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 폭풍전야 (2)
나는 몇 대의 화물 차량과 함께 43번 구역을 떠나 달렸다.
새벽에서 아침을 지나 다시 정오.
47번 구역의 외곽에 있는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사무용으로 지어진 3층 건물 옆에는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강당이 있었다.
“잠깐 대기하지.”
운전사들을 대기시키고 나는 차에서 내려 건물 문을 두드렸다.
탕탕!
곧 퀭한 눈을 한 남자가 나타났다.
며칠 관리를 못 했는지 셔츠는 잔뜩 구겨져 있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다.
“누구십니까? 이 차들은 대체….”
“벨포트에게 얘기를 들었을 텐데. 용병들의 지휘권을 넘겨받으러 왔다.”
“아…! 에반 님이시군요! 들어오시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건물은 고요했다.
그는 위층으로 향하던 중 마주친 직원에게 무언가를 지시했고 그 뒤 나를 사무실로 안내했다.
테이블에 커피 두 잔을 내려놓으며 그가 말했다.
“만나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저는 47번 구역을 총괄하고 있는 루이스라고 합니다. 꼴이 말이 아니라 죄송합니다. 요즘 속을 썩이는 업무가 많아서 말입니다.”
“알다시피 에반이다. 한데 건물이 조용하군.”
“용병들은 모두 인근 숙박 시설에 머물고 있습니다. 소집 명령을 내렸으니 1시간 내로 모두 집합할 겁니다. 46번과 48번 구역의 관리자를 포함해서요.”
“간단한 브리핑을 받을 수 있겠나? 대치 상황이나 인원 수 같은 것들이 궁금하군.”
“예. 물론입니다.”
루이스는 서류를 꺼내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먼저 전선은 조금씩 밀리고 있는 상황입니다.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던 균형이 최근 깨졌습니다.”
“내가 며칠 자리를 비우면서부터인가?”
“예. 에반 님이 계실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빈자리가 크게 체감이 되더군요.”
“전선이 밀리는 이유가 그것 때문만은 아닐 텐데.”
내가 빤히 시선을 보내자 그는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용병들의 통제가 잘 되고 있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각자의 방식으로 이 바닥에서 살아남아 온 이들이니 말입니다.”
용병은 말 그대로 용병이다.
군대가 아니다.
명령이나 체계에 익숙하지 않으며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다.
목숨을 보전해 온 것은 결국 자신의 행동 원칙 덕이니 실력이 있는 이일수록 더더욱 그렇다.
“퍼틸랜드가 내실이 그리 단단한 조직은 아니라고 느꼈다.”
“…부끄럽지만 그렇습니다. 전투원의 90퍼센트 이상이 외부인력이니까요.”
간부나 임원들을 제외한다면 조직이라기보다는 용병 무리의 집합체에 가깝다.
“전투 중 명령에 따르지 않는 이들은 어떻게 처리했나?”
“몇 번 경고를 주고, 계약금 일부를 환수한 정도로 끝난 상태입니다. 어쨌든 한 명 한 명을 다 쫓아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마나를 다룰 줄 아는 실력자일수록 제멋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하더군요.”
“그나마 물량 덕에 버티고 있는 상황이겠지.”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46번과 48번 구역의 관리자도 도착했다.
두 구역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용병들은 중요 업무로 빠질 수 없는 이들을 제외하고 곧 모두가 이곳에 도착할 것이라 했다.
“용병들이 도착하면 모두 강당에 모으도록.”
“알겠습니다. 잠시 쉬실 곳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호수를 불러라. 이따 알아서 찾아가지.”
나는 사무실을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난간에 기대어 바람을 맞았다.
시야 끝, 47번 구역 중심에 솟은 고층 빌딩의 윗부분이 조그맣게 보였다.
파르테르의 아지트였다.
지하는 투기장으로, 꼭대기는 그의 전용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만날 날이 머지않았다.’
나는 파르테르라는 인물이 대해 생각했다.
그에 관한 설정 중 가장 중요하게 잡았던 키워드는 ‘돈’이었다.
돈에 대한 광적인 집착.
공허하게 비어 있는 그의 내면을 움직이는 유일하고도 강력한 행동 동기였다.
상념에 젖은 지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직원 하나가 올라와 용병들이 모두 모였음을 알렸다.
“바로 가지.”
강당에는 수백 명은 될법한 용병들이 집결해 있었다.
떠들고 고함치는 소리로 귀가 먹먹할 지경이었다.
“총 인원은?”
“다치거나 업무로 빠진 이들을 제외하면 472명입니다. 일단 말씀하신 대로 한곳에 집결시키긴 했는데 어떻게 하실 생각이신지…. 모아 놓을수록 통제가 힘든 게 용병들인지라….”
“내가 알아서 하겠다.”
마이크를 건네받아 옷깃에 차고 단 위에 올랐다.
앞쪽에 있는 용병들은 나를 돌아보았지만, 나머지는 여전히 떠들기 바빴다.
철컥.
피스톨을 꺼내 내 머리 위로 쏘았다.
탕!
순간 강당 안의 소음이 멎었다.
모두의 시선이 쏠렸을 때 나는 나직이 말했다.
“새로 지휘를 맡게 된 에반이다. 시끄러우니 모두 입을 좀 닥쳤으면 좋겠군.”
순간 장내가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내게 쏠렸고 앞쪽에 있던 용병 하나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얘기를 듣긴 했지. 윗대가리가 새로 올 거라고 말이야. 근데 이만한 수의 용병을 부리기엔 너무 젊지 않나?”
그 말에 동조하듯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단순한 텃세 외에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용병 세계에서는 나이가 곧 경험과 실력의 반증이었으니까.
“불만인가?”
“당연하지. 그쪽이라면 새파란 애송이한테 자기 목숨을 맡길 수 있겠어?”
“나이와 실력이 언제나 정확히 비례하는 건 아닐 텐데.”
“예외가 많이 없더라고. 다 입만 번드르르할 뿐이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용병들을 한 차례 둘러 보았다.
“나는 내가 여기서 제일 실력이 뛰어날 거라 장담한다. 적어도 적당히 버티다 선수금만 받고 빠질 생각인 녀석들보다는 말이지.”
용병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내 말에 정곡을 찔린 이들이 적지 않은 지 욕설도 들려왔다.
“만약 여기서 나를 이기는 녀석이 있다면 지휘권을 넘겨주겠다. 지휘를 맡아 받는 보수 역시 그대로 주지.”
웅성거림이 거세졌다.
이내 질문이 마구 날아왔다.
“그 말을 어떻게 믿고?”
“꼭 지휘권을 넘겨받지 않더라도 이기기만 한다면 돈을 받을 수 있나?”
“보수는 얼마나 되지?”
나는 그 모두를 종합해 답변했다.
“약속은 지킨다. 옆에 있는 루이스가 보증하지. 날 쓰러트리기만 해도 돈은 주겠다. 액수는 2천만 실링.”
“예? 아, 예!”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던 루이스가 엉겁결에 대답했다.
“내가 먼저 하지. 이런 건 먼저 먹는 놈이 임자인 법이거든.”
체격 좋은 용병 하나가 단 위로 올라왔다.
“실력은 어떻게 겨루면 되지? 따로 자리를 옮겨서 하나?”
“여기서 나를 쓰러트리면 된다. 원하는 방법은 뭐든 사용해도 좋다.”
녀석이 히죽 웃으며 검을 빼 들었다.
“원하는 대로라고? 다칠 수도 있을 텐데? 운이 나쁘면 죽을 수도 있고 말이야.”
은은한 마나가 검신을 감쌌다.
단 위로 올라온 자신감을 뒷받침하듯 그는 마나유저였다.
그것도 어느 정도 수준이 있을 법한.
“죽일 각오로 임해라. 책임은 묻지 않을 테니까.”
“후회하지 말라고!”
녀석이 검을 꼬나 쥐고 달려들었다.
예상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였다.
비교하자면 견습기사나 블루서펜트의 하급조직원 정도는 가볍게 웃돌았다.
나는 정제를 마쳐 두었던 마나를 모두 신체강화마법에 쏟았다.
동체 시력이 순간 폭발적으로 강화되며 주변 움직임이 느릿하게 느껴졌다.
지척에 다다른 녀석의 옆으로 돌아 워커의 밑창으로 옆구리를 힘껏 밀어 차버렸다.
텅!
쭉 밀려난 녀석의 몸이 벽에 부딪혀 떨어졌다.
나는 곧바로 피스톨을 꺼내 쏘았다.
탕!
비틀거리며 자세를 잡으려던 녀석은 그대로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지, 지금 봤어? 움직이는 게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게 아니라 지금 사람이 죽었잖아, 멍청아!”
허공을 향해 총을 쏘자 소란이 조금 수그러들었다.
죽은 녀석의 동료인 듯한 용병이 외쳤다.
“이, 이미 승부가 났는데 죽일 필요까진 없잖아!”
“뭔가를 빼앗고자 한다면 도리어 빼앗길 각오도 해야 하지. 내 말이 틀린가?”
내가 원하는 것은 어설픈 통제가 아니라 완전한 복종이다.
지금 여기서 누가 상급자인지를 확실히 해 두지 않으면 후에 잡음이 생길 것이 분명하기에 강하게 나갈 필요가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불만이 있다면 나와서 나를 쓰러트려라. 그게 용병에게 어울리는 방식이니까. 다음.”
몇 녀석이 더 도전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소란은 더욱 커져만 갔다.
더 이상 나서는 녀석이 없을 때쯤 누군가 외쳤다.
“잠깐. 손등에 저 문신, 혹시 그 마법사 아니야?”
“마, 맞는 거 같은데!”
“마나를 쓰는 게 거의 느껴지지 않았어. 마법 아니야? 마법? 마법 중에 그런 종류가 있다고 들었어.”
유령 가면을 쓴 마법사에 대한 소문은 퍼틸랜드의 용병들 사이에도 널리 퍼져 있었다.
아군인지 적군인지 불확실하나 실력만큼은 확실한 귀신과 같은 존재로 말이다.
분위기는 점점 나를 마법사로 확신하는 분위기로 굳어져 갔다.
나는 말 없이 전류를 일으켜 허공으로 쏘아 보냈다.
거대한 뱀을 연상케 하는 전류는 강당 내부를 광폭하게 날뛰었고, 용병들은 마법이 행여 자신에게 날아올세라 몸을 움츠린 채 숨을 죽였다.
마법이 소멸하고 한참 동안 누구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을 때, 앞쪽의 용병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호, 혹시 저희가 아는 그 마법사님이십니까?”
“맞다.”
그 말과 동시에 강당 안 곳곳에서 탄성인지 탄식인지 모를 소리가 터져 나왔다.
“단언하지. 나를 따른다면 이번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
내가 눈짓을 하자 직원들이 밖에서 상자를 들고 들어와 단 위에 내려놓았다.
상자는 곧 수북이 쌓였다.
나는 그중 하나를 열어 바닥에 내용물을 쏟았다.
총과 슈트, 그리고 무전 장비.
출처는 불분명하나 굉장히 고가의, 막 생산된 물건들임은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용병들의 눈이 휘둥그레지고 곳곳에서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너희에게 지급될 장비다. 계약이 끝나도 회수하지 않으니 전쟁이 끝나면 개인이 가져가도 좋다. 그리고 활약 정도에 따라 추가 보수를 약속하지.”
나는 숨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반드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장담하진 못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오합지졸인 상태로 전투를 벌이는 것보단 훨씬 나은 상황이 될 거라곤 약속하지. 적어도 헛되이 개죽음을 당하는 일은 없을 거다. 다시 한번 묻지. 내가 지휘를 맡는 데 불만이 남아 있는 이가 있나?”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 어린 공기가 강당 내부를 흘렀다.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고 적막은 한참이나 지속되었다.
* * *
과할 정도로 넓은 크기의 룸 안.
두 명의 남자가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새벽에 내가 보고를 받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나? 갑자기 투기장에서 마수들이 날뛰고 폭발이 일어났다니.”
“저희도 조사 중에 있습니다.”
“아니, 그래도 이제까지 아무 일 없다가 갑자기! 대체 관리를 어떻게 했기에 그런가!”
41번 구역의 경찰서장은 테이블 위에 잔을 내리쳤다.
하지만 곧 파르테르의 싸늘한 눈빛을 마주하고는 흠칫 놀라며 덧붙였다.
“아, 아니. 평소에 조금 더 신경을 쓸 수 있지 않았느냐는 얘기지 내 말은.”
파르테르는 아무렇지 않게 술병을 들어 서장의 잔을 채워주었다.
“경매에서 구한 31년산 위스키입니다. 입에 맞으실 겁니다. 드셔보시죠.”
병을 기울인 파르테르의 손은 잔이 가득 찬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술은 잔 안에 있던 얼음과 함께 밖으로 넘치기 시작했다.
넘친 술이 테이블 아래 서장의 다리로 흘러내리기 직전 파르테르는 병을 바로 들었다.
“현장에 사후 조사를 나간 인원의 말에 따르면 마나탱크의 노후가 원인이 된 것 같다고 하더군요. 시설을 복구하며 물건을 모두 새것으로 바꿀 생각이니 같은 일이 발생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어, 흠, 그래. 알겠네. 오래된 물건은 이참에 새것으로 바꾸는 게 낫지.”
“그리고 이건 제가 준비한 약소한 선물입니다.”
파르테르가 테이블 밑에서 서류 가방 하나를 꺼내 밀었다.
안에 차곡차곡 쌓인 지폐 뭉치를 보고 서장은 올라가는 입꼬리를 막지 못했다.
“뭘 또 이런 걸 준비했나.”
“평소 느끼고 있던 감사함의 표시입니다. 따님이 수도에서 공부 중이라 들었습니다. 학비가 만만치 않을 테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군요.”
가족에 대한 언급이 나오자 서장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일종의 경고였다.
이 공생관계에서 발을 빼는 순간 목숨을 잃는 건 당사자 하나가 아닐 것이란.
서장은 이내 얼굴을 활짝 피고 웃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럼. 덕분에 딸 공부는 원 없이 시키고 있네. 내 취미 용품도 넉넉히 사고 말이야.”
“도움이 되니 다행이군요. 그리고 알아서 잘 처리해주시겠지만, 이번 일은 최대한 조용히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걱정하지 말게. 죽은 사람도 아무도 없지 않나? 이 정도 묻는 건 일도 아닐세.”
“감사합니다.”
파르테르가 잔을 들자 서장이 따라 들었다.
잔 표면에서 출렁이는 술이 서장의 손가락을 따라 흘러내렸다.
잔은 계속해서 오갔고 오래지 않아 서장은 불콰하게 취했다.
파르테르가 부하를 불러 말했다.
“자택까지 모셔다드려라.”
“알겠습니다.”
서장은 무어라 혀 꼬부라진 소리를 하며 부하들에게 부축을 받아 나갔다.
다시 적막이 찾아온 자리.
파르테르는 두 발을 테이블 위로 꼬아 올리고 소파에 깊이 등을 뉘었다.
두 손가락을 위로 들자 대기하던 부하가 익숙한 몸짓으로 그 사이에 담배를 끼운 뒤 불을 붙였다.
후우-
매캐한 연기가 어둑한 조명 아래 피어올랐다.
“보고를 받지. 조사는 모두 끝났나?”
“예. 전에 말씀드린 것과 크게 다른 것은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새로 발견된 점이 있습니다.”
부하는 정육면체 모양의 작은 상자에 테이프를 끼웠다.
그러자 렌즈 부분에서 발사된 빛이 허공에 홀로그램 영상을 만들었다.
“현장에 남아 있던 감시용 카메라 기록입니다.”
복도를 촬영한 영상이었다.
관람객들이 대피하는 모습이 지나고 한참 뒤 남자 두 명이 나타났다.
하나는 총을, 다른 하나는 검을 들고 있었다.
파르테르의 눈이 이채로 물들었다.
검을 든 이는 밀시안 라인하르트.
총을 든 이는 가면을 쓰고 있어 얼굴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어딘가 낯이 익었다.
“…….”
남자의 시선을 이쪽을 향해 있었다.
마치 카메라를 넘어 이쪽을 꿰뚫어 보듯이.
검은 머리에 목덜미에 드러난 푸른 뱀 문신이 눈에 띄었다.
본능적으로 한 남자의 이름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카인?”
파르테르는 자신이 뱉어 놓고도 순간 그것이 얼마나 어이없는 말인지를 깨닫고 실소를 머금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녀석은 팔다리의 힘줄이 끊긴 채 대륙 끝 오지의 감옥으로 끌려갔다.
“카인의 또 다른 부하가 카인으로 위장했을 가능성도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의 동료를 구하고, 저희에게 일종의 선전 포고를 하기 위해서 말일입니다.”
“가능성이라면 그쪽이 높겠군.”
머리로는 쉽게 이해했다.
하지만 한 번 고개를 든 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만약 녀석이 진짜 카인이라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녀석은 평소에도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다.
일반인과는 행동과 사고의 범주가 다른 인간이다.
그리고 저 눈빛은 쉽게 흉내 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번에도 어떤 수를 써 몸을 회복하고 감옥을 빠져나왔다면.
“…….”
이성과 달리 감성은 자꾸만 녀석이 진짜라는 가정으로 기울었다.
만약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많은 생각이 오갔지만 답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조금 더 시간을 두고 판단을 내려야 할 문제였다.
“요즘 자꾸 신경을 거슬리는 것들이 나타나는군.”
다른 대상은 퍼틸랜드를 의미했다.
본래 그리 신경 쓰던 조직이 아니었다.
다만 생각보다 쉽게 진압이 되지 않아 슬슬 자신이 나설 타이밍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상대 쪽에 실력이 뛰어난 마법사가 있어 교전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거슬렸다.
물을 흐리고 다니는 미꾸라지들도.
순간 자신의 마음에 동요가 일었다는 사실도.
“상관없다. 목을 뜯으면 숨을 못 쉬는 건 어느 쪽이건 마찬가지겠지.”
파각!
그의 손아귀 안에 있던 소파의 팔걸이가 바스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