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83화 (83/227)

#083. 개전 (1)

그늘이 지는 곳에 발을 걸치고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이야기들이 있다.

레드스컬 보스 알파치노의 사라진 비자금.

블루서펜트 간부 파르테르의 비밀 금고.

대도 조르딕이 목숨을 걸고 훔친 황실의 보석, 불멸의 날개.

괴담, 혹은 일종의 도시 전설처럼 떠도는 이야기들이지만 모두 사실에 근거한 소문들이다.

「암흑가에서 가장 많은 사업체를 꾸리고 있는 이는 누구인가?」

호사가들은 그 질문에 단연 파르테르를 꼽는다.

축적한 재산은 은행이 아니라 자신만의 비밀 금고에 보관하고 있을 거라 추측한다.

타인을 절대 믿지 않는 그의 성격은 알만한 이들 사이에선 이미 정평이 나 있기에.

“그 금고가 진짜 있는 겁니까? 단순히 소문이 아니라?”

“믿을 만한 정보원을 통해 확인한 정보다. 생각해 보면 파르테르쯤 되는 자가 개인 자금을 꾸리지 않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

그의 자산이 못해도 수십억 실링 단위가 될 거란 사실은 어린아이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라티움 같은 초거대기업의 자금 규모엔 비할 바는 아니지만.’

어쨌든 일반인들로서는 평생 꿈도 꾸지 못할 금액임은 분명하다.

일정 퍼센트의 인센티브를 약속한 순간 용병들의 눈빛은 달라졌다.

촤르륵!

나는 가지고 온 파일을 허공에 날리는 동시에 염동 마법을 사용했다.

안에 들어있던 서류는 허공으로 흩어지는 동시에 검은 마나에 둘러싸였다.

그리고 정확히 하나씩 용병들의 손 위에 안착했다.

“새로 바뀐 분대 구성이다. 전투원들의 프로필도 기재되어 있으니 빨리 숙지하도록.”

분대장은 모두 실력은 물론 지휘 경험이 있는 노련한 이들로 뽑았다.

황실의 군부대에서 활동했던 이도 있었고, 용병대의 간부로 활동했던 이도 있었다.

내용 숙지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을 것이었다.

“돌아가서 대기해라. 명령이 있을 때까지는 일체의 외부활동을 금한다. 장비 역시 때가 되면 날짜에 맞춰서 지급하겠다.”

나는 용병들을 모두 숙소로 돌려보낸 뒤 방으로 돌아가 마탄 제작에 열중했다.

[회로 레벨: 2]

[마나 1572 / 1717]

천 중반대.

각인하는 마법의 종류와 출력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그럭저럭 쓸만한 정도의 마탄을 시간당 50발가량 제작할 수 있는 수치였다.

아공간에는 이미 이제까지 제작한 마탄이 종류와 용도에 맞게 수백 발 축적되어 있었다.

‘다음 레벨까지 필요한 마나는 약 800.’

레벨이 오를 때마다 회로에 담기는 마나의 질과 회복 속도는 비약적으로 상승한다.

그때가 되면 높은 위력의 탄을 정말 공장처럼 쏟아낼 수 있을 터였다.

일정량 마나를 소진한 뒤 47번 구역 전체를 위에서 조망한 지도를 들고 밖으로 나섰다.

구역을 돌며 곧 있을 전투를 머릿속에 그리고, 마나가 찰 때마다 탄을 제작하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다음날 오전 에스텔과 밀시안이 도착했다.

“이렇게 다시 얼굴을 뵙게 되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릅니다, 카인 님.”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으려는 밀시안을 일으켜 세우며 에스텔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곧바로 출발하지. 끌고 갈 병력은 밖에 대기시켜 놓았다. 바마와는 말을 맞춰 두었으니 녀석의 아지트로 가라.”

43번 구역에서 바마와 접선.

41번 구역에서 거짓으로 전투를 연출해 치안국의 시선을 끌 것.

그녀가 해야 할 일을 간략히 설명했다.

“알겠어요. 숨바꼭질을 하라는 거죠.”

나는 추가로 그녀에게 파일을 주었다.

여러 돌발 상황에 대한 대처 방법을 기록한 일종의 매뉴얼이었다.

두꺼운 서류를 넘기며 그녀가 감탄했다.

“세상에…. 여기서 벗어나는 변수는 거의 없겠네요. 솔직히 따로 떨어져 행동하는 건 처음이라 불안한 마음도 조금 있었는데 이게 있으니 마음이 조금 놓이네요.”

“다치지 마라.”

“당연하죠. 누구 명령인데.”

그녀는 열 개 분대를 이끌고 43번 구역을 향해 출발했다.

나는 밀시안을 돌아보았다.

“밀시안, 너는 별도로 분대를 맡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내 지시에 따라 움직인다.”

“알겠습니다. 그보다 바마와 손을 잡으신 겁니까? 그 역시 배신에 가담했던 자입니다. 또다시 배신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거래가 있었다. 목줄은 확실히 내가 쥐고 있으니 걱정할 필요 없다. 그는 아군이다. 적어도 복수가 끝나는 순간까지는. ”

“복수…. 확실히 조직에 복귀할 생각은 아니시군요.”

복수.

간부 셋을 제거하고 나면 블루서펜트는 예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 것이다.

애초에 그럴 생각도 없지만, 모든 것이 난장판이 된 조직에 돌아갈 자리는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현실로 복귀한다.

예상해둔 몇몇 변수가 작용해 상황이 뒤집히지 않는 이상은.

“조직은 나를 버렸다. 간부들은 모두 나를 배신했고, 보스는 자기 밑에서 어떤 권력다툼이 일어나든 신경 쓰지 않았지. 나 역시 조직을 버리는 건 당연한 일 아니겠나?”

“…카인 님의 뜻, 알겠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묻지. 내가 경찰에 붙잡힌 당일, 습격에서 살아남은 이는 총 몇 명이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사무실 건물에 갑자기 폭발이 일어나 아수라장이 벌어졌으니까요. 대부분 폭발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은 살수에 쫓겨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아났습니다.”

그날의 일이 떠오른 듯 밀시안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막심과 휘닝, 파블리 남매의 뒷모습은 분명 보았습니다. 살아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간수들의 얘기로는 대부분이 추적 끝에 붙잡혀 죽었다고는 하지만….”

불끈 쥔 그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지금 네 감정, 이해한다. 나 역시 느끼고 있으니까. 지금의 감정을 똑똑히 기억해 두었다가 모두 적에게 풀어내라.”

그가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이 끝나면 살아남은 이들에 대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지도.’

바마와 파르테르, 라이카는 카인의 부하들에 대한 추적을 나눠서 맡았다.

「네 부하는 모두 죽었다. 적어도 내가 추적을 맡았던 녀석들은. 다른 간부들의 경우는 어떤지 모르겠군.」

바마가 그랬듯이, 나머지 둘도 추적에 대한 기록을 남겨 놓았을 것이다.

‘가능성은 존재한다.’

만약 살아남은 이들이 있다면 그들은 이번 전투가 끝나고 라이카와의 결전을 위해 꾸릴 조직의 중추가 될 것이다.

“올라가지. 네가 해 줘야 할 일이 많다.”

“알겠습니다.”

나는 밀시안과 함께 사무실로 올라갔다.

그리고 늦은 오후 에스텔에게서 41번 구역에 도착했다는 연락이 들어왔다.

「바마와 접선한 뒤에 각자 41번 구역으로 이동했어요. 전투를 연출할 장소나 동선 같은 것들도 당신이 지시한 대로 모두 합을 맞췄고요.」

“용병 중 지시에 따르지 않는 이는 없었나.”

「여자라고 우습게 보는 사람이 있긴 했어요. 명치에 메이스 좀 꽂아 주니까 금세 공손해지던데요.」

“잘했다. 전투를 벌이는 건 치안국이 도착할 때까지다. 그 후엔 치안국의 발을 최대한 41번 구역에 묶어 두는 데 집중해라.”

“알겠어요.”

통신이 종료된 후 밀시안이 말했다.

“특무대가 움직이겠군요. 경찰로 일했을 때 멀리서 훈련을 본 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전략 없이 싸우는 이쪽 세계의 조직들과는 궤가 다른 집단이지.”

“걱정되진 않으십니까? 만일 바마와 에스텔이 특무대에 잡히기라도 한다면….”

치안국 특무대.

신식 장비로 무장하고 개개인이 마나유저로 이루어진 명실상부한 경찰청 내 최고의 무력 집단.

하지만 그 인원의 대다수는 낮은 번호대 구역의 치안을 유지하는 데 투입되어 있다.

외부로 자유롭게 돌릴 수 있는 인원은 기껏해야 100여 명 정도.

공장단지에서 바마를 사로잡았을 때 나타난 인원이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최대치라 봐도 무방했다.

“괜찮다. 에스텔에겐 모든 대처 요령을 알려 주었고 특무대에도 가장 큰 전력이 빠져 있을 테니.”

제르비아.

그녀는 혈육의 유골함을 지키기 위해 블루서펜트와 관련된 일엔 나서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녀의 성격상으로는.

1일 차.

에스텔과 바마는 41구역 곳곳에서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정보 길드에 의뢰한 소문은 각 구역에서 은밀히 퍼져나갔으며 나는 용병들에게 장비 지급을 시작했다.

용병들은 46, 47, 48번 구역에서 일제히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으며 적의 눈을 피하기 위해 시간을 두어 분대별로 사무실을 방문해 장비를 수령했다.

2일 차.

20번대 구역 일대에서 치안국 배지를 단 경찰들이 바삐 움직이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저녁에는 맹금류 표식을 단 차량이 각 구역의 외곽을 빠져나갔다.

전날 오전에서 저녁까지.

41번 구역에 실제 바마가 나타났는지 확인 작업을 거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3일 차.

퍼틸랜드가 블루서펜트 간부의 비밀금고를 노린다는 소문은 뒷골목을 돌아 거리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게 전쟁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도.

블루서펜트 측 조직원들의 모습도 포착되었다.

사라진 퍼틸랜드의 용병들을 찾아 거리를 들쑤시거나.

두 조직을 두고 이야기를 하는 시민들에게 으름장을 놓으며 입단속을 하거나.

큰 폭풍이 불어 닥침을 예감한 시민들은 집 밖으로 나서지 않았고 거리엔 바람과 먼지만이 떠돌았다.

그리고 늦은 오후, 치안국 차량이 41번 구역에 도착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파르테르는 투기장 건물을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간혹 그가 탄 차량이 밖으로 나오기도 했습니다만, 기본적으론 모두 근처에서 일을 보고 곧바로 투기장으로 돌아갔습니다.”

홀로 정찰을 나갔던 밀시안이 말했다.

그의 외모는 내 마법 덕에 훤칠한 젊은 모습으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옥상 난간 아래 거리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바로 아래에는 검은색 세단이 순찰을 돌고 있었다.

어디 소속의 차량인지는 말할 것도 없었다.

“슬슬 시작해도 좋을 것 같군.”

나는 무전기를 들어 지시를 내렸다.

“터트려라.”

세단이 옆을 지나는 순간, 쓰레기통 뒤에 설치되어 있던 폭약이 터졌다.

쾅!

세단은 차량 하부를 내보이며 허공을 돌다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추락했다.

그와 동시에 근처 건물에서 방탄 슈트를 입은 용병들이 쏟아져 나와 세단을 향해 사격을 시작했다.

투두두두-!

엔진이 터지며 세단은 불길에 휩싸였다.

뒤집힌 문이 열리며 적이 튀어나왔다.

방어막을 둘러 피부가 조금 그을렸을 뿐 크게 타격을 입은 모습은 아니었다.

─이 쥐새끼들이 이제까지 어디에 숨어 있나 했더니!

파르테르의 정예들이었다.

그들은 품에서 검을 꺼내 쥐고 용병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B2 분대는 사격을 계속하며 두 번째 블록까지 후퇴해라. C7은 B2를 엄호하며 D3는 적이 한 블록을 넘어선 순간 퇴로를 차단해 포위한다.”

─전달한다, B2는….

─대기해라. 우리는 신호에 맞춰 돌입한다.

내 명령은 분대장들을 통해 퍼져나갔다.

용병들은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군인들과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며칠 만에 급조된 것치고는 썩 나쁘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투두두두-!

4 대 40의 전투.

방어막 위로 총알이 빗발쳤다.

적들은 달리던 것을 멈춰 빠른 걸음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한순간이라도 정신을 흩트리는 순간 방어막이 깨질 것을 그들도 알고 있을 터였다.

“밀시안, 총이 왜 마나유저들에게 무기로 채택되지 않는지 알고 있나?”

“마나를 담아낼 무기론 부적절한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 반대로 상대의 방어막을 깰 수 없다는 얘기도 되지. 일반적으로 총알 하나하나에 마나를 담을 수는 없으니.”

사람들 사이에 퍼진 통념이다.

하지만 그 말은 틀렸다.

마나로 만들어진 방어막엔 현실 세계와 같은 물리 법칙이 작용한다.

충분히 오랜 시간 사격을 가하면 방어막은 깨진다.

‘단순한 효율의 문제일 뿐이지. 실전에서 그 많은 총알을 다 맞아 줄 이들은 없을 테니까.’

거리를 좁힌 적들이 검을 휘두르며 도약했다.

“사격 중지. B4 분대 앞으로.”

총을 들고 있던 첫 번째 열이 한 발짝 물러섬과 동시에 뒤쪽에서 방패를 든 이들이 뛰쳐나왔다.

캉!

세 명씩 한 조가 되어 내리치는 검을 크게 밀쳤다.

모두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이들로, 방패는 그들이 주입한 마나와 같은 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적들이 크게 밀려났다.

예상치 못한 반격이었는지 자세를 잡지 못하고 넘어진 이도 있었다.

“B4는 B2의 앞을 엄호한다. B2는 사격을 재개해라.”

다시 총알이 빗발쳤고, 적들의 얼굴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의 전투는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테니까.

틱, 티딕!

방어막은 점점 색이 옅어지고 금이 가기 시작했다.

뒤늦게 상황이 불리함을 깨달은 적이 몸을 돌렸지만, 퇴로는 이미 새로 나타난 용병들에 의해 차단당해 있었다.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검을 휘두르며 뛰어들었지만 반대 방향에서와 같은 상황이 펼쳐질 뿐이었다.

몇 번의 시도가 더 있었으나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

─씨바알!

그게 적들의 마지막 외침이었다.

방어막이 깨진 순간 총알은 녀석들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사격 중지.”

나는 잠시 고개를 들었다.

시야 멀리, 도시 곳곳에서 몰려들고 있는 적의 차량이 보였다.

자신들이 일으킨 결과에 얼떨떨해 하고 있는 용병들에게 경로를 지정해 후퇴 명령을 내렸다.

─5번 거리에 적의 차량 한 대가 정차해 있습니다.

멀지 않은 거리에서 무전이 들어 왔다.

나는 바람을 일으켜 옆 건물 옥상으로 향하는 구름다리를 만들었다.

“가지.”

“예. 그런데 이거 정말 괜찮은 겁니까?”

“못 본 사이에 겁이 많이 늘었군.”

“겁이라니! 그럴 리가 있습니까!”

나는 다리 위로 걸음을 내디뎠다.

밀시안이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뒤를 따랐다.

투명한 다리 아래 펼쳐진 풍경 속에는 오직 두 종류의 소리만이 울리고 있었다.

적이 탄 차의 분주한 바퀴 소리.

그리고 용병들의 흥분에 가득 찬 발소리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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