잠시 뒤 말했다.

“예. 아주 잘 알고 있지요.”

“아, 그러면―.”

“안으로 들어가 얘기하지요.”

“예?”

“제가 이 회사의 대표입니다.”

먼저 입구로 향하는 남자의 뒷모습을 보며, 그녀는 당황한 얼굴을 했다.

* * *

“소문에 따르면 그날 밤 수차례의 번개가 쳤다고 하더군요.”

그녀는 등 뒤에서 들려오는 남자의 말을 들으며 바닥에 난 구멍을 주시했다.

까맣게 탄 자국이 남아있는 거대한 구멍.

밑으로는 또 다른 공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지상 층에 난 구멍은 모두 보수했습니다만, 지하는 현재 사용하고 있지 않아 당시 현장의 모습 그대로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번개, 그리고 구멍이라고요.”

“예. 건물을 매입할 당시 전 층의 바닥과 천장에 일직선으로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마치 무언가 관통한 것처럼 말이지요.”

전쟁 마지막 날 밤 내리친 번개에 대해서는 그녀도 주민들에게 들은 상태였다.

신이 분노한 것 같은 광경이었다거나.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 줄로 알았다거나.

연속된 십 수 발의 번개가 오직 한 지점만을 향해 꽂혔다.

마법.

그 외에 가장 적절한 설명은 없었다.

‘퍼틸랜드의 지휘관은 원리를 이해할 수 없는 특수한 탄환을 사용했다고 했지.’

그리고 곁에는 늘 금발의 여성이 붙어 있었다고 했다.

에스텔 사제임이 틀림없었다.

카인이 전쟁에 참여했던 것은 분명하다.

명분 역시 조직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번개는 분명 녀석이 불러일으킨 마법일 것이다.

그렇다면 녀석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뒤 어디로 사라졌는가.

아직 이 도시에 숨어 있는가?

다음 목표를 향해 떠났는가?

혹은 전쟁 중 목숨을 잃은 건 아닌가?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이곳은 투기장으로 쓰였던 곳 같군요.”

“예. 다른 시설로 활용할 방안을 생각 중입니다. 그냥 놀려두기엔 아까운 공간이니까요.”

“범죄 조직의 간부 소유의 건물이었습니다. 매입할 때 찜찜함은 없었습니까? 향후 소문이 나쁘게 날 수도 있을 텐데요.”

남자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업가 정신은 다른 걸 뜻하는 게 아니지요. 시세보다 훨씬 싼 가격에 나온 매물을, 세간의 평이 두려워 멀뚱히 지켜만 본다면 그 사람은 사업가라 불릴 자격이 없을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녀는 위층 집무실에서 대화를 나눌 때 그에게서 받았던 명함을 떠올렸다.

「슈프림 시큐리티 대표」

「제이슨 바이서」

여러 분야에 손을 벌리고 있는 사업가라고 했다.

47번 구역의 여러 시설을 인수했으며,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 따로 보안업체까지 설립했다고 했다.

「사실 제 소유 시설 주위에만 경비를 배치해도 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놀리는 인원이 있으니, 경찰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곳의 치안을 제가 신경 써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치안이 안정되면, 또 시설의 방문객이 그만큼 늘어날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벽 바깥’의 법률 체계는 허술하다.

돈만 있다면 새로운 신분을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으며 등록된 법인들 또한 정부 차원에서의 검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름만 들으면 알 정도의 대기업들이 아닌 이상에는.

‘아직 어떤 인물인지 확실히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최소한 악의를 품고 기업을 운영하는 이로 보이지는 않았다.

목적 자체는 시설의 수익 증대라곤 하나, 도시의 치안에 기여하고 있음은 사실이니까.

앞으로의 수사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지하를 모두 둘러보고 건물 밖으로 나가는 길, 그녀가 말했다.

“수사에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민중의 지팡이 역할을 하시는 분인데, 당연히 도움을 드려야 하지요.”

그녀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몸을 돌렸다.

건물 앞에는, 구역 경찰이 사제 바이크 하나를 끌고 도착해 있었다.

“지시하신 대로 활동용으로 타고 다니실 것을 준비했습니다.”

경찰은 그녀에게 키를 건네고 한 차례 경례 뒤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두드드-

그녀 역시 바이크를 타고 거리 저편으로 사라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남자, 카인은 미소를 지우고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왔다.

“…….”

예상대로 그녀는 수사관으로 나왔다.

47번 구역에 좋지 않은 기억이 있어, 임무 외의 일이라면 절대 방문할 일이 없을 테니.

‘하지만 아무리 임무라 해도.’

「지금 이 순간부로 나에 대한 추적을 멈추고 블루서펜트에 관한 모든 수사에서 손을 떼라.」

자신의 경고를 무시했다는 것은 그녀에게 무언가 심경의 변화가 생겼다는 말이 되었다.

혹은, 빼앗긴 유골함을 되찾을 방법을 찾아냈거나.

‘계획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겠군.’

수사관들의 행동에 따라 벌어질 수 있는 수백 가지 상황을 이미 상정해두었기에, 계획 수정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터였다.

그녀의 존재는 그림 중앙에 잘못 튀었으나 눈여겨보지 않으면 티 나지 않을 물감 자국에 불과했다.

자신이 완성할 큰 그림엔 지장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작품의 완성도 자체는 높아질지도 모르겠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수사관들 사이에 내분을 일으키고, 약점을 쥐어 47번 구역에는 카인이 없다고 본부에 거짓 보고를 올리게 만드는 것.

‘그리고 만약 그녀를 내 체스말로 만들 수 있다면.’

교도소를 탈옥했던 초반, 과업을 이루기 위해 그녀를 쭉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았던 데엔 이유가 있었다.

그녀가 블루서펜트를 파헤치며 겪게 될 정신적 붕괴.

최악의 경우 폭주한 그녀가 통제 불가능한 변수가 되어버릴 위험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가능할지도 몰랐다.

몇 가지 안배를 준비해 그녀의 정신이 강화될 수 있도록 돕는다면.

‘과업 달성의 시기를 몇 단계는 더 앞당길 수 있다.’

판 위에서 어디로든 행마할 수 있는 ‘퀸.’

그녀를 포섭한다는 것은 게임에서 가장 강한 기물을 손에 넣는 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카인은 그녀에게 선물할 몇 가지 극한 상황을 떠올렸다.

정신적으로 한계에 몰리나, 딱 그녀가 부서지지는 않을 정도 선의 상황들을.

구상을 마친 카인은 몸을 돌려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섬세하고도 긴 작업이 될 터였다.

작품이란 본래 한 끗의 붓질이나 글자 하나 차이로 성공과 실패가 갈리는 것이기에, 공을 들일 필요가 있었다.

카인이 사라지고 거리엔 다시 행인들의 말소리와 발소리만이 남았다.

* * *

“파르테르의 죽음은 확실한 것 같습니다. 전쟁의 마지막 날 이후 다시 모습을 드러낸 걸 본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47번 구역 경찰서 회의실.

제르비아는 탐문을 돌고 온 대원들에게 보고를 받았다.

정보원에게 미리 전달받은 정보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없었다.

창밖을 내려다보았다.

내리쬐는 저녁노을 아래, 도로를 지나고 있는 슈프림 시큐리티의 순찰 차량이 보였다.

“도시에 퍼진 사설 병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던가요?”

“이야기하기를 꺼리는 투였습니다. 정보를 발설했다가 그들에게 해를 끼칠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슬럼쪽으로 갈수록 그런 경향성이 짙어져 슈프림 시큐리티에 관한 이야기만 꺼내면 도망가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도시를 돌고 있는 인원은 약 150명에 달한다고 했다.

많은 수는 아니나 그렇다고 한번에 동원하기엔 쉽지 않은 수이다.

그들은 갑자기 모두 어디서 등장했는가.

퍼즐조각의 끝부분이 다른 조각의 끝부분에 얼핏 맞물리는 듯 했다.

“둘씩 짝지어 유흥가와 뒷골목을 돌도록 할게요. 소문은 원래 해보다는 달이 떠 있을 때 소란해지는 법이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후발대가 저녁 중으로 도착할 거라는 본부에서의 통신이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이른 타이밍이네요. 적어도 하루 정도는 뒤쳐져 올 줄 알았는데요.”

“다들 급한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래도 카인이라는 거물이 걸려 있으니까요.”

다른 대의 대장들이 인원을 급조해서라도 수사에 참여하려는 이유.

카인의 포획, 또는 사살.

그리고 그에 따른 포상.

약 반년 전, 블루서펜트의 회합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해 카인을 생포했던 이는 두 계급 특진이라는 포상을 받았다.

그리고 명예욕이 낮다 하면 서러워할 이들이 모인 곳이 특무대이다.

물욕과는 거리가 있으며, 남들에게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또 이름을 널리 떨치기를 원한다.

아마 0번 대가 먼저 출발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발등에 불이 떨어졌으리라.

“총인원은요?”

“활동이 가능한 인원들을 모아 2개 대가 편성되었다고 합니다.”

한 개의 대는 10명의 인원으로 구성된다.

총 20명의 수사관이 곧 이 도시에 도착한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대원들을 보며 말했다.

“움직이죠. 그들이 도착하기 전에 어떤 정보라도 선점해 놓아야 하니까요.”

* * *

노을이 지고 달이 뜰 때까지.

그녀는 부관 헤롤드와 함께 구역 내의 유흥가를 돌았다.

불 켜진 네온사인.

취객들의 소음.

풍겨오는 알코올과 담배 냄새.

그녀가 질색해 마지않는 요소들이었으나, 수사를 위해 주점 곳곳을 돌아다녔다.

“히, 히익. 제, 제게 왜 이러십니까.”

그리고 어두운 뒷골목.

제르비아의 검 끝은 담벼락에 소변을 보고 있던 남자의 목에 겨눠져 있었다.

“술집에서 들었다. 퍼틸랜드 측으로 전쟁에 참여했던 용병이라고. 지휘관에 대해서 아는 걸 모두 말해. 해산된 이들이 각기 어디로 갔는지도.”

해산된 퍼틸랜드의 용병이 구역 내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그, 그건, 그냥 거, 거짓말입니다. 저, 저 따위가 무슨….”

검 끝에 힘이 들어가자 목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목깃이 젖혀지며 퍼틸랜드의 문신이 드러났다.

남자의 바짓가랑이는 소변으로 물들었고, 이후 정보를 캐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지, 지휘관이 카인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전쟁 중 대, 대단한 능력을 보여준 것은 맞습니다. 나, 남은 용병들 대부분은 새로 만들어진 조, 조직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슈, 슈프림 시큐리티라고.”

그리고 지휘관은 최근 슈프림 시큐리티의 관리를 대리인에게 맡기고 자취를 감췄다.

늘 함께 다니던 두 명의 남녀와 함께.

“…….”

대리인이라면 낮에 보았던 제이슨을 말하는 것이 분명했다.

‘카인의 대리인이라.’

꿍꿍이가 있는 이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약간의 배신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었다.

남자는 겁에 질린 목소리로 그 밖의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았으나 더 이상의 영양가 있는 정보는 나오지 않았다.

검을 거두자 그는 흘러내린 바지춤을 붙잡고 엉거주춤 달아났다.

“뭔가 일이 조금 쉽다는 느낌은 있군요.”

“내 생각도 그래요.”

뒤를 잡힐 흔적을 남겨 놓다니.

‘그’ 카인의 일 처리라기엔 조금 허술한 면이 있었다.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는 걸까.

혹은 흔적을 밟혀도 지장이 없게끔 뒤처리를 해 놓은 걸까.

“어쨌든 조사를 계속하죠. 아직 이것만으로 판단하기엔 정보가 부족해요.”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골목을 벗어나 다음 주점에 입장했다.

손님들의 이야기를 나눠 듣기 위해 헤롤드와는 멀리 떨어진 바 자리에 앉았다.

메뉴판에 보이는 술을 대충 주문한 뒤 내부를 둘러보았다.

테라스와 라운지 바, 루프탑이 있는 고급주점으로 다른 곳보다 조금 조용한 분위기였다.

“주문하신 스윗파이어입니다.”

목을 축이기 위해 무심코 한 모금 들이켰다 입안에 퍼지는 화한 통각에 그대로 뱉어냈다.

“도수가 아주 높은 칵테일입니다. 알고 주문하신 게 아니었는지요.”

“…물 한 잔 부탁드립니다.”

탁.

물로 입안을 헹궜으나 아릿한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애초에 술을 질색하는 성격으로, 주점 분위기에서 튀지 않으려 한 행동일 뿐이었다.

그녀는 눈썹을 찡그린 채 주변 손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래서 이번에 땅값이….」

「요즘에 치안이 묘하게 좋아진 것 같지 않아?」

「열심히 모아야지. 벽 안쪽으로 가려면 기부금이 필요하니까.」

섞여 들려오는 이야기 중 슈프림 시큐리티와 치안에 관한 것도 있었다.

해당 대화에 귀를 기울이려던 찰나 옆자리에 누군가 앉았다.

“먼저 도착하신 줄은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런 곳에서 여흥을 즐기고 계셨군요, 경위님. 술을 즐기시는 편이었던가요?”

한쪽 눈에 안대를 한 이십 대 중반의 남자였다.

입가는 웃고 있었으나 눈은 그렇지 않았다.

“여흥이 아니라 수사입니다. 비셔스 경사.”

의도하진 않았으나, 경사라는 두 글자에 남자의 눈썹이 순간 움찔했다.

그녀는 비셔스보다는 여전히 주위 손님들 쪽에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고, 때문에 그것을 알아차리지는 못했다.

“먼저 알아내신 게 있다면 정보 좀 공유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땀 흘리지 않고 뭔가를 얻으려는 버릇은 여전하군요.”

“효율성이지요. 효율성. 어차피 노리는 표적은 같으니, 함께 협력하면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동기 좋다는 게 다 무슨 말이겠습니까.”

기사학교 시절 동기였다.

출신 성분으로 시비를 자주 걸어왔던 패거리 중 하나.

아마 줄곧 수석을 놓치지 않는 상대에 대한 열등감도 어느 정도 섞여 있었으리라.

물론 성인이 되고 함께 경찰로 일한 뒤론 그런 유치한 괴롭힘은 사라졌고, 열등감 역시 드러내지 않았다.

어느 정도 극복해 냈으리라 생각했다.

격차를 인정하고 스스로 해탈했거나.

혹은 그 부정적인 에너지를 건강한 방향의 경쟁심으로 바꾸는 데 성공했거나.

다만 과거의 악연이 있어 길게 말을 섞기는 꺼려지는 자였다.

“협력을 한다면 차라리 폴라 경위와 하겠습니다. 당신이 여기 있는 걸 보니 그녀도 도착했겠군요.”

“서운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사실 어느 정도 상황은 다 파악한 상태입니다. 저는 슈프림 시큐리티라는 집단이 굉장히 의심스럽더군요.”

“…….”

업무 능력 자체는 뛰어난 자였다.

동기들에게 가려져 진급이 미뤄지고 있을 뿐.

“제가 아는 정보도 딱 거기까지입니다.”

“분명 알고 계신 것이 있을 텐데 ….”

탁.

그때 두 개의 잔이 바 위에 올려졌다.

“아무래도 제 얘기를 하고 계신 것 같군요.”

고개를 들자 옅은 갈색머리의 중년남자가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당신이 왜 여기에….”

제르비아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그에 답해 남자가 말했다.

“제가 이곳의 주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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