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8. 투신 (3)
콰릉!
벼락은 몇 번이고 더 내리쳤다.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굉음.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섬광.
에스텔은 눈을 감고 몸을 웅크린 채 그저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랐다.
규격 외의 자연 현상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본능적인 두려움이었다.
밀시안 역시 느끼는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
영원과 같은 순간이 지나고 굉음과 섬광은 사라졌다.
두 사람은 천천히 눈을 떴다.
시야가 돌아온 자리에 파르테르는 사라져 있었다.
거대한 구멍만이 남아 입을 벌리고 있었다.
구멍은 아래층에도, 그 아래층 바닥에도 존재해 까마득한 지하까지 이어졌다.
탁.
놀란 얼굴을 한 두 사람을 뒤로하고 카인이 구멍 위로 발을 디뎠다.
두 발은 평지를 걷듯 허공에 멈췄고, 마나에 둘러싸인 몸은 엘리베이터를 탄 것처럼 아래로 향했다.
19층.
18층.
17층.
움직임은 부드러웠으나 속도는 빨랐다.
B2.
B3.
B4.
순식간에 지하에 닿았다.
건물의 최하층이라 알려진 B4층.
경기장 바닥엔 구멍이 뚫려 있었고, 아래엔 그 누구도 몰랐던 비밀스러운 공간이 드러나 있었다.
그곳에 파르테르가 누워 있었다.
“무슨…짓을 한 거지…?”
그의 몸은 새카맣게 타 있었다.
옷 역시 흔적도 없이 타버려 맨몸에 가까운 모습이었으며, 주위로는 채 사그라지지 않은 전류의 파편들이 실지렁이처럼 흘렀다.
당장 숨이 넘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모습으로, 조금 전 꺼냈던 말도 힘겹게 끊어 발음한 것이었다.
몸을 일으키려 시도했지만 온몸의 세포가 궤멸당하기라도 한 것처럼 팔다리에 일체의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아직 살아 있나. 질긴 목숨이군.”
그의 앞에 서며 카인이 말했다.
카인 역시 안색이 썩 좋지는 않았다.
머리는 어지럽고 속은 메슥거렸다.
다수의 보석을 촉매로 사용하며 회로 전체에 과부하가 걸린 상태였다.
“하긴 진작 투기장의 쓰레기통에 버려져 죽었어야 할 갓난아기가 지금껏 살아남았으니, 그 명이 조금 더 간다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
파르테르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저 거칠게 숨을 헐떡이는 것으로 분노를 표할 뿐이었다.
어디서 주워들은 것은 있는가.
아니, 녀석의 성격상 내 과거에 대해서도 진즉에 조사를 마쳐 놓았을 것이다.
카인은 피로한 눈빛으로 공간을 둘러보았다.
마법으로 빛을 만들어 띄우자 쌓여 있는 지폐 더미들이 보였다.
최상층에 있던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많은 양이었다.
“내…돈을…건드리지…마라. 죽여…버릴…쿨럭!”
한 움큼 토해진 피가 파르테르의 입 주변을 덮었다.
그의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고 그 모습을 본 카인이 조금 놀랐다는 얼굴을 했다.
“대단한 집념이군. 아직도 움직이려 시도할 힘이 남아 있다니. 어차피 죽으면 챙겨 가지도 못할 것들 아닌가?”
“난…죽지…않는…다….”
“아니, 넌 죽는다. 말했듯이 오늘 이 도시에서 너라는 존재는 사라진다.”
죽음.
그 단어가 파르테르의 가슴을 울렸다.
“…….”
어찌 보면 누구보다 죽음에 근접해 살아왔다.
투기장과 전쟁에서 몸을 날리고 주먹을 휘두르는 매 순간이 생사의 갈림길 연속이었으니까.
죽음이란 관념에 대해 고뇌하며 보낸 밤도 적지 않았다.
하나 정작 용기는 없었다.
매일매일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직접 손을 뻗어 죽음이란 녀석을 어루만질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는 정말 죽는가?’
쿨럭!
기침이 계속되고 피가 얼굴을 덮었다.
가슴의 격통이 심해질수록 무의식에 묻혀 있던 현실 감각이 되살아났다.
죽는다.
나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귓가에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시야는 흐릿해지나 정신은 도리어 또렷해지는 기분이었다.
이제까지 살아왔던 순간들이 빠르게 머릿속을 스쳤다.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다.
잉크 먹은 놈들이 이런 걸 주마등이라 했던가.
‘원점으로 돌아온 셈인가.’
자신은 경기장 아래 지하 감옥에서 태어났다고 했다.
후에 타인을 통해 들은 말이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천장에서 울려오던 투사들의 발소리가 고스란히 귓바퀴에 남아 있었기에.
마치 자궁 속에서 듣던 어머니의 심장박동처럼.
그때도 아마 지금과 같은 알몸이었을 것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세상이 떠나가라 울었겠지만, 지금은 바람 빠지는 소리밖에 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우습군.’
거칠고, 질기고, 모진 삶이었다.
차마 스스로는 끊지 못했던 목숨.
정말 죽는다고 생각하자 어쩐지 마음이 편해졌다.
“담배…하나…부탁하지….”
“…….”
카인은 조용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파르테르의 입술에 끼웠다.
그가 힘을 주지 못해 담배는 바닥에 떨어졌고, 카인은 담배를 주워 그의 입술 사이 깊숙이 밀어 넣어 고정했다.
탁.
마법으로 불꽃을 일으켜 담배에 불을 붙였다.
흐읍.
파르테르가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담배는 순식간에 타들어 가 재가 되었다.
내뱉는 숨과 함께 담배 연기가 매캐하게 뿜어져 나왔다.
“평소 네가 피우던 고급품만은 못하겠지만 죽기 전 마지막 사치로 부족함은 없을 거다.”
“…고…맙…군.”
잠시 정적이 흐르고 파르테르가 말했다.
“조금…후회스러운…것은…있다. 나를…진심으로…대해준…사람이…없었다는…것이…. 내가…먼저…그들을…그렇게…대했던…탓이겠지만….”
“한 명은 존재한다. 네가 기억할지는 모르겠지만.”
카인은 46번 구역의 투기장에서 만났던 노인의 이름을 말했다.
다시 정적이 흘렀다.
“…잊고…분명…그런…사람…있었지.”
말을 뱉을수록 숨이 가빠졌다.
그럼에도, 카인은 파르테르의 표정이 무거운 무언가를 내려놓은 듯 한결 편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카인은 피스톨을 꺼내 들었다.
“마지막으로 묻지, 보스의 정체를 알고 있나?”
“모른…다.”
나는 에스텔을 바라보았다.
갑작스레 시선을 받은 그녀는 잠시 당황하다 내 뜻을 눈치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실.
‘백진우가 빙의했을 가능성이 있는 인물. 적어도 파르테르는 아니군.’
이야기의 플롯과 결말을 알고 있는 녀석이라면 이 질문의 답을 알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수고했다.”
철컥.
“이제껏 살아오느라.”
그때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죽이지 말아요.”
카인은 고개를 돌렸다.
파르테르를 향해 총을 겨눈 자세는 풀지 않은 채였다.
“오랜만이군.”
“오랜만이에요. 회합 때 본 게 마지막이었으니 거의 다섯 달 만인가요?”
무테안경에 틀어 올린 은색 머리.
간부 중 하나이자 보스의 비서 역할을 하고 있는 제이나였다.
그녀는 손가락 끝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
“서두른다고 서둘렀는데 상황이 벌써 이렇게 되어 있을 줄은 몰랐네요. 일단 그 총은 내려놔요.”
“…….”
카인은 상황을 가늠했다.
그녀가 이곳에 다다르기까지 발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구멍을 통해 들어 오는 모습도 보이지 않았고, 그저 어느 순간 등 뒤에 나타나 있었다.
‘마법을 사용해 접근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군.’
그녀 역시 마탑의 장로 하나쯤은 거꾸러트릴 만한 수준급의 마법사였다.
카인은 생각을 이어 갔다.
다만 자신의 육체가 지닌 마나 감지 능력은 세계관 내에서도 독보적이었다.
마나의 일렁임을 잡아내지 못한 것은, 그녀의 실력이 뛰어나기도 하지만 촉매를 다량 사용한 일시적 후유증 탓도 있었다.
어쨌든 파르테르의 숨을 끊는 데는 문제 없었다.
그녀가 공격을 한다 한들 방아쇠를 당기는 자신의 손가락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굳이 총을 쏘지 않더라도, 이대로 방치하기만 해도 파르테르는 숨이 끊길 터였다.
‘딱히 공격 의사가 있어 보이진 않지만.’
만에 하나 그녀가 공격한다면 대응할 마나가 부족했다.
회로의 모든 마나를 끌어모아 번개를 내리쳤기에 고갈에 가까운 상태였다.
마정석은 언제든 씹어 삼킬 수 있도록 어금니 뒤에 넣어 둔 상태였지만 현재 몸 상태로 복용하는 것은 가급적 피해야 할 일이었다.
“제이나, 당신을 직접 보내다니 보스도 꽤나 급했나 보군.”
“총 내려놔요.”
“어차피 모든 간부는 소모품 아니었나? 다른 녀석으로 자리를 채우면 될 테니 문제가 없을 텐데.”
“당장 구역을 운영하는 데 차질이 생기겠죠. 자금 흐름에도 문제가 생기고요.”
제이나가 품에서 휴대용 통신 기기를 꺼냈다.
버튼을 누르자 한 차례 마나가 일렁이고 기기 위에 홀로그램이 출력되었다.
「세상일은 전혀 예측할 수 없던 일들 덕에 재미있어지는 법이지. 그렇지 않나? 카인?」
소파에 몸을 묻은 남자가 다리를 꼬고 카인을 마주했다.
무채색 가면을 쓰고, 목소리는 기계로 변조되어 있었다.
“예. 저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몇 달 전 간부 사이의 알력 다툼을 방치했던 보스가 이렇게 헐레벌떡 나타나실 줄은 예측하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보스 앞입니다. 예의를 갖추세요.”
「괜찮다. 예민한 상태이니 이 정도는 감안하고 넘기지.」
보스는 그저 이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길게 웃음을 흘렸다.
언제든 방아쇠를 당길 준비를 마친 채, 카인은 보스를 응시했다.
그가 조직 운영에 어떤 태도를 견지하고 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귀찮음.
혹은 신분 노출에 대한 병적인 우려.
보스는 회합 때 벌어졌던 일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라이카가 다른 간부들 역시 한 번에 제거하기 위해 경찰을 끌어들였다는 사실 역시도.
‘보스가 가진 지위와 권력이라면 경찰에 압박을 넣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압박을 넣어 경찰이 회합 현장을 급습하는 일 자체를 일어나지 않게 만들 수 있었다.
지금 바마와 교전 중인 치안국 역시도, 처음부터 출동하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은 신분 노출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조직을 ‘돈’이라는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기계 정도로 보기 때문이었다.
간부와 조직원들은 고장이 나면 언제든 교체할 수 있는 부품에 불과했다.
「그보다 마법을 사용했다고 했지.」
“네. 거리에서 이미 확인 작업은 마쳤습니다. 최소 두 개 이상의 속성마법을 사용하고 그 수준 역시 상당합니다.”
「조금 전 내리쳤던 번개. 촉매를 끌어 쓴다면 자네도 똑같이 할 수 있나?」
“…불가능합니다. 단순히 얼마만큼의 마나를 보유하고 있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두 사람은 카인을 앞에 두고 계속해 대화를 이어갔다.
「마나 한 줌 다루지 못하던 성인이 마나회로를 구축할 확률은?」
“알려진 바로는 확률 자체가 성립이 안 됩니다. 불가능합니다.”
「그래.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그런데 눈앞에 그 결과물이 있으니 믿지 않을 수도 없고.」
보스는 온갖 종류의 반지가 끼워진 손으로 턱을 매만졌다.
「혈관이 굳은 성인이 회로를 구축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사업 아이템으로는 어떻게 생각하나?」
“…상품화가 가능하다면 다른 아이템과는 비교도 안 되는 수익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래. 내 생각도 그래.」
한참 신음을 흘리던 보스는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카인, 조직으로 돌아와라. 자리를 다시 마련해 주지. 저 쓰레기는 쏴 버려도 좋다.」
“…….”
「난 능력 있는 자를 좋아한다. 내가 너를 후계자로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걸 기억하고 있겠지.」
“그런 것치고는 제가 교도소에 들어가기까지 손을 전혀 쓰지 않으셨습니다만.”
「뭐, 일종의 시험이었다고 생각하지. 조직 내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불리는 머리라면 충분히 그 상황을 극복하고 헤쳐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거든. 결과적으로 예상은 빗나갔지만 말이야. 그런데 그때 보여 주지 못했던 능력을 지금 보여 주고 있으니, 다시 영입하는 게 당연한 일 아니겠나?」
“이미 조직에 버림받은 몸이 다시 조직에 들어간다니 우습게 느껴지는군요.”
「파르테르가 관리하던 모든 구역을 맡기지. 부하들도 원하는 만큼 붙여 주고, 시설 복구도 모두 내가 맡아 해 주겠어. 이곳의 돈은, 줄곧 찾아다녔는데 이런 곳에 숨겨 놨을 줄은 몰랐군. 일정 몫을 보상으로 내리지.」
“…….”
복수 대상에 보스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하나 최종 목표인 라이카를 잡기 위해서는 보스 역시 적대해야 한다.
라이카만큼은 다른 간부들과 달리 보스와 밀접히 연관되어 있으니까.
‘차라리 그렇다면.’
탁. 타닥.
위쪽에서 밀시안과 에스텔의 발소리가 들려왔다.
“제안을 거절하면 저는 어떻게 됩니까?”
보스가 어깨를 으쓱했다.
「별수 있나. 죽어야지.」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피스톨을 든 카인의 손이 천천히 내려갔다.
「그래. 잘 생각했네. 과거의 일은 과거로 묻어 두는 것이 현명한 일이야. 생각해 보니 그 쓰레기는 일단 내버려 두는 게 좋겠어. 혹시라도 살아난다면 인수인계를 해야 하니까.」
내려가던 카인의 손이 번쩍 올라간 것은 그때였다.
탕! 탕!
총구가 두 번의 불을 뿜었다.
한 발은 파르테르의 심장을 향해서.
다른 한 발은 통신 기기 너머, 제이나의 심장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