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0. 사냥 (4)
쾅!
폭발의 여파로 순간 자세가 흔들렸다.
콘크리트 파편이 흩날리고, 먼지가 걷힌 자리엔 충격에 휘말린 적들이 신체 어딘가 찢긴 채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호오? 막아? 이 몸의 공격을?”
고개를 들자 팔 한쪽이 완전한 기계 장치로 이루어져 있는 거한이 넓게 뚫린 천장의 구멍으로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족보도 없는 용병 놈들이 모인 곳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한가락 하는 놈이 있는 줄은 몰랐는걸.”
팔 끝, 포신의 끝엔 이미 마나가 다시 모여들어 융합을 마치고 발사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신체 개조라. 융합점이 외부에 노출되어 있으니 그리 고가의 장비는 아닌 것 같군.’
체내의 마나를 파동 에너지로 전환해 발사하는, 일반 마나유저가 마법과 유사한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장치였다.
에스텔은 멀쩡했다.
내 쪽을 바라보며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즉시 마나에 ‘간섭’을 가할 준비를 하고 녀석의 팔뚝에 있는 푸른 뱀 문신을 보며 말했다.
“족보라면 그쪽이 더 문제가 되는 것 같은데. 신체 개조자 나부랭이 따위를 받다니, 블루서펜트도 한물갔군.”
“뭐라고?”
“자기 실력에 자신이 없어 그런 장비에 의존하는 것 아닌가?”
녀석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조직원의 충원은 간부의 재량에 달렸다.
파르테르는 사업 확장에 욕심이 많은 만큼, 출신과 성분을 가리지 않고 조직원을 받았다.
“경고하는데 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죽어!”
우웅!
나는 포신의 끝점에 모여 있는 마나의 원소를 뒤틀었다.
총구를 막는 행위와 유사했고, 발사와 함께 녀석의 팔에선 폭발이 일어났다.
“크악!”
내 눈짓과 함께 에스텔이 구멍으로 뛰어올라 방패로 녀석을 힘껏 내리쳤다.
나 역시 마법으로 각력을 강화해 위층을 향해 크게 도약했다.
탁.
곧바로 샷건을 꺼내 바닥에 꿈틀대는 거한을 겨눴다.
그 모습을 보고 에스텔이 방패를 들어 자신의 몸을 가렸다.
탕!
피슉!
사방으로 피가 튀고 거한의 움직임이 멎었다.
“바로 죽여도 상관없나요? 이 건물에 블루서펜트가 몇 명이나 상주하고 있는지 같은 걸 묻지 않아도요.”
“옥상까지 한층 한층 훑으며 올라갈 생각이다. 보이는 모든 적을 죽이면 되는 일이지.”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른 저녁, 창 하나 없는 홀엔 화려한 조명이 밝혀져 있었고,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손님들이 테이블 아래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우리가 올라선 곳은 카바레 중앙 넓은 크기의 원형 무대로 적이 사방을 에워싸고 있었다.
어림잡아 30여 명.
카바레가 위치한 곳은 고층 건물의 아래쪽으로, 위쪽엔 여러 조직의 사무실이 몰려 있었다.
행동이 빠른 녀석들이 벌써 카바레를 지나 내려오고 있던 중인 걸로 보였다.
조금 전 발생한 상황을 보고 잔뜩 긴장한 얼굴들이었다.
“관객 분들이 기다리고 계셨군.”
“별로 호의적인 얼굴은 아닌데요. 분위기 띄우려고 춤이라도 춰야 하나.”
“방어를 부탁하지.”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내가 마법 준비를 시작함과 동시 총알이 빗발쳤다.
마나가 주입된 그녀의 팔찌가 빛을 발했고 곧 우리 주위로 황금빛을 띠는 투명하고 거대한 둥근 막이 생겨났다.
투두두두두!
쏟아지는 총알의 수는 초당 100여 발을 넘었지만, 방어막은 끄떡없었다.
방어막의 강도와 그 유지 시간은 얼마만큼의 마나를 쏟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마나의 양만으로 따지자면 그녀의 마나는 내가 가진 마나의 수 배는 우습게 넘었다.
사격이 멈추고 몇몇 녀석이 날붙이에 마나를 두르고 달려들었다.
에스텔이 뛰쳐나갔다.
녀석들이 방어막에 달라붙기 직전 메이스로 나이프를 쳐 내고, 그러지 못하는 것은 마나를 두른 맨손으로 잡아 우그러트렸다.
“말도 안 돼!”
채 당황할 틈도 없이 메이스가 복부를 찔렀고 녀석들은 배를 움켜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압도적인 무력 차였다.
그녀를 상대하려면 제르비아와 같은 ‘기교’가 필요하다.
하지만 회로 레벨 1단계에 불과한 하급 조직원들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리 없었다.
“됐다. 돌아와라.”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고 내 옆으로 돌아와 붙어 섰다.
나는 손바닥을 머리 위로 뻗었다.
융합을 마친 원소가 섬뜩한 소리를 내며 진동하고 있었다.
손바닥을 움켜쥐자 요동치던 원소가 손가락 사이사이로 빠져나와 수십 갈래로 쏘아져 나갔다.
지직─!
얇디얇은 바람의 총탄이 되어.
입력된 좌표에 따라 이리저리 방향을 꺾어가며.
목표로 설정해 둔 적을 향해서.
바람으로 만들어진 총탄은 채 반응하지도 못할 정도의 빠르기로 적들의 미간을 꿰뚫었다.
일순간 바닥에 몸이 쓰러지는 소리만이 울렸다.
홀에 남은 사람은 우리와 손님들밖에 없었다.
위층에서 적들의 발소리가 들려오나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을 듯했다.
“히익! 사, 살려주시오!”
내가 다가가자 테이블 밑에 엎드려 있던 손님 하나가 겁에 질린 목소리로 외쳤다.
“…….”
죽일 생각이었다면 굳이 범위를 제한할 수 있는 마법을 선택해 좌표 설정에 공들일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물러서라.”
나는 주위를 둘러보며 방위를 가늠한 뒤 한쪽 벽 앞에 섰다.
철컥.
샷건의 장전 손잡이를 뒤로 꺾자 매캐한 화약 냄새와 함께 두 개의 쉘이 튀어 올라 바닥에 떨어졌다.
품에서 새로운 탄환을 꺼내 장전 구멍에 삽입했다.
직접 제조한 12게이지 탄이었다.
쉘 안에 들어간 12개의 쇠 구슬에는 각각 「화염폭발」이 각인되어 있었다.
출력이 높다고 할 순 없지만, 수가 많은 만큼 이 정도의 벽을 뚫는 데는 무리가 없을 터였다.
철컥.
장전을 마치고 벽을 겨눴다.
탕!
한 차례 굉음과 함께 콘크리트 벽이 무너져 내렸다.
3층 높이였다.
시가전이 벌어지고 있던 입구 쪽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아래 보이는 거리는 고요했다.
나는 뒤를 돌아 외쳤다.
“싸움에 말려들고 싶지 않다면 가라.”
동시에 계단을 향해 라이플을 난사하며 천천히 뒷걸음으로 위층 계단 쪽으로 이동했다.
“미, 밀지 마! 밀지 말라고!”
아래층에서 올라오던 적 하나가 총알에 맞아 쓰러지고, 뒤이어 오던 녀석들이 밀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였다.
그 사이 손님들 쪽을 보았다.
에스텔은 어느새 구멍을 통해 지상으로 내려가 뛰어내리는 손님을 하나둘 받고 있었다.
─죽기 싫으면 뛰어내려요! 얼른!
처음엔 망설이던 손님들은 등 뒤에서 울리는 총소리에 움찔하며 밖으로 뛰어내렸다.
‘시간이 더 필요하겠군.’
철컥. 틱.
다 쓴 탄창이 굴러떨어졌다.
곧바로 다음 탄창을 끼워 사격을 가했고, 잠시의 틈을 타 올라오던 적들은 공격을 시도하려던 자세 그대로 쓰러졌다.
구조를 마친 에스텔이 구멍을 통해 뛰어 올라와 내 옆에 붙었다.
“미안해요. 허락 없이 움직여서.”
“아니. 잘했다.”
발뒤꿈치에 계단 턱이 닿았다.
팔을 뻗어 시체들로부터 마나를 흡수한 뒤, 품에서 작은 폭약을 여럿 꺼내 힘껏 팔을 휘둘러 홀에 흩뿌렸다.
그리고 몸을 돌려 위층 계단을 올랐다.
“당신이 죽인 만큼 내가 살려서 업보가 상쇄된다는 건 어떨까요? 물론 당신이 죽이는 사람들은 다 죽어 마땅한 범죄자들이긴 하지만요.”
“…헛소리를 하는 걸 보니 여유가 있나 보군.”
“치, 그냥 해 본 소리예요.”
생각해보면 그녀는 직접 적의 숨을 끊은 적이 없었다.
팔다리를 부러트려 전투 불능으로 만들지언정 말이다.
대지 위 모든 생명을 존중하라는 교단 교리가 그녀 무의식에 깊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위층 적의 발소리가 지척이었다.
다시 샷건을 꺼내 탄을 장전했다.
아까와는 다른 종류의, 단순히 쇠 구슬의 관통력만을 높인 탄이었다.
“적이…!”
탕!
위층에 도달하자마자 나타난 적은 쇠 구슬에 온몸이 꿰뚫려 쓰러졌다.
동시에 아래층에서 진동이 울리며 둔탁한 비명과 폭발음이 들려왔다.
복도 벽을 무너트려 아래로 향하는 계단을 막았다.
이제 이 순간부터 창문에서 뛰어내리거나 바닥에 구멍을 내지 않는 이상 건물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어느 쪽이든 어중간한 실력으론 불가능한 일이었다.
탕!
“컥!”
장전과 격발의 연속이었다.
쉘이 바닥에 굴러떨어지는 소리.
쉼 없이 전진하는 발소리.
복도를 돌 때마다 울리는 적의 단말마.
등 뒤는 에스텔이 있어 기습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층 전체를 돌아 적을 박멸했다.
숨거나 도망치는 녀석들 단 한 명도 놓치지 않고.
말이 사무실 층이지 사실상 조직원들의 숙소나 다름없었다.
대규모 유흥 시설인 만큼 이권을 두고 무력 사태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이고, 대응할 수 있는 병력은 가까운 곳에 있는 게 좋으니 말이다.
팅!
복도 끝 가장 안쪽 방, 금고에 걸려 있던 자물쇠는 사격 한 방에 떨어져 나갔다.
안에 들어 있던 것은 해당 건물에서 운영하고 있는 카바레의 사업 관련 서류와 약간의 현금, 그리고 귀금속이었다.
화륵!
서류의 내용은 한 번 훑어 내려 모두 암기한 뒤 불태워 버렸다.
주 거래처나 요인들의 출입 리스트와 같은 것들.
매장을 운영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재산이었다.
“매장을 복구하는 데 애 좀 먹겠네요.”
복구 타이밍이 늦춰진다.
당장 수익이 줄어든다는 말과 같다.
오롯이 그것만이 목적인 것은 아니나, 나는 파르테르의 화를 최대한 끌어 올려 그의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반지나 목걸이 같은 것도 엄청 많네요.”
“이곳은 근처의 카지노와 연계되어 있다. 빚을 갚지 못하면 몸에 걸친 물건이라도 털어 내야겠지.”
귀금속은 챙겼다.
현금의 양은 유의미하진 않았다.
사무실에 흩뿌려 불길을 번져 나가게 만들기 위한 장작으로 삼았다.
“여기 한 명 추가요.”
에스텔이 시체 하나를 들추며 말했다. 목덜미에 푸른 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이걸로 다섯 명째인가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규모가 있는 유흥 건물 하나당 상주하고 있는 조직원은 50에서 60가량.
그중 관리자 역할을 하는 블루서펜트의 비율은 10퍼센트 정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비율이었다.
불길을 뒤로하고 층계를 올랐다.
여전히 적들이 나타났으나 점차 그 숫자는 줄어들었다.
“지금 여기…!”
탕!
복도를 돌아 적을 박멸하며 계속해 층을 올랐다.
10여 분의 시간이 지나고 옥상에 다다를 수 있었다.
“…….”
열기를 머금은 바람이 한차례 몸을 쓸고 지나갔다.
마법으로 물을 생성해 옷과 몸에 묻은 피를 씻어 내고, 바람을 일으켜 말렸다.
막 샤워를 마치기라도 한 것처럼 머리의 물기를 털어내며 에스텔이 말했다.
“저기 경찰이 보이네요.”
그녀가 가리킨 곳은 카바레 건물에서 거리가 있는 광장으로 경찰차 몇 대가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네요. 운전석에 사람이 타고 있는 거 같은데.”
“싸움이 완전히 종료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거겠지.”
나는 옥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양측의 숫자가 줄며 시가전은 막바지로 접어드는 분위기였으나, 멀리 줄지어 오고 있는 몇 대의 세단이 보였다.
“아무래도 대기 시간이 더 길어지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진압하는 시늉이라도 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경찰도 일단 마나유저잖아요.”
“이 구역을 맡은 경찰서장이 자기 부하 직원들을 각별히 아끼나 보군. 가지.”
나는 옥상 아래 펼쳐진 풍경을 보며 한 차례 비웃음을 날린 뒤 몸을 돌렸다.
그리고 다른 건물의 옥상으로 뛰어 넘어갔다.
약간의 찜찜함과 혼란스러움이 남은 얼굴로 에스텔이 내 뒤를 따랐다.
* * *
그 뒤 며칠간 같은 일과를 반복했다.
교전은 45번 구역을 중심으로 44번과 46번 구역에서도 일어났다.
옥상에서 도시를 관측하다 전투가 벌어지면 그때그때 새로 구비한 장갑차를 몰아 시가전에 참여했다.
블루서펜트 조직원만을 최우선 목표로 두어 제거하고, 주위에 블루서펜트가 운영하는 시설이 있다면 내부로 진입해 난장판을 만들었다.
「공권력의 부재. 능력의 부족인가, 방관인가.」
구역신문에 경찰을 비판하는 기사가 실렸지만, 그날 저녁 내로 모든 신문은 회수되고 신문사는 ‘불안감 조성’이라는 명목으로 폐쇄되었다.
기사를 직접 쓴 기자가 경찰에게 붙들려 차에 태워지는 광경을 보았다는 소문이 사람들 사이를 돌았다.
생각만큼 사람들은 불안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일이 익숙하다는 듯한 투였다.
유흥가는 최대한 피해 다니며 거리 그 밖의 곳에서 일상을 영위해 갔다.
오히려 불안해하는 것은 30번대 아래 구역에서 원정을 오던 유흥객들이었고, 그들의 발길은 뚝 끊겼다.
매출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던 층이었다.
저택 근처의 식료품 매장, 장바구니에 과일을 골라 담으며 에스텔이 속삭였다.
“슬슬 블루서펜트도 초조함을 느끼고 있겠네요. 이렇게까지 애먹을 줄은 몰랐을 텐데.”
순전히 우리 때문이었다.
어느 한쪽의 승리를 100퍼센트 장담하진 못하더라도, 우리의 개입이 없었다면 전투가 이토록 늘어지진 않았을 거란 점은 확실했다.
“우리가 누구인지 많이 궁금할 거다.”
가면을 쓴 만큼 우리의 이미지는 적에게 확실히 각인되었다.
유흥가를 지나다 보면 우리를 언급하는 조직원들의 말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압도적 무력에 대한 두려움.
혹은 상대가 정말 퍼틸랜드 소속인지에 대한 의심.
“나라면 분명 사람을 풀었을 거예요. 상대를 찾아 정체를 밝혀내려고요.”
“지금 뒤쪽 매대에 붙어 우리를 감시하고 있는 녀석처럼 말이지. 눈치챘나?”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진작에요. 아까 거리를 지나올 때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