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86화 (86/227)

#086. 투신 (1)

파르테르는 유리 벽 너머를 내려다보았다.

투기장 건물의 최상층이었다.

도시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

어지럽다.

드넓은 바다처럼 끝을 모르는 넓이와 깊이로 펼쳐진 도시.

건물 사이사이에 입을 벌리고 있는 좁은 틈의 어둠을 볼 때면 그는 종종 창을 깨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무얼 위해 살아가는가.

그 질문에 명쾌한 답이 내려진 적은 없었다.

자신에겐 답을 찾을 능력이 없었고 다른 누구도 답을 찾아 주지 않았다.

어찌하다 내 삶은 이렇게 되었는가?

그 역시 답은 나오지 않았다.

유일하게 살아 있다는 감각이 들 때는 전장에 있을 때였다.

주먹이 뼈와 살을 가르고, 몸 안에 흐르던 뜨거운 피가 얼굴 위로 튀는 순간.

그럴 때면 심장이 빠르게 뛰어 자신이 숨을 쉬며 살아가는 생명체란 사실을 다시 한번 자각할 수 있었다.

그때 유리 벽 너머 도로에서 두 대의 차량이 충돌했다.

분명 이곳까지 소리가 들릴 리 없음에도, ‘쾅’하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두 차에서는 각각 아군과 적이 내려 전투를 벌였다.

투두두―!

역시, 들릴 리 없는 총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검이 부딪히고 총알은 쉴 새 없이 허공을 수놓았다.

개개인의 전투력은 아군이 월등히 높았지만, 왜인지 전투는 시간이 지날수록 이쪽에 불리하게 흘러갔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일평생 전장이라 부를만한 곳에서 온갖 종류의 싸움을 목격해 온 자신으로서는.

미천한 실력을 지닌 쓰레기들이 단지 일사불란한 지휘만으로 전력 차를 좁히는 것을 넘어 이쪽을 압도하고 있다는 사실이.

전투를 할 때면 느꼈던, 살아 있다는 감각이 지금은 느껴지지 않는다.

적의 몸을 찢고, 주먹을 휘두르며 날뛸수록 갑갑함만 배가 되어 갈 뿐이었다.

거대한 미로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헤매는 기분.

그는 조금 전 부하에게 받았던 보고를 떠올렸다.

「시설 직원과 전투원 중 연락이 두절된 이들이 있습니다. 적의 회유에 넘어간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어 전투원들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투기장은 모두 파괴되었다.

대응할 틈도 없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시설이 무너져 진입조차 불가능한 투기장을 보며 순간 정신이 멍해졌다.

대체 왜?

내가 가진 것을 빼앗으려던 게 목적이 아니었단 말인가?

쨍!

손바닥에 닿아 있던 유리 벽이, 단지 조금 힘을 준 것만으로 와장창 무너져 내렸다.

그와 동시에 스산한 바깥 공기가 몸을 휘감았다.

“…….”

아래로 향해 있던 시선을 위로 들었다.

구름 낀 흐린 하늘, 그리고 이곳과 비슷한 높이의 건물 옥상들만 보일 뿐이다.

높다.

오직 남들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 이만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자신이 이곳에 오르기까지 어떤 길을 거쳐 왔던가.

하지만 동시에 홀로 서 있다.

자신과 눈높이를 마주하고 있는 인간은 이 풍경에서 보이지 않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도시에서 이 정도 높이에 오를 만한 인간은 모두 자신이 제거해 왔기에.

그것이 적이든.

아군이든.

혹은 아군을 위장한 적이든.

‘애초에 인간이란 동물은 그리 믿을만한 존재가 아니다.’

평생에 가깝게 이쪽 세계에 머무는 동안, 인간이 보유한 온갖 추악한 면모를 다 보아왔다.

평소엔 꽁꽁 숨겨 두나 위급한 상황이 되면 역한 냄새를 풍기며 드러낼 수밖에 없는 것들.

믿었던 이에게 속은 적도 적지는 않았다.

가령 전투 중 부하의 칼에 찔려 목숨이 위험했던 적이 있었다.

꽤나 신뢰했던 부하였고, 그때의 충격은 적지 않았다.

뜯긴 부하의 머리를 들고 원칙 하나를 가슴에 심었다.

배신당하기 전에 배신한다.

인간은 그 누구도 믿지 않는다.

그는 유리 벽에서 고개를 돌려 시선을 뒤로 향했다.

궁전의 복도와 같은 광활한 공간 곳곳엔 온갖 귀금속과 함께 지폐 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발밑의 떨림이 멎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세계에 믿을 수 있는 게 있다면 돈이었다.

적어도 돈은 사람을 배신하지 않고, 금액만 충분하다면 무엇이든 얻을 수 있는 수단이 되어 주었다.

다만 사업이 궤도에 오르고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돈이 굴러들어오게 된 뒤로는 돈을 쓰는 방법을 잊게 되었다.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는 물건을 모두 사들이고 온갖 사치품으로 이 홀을 채워도 돈은 줄기는커녕 늘어났으니까.

돈에 대한 감각 자체가 없던 아주 어린 시절, 뭣도 모르고 잡았던 목표액도 이미 넘어섰다.

돈은 넘치고 차도록 모았다.

그렇다면 그 이후에는?

사실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생각해도 답이 나오진 않을 문제였다.

어쨌든 계속해 돈을 모으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었다.

이제까지 모아온 돈은 누구도 탐내지 못할 자신의 보물이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절대 주인을 배신하는 일이 없을.

똑똑.

“들어와라.”

“실례하겠습니다. 지원을 온 라이카의 전투원들은 모두 교전 중 죽은 것으로 서류를 처리했습니다.”

“잘했다.”

지원 병력이 온다면 전쟁의 승패는 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두 간부는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바마는 다른 구역에서 치안국과 교전 중이었다.

라이카는 소모품인 게 분명한, 쭉정이 같은 녀석들로만 지원을 보냈다.

순간 분노가 치밀어 그들의 목을 모두 직접 뜯어 버린 후였다.

탁.

보고를 위해 들어 왔던 부하가 나가고 방 안엔 다시 그 혼자 남았다.

다시 유리 벽이 있던 자리 앞에 섰다. 어쩐지 발밑이 흔들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멀리 한 건물의 옥상에 있는 누군가의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쾅!

발밑을 힘껏 박차며 깨진 유리 벽 너머로 도약했다.

힘이 실린 발걸음으로 옥상과 옥상 사이를 건너뛰며 상대와의 거리를 좁혀갔다.

조금만 삐끗해도 추락해 몸이 산산이 조각날 높이였다.

하지만 긴장감 따위는 들지 않았으며, 오히려 몸을 던지면 이 질긴 삶을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적지 않았다.

시도해 보진 않았지만, 결과는 눈에 보였다.

이 몸뚱이는 본능적으로 마나를 일으켜 몸을 보호하리라.

몸이 가진 생존 욕구는 머리와는 다른 법이니까.

탁.

상대가 있는 옥상의 건너편 옥상에 도착했다.

아래쪽에는 여전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자신의 발소리를 들은 상대가 고개를 들었다.

“…….”

“…….”

검은 머리의 남자였다.

상대 진영의 지휘관이자, 자신이 전투 중 느낄 수 있던 생동감을 앗아 가버린 원흉.

이제까지 몇 번이고 쫓았지만, 그때마다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이쪽을 놀리기라도 하듯 주먹이 닿기 전 아슬아슬한 순간마다.

정체에 관해선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카인.

복수를 위해 그가 돌아왔다.

부하들 사이를 떠도는 소문은 이미 자신의 귀에도 들어왔다.

현실적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감옥에 갇혀 있는 녀석이 이곳에 존재할 수 있을 리 없다.

하나 자신의 본능은 위험 신호를 울림과 동시에 외치고 있었다.

녀석은 틀림없는 진짜라고.

오늘은 왜인지 녀석은 도주하지 않았다.

그저 무표정한 얼굴로 이쪽을 응시할 뿐이었다.

“오늘은 꼬리에 불붙은 개 마냥 도망치지 않는군.”

툭.

작은 빗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두 남자의 얼굴을 때리고 미끄러져 내렸다.

질문은 받은 검은 머리의 남자는 아래를 흘끗 내려다보고는 시선을 바로 했다.

“서른넷. 이 숫자가 뭘 의미하는지 아나?”

“…….”

“이 구역에 남아 있는 네 부하의 숫자다. 이제 이 전쟁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되었다는 의미지.”

검은 머리의 남자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다.

곧 손바닥이 사라졌고, 파르테르가 익히 아는 얼굴이 나타났다.

“카인, 감옥은 어떻게 빠져나왔지?”

놀라지는 않았다.

다만 진흙을 머금은 것처럼 입안이 텁텁하고, 심장이 꽉 죄어 오는 느낌을 받을 뿐이었다.

“다들 그것부터 묻더군. 그 철옹성 같은 교도소의 벽을 어떻게 넘었느냐고. 간단하다. 넘지 않고 구멍을 만들었다. 네가 앞에 거치적거리는 것은 모두 부수고 지나가듯이.”

“탈옥에 성공했다면 어딘가에 숨어 죽은 듯이 지내는 게 좋았을 텐데. 제대로 숨을 끊어 달라 다시 찾아온 걸 보면 멍청하기 짝이 없어.”

카인은 대답 없이 픽 웃었다.

그걸 본 파르테르의 이마가 순간 꿈틀거렸다.

“왜 돌아왔지? 복수가 목적인가? 무얼 원하나? 내 목숨? 쌓아온 부? 뭐가 되었든 네가 돌아올 자리는 없다. 네 소유이던 시설은 모두 라이카가 흡수했고 부하들은 우리 손에 전멸했으니까.”

콰릉!

번개가 내리치며 시야가 점멸했다.

거의 동시라고 해도 좋을 순간, 카인은 피스톨을 꺼내 방아쇠를 당겼다.

탕!

파르테르의 눈이 부릅떠졌다.

두꺼운 손바닥이 총알을 날아온 방향 그대로 쳐냈다.

텅!

시야가 돌아왔다.

총알은 카인의 눈앞 허공에 멈춰 있었다.

곧, 표면을 감싸고 있던 마나가 사라지며 바닥에 떨어졌다.

쏴아아-

순식간에 거세진 빗줄기가 그 위를 때리며 총알은 건물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내리는 빗줄기만큼이나 냉랭한 목소리로 카인이 말했다.

“파르테르. 크기만 비대한 그 머리로 감히 내 의도를 파악하려 들지 마라.”

파르테르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전쟁이 일어나는 며칠간 보았던 대로 녀석은 마법을 익혔다.

그것도 단순한 눈속임 정도가 아닌 철저한 전투용으로.

‘역시 그때 숨을 끊어 놓았어야 했나.’

결국 자신이 우려했던 것은 이런 것인지도 모른다.

방치했다간 언젠가 자신이 보스 자리에 오르는 데 크게 걸림돌이 될 존재로 성장할 것이란 우려.

라이카가 경찰에게 뒤를 밟혀 회합 장소가 덮쳐지는 일이 아니었다면 충분히 카인의 숨을 끊을 시간이 있었을 것이다.

‘그 철두철미한 야수가 뒤를 밟혔다는 사실이 미심쩍긴 하지만.’

카인을 포함해 모든 간부를 한꺼번에 처리하기 위한 계략이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확실한 물증은 없는 그저 심증일 뿐이었다.

파르테르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네 목적이 뭐든 상관없다. 결국 내 손에 죽게 될 테니까.”

“확실한가?”

“뭐?”

“오늘 죽는 이가 네가 아니라 나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카인의 말을 들은 파르테르는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몇 번인가 더 내리친 번개와 세차게 쏟아지는 빗줄기 속에서.

그러다 웃음을 뚝 그치고 정색하며 말했다.

“카인. 넌 조직에 말단으로 들어와 간부에 이르기까지 단 한순간도 건방지지 않은 적이 없었지. 나는 네 오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건방져서 마음에 들지 않았다라. 사실 내가 두려웠던 건 아닌가?”

아득.

“그 입─!”

“파르테르. 오늘 너는 여기서 죽는다. 네가 가진 모든 것은 부서지고 약탈당해 후엔 누구 하나 널 기억하는 이가 없게 될 거다.”

“역시 투기장은 네 짓이었군! 넌 건드려선 안 될 것을 건드렸다!”

파르테르가 도약함과 동시 옥상의 바닥이 움푹 패었다.

빗줄기를 뚫고 그의 주먹이 카인을 향해 내리쳤다.

우웅─

주먹에 의해 찢긴 허공은 기이한 바람 소리를 냈다.

순간 사라진 카인의 모습은 다른 건물의 옥상에 나타나 있었다.

다시 한번 바닥을 박참과 동시에 파르테르의 모습이 사라졌다.

첫 도약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였다.

챙!

카인에게 쇄도하던 파르테르의 몸이 허공에서 무언가와 부딪히며 뒤로 밀려났다.

“…쓰레기 같은 것들이.”

카인의 앞엔 두 사람이 나타나 있었다.

검을 든 회색 머리의 남자.

메이스와 방패를 든 금발 여자.

“파르테르. 내 부하가 전멸했다고 했지. 그 말은 틀렸다.”

“잡아 뒀던 개새끼가 결국 주인을 찾아갔군.”

밀시안이 검을 들어 파르테르를 겨눈 뒤 살기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말했다.

“카인 님을 욕되게 한 죄, 오늘 모두 치를 것이다.”

“얼마든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파르테르의 괴성에 가까운 외침과 동시에 세 사람의 인영이 자리에서 사라졌다.

옥상 중앙에 세 사람의 모습이 다시 나타나며 엄청난 속도로 공방이 오갔다.

수적 불리, 심지어는 강화마법을 받은 두 사람을 상대로도 파르테르는 전혀 밀리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웃었다.

가슴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농도 짙은 희열감에.

그래. 이것이다.

심장이 뛰지 않았던 것은 그만한 상대가 없었던 탓인가.

까득!

두꺼운 손아귀에 잡힌 검이 마른 나뭇가지처럼 부러졌다.

곧바로 날아든 주먹에 맞아 밀시안의 몸이 허공에 붕 떴다.

“밀시안!”

카인이 외쳤다.

피스톨을 쏘아 파르테르의 방어막에 충격을 누적시키는 동시, 아공간에서 새 검을 꺼내 던졌다.

검을 낚아챈 밀시안은 허공에서 자세를 바꾸어 그대로 검을 내리그었다.

지직─!

마나에 감긴 검은 어느새 거리를 좁혀온 파르테르를 향해 떨어졌다.

파르테르는 십자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챙!

검은 강철을 내리친 것처럼 튕겨 나갔다.

파르테르는 곧바로 몸을 돌려 주먹을 내질렀다.

에스텔은 휘두르던 메이스를 급히 회수하고 방패를 들었다.

텅!

방어를 했음에도 그녀의 몸은 옥상 끝 난간까지 밀려났다.

“온갖 괴물들이 들끓던 투기장에서 투신이라 불렸던 몸이다! 너희 같은 피라미들이 상처 하나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콰릉!

잠시 모두가 자리에 멈춰 호흡을 골랐다.

지상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달라진 게 있다면 비가 내리고 시야가 흐려져 난전에 가까운 형태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었다.

카인이 무전기를 들었다.

“모든 분대는 전투를 중단하고 도시 중앙 2번 거리의 2-3번 건물로 향한다. 파르테르의 마지막 투기장이다. 시설을 모두 파괴하고 금고를 찾아라. 가장 먼저 발견한 이에겐 일정 지분 소유권을 주장할 권리를 주겠다.”

거대한 함성이 지상에서 들려왔고, 곧 지축을 뒤흔드는 것 같은 발소리로 이어졌다.

파르테르가 코웃음을 쳤다.

“본진은 내 병력 중 내로라하는 정예들이 지키고 있다. 네 녀석들이 이제껏 거리에서 상대하던 전투원들과는 차원이 다르지. 쓰레기 몇백쯤 몰려간다 한들 입구조차 지나지 못할 거다!”

카인은 무전기의 종료 버튼을 누르고 고개를 들어 예의 무표정한 얼굴을 보였다.

그 순간 파르테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다.

“질문 하나 하지.”

카인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부하들이 지금도 네 부하로 남아 있다고 장담할 수 있나?”

파르테르의 눈동자가 부릅떠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건 분명 전투의 희열로 인한 것과는 다른 요동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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