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개전 (3)
나는 피스톨을 들어 노인을 겨눴다.
“기회를 주지. 살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도망쳐라.”
“그, 그럴 수는 없소!”
탕!
총알이 노인의 귀를 스쳐 반대편 벽에 박혔다.
얼굴에 피가 튀었고 노인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에도 노인은 그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모두 도망쳤다. 돈도 이미 모두 본대가 수거해 간 상태지. 굳이 목숨 걸고 이곳을 지킬 필요가 있나?”
노인이 가쁜 호흡과 함께 눈을 뜨며 말했다.
“이, 이곳은 파르테르 님의 공간이오. 다른 조직의 사람이 함부로 더럽히는 꼴을 볼 수는 없소!”
“…….”
나는 순간 의아함이 들었다.
파르테르에게 이런 충성심이 강한 부하가 있었던가.
노인의 손등에 난 검 자국들을 본 순간, 불현듯 파르테르와 관련된 한 인물이 떠올랐다.
“왕년의 투사였군. 파르테르가 투기장에서 어떻게 자라왔는지 지켜봐서 아버지 같은 마음이 들기라도 하나?”
“……!”
노인의 얼굴이 놀라움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나는 바람을 일으켜 그의 복부에 꽂았다.
그는 숨 멎는 소리와 함께 바닥에 고꾸라졌다.
“…죽었어요?”
“잠시 기절했을 뿐이다.”
나는 노인은 들쳐 메고 투기장 밖으로 나갔다.
에스텔이 의문 가득한 눈동자로 뒤를 따랐다.
구구구─
노인을 근처에 내려놓고 시설 곳곳에 설치한 마법을 일제히 터트렸다.
간헐적인 폭발 소리와 함께 발밑이 진동했다.
만일 투기장 운영이 재개된다 해도 시설 복구에 한참의 시간이 걸릴 터였다.
“가지.”
“저 사람은 여기 이대로 두고요?”
“깨어나면 알아서 자기 할 일을 할 거다.”
차에 올라타 다음 구역으로 향했다.
40번대 구역 일대에 존재하는 모든 투기장을 파괴할 생각이었다.
빠른 속도로 밀려나는 풍경을 바라보던 에스텔이 물었다.
“아까 그 사람은 누구예요? 그리고 파르테르가 투기장에서 자랐다고….”
“옛날이야기다. 썩 유쾌하지는 않고, 소수의 이들만 알고 있는.”
“제가 알아도 되는 이야기인가요?”
“문제 될 건 없지만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블루서펜트가 만들어지기도 전의 이야기니까.”
“괜찮아요. 어차피 다음 구역에 도착할 때까지는 시간이 있으니까요.”
나는 잠시 침묵했다가 이야기의 운을 띄었다.
“파르테르는 투기장에서 태어났다.”
파르테르의 어머니는 투사였다.
막대한 빚을 져 투기장에 갇혀 버린 용병.
그녀는 자신을 강간한 간수의 아이를 낳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마수의 밥으로 던져 주자고 하던 걸 다른 투사가 목숨을 걸고 지켰다고 하더군.”
처음엔 투기장 안의 허드렛일을 하는 심부름꾼으로 자랐다.
하지만 곧 메인 경기가 시작되기 전, 관객들의 흥을 띄우라는 명령을 받고 경기장에 밀어 넣어졌다.
무기 하나 없이 맨손으로.
아홉 살의 어린 나이에.
자신의 몸집만 한 크기의 마수 한 마리와 함께.
명령을 내린 이는 아이가 마수의 발톱에 갈기갈기 찢기는 모습을 상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과는 예상외였다.
도리어 맨손으로 상대를 찢어버린 것은 마수가 아니라 아이였다.
아이의 주먹은 마나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건 분명 재능이었다.
마나를 다루는 것과 더불어, 신체 부위 그 자체를 마나를 담아낼 무기로 사용할 수 있는 재능.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으면 이름을 날리는 기사나 격투가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지.”
관객들은 기립박수를 쳤다.
그것이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받은 환호이자 칭찬의 표현이었다.
다만 투기장의 주인은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려워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마나유저들 입장에선 충분히 경악스러울 만한 재능이니까요.”
투기장의 주인은 아이의 보호자 역할을 자처하던 투사의 반대를 무시하고 아이를 계속해 경기에 투입했다.
물론 무기는 단 한 번도 지급하지 않았다.
감당키 힘든 거목으로 자랄 묘목.
그것을 짓밟기 위한 목적이었다.
상대하는 마수의 위험도가 점점 올라가고, 끝에는 이름난 성인 투사들과 싸우는 동안에도 아이는 단 한 번도 경기에서 패배하지 않았다.
부상을 조금 입을지언정 끝내는 상대의 목을 맨손으로 뜯어냈다.
그 누가 가르쳐 준 적이 없음에도 상대들의 싸움 기술을 흡수해 가며 자신만의 전투 방식을 만들어나갔다.
점점 아이를 보러 방문하는 관객들이 많아지자 투기장의 주인도 아이의 상업적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싸움 상대의 난이도를 조절하고, 전투가 끝난 뒤에도 더 나은 대접을 해주었다.
여전히 두려운 마음은 남아 있었기에, 부상을 치료해 주고 가장 깨끗한 감옥의 방을 주는 정도였지만.
그렇게 십 년 가까이의 시간이 흘렀다.
갓난아기였던 아이를 구한 투사는 다리를 다쳐 잡일꾼이 되었고, 여전히 어린 나이지만, 아이는 이제 누구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투사가 되었다.
“10년이요? 그 정도 실력이면 그 전에 투기장을 나가려고 했다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가 투기장에 남은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었다.”
투기장의 주인은 자기 조직의 중요 인사로 그를 채용하겠다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제안을 거절하고 투사로 남기를 선택했다.
복합적인 감정의 결과였다.
일평생 투기장 안에서 자란 그로서, 바깥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상대를 죽이고 환호 소리를 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다는 감각.
“투기장은 그에게 애증의 장소인 셈이지.”
다시 수년이 지나고, 그의 앞엔 다시 한번 선택의 기로가 나타났다.
「실력이 쓸 만하군. 내 밑에서 일해 보겠나?」
정체불명의 조직이 투기장을 점령했다. 그것이 둘의 첫 만남이었다.
현재의 블루서펜트 보스.
그리고 간부 파르테르의.
몸과 얼굴을 가린 가면과 망토.
기계를 사용해 변조한 목소리.
정체를 추측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지만 파르테르의 입장에서 한 가지는 분명했다.
상대가 말도 안 되는 무력을 지녔으며, 조금이라도 반항하는 순간 자신의 어깨에 꽂힌 레이피어가 다음으로 꽂힐 곳은 자신의 심장이 될 것이란 사실을.
그건 생전 처음으로 느껴보는 ‘공포’라는 감정이었다.
제 나이 때 배웠어야 할 감정들을 익히지 못하며 자라왔다.
때문에 그 생소한 감정은 그에게 더 충격으로 다가왔다.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차피 투기장은 그대로 쓸 생각이니 잘 아는 이가 맡는 게 좋겠지. 이곳의 운영을 맡아도 좋고 나와 함께 밖으로 가 다른 일을 해도 좋다.」
다시 한번 내려진 선택의 순간.
수많은 갈등 끝에 파르테르는 이번에도 투기장에 남기를 선택했다.
그에겐 투기장을 떠날 용기가 없었다.
태어난 자궁이자.
자라온 요람이자.
뛰어온 놀이터이자.
그의 삶 전부인 투기장을.
하나 정작 그는 자신이 투기장이란 장소에 ‘애증’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 못 하고 있다.
‘애증’이란 감정은 그저 무의식 깊은 곳에 가라앉아 그의 행동 전반에 영향을 주고 있을 뿐이다.
“투기장을 계속 늘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인가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집착 비슷한 것이라 보면 되겠지.”
한때 자신을 가뒀던 투기장에서, 이제는 자신이 다른 이들을 가두고 있다.
에스텔은 잠시 말이 없었다.
예상보다도 기구하고 복잡한 사연에 다소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원래 이쪽 세계에선 가해자와 피해자가 극명하게 나뉘는 경우가 많이 없다. 모두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지.”
“…그럼 아까 노인은 파르테르의 목숨을 구했다는 그 투사인가요?”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맞지 않을까 싶군.”
“인질로 잡을 수 있지 않았어요? 파르테르에게 나름 의미 있는 사람이라면….”
나는 픽 웃었다.
그 모습을 본 그녀가 당황했다.
“왜요? 왜 웃어요?”
“나와 같이 다니더니 악당이 다 되었군.”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용할 수 있는 건 이용하자는….”
끼익.
나는 차를 멈춰 세웠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어느새 다음 구역에 도착해 있었다.
“가지.”
“그러니까 내 말은….”
나는 차에서 내려 앞서 걸었다.
그녀가 투덜거리며 뒤를 따랐다.
그의 의견은 일리 있었으나 지금으로선 쓸 수 없는 방법이었다.
분명 노인은 파르테르에게 가장 ‘가족’에 가까운 존재다.
하나 그가 노인에게 ‘가족’으로서의 감정을 느끼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감정을 학습할 시기를 놓쳐 버렸지.’
노인의 목숨으로 협박해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을 것이다.
얼어버린 감정의 수도꼭지가 녹는 시기가 오나 그것은 나중의 이야기다.
곧 목숨을 잃을 그의 입장에선 영원히 다가오지 않을 그런 먼 훗날.
“아무리 그래도 자기를 키워 준 거나 다름없는 은인이잖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신파극을 싫어한다.”
* * *
불이 꺼진 어두운 방 안.
안경을 쓰고 머리를 틀어 올린 정장 차림의 여성이 책상에 앉아 있는 남자에게 서류를 건넸다.
“파르테르의 구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에 관한 보고서입니다.”
남자는 권태로운 손짓으로 서류를 받아 들었다.
창을 통해 든 햇살에 남자의 얼굴 아랫부분과 서류의 글씨가 침침하게 비쳤다.
“라이카는 지시에 응하지 않고 부하들만을 지원 보낸 것 같습니다, 보스.”
남자는 보스라 불렸다.
그 외의 호칭은 불릴 생각도 없었으며 부하들에게 허락지도 않았다.
십수 년 전 이쪽 세계에 발을 디딘 순간부터 그랬다.
“애초에 말을 잘 듣지 않는 녀석이지. 야생의 맹수에게 목줄을 채울 수는 없는 법이니까.”
보스의 앞에 선 여성은 블루서펜트의 간부 중 하나 제이나였다.
보스는 다른 간부들 앞에 나설 때와는 달리 가면을 쓰지도, 목소리를 변조하지도 않고 있었다.
“퍼틸랜드라.”
보스는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 의자에 깊게 몸을 뉘었다.
배후가 어디인지, 목적이 무엇인지는 진즉에 파악하고 있었다.
자신의 정보망을 이용하면 그런 것쯤 알아내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문제라면 파르테르가 어중이떠중이 용병집단인 퍼틸랜드를 상대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원인이 무엇이라 생각하나, 제이나?”
“현장에 나가 직접 본 바로는 퍼틸랜드 쪽의 지휘관이 능력이 뛰어난 자였습니다. 군대에 가까운 전술은 물론이고 직접 마법까지 사용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보스는 전술이라는 말을 몇 번 곱씹었다.
파르테르는 그런 것을 접해 본 적이 없다.
몸과 몸, 주먹과 주먹의 격돌.
규칙 따윈 존재하지 않는 거친 전장만을 거치며 살아왔기에.
“바마는 치안국의 특무대와 전투 중이라고 했나.”
“네.”
제이나는 서류 하나를 더 건넸다.
바마의 최근 행적이 망라된 보고서로 치안국의 직인이 찍혀 있었다.
특무대와의 전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로우택틱과의 접선 때도 정보가 누출되어 특무대에게 포위당한 적이 있었다.
정보에 따르면 정체불명의 마법사가 현장에 나타나 바마를 빼내 갔다고 했다.
이번에도 마법사다.
그가 아는 마법사는 늘 그런 존재였다.
손바닥 하나로 이적을 행하고 불가능의 영역에 속한 일들을 가능의 영역으로 끄집어내는 이들.
이 세계를 이렇게 만든 이도, 원복시켜놓을 이도 결국은 마법사들이었다.
보스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설령 바마와 파르테르가 붙잡히거나 죽는다 해도 상관은 없었다.
어차피 치안국은 절대 간부들을 넘어 자신에게까지 파고들지 못한다.
간부들 또한 실력이 쓸 만은 하지만 다른 이들로 대체가 불가능한 건 아니다.
‘라이카 정도라면 모를까 말이지.’
중요한 건 돈이다.
상납금만 적시에 올릴 수 있다면 그 자리에 침팬지를 앉혀 놔도 상관이 없다.
때문에 투기장의 운영이 중단되고, 시설이 파괴되었다는 보고는 그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자신에게 들어올 돈 역시 줄어든다는 말과 다름없었으니까.
탁. 탁.
그의 손가락이 책상 모서리를 두드렸다.
손가락이 닿을 때마다 철로 된 모서리는 표면이 움푹움푹 패였다.
“…….”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의 모습을 절대 직접 드러내지 않는 것이 방침이다.
신분이 노출되었을 때의 위험이 옛날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으니까.
“그리고 한 가지, 파르테르가 보고에 올리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뭐지?”
“퍼틸랜드의 지휘관이 카인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파르테르의 부하 사이에 돌고 있습니다.”
카인.
말단조직원부터 간부까지, 마나도 다루지 못하는 몸으로 직접 헤쳐 올라왔던 녀석이었다.
그 비상한 두뇌에 차기 보스 후보로도 눈여겨보고 있던 재목이었다.
간부 사이의 암투에 휘말려 결국 불구가 돼버리고 말았지만.
그렇지 않아도 슬슬 빈 자리를 보충할 인원을 뽑을 참이었다.
보스는 전에 받았던 정보 중 하나를 더듬었다.
곳곳에서 보고되는 정보와 처리할 업무가 많아 스치듯 기억하는 것들이 많았다.
켄트락 교도소에서 일어난 폭발.
그래도 이건 꽤나 중요도가 높았던 정보였다.
치안국의 차기 국장 자비르 경위가 파견되었고, 얼마 뒤 폭발 사고가 일어났다.
그 사고에서 카인은 죽었다고 보고되었으며, 자비르 경위는 교도관을 사임한 뒤 개인행동을 시작했다고.
“…고리가 조금 맞춰지는군. 이해가 안 가는 부분들이 있긴 하지만.”
그는 목을 뚜둑 꺾어 소리를 낸 뒤 말했다.
“제이나, 가서 직접 퍼틸랜드의 지휘관을 만나 보도록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