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8. 사냥 (2)
투두두두-!
테이블 위의 잔들이 사정없이 깨져 나갔다.
나는 방호를 펼쳐 튀어 오르는 유리 파편을 막았다.
“분명 네 짓이지! 겁도 없이 내 정보를 팔아! 덕분에 나는 조직에 쫓기는 몸이 됐다고!”
침입자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을 내뱉었고 총알이 다 떨어진 뒤에야 사격을 멈추었다.
총알이 퍼부어진 자리엔 잭이 사라지고 벌집이 된 소파만 남아 있었다.
“컥!”
어느새 침입자의 뒤에 나타난 잭이 상대의 목을 팔로 휘감았다.
“이게 누구야. 저번에 취해서 자기 조직 거래처를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던 녀석 아니야?”
“끅! 네, 네가 분명! 정보를 팔아 넘기…!”
이제까지의 취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모습이었다.
잔뜩 붉어진 얼굴을 한 침입자가 목을 조른 팔을 어떻게든 떼어 내려 했지만 잭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부정하진 않아. 어차피 퍼질 정보인데 내가 조금 일찍 주워 판매한 셈이지.”
“끅, 이, 씨발, 새끼!”
“그게 싫으면 조심했어야지. 여기 주인이 정보로 먹고사는 인간인 건 지나가던 개도 다 아는 사실 아냐?”
조직 간의 세력 다툼이 치열한 곳인 만큼, 정보 길드의 존재는 그리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다.
잭이 운영하는 주점은 뒤쪽 세계의 인사뿐 아니라 남들 눈에 띄기 싫은 수도의 공직자들이 더러 방문하기도 한다.
수많은 정보가 오가며, 또 교환되기에, 무언가 자신에 관한 것을 흘리기 싫다면 이곳에선 입을 열지 않는 것이 잘 알려진 행동 지침이다.
물론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건 아니다.
가령 멋모르고 술에 취해 떠들어 댄 눈앞의 이 침입자처럼.
“지금 무슨 소리가…!”
에스텔이 놀란 표정으로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괜찮다는 뜻의 내 손짓을 보고는 그 자리에 멈춰 섰다.
뒤이어 직원들이 쫓아 들어 왔다.
안절부절못하는 그들을 보며 잭이 말했다.
“위층에 올라가서 이 녀석이 어떻게 들어 왔는지 파악해. 그리고 총 하나 줘 봐.”
“아, 예.”
잭은 피스톨 하나를 건네받아 그것을 침입자의 입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손님. 퍼틸랜드에 관한 정보가 필요하다고 하지 않았어? 이 녀석한테 물어봐. 이 녀석 조직이 지금 퍼틸랜드와 블루서펜트 사이에 끼어서 어느 한쪽에 먹히기 직전이거든.”
나쁘지 않은 기회였다.
정보 길드가 보유한 정보보다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이 자를 통해 얻는 정보도 비용에 추가가 되나?”
“VIP로 등록되어 있으신 분인데 이 정도는 서비스로 해 드려야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반대편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피스톨의 방아쇠를 잡아 침입자의 떨리는 눈동자를 마주했다.
“살려줄 수 있다고 약속하진 못한다. 다만 고통 없이 죽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고는 장담하지. 알겠다면 고개를 끄덕여라.”
녀석은 눈동자만 이리저리 굴릴 뿐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에스텔. 나가 있어라.”
“아, 알았어요.”
험한 장면이 연출될 것을 직감한 그녀가 문을 닫고 나갔다.
직원들 역시 눈치를 보다 자리를 비웠다.
나는 흘긋 시선을 내렸다.
침입자의 목울대에 새겨진 가시바퀴 문신이 보였다.
쏜즈휠.
총인원 50명 정도의 약소 조직으로 높은 번호 대의 슬럼에서 아이들을 납치해 값싼 노동력이 필요한 곳에 팔아넘기는 것이 그들의 주된 사업이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지. 내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라. 네가 할 수 있는 최대로. 알겠다면 고개를 끄덕여라.”
녀석이 여전히 눈치만 보는 것을 확인한 순간, 나는 엄지를 녀석의 귓구멍에 집어넣고 관자놀이를 손바닥으로 감싸 쥐었다.
파직!
“끄아아악─!”
녀석이 몸이 한차례 부르르 떨리고 이내 축 늘어졌다. 동공이 풀리고 입가엔 거품이 물려 있었다.
세기를 조절했기에 죽지는 않는다.
다만 죽을 만큼 고통스럽기만 할 뿐이었다.
“훠우! 손님, 보기보다 화끈한데!”
마법을 보고도 잭은 그렇게 놀란 기색은 아니었다.
‘내 정보를 이미 열람해 본 적이 있나 보군.’
정보 길드에 의뢰를 한다는 것은 반대로 자신의 신원이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 해도 별달리 영양가 있는 정보는 없겠지만.’
수준급의 마법사.
금발 여자와 동행.
블루서펜트에 대한 높은 관심.
내가 노출한 정보는 그 정도다.
언젠가 내 정체를 캐고자 하는 이가 나타나고, 위 정보만으로 정체가 유추가 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 언젠가가 적어도 근시일 내에는 아닐 것이다.
길드 입장에서 꾸준히 거액의 의뢰를 넣는 손님은 쉽게 잃기를 원치 않을 테니까.
하지만 앞으로 조금 더 조심할 필요는 있었다.
기존 의뢰는 유지하되, 정체가 유추될 소지가 있는 신규 의뢰는 피하는 것이 좋았다.
가령 40번대 구역 투기장 어딘가에 있을 카인의 부하를 찾는 일과 같은.
길드 입장에서 꾸준히 거액의 의뢰를 넣는 손님은 쉽게 만나기 힘든 법이니까.
혹은 일부러 나에 대한 정보를 노출시켜 후에 있을 상황을 유리하게끔 조장하는 것도 가능했다.
“내 말을 알아들었으면 고개를 끄덕여라.”
나는 침입자의 머리채를 잡아 천천히 들어 올렸다.
녀석은 영혼까지 넘길 기세로 거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퍼틸랜드가 너희 조직을 흡수하려 하는 이유는 뭐지? 대가로 무엇을 제안했나?”
녀석은 내 질문에 홀린 듯 대답해갔다.
원하는 만큼 정보를 얻었을 때 나는 방아쇠를 잭에게 넘겼고, 잭 역시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탕!
잭이 방아쇠를 당긴 순간 벽과 테이블에 피가 튀었다.
그는 술병용 천으로 손을 닦고는 나를 보며 말했다.
“심문을 많이 해본 솜씨던데. 역시 이쪽 세계 사람인가?”
“발을 담근 적이 있다. 지금은 아니지만.”
“어쨌든 미안하다고. 얘기하는 중에 이 매너 없는 새끼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말이야.”
딱!
잭이 손가락을 튕기자 직원들이 들어왔다.
“여기 이 새끼 치워. 피 냄새 안 나게 소독 잘하고. 그럼 손님, 우린 자리를 좀 옮겨서 얘기하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침입자의 시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몸을 돌려 잭을 따라 방을 나갔다.
* * *
우리는 잭의 주점을 빠져나왔다.
에스텔이 차의 시동을 걸며 물었다.
“그 사람은 죽었나요?”
“죽었다. 불쌍한가?”
“아뇨. 사람 죽는 걸 한두 번 본 건 아니니까요. 그냥 궁금해서요. 이쪽 세계에선 이런 일이 빈번하구나 싶기도 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을 책임지지 못하면 목숨으로 대신한다. 간단한 원칙이다.”
차는 도로 위를 달렸다.
나는 좌석에 몸을 기대고 잭에게 받은 서류를 빠르게 훑어 넘겼다.
[퍼틸랜드]
: 54번 구역에서 반년 전 결성. 주변 조직을 흡수하고 토지를 매입하며 빠르게 성장 중. 규모는 삼백 명 정도로 추정. 다양한 층위의 용병들이 주된 구성 인원. 조직의 보스에 대해선 알려진 바 없으며 최근 40번대 구역에서 활발한 움직임. 토지와 건물에 쏟아붓는 막대한 자본으로 보아 재계의 인사가 뒷배일 가능성이 유력….
조직에 관한 기본적인 정보 외에도, 정보 길드의 전문가들이 내린 분석이 주석처럼 달려 있었다.
나는 내용을 모두 외운 뒤 서류에 불을 붙여 창밖에 날렸다.
조직이 땅을 매입한다.
경우의 수는 하나밖에 없었다.
나는 창밖 멀리 보이는 곡창 지대를 보며 물었다.
“에스텔. 이 정도 비옥도의 땅에서 기를 수 있는 것 중 가장 수익성이 좋은 작물이 뭔지 아나?”
“에? 글쎄요? 깊이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밀? 보리?”
“마약성 작물이다.”
“아. 그렇지만 그건 불법…. 아니에요. 또 순진한 소리를 할 뻔했네. 불법이냐 아니냐는 크게 의미가 없겠죠.”
“그래. 법 위에 존재하는 것이 돈이니까.”
대륙 곳곳에서 마약성 작물의 재배가 공공연히 이루어진다.
뇌물은 받은 구역 경찰들의 비호 아래에서 말이다.
“땅을 사들이는 이유가 마약을 재배하기 위해서였나 보네요. 경찰을 매수하는 작업은 이미 끝내 놓았을 테고.”
“어느 조직이든 가장 탐내는 사업이 마약 사업이지.”
블루서펜트 역시 차명 회사를 통해 마약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운영에 있어 법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조직이다.
밭에 불을 지르거나, 대놓고 힘으로 짓밟는 식의 견제가 들어 오기에 약소 조직은 감히 농장을 꾸릴 생각을 하지 못한다.
“일단 파르테르의 부하들을 줄여나갈 거라고 했죠? 정체를 위장한 채로.”
“그래. 이 퍼틸랜드가 적격일 것 같군.”
부하들을 제거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관리하는 구역이 많은 만큼 분산되어 있을 테니까.
다만 꼬리가 밟힐 위험이 있어 시선을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정보 길드의 분석대로 뒷배는 재계의 인사일 가능성이 크다. 짚이는 구석 역시 존재한다.’
하지만 퍼틸랜드의 보스가 누구인지는 지금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것은 퍼틸랜드와 블루서펜트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등을 떠밀어 주는 정도. 그 정도면 전쟁으로 번지기에 충분하다.’
파르테르와 바마는 내가 교도소에 들어가기 전부터 퍼틸랜드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벼르고 있었다.
전쟁은 예정된 일이다.
내가 할 일은 그들에게 명분을 주어 전쟁의 시기를 앞당기는 일이다.
경찰의 눈이 있기에 일반인들까지 말려들게 할 대규모 전쟁을 벌이지는 못할 것이다.
예측대로라면 구역 곳곳에서 게릴라식의 소규모 전쟁이 일어날 것이고, 우리가 스며들 충분한 틈이 생겨날 것이다.
우웅.
나는 마나를 일으켜 허공에 문양을 수놓았다.
대지에 꽂힌 곡도.
퍼틸랜드의 표식이었다.
나는 표식을 손등에 새겨 넣은 뒤 같은 문양의 표식을 허공에 하나 더 생성했다.
“어, 잠깐만요. 나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데.”
“…….”
“이것도 결국 타투잖아요. 이런 일탈은 처음이라.”
“허공에 띄우는 것만으로 마나가 소모되고 있다.”
“잠시만요.”
끙끙대며 고민하던 그녀는 목덜미를 골랐다.
그녀는 한 손으론 핸들을 잡고, 다른 한 손으론 머리카락을 들어 올려 자신의 목을 거울에 비추어 확인했다.
“문양이 예쁘진 않지만 뭐, 나쁘진 않네요.”
“…이건 패션 아이템이 아니다.”
“그냥 기분 내는 거죠. 사실 해보고 싶었던 게 산더미에요. 사제 때는 이것저것 제약이 워낙 많았거든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제로플로 경매장의 45번 구역 지부였다.
“미스릴 원석의 가장 빠른 경매일은 15일 뒤입니다.”
“그다음 매물은 언제지?”
“앞선 경매로부터 다시 15일 뒤에 있습니다.”
일정의 확인.
제로플로에서 할 일은 그걸로 끝이었다.
원하는 만큼의 장비를 제작하려면 매물로 올라오는 원석을 적어도 몇 달간은 모두 낙찰받아야 했다.
‘40번대 구역에서의 일을 끝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계산상 약 한 달.’
가능한 모든 경매에 직접 참여하는 게 좋으나, 시간이 여의치 않을 경우 피에타에게 부탁해 대리인을 보낼 생각이었다.
경매장을 나선 뒤 도시를 돌며 거리를 살폈다.
“…확실히 이권 챙길 곳이 많은 구역이라서 그런지 조직원인 게 분명한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띄네요.”
피부에 드러난 문신이나 총기를 숨긴 불룩한 외투 따위의 것들이 그들의 정체를 알렸다.
무언가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그들 사이에 느껴졌다.
군소조직은 이미 대부분 블루서펜트나 퍼틸랜드 어느 한쪽에 흡수된 상태였다.
때문에 45번 구역은 사실상 두 조직이 이권이 갈라 먹고 있다고 해도 좋았다.
그 비율은 어림잡아 6대 3 정도.
나머지 1은 아직 흡수되지 않은 소규모 조직들이었다.
“이쪽은 되었다. 다음 거리로 출발하지.”
잠시 멈추었던 차가 다시 출발했다.
주요시설이나 건물의 위치는 카인의 기억 속에 모두 남아 있었다.
다만 각 조직의 영역도가 미묘하게 변했기에 그 부분을 점검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게 도시의 모든 구역을 돌았다.
중간에 총포상과 정비소에 들러 무기와 차량의 상태를 점검했다.
그리고 저택으로 돌아와 탄환을 비축하며 해가 저물기를 기다렸다.
에스텔은 정원에서 쉴 틈 없이 메이스를 휘둘렀다.
그녀고 새벽달이 떴을 때 행동에 나섰다.
낮에 보아 둔 블루서펜트의 농장으로 가 불을 질렀다.
방비는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블루서펜트라는 이름값에 이제까지 섣불리 공격이나 침입을 시도해 온 이가 없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
흙바닥에 나부라진 경비들의 시체를 뒤로하고 나는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밤하늘 아래, 불길은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활활 타올랐다.
일종의 전야제였다.
나의 진정한 복수의 시작을 알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