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69화 (69/227)

#069. 사냥 (3)

화르륵!

불길은 농지 위에 자란 모든 것을 집어삼키며 하염없이 타올랐다.

몽롱한 기분이 대기 중에 퍼진 마약 성분 때문인지, 혹은 본격적인 복수를 시작했다는 고양된 감정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침입자다!”

관리실 건물에서 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무기를 꼬나 쥐고 달려들었지만, 소음기를 장착한 피스톨이 탄을 뱉어낼 때마다 머리가 깨져 나갔다.

가까이 붙은 적은 모두 에스텔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쓰러졌다.

버둥거리는 적들의 머리에 총구를 대고 방아쇠를 당겼다.

퓩!

단 한 명도 빠짐없이.

나는 쓰러진 적들의 시체를 마법으로 일으켜 팔이나 목 따위에 새겨진 푸른 뱀 문신을 확인했다.

‘더 나오진 않는 걸로 보아 상주 인원은 이걸로 끝. 그중 블루서펜트 소속은 셋.’

예상했던 비율이었다.

농장의 관리는 규모에 따라 열 명에서 스무 명까지의 인원으로 이루어진다.

다만 농장은 한두 곳이 아니며 그 외에도 관리할 곳이 많은 만큼, 모든 인원이 블루서펜트 소속으로 이루어져 있는 건 아니었다.

하위 조직에서 파견된 인원이 경비를 맡고 두셋씩 파견된 블루서펜트의 조직원이 그들을 총괄하는 식이었다.

“이런 농장이 구역마다 몇 개씩 존재하는 건가요?”

“대개는 40번대 구역에 밀집되어 있다. 구역마다 다섯에서 여섯 곳가량.”

그중 절반 이상은 블루서펜트의 소유였다.

“사실 나는 몰랐어요. 지나가며 본 적은 있지만, 그냥 평범한 농장인 줄 알았거든요.”

“일상에 맞닿아 있는 것이 범죄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종류의 범죄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존재한다.”

불법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일반인들의 생활 공간에도 이미 깊숙이 스며있다.

오히려 너무 가까이 있어 인지하지 못하거나, 혹은 깨달은 뒤에도 모른 척하며 살아갈 뿐이다.

에스텔은 타오르는 불길을 멍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말했다.

“…어쩐지 조금 취하는 기분이 드네요.”

“약을 해 본 적이 있나?”

“해 보고 싶었던 적은요. 어차피 죽을 목숨, 할 수 있는 건 다 해 보자 하고요. 그래도 나름 신앙생활을 했다고 거부감이 들어 결국 해 보진 못했지만요. 당신은요?”

“해 보았지. 자의든 타의든.”

나는 마법을 이용해 시체를 한데 모았다. 그리고 불을 붙였다.

살이 타는 냄새가 매캐한 연기에 섞여 하늘 위로 올라갔다.

“가지.”

걸음을 돌려 농장 밖으로 향했다.

완전히 떠나기 전, 스프레이를 꺼내 농장 정문에 퍼틸랜드의 표식을 그려 넣었다.

* * *

다음 날 아침.

45번 구역에서 가장 높은 전망대 건물로 향했다.

경비에게 지폐 몇 장을 쥐여 주고 옥상 계단을 올랐다.

“여기요.”

에스텔에게 망원경을 받아 양 눈에 가져다 대었다.

중간중간 다른 건물에 가려 모든 장소를 관측할 수는 없으나, 어느 정도 원하는 장소는 확인할 수 있었다.

렌즈가 향한 곳은 농장 쪽이었다.

어느새 또 다른 망원경을 꺼내 든 에스텔이 내 옆에 붙어 섰다.

“밭은 완전히 전소되었네요. 사람들은 정문 앞에 모여 있고.”

그녀의 말대로 농장의 정문 앞에는 열댓 명 가량의 인원이 모여 있었다.

블루서펜트의 조직원들이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얼굴이 여럿 보였다.

문에 새겨진 표식을 보며 무어라 외치는 그들 주변으로, 구역 주민들이 몰려 눈치를 보며 상황을 구경하고 있었다.

한 녀석이 자신보다 직위가 낮은 녀석의 뺨을 날렸다.

뺨을 맞은 녀석은 몸을 벌벌 떨며 허리를 몇 번이고 숙이다가 뺨을 부여잡고 어딘가로 달려갔다.

남은 이들은 몰려든 주민들을 쫓아냈다.

주민들이 사라진 후에도, 그들은 잔뜩 겁에 질린 얼굴로 그 자리에 머물렀다.

시간이 지나고 경찰차 한 대가 농장 앞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경찰들은 조직원들과 무어라 얘기를 나누다가 다시 차를 타고 사라졌다.

“저대로 그냥 가요? 눈앞에 범죄자들이 있는데?”

“구역 경찰은 치안국 소속의 경찰과는 다르다. 범죄를 소탕하는 건 순전히 치안국의 역할로 여기고 자신들은 안정적으로 월급을 받는 지방 공무원에 가깝다고 생각하지. 아예 다른 집단이라고 보아도 좋다. 직접 범죄에 손을 대는 경우도 있으니까.”

“…와. 내 세금이 이렇게 쓰이고 있었구나.”

다시 시간이 흐르고 고급 리무진 한 대가 도착했다.

대기하고 있던 조직원이 황급히 다가가 문을 열었고, 그 사이로 두꺼운 담배를 문 사내가 나타났다.

3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나이.

뺨을 길게 가로지른 흉터와 화상, 190센티미터는 넘길 듯한 거대한 체격.

내가 결코 잊을 수 없는 얼굴, 투기장의 주인 파르테르였다.

그는 불타 버린 농장을 한 차례 돌아보고는 부하들 쪽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 직위가 가장 높은 부하의 목을 움켜잡고는 그대로 들어 올렸다.

거대한 손아귀가 뺨을 내리칠 때마다 부하의 목이 번쩍번쩍 돌아갔다.

단 몇 번의 움직임만으로 부하의 얼굴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손아귀에서 풀려난 순간 부하는 몸을 부들부들 떨며 자리에 주저앉았고, 지켜 보고 있던 다른 녀석들이 재빠르게 부축했다.

파르테르의 얼굴은 험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얼굴 주름의 움직임에 따라 흉터와 화상이 기괴하게 뒤틀렸다.

한동안 농장을 운영할 수 없을뿐더러, 토지가 크게 상해 복구할 수 있을지도 불분명하다.

농장에서 나는 수익은 절대 적지 않다.

당장 수익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이고, 그 영향이 영구적으로 지속될지도 모른다.

‘다른 상황보다 더 분노할 수밖에. 녀석이 가진 물욕은 궤를 달리하니까.’

그는 정문에 새겨진 표식을 한참 바라보다 부하들에게 무어라 명령을 내렸다.

부하들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 차량에 탑승해 흩어졌다.

망원경에서 눈을 뗀 에스텔이 물었다

“정말 전쟁이 일어날까요.”

“일어날 수밖에 없다. 그냥 눈 감고 넘어가기엔 조직의 체면이 서지 않을 테니까.”

“자존심 문제인가요?”

“한 번 넘어가면 계속 도전해 오는 조직이 생기기 마련이다.”

성격상 명분이 생겨 이 상황을 반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농장이 불타 금전적인 손해가 생긴 것과는 별개로.

살육을 즐기는 전투광인 데다, 상대가 이제껏 흡수해온 중소 조직들을 한꺼번에 집어삼킬 기회이니.

“먹을 것 좀 사 올게요.”

에스텔은 난간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계단을 내려갔다.

그날 오후, 우리는 옥상에 머무르며 도시를 관측했다.

전쟁의 첫 시작은 검은 세단 여럿이 남쪽의 한 건물 앞에 멈춰 서면서부터였다.

블루서펜트의 조직원을 포함한 한 무리가 차에서 내려 건물에 들어갔고 곧 6층의 창문이 깨지며 퍼틸랜드의 조직원들이 추락했다.

유흥가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나며 시가전이 벌어졌다.

기본적으로 개개인의 전투력 자체는 블루서펜트 측이 높았으나, 수적 우세로 퍼틸랜드 측도 그리 밀리는 기색이 아니었다.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하고 있네요, 다들.”

“사실상 전쟁은 예정되어 있었으니 대비를 하고 있었겠지. 이제 슬슬 우리도 움직여도 될 것 같군.”

나는 품에서 가면 둘을 꺼냈다.

경매장에서 사용했던 유령 가면과 여우 가면이었다.

그중 여우 가면을 에스텔에게 던졌다.

“이건 언제 챙겨 놨었어요?”

“앞으로 적을 상대할 때는 가면을 쓴다. 마법으로 얼굴을 바꾸는 것보단 이쪽이 사람들의 뇌리에 더 쉽게 각인이 될 테니까.”

“바마는 이 싸움에 개입하지 않는 거죠?”

“그래.”

바마에게는 이미 연락을 취해 둔 상태였다.

저택에는 통신용 마법 구슬이 비치되어 있었고, 그것을 이용해 녀석의 집무실에 있는 마법 구슬의 고유 번호를 입력했다.

예상대로 녀석은 43번 구역에 있는 자신의 아지트에 막 도착한 상태였다.

다소 지친 목소리로 녀석이 말했다.

「퍼틸랜드와 전쟁이 날 거라고. 그래, 그건 그럴 수 있어. 하지만 내 부하들을 움직이지 말라고.」

녀석은 떨떠름한 기색이었다.

파르테르와 바마의 구역은 겹치는 구간이 있다.

또한, 기본적으로 간부들이 경쟁 구도에 놓여 있다고는 하나 블루서펜트라는 ‘조직’에 도전하는 공공의 적을 좌시할 수는 없다.

지켜만 보는 순간 그 위협의 다음 차례는 자신이 될지도 모르니까.

「그래. 웬만하면 파르테르 선에서 정리가 되겠지만 거리에서 싸움이 일어나도 부하들을 움직이지 마라. 최소한의 방어 정도는 허용하지.」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군. 알겠다.」

다음으로 통신을 건 대상은 피에타였다.

「무슨 일이에요. 제 개인 번호를 알려 주긴 했지만 이런 새벽에…. 일하고 있었죠. 그래도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으니 좋긴 하네요. 제약 회사들의 최근 움직임을 조사해 달라고요? 뭐,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그쪽 업계에도 인맥이 있으니까요.」

일단 퍼틸랜드의 뒷배에 대해서도 조사해 둘 필요는 있었다.

후에 발생할 수 있는 만일의 상황에 대비하여.

지상으로 내려가 차의 시동을 걸었다.

기존에 타고 다니던 스포츠카가 아닌, 번호판을 뗀 무허가 차량이었다.

전면과 측면엔 두꺼운 장갑이 부착되어 있었다.

부아앙-!

액셀을 밟아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시가지로 진입했다.

진로 중간에 말려든 조직원은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그대로 밀어 버리고 전진했다.

끼이익!

거리 한복판에 멈춰 섰다.

여러 소속의 조직원들이 두 진영으로 나뉘어 차나 입간판 따위를 방패로 쓰며 총격전을 벌이고 있었다.

티디딩!

눈먼 총알이 양측에서 쏟아지며 차의 외피를 때렸다.

준비했던 가면을 쓰고 에스텔과 함께 차에서 내렸다.

쉼 없이 날아오는 총알이 방호에 막혀 우수수 떨어졌다.

“농장을 불태워! 상도덕도 없는 새끼들!”

블루서펜트 쪽에서 한 녀석이 피부에 두른 마나로 총알을 막아 내며 검을 쥐고 달려들었다.

방향은 내 쪽이 아닌 퍼틸랜드 진영 쪽이었다.

콰직!

녀석은 에스텔이 휘두른 메이스에 맞아 그대로 고꾸라져 몸을 부들거렸다.

“아군! 아군이다!”

“다 쓸어버려! 블루서펜트가 별거냐! 숫자는 우리가 훨씬 많다고!”

우리 몸에 있는 문신을 보고 퍼틸랜드 쪽 인원이 외쳤다.

퍼틸랜드는 다수의 용병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했다.

용병 중에 마나유저가 적은 편이 아니라곤 하나 단기간에 많은 수를 끌어모을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퍼틸랜드 구성원의 다수는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일반 조직원이다.

반대로 블루서펜트는 조직원 모두가 마나유저로 이루어져 있다.

대다수 하급 조직원이 회로레벨이 1단계에 불과하다곤 하나 그것만으로도 일반인 수십은 상대할 수 있다.

즉, 우리가 개입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금방 정리되었을 거란 얘기다.

탕! 탕!

달려드는 몇 녀석을 더 쏘아 떨어트렸다.

굳이 리볼버를 사용할 필요도 없었다.

정제 3단계의 「바람칼날」정도로도 하급 조직원들의 방어막은 쉽게 뚫을 수 있었다.

“계속 몰려드는데요.”

거리 멀리, 다가오고 있는 한 무리의 조직원들이 보였다.

블루서펜트 쪽 인원이나 내가 아는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블루서펜트에 속한 하위 조직의 인원들이었다.

“저들은 목표가 아니다. 이쪽으로 올라가지.”

“중간에 경찰이 오면요?”

“상황이 모두 종료되면 나타날 거다. 자기 목숨 소중한 줄은 아는 족속들이니까.”

양 진영의 마나유저가 격돌하며 난전이 벌어졌다.

우리는 적을 상대하는 동시에 천천히 뒷걸음질 치며 한 건물의 입구에 닿았다.

파르테르가 운영하는 카바레 건물이었다.

“가지.”

몸을 돌려 계단을 올랐다.

─방금 통신이 들어 왔어! 오늘 영업은 접어! 비상 상황이니 매장에 있는 놈들 모두 집합시켜!

위쪽에서 다급한 목소리와 발소리가 들려왔다.

계단이 꺾이는 부분에서 상대가 나타났고 그 순간 나는 피스톨을 쏘았다.

탕!

“어, 어, 뭐야!”

방아쇠 당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탕! 탕! 탕!

“적, 적이다!”

뒤이어 나타난 당황한 녀석들을 향해 계속해 피스톨을 쏘며 계단을 올랐다.

1층에서 뒤쫓아 올라오는 녀석들은 에스텔이 막아 내고 있었다.

바로 그때 바로 위 천장에서 강렬한 마나의 움직임이 느껴졌고, 나는 방호의 출력을 높이며 외쳤다.

“에스텔! 위다!”

내 말과 함께 에스텔이 방패를 위로 치켜들었고, 그 순간 거대한 충격파가 천장을 뚫고 우리를 향해 내리꽂혔다.

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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