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2. 소문 (3)
정적이 흘렀다.
그들은 뭔가를 바라는 눈치였다.
헛기침을 하기도 하고, 엉덩이를 뭉그적거리며 자리를 고쳐 앉기도 했다.
갈 곳을 잃은 두 쌍의 눈동자가 쉼 없이 복도와 나 사이를 오갔다.
“혹시나, 정말 혹시나 이쪽 세계의 법도를 잘 모를까 하는 말이네만, 원래 도움을 받으면 그에 상응하는 무언가를 내어 주는 게 도리네.”
내가 반응이 없자 오른쪽에 앉은, 다소 체격이 비대한 서장이 말했다.
켄트락 교도소의 교도관, 게렉을 연상케 하는 외모였다.
“내어 준다니 무엇을 말입니까?”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내 테이블을 내리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돈 말일세! 돈! 우리를 놀리는 건가!”
내 입가에서 웃음이 가셨다.
그걸 본 서장이 움찔하더니 이내 자리에 앉았다.
“아니, 내가 화를 낸 게 아니라, 자네가 말을 답답하게 하니….”
그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무얼 기대하고 있었나. 이미 녹취록으로 확인한 것을.’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파르테르와 이들의 유착 관계가 무력 차이에 의한 반강제적인 것이었을 수도 있다는.
“우리가 많은 돈을 바라는 게 아니네.”
“블루서펜트의 그 자와 합을 맞춰 일했을 때는 서장들이 각각 달에 500만 실링 정도씩을 받았지.”
가슴 속에 얼음장 같은 분노가 피어올랐다.
동기화 비율이 상승했다는 메시지는 뜨지 않았다.
일정 수치를 넘기며 상승 속도가 확연히 더뎌진 상태였다.
하지만 카인의 기억으로 인해 전달되는 감정의 진폭은 전에 비할 바 없이 커진 상태였다.
“마, 많은가? 그럼 450만 실링 정도는….”
“그렇게 부담되는 금액은 아니지 않나?”
그들은 눈치를 보며 금액을 계속 내렸다.
카인이 살던 마을이 전소되고 어머니가 죽은 것도, 결국 이런 부패한 공권력 탓이었다.
“왜, 왜 말이 없나.”
“400만 실링, 그 밑으로 우리도 조금 곤란하네.”
그들은 흥정을 하고 있었다.
장사치와 다름없게도.
아득.
분노, 역함, 참을 수 없는 경멸감.
용암을 삼킨 것처럼 가슴이 뜨거웠다.
다음 순간 감정의 흐름에 맞춰 내 전신에서 마나가 뿜어져 나왔다.
정신을 차렸을 때 경찰 여섯은 검은 마나에 휘감겨 깨진 유리 벽 밖 허공에 떠 있었다.
“히, 히익!”
“이, 이런 짓을 하고도, 무, 무사할 수 있을 것 가, 같나!”
서장 둘은 눈을 질끈 감은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젊은 경찰 넷은 몸을 버둥거리며 어떻게든 마법에서 벗어나려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마법의 출력을 높여 압력을 가하자 ‘끅’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축 늘어졌다.
탁.
그때 누군가 내 손바닥을 잡았다.
뒤를 보자 에스텔이었다.
“진정해요. 죽일 생각이 아니잖아요.”
“…….”
알고 있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폭발했을 뿐 지금 펼쳐진 상황 자체는 내가 의도한 바였다.
「냉철함」특성 덕에 통제를 벗어난 행동을 하는 것은 내게 불가능한 일이다.
“괜찮다. 걱정하지 마라.”
분노를 가라앉힌 평소의 목소리.
그제야 그녀의 얼굴에 두려움이 가시고 안도감이 깃들었다.
“그걸 가져와라.”
그녀는 책상 가장 아래 서랍에서 녹음기를 꺼내 내게 건넸다.
“조사관이 나올 거란 마, 말이 거짓 같은가! 자, 자넨 끝이야!”
“너, 너 같은 새끼들이 여기서 안전하게 돈을 벌 수 있던 게 다, 다 누구 덕인 줄 알아! 다 우, 우리가 보고를 잘 올려 감찰이 나오지 않았던 거라고!”
말을 더듬으면서도 끝내 문장을 완성하는 꼴이 꽤나 인상적이었다.
딸칵.
「…큼, 뭘 이런 걸 또 준비했나. 성의가 있으니 받아가긴 하겠네만….」
「…걱정하지 말게. 가게 운영을 하다 보면 싸움이 나고 사람도 좀 죽을 수도 있는 것 아니겠나. 민간인인 게 조금 걸리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책임지고 덮어 주겠네….」
딸칵.
고래고래 질러대던 고함은 순식간에 멈춰있었다.
“누구 덕이냐고 물었나. 그래. 다 너희 같은 부류 덕이지. 공권력에 달라붙어 기생하는 쓰레기들.”
“조, 조사관이 나오면….”
“수사에 협조해 이 녹음테이프를 넘기면 되겠군.”
“그러면 그쪽도 분명 멀쩡하지 못… 컥!”
나는 마나를 휘감아 체구가 큰 서장을 내 앞으로 끌어당겼다.
여전히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그의 귀에 속삭였다.
“레이몬드 서장. 당신과 나의 가장 큰 차이가 뭔지 아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몸을 벌벌 떨어댈 뿐이었다.
“나 같은 범죄자들은 언제든 모든 걸 잃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다. 반면 당신은 지켜야 할 것들이 많지.”
나는 다시 한 번 마나를 움직였다.
“자식이 넷이더군. 첫째가 열여덟이던가. 좋은 나이야.”
쿵!
안경을 쓴 서장을 포함해, 허공에 있던 경찰 모두 방 안의 바닥에 처박혔다.
레이몬드 서장 역시 마찬가지로.
그는 쓰러진 몸을 일으키지 못한 채 신음소리를 냈다.
“분명 올바르게 자라 주위의 기대대로 가문의 명예를 높일 인물이 되겠지. 제 아비가 가져온 더러운 돈으로 온갖 좋은 음식을 먹고 신식 교육을 받으면서 말이지.”
“쿨럭! 서, 설마 내, 내 가족에게 손을 댄 건….”
나는 성큼성큼 레이몬드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는 그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컥!”
“그래도 자식 안전은 중요한가 보군. 하긴, 자기 저택 주변의 거리에만 순찰대를 배치해 놓았지. 시민들이 다른 곳에서 어떤 꼴을 당하든 말든 상관없이.”
퉁!
머리채를 놓자 그의 머리가 바닥에 떨어졌다. 자리에서 일어나 배를 걷어찼다.
“꺽…!”
숨이 멎는 소리와 함께 그가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생전 겪어 본 적 없을 고통일 터였다.
“한 번만 말할 테니 잘 들어라. 지금 이 순간 부로 내 눈에 띄지 마라. 그 뒤뚱거리는 몸이 거리에서 보이는 순간 이 녹음테이프는 수도의 경찰청으로 송부될 거다.”
걸음을 옮겨 다시 그 앞에 다가섰다.
눈앞에 나타난 내 구두를 보고 그는 몸을 벌벌 떨었다.
“그리고 조사관에겐 어떤 식으로 보고를 올리든 상관없다.”
실제로 그랬다.
그들이 어떤 보고를 올리느냐와 무관하게, 치안국은 47번 구역을 찾아와 나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 터였다.
‘그들 입장에서 절대자에 가까운 존재에게 명령이 내려올 테니.’
내가 마법을 거두자 젊은 경찰들은 오래지 않아 정신을 차리고 깨어났다.
레이몬드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허, 이, 이, 일단, 헉, 일단 여기서, 헉 나가지.”
젊은 경찰들은 서장 둘을 부축해 힘겨운 몸짓으로 밖으로 나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밑으로 사라지는 그들의 모습을 확인한 후, 나는 방 내부를 향해 다시 몸을 돌렸다.
조금 멍한 얼굴을 하고 있는 에스텔을 향해 말했다.
“내 행동이 과했다고 생각하나?”
“…아뇨. 그렇지 않아요. 충분히 그런 벌을 받을 만한 이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정신력 소모가 조금 커서….”
나는 그녀를 지나쳐 책상에 앉았다.
“에스텔, 난 지금의 내 삶을 후회하진 않는다. 하지만 가끔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레이몬드의 땀이 튄 정장 재킷을 벗어 뻥 뚫린 유리벽 아래로 던지며 말을 이었다.
“경찰이 제 역할을 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미래도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네요. 전에 말한 적 있는 것 같은데 나도 슬럼에서 자랐어요. 동생과 함께 갓난아기 때 버려져서요.”
“기억하고 있다.”
“좀 더 안전한 환경에서 부족한 것 없이 자랐다면 우린 뭐가 되었을까요?”
“글쎄. 아마 신은 알고 있겠지.”
그녀가 픽 웃었다.
“당신 신 안 믿잖아요.”
“너는 아직 믿고 있나?”
“잘 모르겠어요. 요즘엔 한쪽으로 많이 기울었긴 하지만.”
뎅- 뎅-
멀리서 성당의 종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유리 벽이 사라져 소리는 아까보다 전보다 더 선명했다.
* * *
제르비아는 성당 내부를 울리는 종소리를 들으며 감았던 눈을 떴다.
맞잡은 양손을 풀고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거대한 크기의 여신상이 자애로운 미소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도, 황실 궁전 근처에 위치한 성당이었다.
“…….”
그녀가 딱히 신을 믿는 것은 아니었다.
기사학교 시절, 신학이 필수 과목이었지만 그것이 믿음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그저 몸에 밴 습관이었다.
가슴이 갑갑할 때, 아무도 없는 성당에 찾아와 기도를 올리다 보면 어지럽던 감정이 정리되곤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아무리 기도를 올리고.
수십 번 명상을 취해도.
작은 배에 몸을 붙들고 출렁이는 격랑 위를 표류하는 기분.
원인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다.
「정말 범죄를 뿌리 뽑고 싶다면, 상대의 사정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또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각오를 갖춰라.」
소중한 것을 포기할 각오.
그 말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
‘다시 한번 같은 상황에 처한다 해도 내가 녀석을 공격할 수 있을까. 오빠의 유골함이 부서지는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상상하는 것만으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자비르 칼타.
자신이 쓰고 있는 이름의 진짜 주인.
오빠가 죽은 것은 5년 전이었다.
오빠는 경찰시험에 합격해 막 수습으로 배치되고, 자신은 기사학교의 졸업 학년으로 다니고 있던 때.
경찰청장 아버지라는 막강한 배경을 지니고 있지만, 그녀는 그것이 자신들에게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본처가 아닌 첩의 자식이었으니까.
본처에게 자식이 없어 자신들이 칼타 가문의 유일한 자식이란 점은 혈통을 중시하는 상류 사회의 특성상 크게 의미를 갖지 못했다.
아버지는 눈에 난 자식들에게 무관심했고, 자신들은 흠결 찾기 좋아하는 인간들의 눈총과 수군거림에 노출되었다.
태어난 순간부터, 성인이 된 후로도 쭉.
그나마 그 수군거림이 줄어든 것은 오직 실력만으로 기사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경찰 시험에 합격해 승진을 계속해 오고 있기 때문일 것이었다.
그 과정에 아버지의 도움은 일절 없었다 단언할 수 있었다.
그녀는 그래도 아버지가 존경할 만한 사람이라 생각했다.
경찰이라는 거대한 단체의 장으로 타인의 귀감과 모범이 되고 있으니.
자신들이 경찰이란 꿈을 품게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오빠가 죽었을 때 모습을 보이지 않으시긴 했지만….’
5년 전, 31번 구역의 다리에서 일어났던 폭파 테러.
그때 자신은 피를 흘리며 쓰러진 오빠 앞에서 검을 들고 있던 카인을 보았다.
멀리서 보았던 광경임에도 벌벌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다.
장례가 끝날 즈음 식장을 찾아 뚜껑이 덮인 관을 흘긋 바라보고 떠났을 뿐이었다.
그곳이 이곳이었다.
수도의 2번 거리, 성당.
오빠의 운구식이 치러졌던 장소.
그의 빈자리를 떠올리면 마음 한쪽이 저릿해져 왔다.
「전보다는 확실히 나아졌어. 칭찬해 줘야겠네.」
자신에게 검술을 가르쳐 주었던 것도, 의지할 기둥이 되어준 것도 그였다.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각오를 갖춰라.」
그를 포기해야 할까.
분하지만 카인의 말은 옳았다.
급박한 범죄 현장에서 순간적으로 선택을 망설인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가령 민간인을 구출할 때, 다수의 생존을 위해 소수의 희생을 택해야 하는 경우.
교본대로라면 다수를 구함이 맞고, 결국 다수를 구하는 선택을 내리지만, 그 선택을 내리기까지 머릿속에선 무수한 갈등이 오갔다.
그 밖의 다른 상황도 많지만 근본적으로 결은 같았다.
포기.
다른 무언가를 위해 소중한, 혹은 지켜야 할 것을 버리는 행위.
그걸 해내지 못하면 나아갈 수 없다. 성장할 수 없다.
인생의 경주로에서 줄곧 뛰어오던 자신에게 죽은 삶과 같다.
“…….”
그녀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가락 사이로 피가 배어 나왔다.
벽을 넘어설 필요성이 있다.
수사도 나가지 않은 채 이렇게 유령처럼 지내고 있을 수만은 없다.
죽은 오빠도 자신이 이렇게 지내는 것을 원치 않을 것이다.
아득.
그녀의 감정은 곧 오빠를 죽인 카인에 대한 분노로 치환되어 갔다.
스릉.
그래, 나가자.
껍데기 따위 깨고 나가는 것이다.
쐐액!
뽑아 든 검이 손등 위로 떨어져 내렸다.
중앙을 관통하고 손바닥이 놓인 예배대는 핏물로 흥건해졌다.
시큰한 통증.
정신이 맑아지는 기분이었고 꼬여있던 감정들이 정리가 되어갔다.
그때 문이 열리며 정복 차림의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제르비아의 모습을 보고 흠칫했다.
한 차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말했다.
“47번 구역에 출현한 인물에 관한 보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