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72화 (72/227)

#072. 헥사메디컬 (2)

「부하를 잠입시켰다. 41번 구역의 투기장, 지하 3층의 대기실. 알고 있겠지만 사실상 감옥이나 다름없는 곳이지.」

41번 구역.

전쟁에서는 벗어난 구역이었다.

“누구인지는 확인되었나?”

「경계가 삼엄해 안쪽까지 들어가 보지 못했다고 하더군. 목격자의 말에 따르면 체격이 큰 남성이다. 잔뜩 자란 머리와 수염으로 얼굴이 제대로 보이지 않아 나이는 추정할 수 없지만.」

“그 밖의 신체적 특징은?”

「회백색 머리카락. 정확하진 않아. 멀리서 본 데다 오랫동안 씻지 못해 색이 그렇게 보였을 수도 있으니까.」

회백색.

상정할 수 있는 범위는 백발과 은발, 흑발까지였다.

나는 머릿속으로 가능성 있는 인물을 몇 추렸다.

「예상은 했지만 크게 동요하지 않는군. 너는 유독 부하들을 아꼈던 걸로 기억하는데. 쓸데없는 인간미인지, 철저한 관리인지.」

“굳이 따지자면 믿음이겠지.”

카인의 부하는 다른 간부에 비해 수는 적으나 하나하나 실력이 월등히 뛰어난 정예였다.

철저히 준비된 기습이 아니었다면 다른 간부의 부하들에게 그리 쉽게 당하지 않았을 터였다.

‘거기에 한 번 얻은 장난감은 쉽게 고장 내지 않는 파르테르의 성격을 생각한다면.’

투기장에서 누군가와 싸움이 붙여지더라도, 그 상대가 목숨이 위험해질 정도의 강적은 아닐 것이다.

「…재수 없는 자식. 어쨌든 다음 경기는 사흘 뒤 자정이다. 그때 가면 얼굴을 볼 수 있을 거다. 그리고 오후에 로우택틱의 인사가 찾아 왔다.」

“얘기는 잘 나누었나?”

「계약을 재설정했다. 네가 말한 대로 원하는 조건을 다 맞춰 주었는데, 그 회사와는 무슨 관계지? 거래를 했나?」

“대주주쯤으로 해 두지.”

「농담인가?」

“진담이다. 일단은 수고했다. 당분간은 시킬 일이 없으니 대기해라. 나중에 내가 다시 연락을 취하지. 그리고.”

나는 잠시 간격을 둔 뒤에 말했다.

“시간이 된다면 21번 구역 도서관 지하의 기둥들을 살펴봐라. 운이 좋다면 뭔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다.”

「뭐?」

녀석이 되물으려는 순간 나는 통신을 종료했다.

여동생에 대한 단서.

녀석에게 주는 작은 보상이었다.

결정적이진 않으나 충분히 희망에 불씨를 지필만 한.

‘사흘 뒤라.’

시간 여유가 있었다.

41번 구역까지는 이동 거리가 짧기에 당일에 출발해도 무리가 없었다.

투기장은 구역경찰이 묵과하는 일종의 공인된 오락 시설이다.

중산층 이상이 주 고객층이며 먼 곳에서 원정을 오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곳에서 투사들은 싸운다.

마물, 혹은 같은 인간을 상대로.

자의든, 타의든, 어떠한 사정에 의해서.

그리고 그들의 싸움 결과를 두고 돈이 걸린다. 투사가 누구냐에 따라,

어떤 싸움이냐에 따라 천문학적인 숫자의 금액이 오가기도 한다.

‘분명 가장 수익이 큰 시설이었지.’

전쟁 중이라고 투기장의 운영을 멈출 리가 없다.

비단 전쟁에서 벗어난 구역뿐 아니라, 전쟁 중인 구역의 투기장에서도.

카인이 투기장에서 진행되는 경기를 본 것은 단 한 번이다.

40번대 구역의 첫 투기장이 지어지고, 첫 경기가 치러지던 날.

모든 간부와 함께 특등석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타인의 목숨에 돈을 걸고 열광하는 분위기가 역하게 느껴져 중간에 나왔던 기억이 있었다.

사전 조사를 위해 미리 다른 투기장을 가 볼 필요는 없었다.

당시 설계도를 본 적이 있고, 투기장의 구조는 구역을 막론하고 모두 같은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나는 투기장에 관한 카인의 기억을 정리하다 방을 나섰다.

* * *

이틀 뒤.

끼익.

잭의 주점 앞에 차를 멈추었다.

문을 열고 내리며 에스텔이 물었다.

“연락이 왔을까요? 추적이 다시 붙지 않은 걸 보면 말귀를 알아들은 것 같기는 한데.”

“녀석들이 겁을 먹고 상부에 아예 보고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지. 뭐, 어느 쪽이든 상관은 없다.”

정보 길드를 방문한 주목적은 퍼틸랜드가 아니었다.

8월 9일.

계절은 여름의 한중간에 접어들어 있었다.

지상의 모든 것들이 태양의 열기를 이기지 못해 부풀어 터져 버리거나 신경질적으로 날뛰는 시기.

원래 작품에서도 주인공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흐름을 면밀히 파악하기 위해 정보를 조금 더 짧은 간격으로 파악할 필요가 있었다.

딸랑.

오후 3시.

주점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종이 울렸다.

내부에는 직원들이 한산한 움직임으로 돌아다니며 영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마스터, 손님이 오셨습니다.”

우리를 발견한 직원 하나가 안으로 들어갔고 곧 잭이 나타났다.

“오! 왔나. 언제 다시 방문하겠다고 저번에 얘기를 하지 않아 기다리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일찍 왔군그래.”

우리는 안쪽으로 안내받았다.

잠시 걸음을 늦춰 잭과 거리를 벌리고, 나는 에스텔에게 속삭였다.

“오늘은 저번보다 덜 취해 있는 것 같군.”

“에? 그래요? 잘 모르겠는데.”

아주 미묘한 차이였다.

흐트러진 옷맵시 역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꾸며졌다는 인상이 들었다.

도착한 곳은 지난 방문 때 자리를 바꾸어 얘기했던 곳이 아닌, 침입자가 들이닥쳤던 그 방이었다.

에스텔은 밖에서 대기시키고 나는 잭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 전, 그녀의 귓가에 지시 사항을 속삭였고, 그녀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오라고.”

당시 사람이 죽었던 곳이라곤 생각도 들지 않게 뒤처리가 잘 되어 있었다.

벽면 가득 채운 술 진열장을 내가 빤히 바라보자 잭이 다가와 내 몸을 테이블 쪽으로 돌렸다.

“구경은 나중에 하고. 의뢰한 것부터 얘기하지.”

“집무실은 저번의 그곳으로 바꾼 게 아니었나?”

“지내던 곳에 익숙해져서 말이야. 조금 찜찜하긴 하지만 박박 닦고 인테리어도 바꾸니 전보다 더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말이지.”

잭이 자리에 앉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수도에 있는 라크센이라는 인물의 1주일간 행적이야.”

나는 맞은 편 자리에 앉아 건네받은 서류를 읽어 내려갔다.

「…전례 없는 중도 입학에 반발이 많았지만 뛰어난 마법 실력으로 논란은 빠르게 종식되었다. 마법에 대한 지식이 전무 했던 이가 빠르게 성장하는 모습에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장로 아이타르의 선구안 역시….」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었기에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학사 일정에 따라 학생들은 여러 구역에 있는 마법 관련 시설을 견학하기 위해 8월 7일 자로 수도를 떠나 교수진의 인솔하에 이동하고 있으며….」

‘정확히 예상했던 날짜대로.’

답사는 수도의 라티움에서 시작해 중간중간 중요 시설을 거쳐 55번 구역의 클랙필드에서 끝난다.

작품 진행에 있어 주인공에게 매우 중요한 에피소드다.

교수진의 인솔에서 벗어나 우연히 슬럼가에 진입하게 되고, 호화스러운 수도의 거리와 비견되는 그 참혹함에 큰 충격을 받는다.

세계관이 크게 흔들리며 자신이 왜 마법을 배우며 그 끝엔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더불어 범죄 조직과 엮여 음지의 존재를 깨닫게 되는 시기지.’

나는 라크센을 만날 생각이었다.

태풍은 그를 중심으로 불어닥친다.

나의 존재로 사소한 요소에 변화가 있었다고는 하나 작품에 뿌리내린 이야기의 큰 흐름은 흔들림이 없을 것이다.

적어도 내가 이 세계에 머무는 동안에는 미래에 대처하고, 또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지 않기 위해 태풍의 눈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다.

‘또 한 가지, 백진우가 주인공에 빙의했을 가능성도 체크해야 하니.’

생각에 잠겨 있던 중 잔에 술을 따르고 있던 잭이 물었다.

“그런데 블루서펜트에 관한 정보는 정말 더 의뢰하지 않는 건가?”

“필요해지면 나중에 다시 의뢰하지.”

블루서펜트 조사에 관한 의뢰는 일시 중단한 상태였다.

간부들의 소재는 모두 파악했고, 필요한 정보는 그때그때 거리를 돌아다니며 수집하는 편이 더 빨랐다.

나의 정체를 유추할 수 있을 만한 정보를 더 이상 길드에 흘리지 않으려는 의도도 있었다.

“아쉬운가?”

“아쉽고말고. 그만큼 꾸준한 거액의 의뢰는 받기 힘드니까. 한 잔 어때?”

“일단 받기는 하지.”

“오! 그래도 우리 저번보다는 친해진 건가?”

잭이 내 앞에 놓여 있던 잔에 술을 따랐다.

나는 그 물끄러미 그 장면을 보다가, 잭의 옆자리에 놓여 있는 또 다른 빈 잔으로 시선을 옮겨 말했다.

“나 말고도 올 손님이 있는 것 같은데.”

“아.”

잭이 잔을 돌아보았다.

미처 깜빡했다는 듯한 과장된 몸짓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 얘기를 먼저 했어야 했네. 손님이 와 있어. 그쪽을 만나기 위해 어제나 오늘이나 주점에서 대기하고 있었지.”

퍼틸랜드.

정체는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서류는 다 읽었으니 불러서 이야기하지.”

“오! 그래도 되나?”

“처음부터 그럴 목적으로 잔을 놓은 것 아니었나?”

“역시! 말이 잘 통해서 좋다니깐.”

“내 정체에 대해서도 알고 있나?”

“이래 봬도 나름 정보를 다루는 집단의 중역인데 너무 무시하는 거 아냐? 눈앞의 마법사님이 최근 뜨겁게 소문을 탄 유령 가면의 주인이란 것 정도는 알고 있지.”

잭이 손가락을 튕기자 직원 하나가 들어왔다.

그는 잭의 지시를 받고는 고개를 끄덕인 뒤 방을 나갔다.

곧, 말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40대 초반의 남자가 방에 들어왔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에반 님. 벨포트라고 합니다. 퍼틸랜드에서 간부직을 맡고 있습니다.”

그가 손을 내밀었다.

내가 악수를 받지 않자 헛기침을 하고는 잭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래도 간부가 직접 기다리면서까지 나를 찾다니. 저번보다 접근법이 나아지기는 했군.”

“직원, 아니, 부하들이 결례가 많았습니다. 기분을 상하게 한 데에 다시 한번 사과드리겠습니다.”

“바로 본론으로 가지. 나를 찾은 목적이 뭐지? 피아 구분 없이 아무나 죽이고 다니는 인간을 술이나 한잔하자고 찾지는 않았을 텐데.”

“아, 그 전에 약간의 확인 절차를 거쳐도 될지….”

나는 약간 주저하는 그의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유령 가면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린 뒤, 손 위에 마나를 끌어모았다.

일렁이는 마나를 보며 벨포트가 감탄을 터트렸다.

“과연! 무례한 요구일 수도 있었는데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면 저희는 에반 님을 영입하고자 합니다.”

“나를 영입하겠다?”

대화를 이어나가는 동시, 끌어올렸던 원소의 정제에 들어갔다.

마나의 색이 순식간에 옅어지고 서서히 투명하게 변해갔다.

“…….”

잭과 벨포트.

둘 다 아무 반응도 없었다.

마나가 흩어져 대기로 돌아갔다고 생각하고 있으리라.

체외로 방출된 후 사용되지 못한 마나가 으레 그러하듯이.

“예. 에반 님이 뛰어난 실력을 갖춘 마법사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총기를 활용해 전장을 제압하는 모습도 직접 보았지요. 그 과정에서 저희 측 인원이 말려드는 불상사가 있기도 했지만, 크게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벨포트는 테이블 아래 있던 서류 가방을 꺼내 올렸다.

“솔직히 말해 저희는 에반 님이 어떤 분인지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단순히 싸움을 즐기시는 것일 수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고 계신 것일 수도 있죠. 어쩌면 다른 조직에 속한 분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잠시 숨을 골랐다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가방을 열었다.

안에는 고액권 화폐가 빽빽하게 담겨 있었다.

“계약금 2,000만 실링입니다. 앞서 말한 어느 경우든, 저희와 일을 함께 하기에 섭섭지 않은 금액이라 생각합니다.”

2,000만 실링.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결코 적은 돈은 아니었다.

웬만한 특급 용병도 무리 없이 고용할 수 있는 금액이었으니까.

“거절하지.”

다만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을 뿐이었다.

나는 대화를 이어가는 동시에 마나의 정제 단계를 서서히 높여 나갔다.

타인의 눈에는 끌어 올린 마나가 대기 중으로 흩어지는 것으로 보일 터였다.

그는 당황한 얼굴을 했다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예상외군요. 저희는 분명 블루서펜트라는 공공의 적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만. 금액이 성에 차지 않아 그렇습니까? 이건 단순한 계약금에 불과하니 일을 제대로 함께하신다면 적절한 액수의 연봉을 책정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조직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면 무조건 그 이상의 금액을….”

“조직에 누군가를 끌어들이고 싶다면 그 조직에 대한 소개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그는 할 말을 잃은 얼굴을 했다.

이내 큰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 죄송합니다. 너무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라. 사실 음지에서 활동하는 조직들이 뭐가 특별할 게 있겠습니까. 모두 남을 짓밟고 이권을 빼앗기 위해 움직이지요. 저희는 조금 다른 목적이 있기는 합니다만, 아직 알려 드릴 수 없습니다.”

그는 테이블에 몸을 붙여 나와의 간격을 좁혔다.

“서로 궁금해할 필요가 없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저희가 에반 님의 소속과 목적이 무엇인지 묻지 않는 것처럼 말입니다. 중요한 건, 에반 님은 뛰어난 전투 능력을 보유하고 계시고, 저희는 그에 맞는 합당한 금액을 지불할 능력이 있다는 점입니다.”

“조금 다른 목적이라.”

나는 소파에 몸을 뉘어 그와의 간격을 다시 벌렸다.

그리고 말했다.

“헥사메디컬의 신약 제작을 위한 농토 확보 같은 것 말인가?”

그 순간 방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