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71화 (71/227)

#071. 헥사메디컬 (1)

“뒤쪽 진열대에 하나. 입구에 하나. 오른편에 하나. 총 셋이다.”

“여기서 바로 처리할까요?”

“지켜보지. 우리를 공격하는 게 목적이었다면 아까 골목을 지날 때 진작 했을 거다.”

몇 가지 계산이 머릿속을 스쳤다.

저택의 위치를 파악 당했는가?

가능성은 낮다.

며칠 간 저녁 근처에서 수상한 움직임은 발견하지 못했다.

기척이 느껴진 것은 저택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부터.

그렇다는 것은 상대가 우리를 중간에 우연히 발견해 쫓기 시작했을 확률이 높다는 말이 된다.

머리카락 색이나 키 따위의 인상착의는 이미 소문으로 돌고 있었으니까.

“블루서펜트일까요? 아니면 퍼틸랜드?”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물건의 계산을 마치고 매장 밖으로 나갔다.

곧바로 저택으로 향하지 않고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진입해 길을 빙빙 돌았다.

우리의 빨라진 걸음에 당황하듯 미행자들이 허겁지겁 뒤따르는 것이 느껴졌다.

“장소는 이 정도면 된 것 같으니 나오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 나와라. 그렇지 않으면 모두 죽이겠다.”

세 명의 남자가 그제야 나타났다.

섣불리 다가오지 못한 채 쭈뼛대는 모습이었다.

“맞는 것 같지 않아?”

“일단 남자 한 명 여자 한 명 조합에…. 머리카락 색도….”

내 목적은 전쟁의 장기화.

전투가 길어질수록 내겐 계획을 세우고 행동할 시간이 늘어난다.

때문에 내 총구는 전투 상황에 따라 퍼틸랜드를 향하기도 했다.

확실한 아군은 아니다.

정체불명의 실력자를 미행한 대가로 죽을 수도 있다.

그런 심리일 것이다.

“날 따라온 목적이 뭐지?”

“아, 그게….”

“셋을 세겠다. 셋.”

“자, 잠깐만 말입니다!”

“둘.”

“저희는 퍼틸랜드에 소속된 용병들입니다! 혹시 그 최근에 여러 전투에 모습을 보이셨던 마법사님이 아니신지….”

“하나. 목적을 말해라.”

화륵.

나는 손바닥 위에 불덩이 하나를 생성해냈다.

녀석들이 뒤로 달아날 자세를 취하며 다급하게 외쳤다.

“사, 상부에서 마법사님을 찾으면 모시고 오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상부라고?”

“예, 예!”

나는 바닥을 향해 불덩이를 날렸다.

쾅!

불덩이가 바닥에 닿으며 작은 폭발이 일었다.

녀석들은 몸을 날려 폭발에 휘말리는 것을 가까스로 피해 냈다.

“상부의 누가, 왜 나를 찾는지가 문장에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 안 하나?”

“저, 저희는 아무것도 들은 게 없습니다! 그저 모시고 오라고만….”

나는 에스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글쎄요. 일단 누군가를 초대할 때는 자신의 신분부터 명확히 밝히는 게 먼저라고 생각하긴 해요.”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녀석들에게 다가갔다.

철컥.

피스톨을 꺼내 들고 총구를 겨누며.

그 모습을 본 녀석들이 얼굴이 하얗게 질려 몸을 엉금엉금 뒤로 옮겼다.

탕! 탕! 탕!

녀석들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아무 고통도 느껴지지 않자 이내 눈을 떴다.

다리 옆, 바닥에 생긴 총알 자국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가서 전해라. 나와 이야기를 하고 싶다면 직접 찾아오라고 말이야. 그럴 의사가 있다면 45번 구역의 정보 길드에 이야기를 전달해라.”

총알은 모두 녀석들 다리 사이 바닥에 박혀 있었다.

콘크리트에 패인 세 개의 둥근 구멍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라. 마음이 바뀌어 죽이기 전에.”

녀석들은 부리나케 자리에서 일어나 달아났다.

사라지는 뒷모습을 보며 에스텔이 말했다.

“걱정되는 건 아니지만, 보복해 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가능성은 존재하지. 하지만 내가 퍼틸랜드의 실무자라면,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거다.”

나를 보고자 한 이유는 둘 중 하나일 수밖에 없다.

회유 혹은 제거.

그 밖의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으며 상황상 전자의 확률이 높다.

피아가 확실하지 않을지언정, 나라는 존재로 전세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다.

퍼틸랜드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끌어들여 아군으로 삼고 싶을 것이다.

“블루서펜트가 먼저 나를 찾지 못한 것이 아쉽군.”

“그러게요. 그러면 찾아갈 필요 없이 적의 수를 줄일 수 있었을 텐데요.”

저택으로 돌아가는 동안 뒤를 따라오는 누군가의 기척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창살로 된 거대한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막 차에서 내리고 있던 정장 차림의 한 남자가 나를 발견하고는 허리를 꾸벅 숙였다.

“피에타 님의 지시를 받고 왔습니다.”

“나를 바로 알아보는군.”

“본사에 묵으셨을 때 몇 번 얼굴을 뵌 적이 있습니다.”

그는 서류 가방에 걸려 있는 잠금장치를 해제해 안에 있던 봉투를 꺼내 건넸다.

“요청하셨던 자료입니다. 그리고 꼭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일이 바빠 직접 오지 못한 걸 미안하게 생각한다고.”

그는 허리를 재차 꾸벅이고는 차에 탑승해 사라졌다.

에스텔과 나는 저택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올라 각자의 방으로 향했다.

나는 안락의자에 몸을 뉜 뒤 봉투의 봉인을 뜯어 내용물을 꺼냈다.

제약 업계의 동향을 분석한 보고서였다.

규모가 작은 벤처기업부터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까지 세부 분야를 막론하고 정리가 되어 있었다.

빠르게 페이지를 넘겨 나가다, 찾던 키워드를 발견했다.

「헥사메디컬」

교단의 문양과 비슷한 육각별을 로고로 삼은 중간 규모의 기업.

페이지 아래에는 관련 신문 기사나 주가의 등락표가 스크랩되어 붙어 있었다.

「마병의 치료. 불가능의 벽은 무너지는가.」

「대규모 투자 유치. 제약 업계 순위에 변동의 바람이 불어.」

한 달 전 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신약을 발표하며 주가가 폭등하고 있는 기업이었다.

신약이 실제 치료에 효과가 있으며 임상 시험자 중 완치된 사례가 있다는 보고서까지 발표한 상태였다.

‘지금 시점에는 설정이 이렇게 반영되었나. 일이 재밌게 되었군.’

그때 에스텔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손에는 과일이 담긴 접시가 들려 있었다.

“먹을래요? 이 구역에서만 재배되는 과일이 있어서요.”

블랙 라포테.

포도과의 과일로 특정 성질의 토양과 정해진 기후에서만 자라 재배가 몹시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었다.

내가 서류에서 눈을 떼지 않고 대답도 없자 그녀는 곁에 다가와 책상 위에 그릇을 내려놓았다.

“예전에 많이 먹었거든요. 마병이 호전되는 데 효과가 있다고 해서. 결국, 근거 없는 낭설이었지만요. 나도 읽어 봐도 돼요?”

그녀는 책상 위에 흩어진 서류를 보며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병의 치료법이 있다면 그 구체적인 형태나 방법은 어떻게 될 것 같나?”

“…어차피 정답은 안 알려 줄 거면서. 글쎄요. 이런 음식이나 민간요법 같은 것보단 약이나 수술 쪽이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요?”

나는 내가 읽던 서류를 그녀에게 넘겼다.

기사를 읽는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갔다.

“신약 개발…. 완치 사례가 있어…? 뭐예요, 이게?”

“네가 보는 그대로다.”

“원인조차도 불명인 병인데 치료가 가능하다고요? 이제까지 연구에 아무 진척도 없다가?”

“세상은 누군가의 간절함을 금전으로 바꾸고 싶어 하는 양아치들로 넘쳐 나는 법이지.”

“아.”

흔들리던 그녀의 눈빛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내 말에 담긴 의미를 파악한 까닭이었다.

“가짜란 얘기인가요?”

“그래. 가짜다. 실험 결과도 모두 조작되었지.”

“의약품 쪽은 검열이 무척 까다롭다고 들었는데 조작이 가능해요?”

“헥사메디컬 단독으로 벌인 일이 아니다. 뒤를 봐 주는 집단이 있다면 가능한 일이지.”

“…마음에 들지 않네요. 교단과 문양은 비슷한 걸 써서는.”

헥사메디컬.

내가 설정한 기업 중 하나로 본래 주인공 시선에서 진행되는 소설에서는 후반부 에피소드에 등장한다.

마병의 치료제를 개발해 업계 1위로 올라선 굴지의 대기업으로.

시간이 더 지난 뒤의 이야기이긴 하나, 그때 치료제는 상용화되어 대륙 전역에 판매된다.

배합재로 희귀한 작물이 다량 사용되어 가격이 비싸고 효과를 보기까지 수년을 꾸준히 복용해야 하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은 약을 산다.

부유층은 대수롭지 않게.

중산층은 여윳돈을 끌어모아.

하류층은 빚을 내어서라도.

마병은 그만큼 많은 사람이 걸려 있으며 치료가 간절히 염원 되는 병이니까.

하지만 약은 효과가 없다.

몸에 새겨진 마병의 문양을 흐릿하게 만들지만, 그것은 눈속임일 뿐이다.

그마저도 부작용이 완전히 잡히지 않아 여러 합병증이 일어나니, 복용하지 않느니만 못하다.

기업의 실체를 밝혀내고 제대로 된 치료법을 개발해 구원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주인공이다.

주인공이 아직 대륙을 본격적으로 유랑하기 전, 헥사메디컬은 이곳에서 거대한 사기극의 시작을 알리고 있었다.

“설마 이 기업이 퍼틸랜드의 뒷배인가요?”

“그래. 100퍼센트라 장담하지. 토지는 마약이 아니라 약용 식물의 재배를 위해 사들이는 거다.”

퍼틸랜드라는 조직까지 내가 설정해 두진 않았다.

하지만 압도적인 자본으로 토지를 매입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직감할 수 있었다.

퍼틸랜드의 뒤에는 헥사메디컬이 있으며 최근 행보는 신약의 대량 생산을 위한 기반 다지기임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배후 세력이 어디가 되었든 우리가 할 일은 변하지 않는다.”

교전에 일어나는 곳을 찾아가 파르테르의 기반시설과 부하의 수를 줄여나간다.

“일단 블루서펜트라는 공공의 적이 있기는 한데, 퍼틸랜드와 손을 잡을 생각은 없는 거죠?”

“아직은 때가 아니다.”

손을 잡는 순간 전세는 급격히 기울어지고 파르테르가 직접 전투에 참여할 가능성이 커진다.

통제가 힘든 변수가 늘어난다.

치안국의 시선을 끌 수도 있다.

기회를 더 엿보아야 했다.

적어도 투기장에 갇혀 있을 카인의 부하를 구출하고, 정해둔 선까지 적의 전력을 약화하기 전까지는.

“알겠어요. 상황이 닥칠 때마다 명령만 내려 줘요. 그나저나 이거 진짜 안 먹어요? 내가 직접 씻어 왔는데?”

“무슨 짓이지.”

“직접 먹여 주려고요. 아 해 봐요.”

“손가락 치워라.”

“음식도 정말 딱 생존에 필요할 정도로만 먹고 술도 안 마시고. 무슨 낙으로 사나 싶어요. 사람이 아니라 기계인가 싶기도 하고.”

“…….”

나는 눈썹을 찌푸렸다.

나름 친해졌다고 생각이 되는지 그녀는 이따금 이런 식으로 장난을 쳐올 때가 있었다.

엄밀히 말해 과일은 중산층 이상이 즐길 수 있는 기호품이다.

하류층은 평생토록 구경조차 못 하고 죽는 게 대다수다.

어렸을 적 고급 주점에서 일을 했을 때, 카인은 과일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주 고객인 부유층이 자신의 재력을 과시하기 위해 안주로 시킨 온갖 고급 과일을.

그리고 그들이 술에 취해 부리는 추태나 행동에 배어 나오는 역겨운 본성을 보아 왔다.

그 이미지는 그대로 과일과 결부되어 어린 카인의 뇌리 깊숙이 남았다.

때문에 카인은 과일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 기억은 고스란히 내게도 영향을 주어 먹을 수는 있지만, 심적으로 내키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난처하군.’

맹약을 이용한 명령을 내릴까 하다 그만두었다.

그녀는 내가 공들여 조형한 인물 중 하나로 다른 인물보다 애정을 더 많이 쏟은 것이 사실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어린 딸의 재롱을 보는 느낌인가.’

본래 흐름이라면 작품 내내 보일 리 없는 이런 장난스러운 면모를, 주의를 주거나 다그쳐 주눅 들게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똑똑.

─ 카인 님. 통신이 들어왔습니다.

집사의 목소리였다.

나는 구세주를 만난 것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을 열고 나갔다.

“바로 내려가 받지.”

계단을 내려가 1층에 위치한 통신실로 향했다.

통신 구슬은 은은한 빛을 발하고 있었고, 버튼을 조작하자 바마의 모습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여전히 옷으로 온몸을 가린 채, 안락의자에 몸을 뉘고 있는 모습이었다.

“연락이 없어 죽은 줄 알았는데. 혹은 경찰에 잡혀갔거나.”

「…헛소리. 전쟁이 시작되었더군. 네 말대로 파르테르의 지원 요청은 모두 거절했다.」

“잘했다.”

「지금 당장은 괜찮지만 보스가 직접 지시를 내리면 그때는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아 둬라. 전쟁이 길어지면 라이카의 부하들 역시 참전할 수 있다.」

“길어야 한 달이다. 전쟁은 그 전에 끝날 거다.”

「재수 없는 자식. 옛날부터 그렇게 미래를 모두 알고 있다는 듯이…. 바로 다음 주제로 넘어가지.」

녀석이 잠시 숨을 고른 뒤 말했다.

「네 부하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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