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96화 (96/227)

#096. 슈프림 시큐리티 (1)

바뀐 내 얼굴을 보고 에스텔이 움찔했다.

“…나이 든 얼굴이네요? 이제까지와 다르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앞에 다가섰다.

옅은 갈색 머리에 얼굴에 주름이 진 중년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전체적으로 날카로운 인상.

나는 목소리를 변조해서 말했다.

“마법이란 걸 감지할 수 있겠나?”

그녀가 다가와 내 얼굴을 살폈다.

눈을 게슴츠레 뜨기도 하고 부릅떠 노려보기도 하면서.

“마법 쓴 거 맞아요? 마나가 하나도 안 느껴지는데?”

당연하게도, 마나유저는 마나를 감지할 수 있다.

상대의 활성화된 마나회로.

체외로 발현된 마나.

발동 중인 마법.

상대와의 수준 차에 따라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기본적으로 탐지가 가능한 요소들이다.

‘탐지가 힘든 것이 있다면 각인이 완료된 마법 정도.’

원소가 이미 결합을 마쳐 ‘응고’와 비슷한 상태로 굳어 있기에 그렇다.

하지만 마나의 정제를 거치면 일반적인 마법의 ‘발동’ 역시 탐지가 힘들어진다.

‘정제를 거치면 원소의 색이 흐릿해지는 동시에 존재 자체가 옅어 지니.’

3단계의 정제까지만 가더라도 일반적인 수준의 마나유저는 마나를 감지하기 힘들다.

물론 전투 중 정제를 활용해 기습을 하는 것은 여러 조건이 맞아야 가능한 일이다.

통상의 경우 정제의 기본 대상은 ‘체외로 방출’된 마나이고, 정제 중인 마나를 느낀 적은 그에 대한 대비를 취할 테니까.

하지만 적이 보이지 않는 장소에서 사용 가능한 유지 형태의 마법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것도 정제 3단계가 아니라 4단계 이상이라면.

“뭐야. 어떻게 했어요? 전에는 가까이 다가가면 마나가 느껴져서 마법인 건 알 수 있었는데.”

단순한 기감으로는 탐지할 수 없게 된다.

전문 장비로도 마법을 밝혀낼 수 없으리라 생각되었다.

어디까지나 세계관 내 밝혀진 ‘3단계 정제’까지를 상정해 두고 만든 물건들일 테니.

“다행이군. 너 정도가 눈치 채지 못한다면 웬만한 수준의 다른 마나유저들도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때 도서관에서 불꽃을 일으켰을 때랑 같은 원리인 거죠?”

촉이 좋았다.

골똘히 내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티가 안 나는 거라면, 나도 걸어 줄 수 있어요? 평소에 눈매랑 입꼬리를 살짝 고치고 싶다고 생각했거든요.”

마법을 유지하는 데 큰 무리는 없었다.

회로레벨 3에 오르고 회로의 질이 향상되며 정제 4단계까지는 큰 부담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쓰지 않아도 되는 마나를 쓰는 일은 낭비였다.

어차피 그녀는 무기의 제작을 위해 62번 구역의 대장간으로 보내 둘 생각이었다.

“굳이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그녀가 살짝 당황한 티를 보였다.

“어? 어? 그, 그래요? 거짓말이 아니라 진심이네. 그럼 지금 이대로 완벽해요? 진짜?”

“…….”

그녀의 말을 무시하고, 나는 서류작업을 시작했다.

* * *

몇 시간 뒤, 47번 구역의 외곽에 차량 3대가 도착했다.

가장 먼저 멈춰 선 차량에선 남자 넷이, 두 번째 차량에서 다시 넷이, 그리고 마지막 차량에선 여자 하나와 남자 하나가 내렸다.

총 10명이었으며 모두 사복 차림이었다.

“구역을 나눠서 탐문을 시작하세요. 전 바로 서장을 만나러 갈게요.”

“알겠습니다, 경위님.”

9명의 사복 경찰이 구역 안쪽으로 흩어졌다.

그들의 상관은 고개를 들어 시선을 위로 향했다.

시야 멀리, 풍경 위쪽에 솟은 시계탑과 고층 건물들이 보였다.

“…5년만인가.”

막 신입으로 발령이 났던 그 때.

그 이후로는 이곳을 방문한 적이 없었다.

보고에 따르면 별다른 사건·사고 없이 적정 수준의 치안이 유지되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알고 있었다.

모두 어느 정도 꾸며진 보고임을.

임무에 따라 대륙을 떠도는 특무대 특성상 각 구역의 실상을 모르려야 모를 수 없었다.

‘하지만 설마 파르테르의 본거지가 이곳이었을 줄은.’

50번대, 혹은 60번대 사이에 걸쳐 있을 거라 예상했다.

다른 거대 조직의 주요 거점이 그러한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분명 이제까지 드러난 증거도 그러해왔는데.

그렇다면 의문 하나가 남는다.

47번 구역의 경찰서장은 과연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까.

파르테르의 활동지였다면 어떤 식으로든 단서가 포착되었어야 옳았다.

“후우.”

그녀는 끓어오르는 감정을 갈무리하고 구역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래지 않아 어떤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슬럼가 특유의 냄새였다.

줄에 걸린 덜 세탁된 빨래.

하수구에서 올라오는 폐수.

포장되지 않은 땅에서 올라오는 먼지.

그 모든 것들이 섞여 자아내는 퀴퀴한 냄새.

다시 말해 범죄의 냄새이기도 했다.

서로를 향한 인간의 악의는 원래 기울어진 부의 경사 아래 흘러내려 가장 밑바닥부터 고이는 법이니까.

“잠깐 말씀 좀 묻겠습니다.”

“아, 나는 몰라요, 몰라. 지금 바빠서.”

근처를 지나던 주민은 말을 걸자마자 질겁하며 달아나 버렸다.

“…….”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슬럼 주민은 타인에 대한 경계가 심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주위로 시선을 돌리자, 이쪽을 향해 경계 어린 시선을 흘끔흘끔 보내고 있는 주민들이 보였다.

자신의 깔끔한 행색과 올곧은 걸음걸이, 그리고 허리에 맨 검 집.

물론 그것 때문일 것이다.

슬럼의 주민은 쉬이 가질 수도, 흉내 낼 수도 없는, 외지인임을 나타내는 징표.

하지만 그것만으로 설명하기엔 그들의 경계심이 통상의 경우보다 강하게 느껴졌다.

‘전쟁이 끝난 직후여서 인가.’

도시의 외곽이라는 말은 경찰의 치안이 미치지 못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전쟁 중 구역 경찰이 제 기능을 수행했을지는 미지수지만, 적어도 이들이 다른 거리의 주민들보다 더 큰 두려움에 떨었으리란 점은 분명했다.

“…….”

신입 때는 탐문을 위해 일부러 행색을 초라하게 꾸미고 현장에 나가곤 했더랬다.

하지만 슬럼 사람들은 자신이 현지인이 아님을 귀신같이 꿰뚫어 보았다.

「그쪽처럼 잘사는 분들은 냄새부터가 달라요.」

자신은 그들을 흉내 낼 수 없었다.

그들이 자신을 흉내 낼 수 없듯이.

그걸 깨달은 뒤론 그들이 탐낼 만 한 물건이나 돈으로 환심을 사거나, 도움을 주어 신뢰를 쌓는 방법을 택했다.

단, 경찰이라는 존재에 대해 불신과 두려움이 가득하기에 신분이 노출되는 일은 없어야 했다.

탕!

환심을 살 물건으로 품에서 담배를 꺼내던 그때, 상점가 쪽에서 총성이 울렸다.

의식보다도 먼저 그녀의 몸이 움직였다.

가히 쏘아져 나간다 해도 좋을 속도로 현장에 도착했다.

“뭣들 봐! 구경났어!”

“죽기 싫으면 다 꺼져!”

복면을 쓴 세 명의 남자였다.

하나는 잡화점의 매대 앞에서 주인을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고, 다른 둘은 가게 안에 들어가 금고를 들고나오고 있었다.

거리가 조금 있었지만, 매대 앞 사내가 총을 쏘기 전에 제압이 가능했다.

주인을 구하고 그에게 탐문을 진행하면 될 듯했다.

서에서 정보원이 대기 중이지만, 현장에서 수집한 정보는 또 다를 수도 있으니.

그녀가 착검된 검의 손잡이를 잡고 뛰쳐나가려던 그때.

탕! 탕! 탕!

예상을 깨고 다시 한번 총성이 울렸다.

다만 이번엔 강도들이 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어디선가 날아온 세 발의 총알에 의해 머리가 꿰뚫려 쓰러져 있었다.

곧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신식 장비로 무장한 이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그녀는 당황했다.

‘경찰, 아니, 군인?’

경찰은 발포를 통해 상대를 제압해야 할 경우 손목과 발목을 먼저 사격하도록 교육받는다.

첫 사격에 상대를 사살한 걸로 보아 일단 경찰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황제의 군인도 아니었다.

그들은 쉽게 수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저 표식은….’

그녀의 시선은 사내들이 갖춘 장비에 새겨진 표식에 닿아 있었다.

교차된 두 정의 총과 배경으로 한 방패.

직접 본 적도, 들어 본 적도 없는 표식이었다.

그녀가 당황한 사이 사내들은 시체를 수거하고 현장을 정리해 사라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자신과 같이 놀라 멈춰 있는 주민들이 보였다.

하나 그 밖의 대다수는 어느 정도 익숙한 광경이라는 듯, 다시 몸을 돌려 제 갈 길을 향하고 있었다.

* * *

서장의 집무실.

“오, 오시는 길 고생 많으셨습니다.”

47번 구역의 경찰서장은 쩔쩔매며 제르비아를 대했다.

다만 비실비실 웃는 얼굴 뒤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나보다 계급도 낮은 년이 감투 하나 썼다고는 고개를 빳빳이 들어서….’

그녀의 계급 자체는 경위로 높은 편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가 맡고 있는 직책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치안국 내에서도 실력이 검증된 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특무대.

그 중 실력이 가장 뛰어난 이들이 모인 0번 대를 지휘하고 있으니까.

더구나 지금 그녀는 일종의 감찰관 역할도 겸하고 있었기에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냉랭한 시선으로 한 차례 집무실을 둘러본 제르비아는 서장에게 시선을 향했다.

“…….”

“…하하.”

잔뜩 굳은 자세로 어색한 웃음을 흘리는 서장.

사실 물어볼 것은 많지 않았다.

먼저 도착해 있던 정보원에게 자료를 넘겨받아 전체적인 상황은 이미 파악한 상태였다.

또한, 중산층 거리에 도착해서는 주민들에게도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전쟁이 일어났다.

파르테르는 패배했으며,

퍼틸랜드는 노획한 시설과 토지를 모두 매각하고 자취를 감췄다.

그녀가 작게 심호흡 후 입술을 떼었다.

“왜 조직 간의 전쟁이 벌어졌을 때 바로 보고하시지 않았습니까?”

“여, 여느 때와 같은 사소한 분쟁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걸 하나하나 보고에 올리기엔 그 수가 너무 많은지라….”

“전쟁의 규모가 커졌을 때도 충분히 보고를 올릴 시간이 있었을 텐데요.”

“그, 그게 그러려 했습니다만, 전쟁 통에 저희 쪽 통신 시설이 망가져서 말입니다. 올라오시는 길에 보셨겠지만.”

서장의 말은 경찰서 부지 내에 있는 통신 건물을 가리켰다.

통신 건물은 전체가 까맣게 불타 그 흔적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놈들의 테러였습니다. 작정하고 덤비더군요. 외부 경찰의 개입을 막는 게 목적이었겠지요. 저희도 방어하려 애를 쓰긴 했습니다만….”

서장은 손바닥이 땀으로 흥건해지는 걸 느꼈다.

통신 건물의 폭파는 변명거리를 위해 자신이 직접 지시한 것이었다.

“그 후로도 도저히 외부로 연락을 취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교전이 벌어진 현장을 수습하고, 민간인을 구조하느라 말입니다.”

나름 짜임새 있는 변명거리라 생각했지만, 감찰관의 눈빛은 냉랭하기만 했다.

‘제발 그냥 넘어가자고, 제발.’

서장은 시선을 내리깔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빌고 또 빌었다.

그때 들려온 목소리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47번 구역이 파르테르의 주요 거점이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르셨습니까.”

“전혀! 전혀 몰랐습니다! 놈 같은 흉악한 범죄자가 숨어 있는 걸 알았다면 진작 조치를 취했을 겁니다!”

서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을 내리치면서까지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감찰관님은 지금 저를 의심하는 ─.”

“알겠습니다. 일단 그 건은 넘어가죠.”

사실 이미 심증은 굳힌 상태였다.

처벌을 위해선 물증이 필요하기에, 당장 불필요한 대화는 넘어갈 생각이었다.

그녀는 창문 쪽을 흘긋 바라보며 말했다.

“무장 세력이 거리를 활보하고 있더군요.”

서장은 뜨끔했다.

그들의 정체에 대해선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는 바가 있었다.

‘조사가 나올 것을 대비해 보안 업체로 조직을 세탁한 거겠지.’

추측이 맞는다면 자신은 절대 그들의 정체에 대해 발설해서는 안 되었다.

그쪽 지휘권자가 각 구역 서장들의 약점을 손에 쥐고 있기에 말이다.

“저도 보았습니다.”

서장은 한 차례 심호흡 뒤 말했다.

“얼마 전부터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만, 저희도 아직 조사 중이라 아는 것이 많지 않습니다.”

* * *

제르비아는 서를 나와 다시 거리를 돌아다녔다.

‘결국 직접 알아내야 한다는 거겠지.’

서장은 무언가 감추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더 캐물어도 정보가 나올 것 같지는 않았다.

거리를 활보하는 무장 세력의 소속은 탐문을 통해 어렵지 않게 알아낼 수 있었다.

「슈프림 시큐리티」

‘47번 구역에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 며칠 전. 전쟁이 끝난 시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데이터베이스 검색 결과, 실제 법인으로 등록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단체였다.

촤륵.

그녀는 서류를 펼쳤다.

최근 47번 구역 내 이루어진 토지와 건물들의 소유권 변동사항이었다.

‘여러 소유권자의 이름으로 된 건물과 토지가 기업들에게 시세보다 싼 가격으로 넘어갔어.’

냄새가 났다.

여러 조직과 단체가 모여 꾸며냈을 계획범죄의 냄새가.

‘일단 이 슈프림 시큐리티라는 기업부터.’

그때였다.

탁.

한 남자가 그녀의 허리춤을 치고 지나갔다.

외투 주머니 밖으로 살짝 나와 있던 지갑이 사라져 있었다.

“…….”

평범한 소매치기였다.

다만 서류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탓에 눈치 채지 못했다.

하아.

그녀는 작은 한숨과 함께 소매치기를 뒤쫓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고 놀랐다.

지갑을 든 소매치기의 손목은 코트를 걸친 한 남자의 손에 붙잡혀 있었다.

그 상태로, 소매치기는 손목이 들려 허공에 대롱대롱 떠있었다.

그녀는 코트 차림의 남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옅은 갈색 머리의 중년.

그의 시선은 자신에게 빤히 머물러 있었다.

“…….”

“……?”

도시의 중심.

건물 유리창에 햇살이 비치는 어느 오후.

한 고층 건물의 입구 앞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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