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79화 (79/227)

#079. 구출, 혹은 구원 (3)

“식사다.”

빵 한 조각에 스프 한 그릇이 다인 식사가 철문 아래 틈으로 밀어져 들어왔다.

간수의 발소리가 멀어지고 밀시안은 그릇을 집어 들었다.

양 손목에 수갑이 채워졌지만, 오랜 수감 생활로 익숙해져 식사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본래 투사들의 식단만큼은 잘 나오는 편이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으면 경기장에서 제대로 싸울 수가 없으니까.

하지만 자신에겐 이런 음식이 주어졌다.

일정 주기로 찾아오는 스카우트 제의를 거절할 때마다 음식의 질과 양은 떨어지고 적어져 갔다.

식사는 금세 끝났다.

딱히 식사라고 하기도 민망한 수준이었다.

차가운 벽에 등을 기대자 배에서 곯는 소리가 들렸다.

“…….”

육체적인 굶주림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보다는 정신적인 굶주림이 크다.

「배신이라. 네가 모시던 카인이 이미 보스를 배신했지 않나?」

카인.

자신이 주군으로 섬길 수 있는 이 세상 유일한 사내.

그런 그가 조직을 배신했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언젠가 조직을 무너트리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건 정식 승계로 보스 자리를 이어받은 이후 이루어질 목표이다.

밀시안은 과거 자신과 카인의 첫 만남을 떠올렸다.

「밀시안 라인하르트. 소문대로 검 실력이 쓸 만하군. 내 밑에서 그 검을 휘둘러라. 다시 꿈을 꾸게 해 주겠다.」

술집에서 난동을 피우고 있던 자신에게 웬 정장 차림의 애송이가 한 말이었다.

처음엔 콧방귀를 뀌었다.

자신의 꿈이 무엇인지 알고.

가문이 몰락하니 이런 뒷골목의 잡배들까지 수작을 부려 오는구나.

콧대를 눌러줄 생각으로 검을 휘둘렀다.

술김이기도, 세상에 대한 분노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뒤에서 나타난 다른 정장 차림의 남자들에 의해 제압당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들은 이제까지 자신이 맞닥트려온 잡배들과는 다른 존재임을.

어깨가 짓눌린 채 바닥에 엎드렸다.

애송이가 그 앞에 무릎을 굽혀 말했다.

「너에 대한 조사를 많이 했다. 젊은 시절 기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곧장 경찰이 되었더군. 10년 뒤 돌연 퇴직 후 기사학교의 교관이 되었다. 초반 활동이 아주 열정적이었던 걸 보면 범죄를 소탕하겠다는 꿈이 있었을 텐데. 표창장도 여럿 받고 말이야. 진급도 쭉 보장되어 있었고. 하지만 현장이 무서웠나? 혹은 꿈을 이루는데 현실의 벽에 부딪혔을 수도 있겠군.」

순간 뜨끔했다.

현장이 두려운 건 아니었다.

다만 경찰이란 조직의 현실을 깨달았을 뿐이었다.

범죄는 아무리 잡아도 새로이 생겨나며 그 원인이 부패가 만연한 경찰 내부에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새 타성에 젖어가는 자신을 발견했고 그 사실이 두렵게 느껴졌다.

도망치듯 퇴직 후 생각했다.

애초에 자신의 적성은 경찰에 맞지 않았으며 경찰이란 직업 자체도 기사로서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었다고.

그 후로는 쭉 수도 기사학교의 교관으로서 현실에 안주하며 살았다.

무의식중엔 느끼고 있었다.

자신이 내린 선택은 명백한 자기합리화이자 자기기만이란 사실을.

「너 따위가 뭘 안다고!」

순간 몸을 들썩였지만, 전신을 내리누르는 손길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알고 있다. 아주 잘. 이 나라의 공권력이 얼마나 썩어 빠져 있는지. 바깥의 민생 따위는 신경 쓰지도 않고 저들끼리 권력 다툼을 하고 있지. 자신의 자리가 좁아질까 전혀 욕심이 없거나 관련 없는 이들도 물어뜯으며 말이야. 네가 뇌물수수 의혹을 받고 결국 유죄판결을 받았듯이. 한때 이름을 날렸던 이가 경찰에 복귀할까 봐 신경 쓰였던 게 아닐까 싶군.」

「…그걸 어떻게!」

「말했지 않나. 조사를 아주 많이 했다고.」

경찰로 일할 때 분명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겠다는 목표를 가진 적이 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젊었을 때의 이야기다.

퇴직 후에는 그저 교관으로서 조용히 살아왔을 뿐이다.

가슴 한구석에 지나간 꿈을 품은 채.

이토록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이미 경찰을 떠난 이에게 견제가 들어올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이미 패기도 열정도 식어버린 자신 같은 장년에게 말이다.

과거의 기억이 일제히 떠오르며 속이 울렁거렸다.

그때 애송이가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아라. 네 검은 그렇게 녹이 슬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 같은 눈동자였다. 홀린 듯이 손을 내밀어 붙잡았다.

그 후로는 어떻게 시간이 지나가는지도 모를 나날의 연속이었다.

전쟁과 암투.

사업체의 확장과 운영.

때론 범법을 저지를 때도 있었지만 인륜적인 선을 넘는 행위는 하지 않았다.

카인이란 사람을 알게 될수록 감복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에 존재하는 모든 범죄조직을 박멸할 생각이다. 그 뒤 블루서펜트는 해체한다.」

사람의 정신을 뒤흔드는 지략이나 카리스마와는 별개로, 그가 품은 이상이, 또 숙원이 그랬다.

「목표를 이룬 뒤엔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그때면 내게도 안식이 오겠지.」

벅차오르는 감정에 휩쓸려 그 안식이 정확히 무엇인지 묻지는 못했다.

‘결코 이런 일 따위로 꺾이실 분이 아니다.’

밀시안은 손톱에 마나를 주입해 어깨에 작은 선 하나를 새겼다.

마나를 버티지 못한 손톱이 깨졌지만 익숙한 투였다.

어깨 위아래로는 이미 100여 개 이상의 선이 새겨져 있었다.

‘버텨야 한다. 카인 님이 오실 때까지. 아니면 내가 먼저 나갈 방법을 찾아야….’

드드드-

천장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진동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

마수들의 울음소리와 발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했다.

눈앞의 철문 색이 갈변하며 서서히 바스러지고 있었다.

이내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만한 구멍이 생겨났다.

‘이게 무슨….’

당황해하면서도 문밖으로 나갔다.

다른 투사들 역시 어리둥절한 기색으로 조심스레 구멍을 나오고 있었다.

“대체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위층에서 무슨 일이 생겼나 본데. 계속 천장이 울리잖아.”

“다들 저길 봐! 저 문도 뚫렸잖아!”

수감실 통로로 진입하는 문이었다.

평소라면 안에서 소란이 생기자마자 문을 지키는 경비들이 들이닥쳤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뚫린 구멍 너머 경비들은 다급한 발걸음으로 어디론가 뛰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를 신경 쓰지 못하고 있는 걸 보면 대단히 큰일이 난 모양이야.”

“갑자기 문이 녹다니 마법인가? 여기 마법 쓸 수 있는 놈 있었어?”

“마법이든 뭐든 무슨 상관이야! 도망칠 기회가 생겼는데!”

“나갈 생각이야? 밖에 경비들이 얼마나 깔려 있을 줄 알고?”

“이쪽도 만져보면 어떻게 열리지 않을까.”

수감실 안쪽에 있는 문이었다.

경기장으로 올라가는 나선 계단과 이어져 있었다.

“그쪽 문은 카드 키가 있어야 해. 우리 힘으로는 못 열어.”

“아냐. 어떻게 잘 만져 보면….”

투사 몇몇이 계단으로 통하는 문에 달라붙었다.

그리고 채 몇 초가 지나기 전에 불이 꺼졌다.

찰나의 순간, 문에 공급되던 마나가 차단되었고 손잡이를 잡고 낑낑대던 투사의 몸이 관성에 옆으로 휙 엎어졌다.

곧바로 불이 켜졌고, 활짝 열려 있는 문을 모두가 볼 수 있었다.

“여, 열렸다!”

“정전이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군.”

“일단 올라가서 상황을 살펴보자고.”

투사들의 행동은 빨랐다.

절반은 경기장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으며 나머지 절반은 경비들과 맞닥트릴 걸 무릅쓰고 수감실 출입구로 나갔다.

곧 수감실엔 밀시안 홀로 남게 되었다.

“…….”

그는 줄곧 위화감 느끼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의 계획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듯한.

삐이-

순간 위층에서 들려온 소리에 반사적으로 이마를 찌푸렸다.

아주 얇고 미세한, 호루라기를 부는 것과 비슷한 느낌의 소리였다.

문득 상황에 대한 기시감이 들었다. 분명 전에도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인간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어떤 소리는 감각이 예민한 동물이나 마수들만이 들을 수 있지.」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하는데 제 귀에만 들리는 건 무슨 까닭입니까?」

「네 감각이 그만큼 예민하다는 뜻이겠지. 다른 어떤 젊은이들에 비해서도. 나도 듣지 못하는 걸 듣다니 현역이군.」

언젠가 기묘한 소리가 나는 공 모양의 물체를 본 적이 있었다.

클랙필드에 의뢰를 넣어 만든 특수한 물건이라고.

주파수니 가청영역이니 하는 어려운 말이 나와 제대로 알아듣지는 못했다.

하지만 몇 가지 사실은 이해할 수 있었다.

특정 주파수의 음은 마수를 유인하고 흥분 상태로 몰아 공격성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듣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소리를 듣고 나타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걸 보면.」

「널 이곳에 데려온 이유다. 이 물건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현장에서 다시 한번 확인을 해야 하니.」

적대 조직의 건물에 잠입해 공을 심고 나왔다.

마수 밀매를 주 사업으로 하던 조직으로 지하에는 수십 마리의 마수가 있었다.

그리고 그 조직은 몇 시간도 채 되지 않아 자신들이 다루는 상품에 의해서 궤멸하였다.

그때와 같은 소리였다.

‘설마.’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고동치기 시작했다.

순간 등 뒤에서 마나가 움직이는 것이 느껴졌다.

이 역시 감각이 극히 예민한 이만이 느낄 수 있는 미세한 일렁임이었다.

몸을 돌렸다.

대기 중에 뻑뻑하게 굳어 있던 마나는 제 몸을 움직여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 빛이 향하고 있는 곳은 천장의 어느 한 곳이었다.

간수용으로 놓여 있던 의자를 받치고 올라섰다.

약간의 힘을 주는 것만으로 천장의 타일은 떨어졌다.

안쪽에는 배관이 꼬여 있었고, 그 사이 검 한 자루 끼워져 있었다.

자신이 써오던 것과 완전히 같은 길이, 같은 디자인의 검이었다.

“…….”

떨리는 손으로 검을 쥐었다.

빛은 지하 5층의 천장에서 지하 4층의 바닥을 향해 위로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신을 믿은 적은 없었다.

다만 신이 부리는 기적과도 같은 일이 있다면 바로 지금과 같은 순간일 거라고 생각했다.

팔목의 간격이 좁아 검으로 사슬을 끊어낼 자세는 나오지 않았다.

검을 역방향으로 쥐고 빛을 따라 배관 사이로 몸을 비집고 올랐다.

머리에 닿은 타일을 밀어내며 지하 4층의 바닥에 올랐다.

복도 곳곳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고함이 들려왔다.

도망치는 투사들을 잡기 위해 경비가 몰린 5층보다는 그래도 조용한 편으로 느껴졌다.

이곳에도 역시 이어지고 있는 빛을 따라 복도를 이동했다.

중간중간 경비가 나타났지만, 검이 있기에 상대는 되지 못했다.

수갑으로 인해 마나의 제약을 받고 자세 또한 불편하다 한들 일반 조직원 몇쯤 베어 넘기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마수관리실의 문은 열려 있었다.

우리의 창살은 모두 부식되어 바스러져 있었고 곳곳엔 전투의 흔적이 역력했다.

마수의 것인지 인간의 것인지 알 수 없는 붉은 핏자국이 빛과 함께 나선 계단을 따라 이어지고 있었다.

계단을 따라 올랐다.

계단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아 발소리만이 텅 빈 공간을 울렸고, 위에 가까워질수록 고함과 비명이 커져 왔다.

계단이 끝나고 통로가 나타났다.

원래대로라면 길을 막고 있을 문 역시 활짝 열려 있었다.

통로를 지나 경기장으로 나가자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찌푸렸던 눈을 뜨며 주위의 광경을 둘러보았다.

지옥과 같은 풍경이었다.

투기장에 소속된 조직원들과 마수들이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이곳까지 닿는 데 성공한 투사들이 깨진 유리 벽 너머로 달아나기를 시도했고 관람객 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경비들에게 목이 달아났다.

빛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경기장 중앙을 향해.

홀린 듯 계속해 나아갔다.

그리고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가면을 쓴 남자였다.

딱히 선도 악도 아닌 것으로 보이는, 아무런 장식도 없는 밋밋한 회색 가면을 쓴.

그와 가까워질수록 심장의 고동이 커졌다.

마침내 중앙에서 마주친 순간, 가면을 벗은 그의 얼굴을 보고 눈물이 핑 도는 걸 느꼈다.

한쪽 무릎을 꿇으며 먹먹한 목소리로 말했다.

“영원한 제 주군. 카인 님을 뵙습니다.”

“주군이란 칭호는 듣기 거북하다 했을 텐데.”

익숙한 목소리였다.

동시에 이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왜 깨닫지 못했을까.

어제 찾아왔던 간수의 목소리가 자신이 충성을 맹세했던 이의 목소리와 어딘가 닮아 있었다는 걸.

“죄송합니다. 전에 내리신 명령을 어기고 말았군요.”

“…기사로서의 가짐이 아직도 몸과 마음에 남아 있나.”

밀시안은 검날을 잡고 손잡이를 카인에게 향했다.

“형식은 맞춰 주지.”

주위에는 여전히 난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소음과 비명의 한가운데, 카인의 나직이 말했고 그 목소리는 밀시안의 귀에 선명히 꽂혔다.

마치 두 사람만이 주변 풍경에서 분리된 별개의 공간에 존재하듯이.

카인은 검을 잡았다.

기사 작위를 수여해 군신의 관계를 맺는 의식처럼 검날로 말시안의 양어깨를 두드렸다.

그리고 검에 마나를 주입해 수갑을 내리쳤다.

쨍!

수갑의 사슬 부분이 반으로 갈라지고 말시안은 놀란 눈을 했다.

“카인 님, 지금 마나를…!”

카인이 검을 돌려 손잡이를 다시 밀시안에게 건넸다.

“가지. 다시 검을 휘둘러야 하니 앞으로 다시 고생할 준비를 해라.”

탕!

밀시안의 등 뒤로 마수 하나를 총으로 쏘아 떨어트리며 카인이 말했다.

“알겠습니다.”

결연한 얼굴로 검을 받아들고 밀시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위엔 그의 검이 베어야 할 대상이 넘쳐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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