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67화 (67/227)

#067. 사냥 (1)

스포츠카는 새벽 황야의 공기를 가르며 나아갔다.

잠이 오지 않는 듯 턱을 괴고 창밖을 보고 있던 에스텔이 문득 말했다.

“교도관이 당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어요. 교도소 내에서도 당신에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었고, 당신이 사라진 직후 교도관 자리를 사임하고 교도소를 떠났죠.”

그녀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여자는 경찰이고 당신은 이름난 범죄자니까요. 하지만 아까 납골당에서 둘이 나눈 대화는 무언가 그 이상의 관계로 보였어요.”

“…….”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달라고 하면, 주제넘은 질문인가요?”

나는 운전으로 앞을 보고 있었다.

옆에서 그녀의 빤한 시선이 느껴졌다.

“…악연. 그뿐이다.”

“그 여자에 대해 아주 많은 걸 알고 있었어요.”

“거기까지.”

“진짜 이름이 뭔지도, 소중한 이의 유골함이 그곳에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죠. 당신은 나에 대해서도 잘 알아요. 마병에 걸린 사실은 물론이고 행동습관 하나하나를 모두 파악하고 있잖아요?”

“내가 대답해 줄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

“알아요. 기대도 안 했어요. 말했다시피 당신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기로 마음먹기로 했고요. 그냥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요.”

그녀가 잠시 뜸을 들였다.

엔진 소리와 바람 소리가 지나고 다음 말이 나왔다.

“분했어요.”

“분했다고?”

“아까 싸울 때요. 그 여자 몸 한 번 스치지 못했어요. 알려 줘요. 강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끼익.

차를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눈동자는 어떤 강렬한 의지로 일렁이고 있었다.

강해지고 싶다.

예상치 못한 한 마디였다.

그녀는 타고난 재능과 노력으로 교단 수련생들 사이에서 빠르게 탑으로 떠올랐다.

성인이 되어 정식으로 전투 사제로 임명이 되었을 때도 같은 직급의 사제들 사이에서 그녀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공을 비롯한 극히 일부의 인물들을 제외하면, 등장인물 대다수에게는 성장의 제한이 걸려 있다.

단순 노력을 통한 성장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고정된 값의 마나를 가진다.

그녀 역시 한참 전에 성장이 멈추었을 것이다.

더 이상의 수련은 무의미하다 느끼고, 마병의 치료가 불가하다는 것을 깨달은 뒤론 그런 태도가 더욱 심해졌을 것이다.

‘본래 이야기에서 그녀는 스스로의 힘에 큰 욕심이 없는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 그녀는 스스로의 입으로 강해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당신은 뭐든 다 알고 있잖아요. 말해줘요. 내가 더 강해져서, 어떤 상황에서든 당신을 지킬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강해지고 싶다. 얼마나 강해지길 원하는 거지?”

“적어도 그 여자한테 밀리지는 않을 정도로요.”

그녀가 그런 마음을 먹게 된 이유가 단순히 이번 전투 한 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계기는 되었겠군. 이제까지 전투가 끝날 때마다 복잡한 얼굴을 할 때가 있었으니.’

크게 의식하지 않던 문제였다.

나는 그녀가 충분히 강하다고 생각했고, 그녀의 강함보다는 ‘나’ 스스로 강해지는 데 집중해 왔다.

나는 내 회로 상태를 확인했다.

[회로 레벨: 2]

[마나 327 / 1384]

나는 계속해 성장하고 있다.

이 세계에 진입한 시점부터 교도소를 빠져나와 지금에 이르기까지 줄곧.

카인은 주인공과 더불어 성장한계가 열려 있는 몇 안 되는 인물 중 하나였다.

‘그녀가 강해지는 건 물론 나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다. 하지만 내 방법을 그대로 그녀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

마나의 양이 고정되어 있는 조연이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특정 사건을 계기로 한 ‘각성.’

주인공을 만난 뒤, 커다란 심경의 변화나 상황의 전환을 계기로 ‘각성’하여 성장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설정해 두었다.

그리고 에스텔의 경우 마병의 치료가 그 사건에 해당한다.

강해지고자 한다.

마병의 치료를 위해.

하지만 마병의 치료가 선행되어야 강해질 수 있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었다.

“말했듯이 너는 충분히 잘 버텼다.”

“버틴 거잖아요. 이긴 게 아니라. 아니 따지면 버티지도 못했죠. 얻어맞고 바닥에 주저앉았으니까.”

이론상으로는 그렇지만, 방법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설정의 틈을 비틀어 3단계 이상의 정제를 실현했던 것처럼.

나는 그녀의 머리 위에 손바닥을 올려 그녀의 감정을 가라앉혔다.

“조바심내지 마라. 우리는 충분히 잘해나가고 있다.”

“…알았어요.”

* * *

새벽 동이 터올 때쯤 45번 구역에 도착했다.

“오랜만이네요. 사람들이 저렇게 일찍부터 나와 일하는 풍경은.”

창밖엔 넓게 펼쳐진 밀밭이 보였다. 사람들이 허리 숙여 일하고, 수확 차량이 주위를 돌아다녔다.

1번부터 119번에 이르기까지 각 번호 대의 구역은 수도를 중심으로 하여 바깥을 향해 나이테 모양으로 뻗어있다.

그리고 중심이 되는 수도에 가까울수록 토지의 비옥도는 올라간다.

슬슬, 곡물이 자랄 수 있는 땅이 나타나는 구간이었다.

“온통 밭뿐이네요.”

“귀한 땅을 다른 용도로 쓴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일이겠지. 뭘 심던 다른 일을 하는 어떤 경우보다 몇 배의 수익이 날 테니까. 수도에도 교단 소유의 농지가 있지 않나?”

“있죠. 이곳처럼 사유지가 아니라 수확되는 작물들 모두 배급에 쓰이긴 하지만요.”

“…….”

그녀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었다.

교단의 농지, 속칭 ‘황금의 땅’에서 재배되는 작물은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배급에 쓰이지 않는다.

모두 특등품으로 분류되어 황실을 비롯한 고위 정부 기관에 납품된다.

배급 사업에 쓰이는 것은 최하급 농토에서 구매한, 상품 가치가 극히 떨어지는 작물들이다.

“직접 배급에 참여해 본 적이 있나?”

“아주 어렸을 때 수습 시절 빼고는 없는 것 같아요. 전투사제로 임명되고는 계속 대륙을 돌아다니면서 임무를 수행했거든요.”

그때 밭에서 일하고 있던 소년 하나가 서행 중인 차에 다가와 창문을 두드렸다.

꾀죄죄한 얼굴에 몸이 앙상했다.

주위를 둘러보며 감독관의 눈치를 살피더니 손바닥을 내밀었다.

위잉-

에스텔이 창문을 내리고 동전 하나를 손바닥 위에 올려 주었다.

소년은 허리를 꾸벅 숙이고는 허겁지겁 일터로 사라졌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그녀가 말했다.

“…아이러니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다른 누구도 아닌, 식량이 나는 땅에서 일하는 당사자들이 굶주리며 살아간다는 사실이요.”

농지의 일꾼은 대개 슬럼에서 흘러온 값싸고 어린 노동력으로 충당된다.

착취에 가까운 계약이 이루어 지지만 누구 하나 불만을 제기하지 못 한다.

아이들이 도시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그 외에 별달리 없을뿐더러, 악조건 속에서도 일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은 넘쳐난다.

“저 아이들을 구할 수 있다면 구할 텐가?”

“예전이라면 모르겠지만 지금은 글쎄요. 당장 눈앞의 아이들만 구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거예요.”

그녀는 다시 창문을 올리고는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맞는 이야기였다.

근본적인 부분을 손보지 않는 이상 대륙 전체를 떠도는 빈부격차와 가난은 해결할 수 없었다.

차는 구역 중심을 향해 천천히 미끄러져 나갔다.

* * *

“어서 오십시오. 아가씨의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3층 높이의 고급저택.

집사로 보이는 노인이 대문 앞에 나와 우리를 맞이했다.

네드비체 가문은 구역 곳곳에 별장을 두고 있었고, 피에타는 우리가 그곳들을 자유로이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두었다.

저택 관리를 위한 최소 인원인 듯 사용인들 숫자가 그리 많지는 않았다.

짐을 풀고 침대에 누워 잠시 눈을 붙였다. 두 시간 정도 뒤, 맑아진 정신으로 몸을 일으켜 움직였다.

끼익-

마당 정원에는 에스텔이 있었다.

허공에 메이스를 휘두르던 그녀는 무언가 불만족스러운 얼굴을 했다가 나를 발견하고는 다가왔다.

“출발인가요?”

“그래. 조금 쉬어 두는 게 좋았을 텐데. 계속 몸을 풀고 있었나?”

“생각이 조금 많아져서요. 차에서 눈을 좀 붙여 두기도 했고.”

그녀가 결연한 눈동자로 말을 이었다.

“나 장비 좀 바꿔 줄 수 있어요?”

“장비 말인가?”

“네. 일단 실력이 부족했던 게 가장 큰 원인이긴 했지만, 장비가 조금 더 좋았다면 그 여자와 싸웠을 때 결과가 조금 달라지지 않았을까 해서요.”

그녀의 정신은 새벽에 나눴던 대화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듯 보였다.

그녀의 장비는 두 개다.

메이스와 방패.

몸이 느려진다는 이유로 다른 것은 사용하지 않는다.

교단에서 받은 물품으로, 웬만한 기성품보다 높은 품질을 자랑한다.

어지간한 장비는 그녀의 성에 차지 않을 것이다.

‘미스릴이 등장하는 경매의 일정을 모두 파악해 둬야겠군.’

단순히 효율성 측면에서 보았을 때, 내가 사용할 여러 정의 총기를 제작하는 것보단 그녀에게 메이스와 방패 하나를 쥐여 주는 것이 더 큰 전력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컸다.

“이번 일이 일단락되고 여유가 생기면 그리 하지.”

“고마워요.”

그녀의 얼굴에 단번에 밝아졌다.

함께 차를 타고 저택 문 밖으로 나갔다.

거리는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고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복장 역시 깨끗했다.

40번대 구역은 중산층이 인구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었다.

구역 대부분이 슬럼이나 공장지대로 이루어져 있던 높은 번호 대와는 확연히 다른 풍경이었다.

차는 유흥가로 접어들었다.

오전이라 네온간판은 모두 꺼져있고 바닥에 홍보물이 낙엽처럼 뒹굴었다.

정보 길드의 위치를 다른 이에게 물을 필요는 없었다.

30번대와 40번대 구역은 카인의 주 활동지였고, 주요 시설이나 건물의 위치는 모두 머릿속에 입력되어 있었다.

안쪽에 위치한 5층 건물 앞에 차를 대고 유리문 앞에 다가섰다.

건물 전체가 홀과 바로 이루어진 고급 주점이었다.

쿵. 쿵.

유리문을 두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안쪽에서 퀭한 인상의 사내가 나타났다.

“아직 술 들어올 시간은 아닌…. 우린 저녁부터 영업하니까 그때 다시 오라고. 낮술을 원하면 다른 가게를 찾아보고.”

내 모습을 위아래로 훑은 그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말했다.

전날 일하다 그대로 잠들었는지 바텐더 복장 매무새가 망가져 있었다.

“이곳에서만 주문할 수 있는 술이 있다고 하던데.”

시선이 마주쳤다.

잠시 후 그가 문을 열며 말했다.

“그쪽 손님이었군. 들어 오라고. 가게 꼴이 말이 아니긴 하지만.”

나와 에스텔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블이나 소파 곳곳에 나부라져 있는 직원들의 모습을 보고 에스텔이 속삭였다.

“지부장 성격에 따라 운영 방식이 많이 갈린다고 듣긴 했는데, 여기는 조금 특이하네요.”

그녀의 말에 동의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는 없었다.

허술한 겉모습과 달리 그들 모두 어지간한 수준의 기사 하나는 거꾸러트릴 수 있는 실력자였다.

특히 우리를 안내하고 있는 사내, 술꾼 잭은 이쪽 세계에서는 나름 입지적인 인물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정보를 팔아 최단기간 내에 지부장 자리에 오른 것으로 유명했다.

깨진 술병이 널린 바닥을 지나 홀 가장 안쪽의 방에 도착했다.

“밖에서 대기해라.”

“알았어요.”

나는 잭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대리석으로 된 테이블 위에는 얼음통과 술병 외에도 서류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딸그락.

그가 잔에 얼음을 넣고 보드카를 부었다.

“의뢰인분도 한잔할 텐가?”

“…되었다. 바로 본론으로 가지. 에반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의뢰가 있을 거다.”

“아, 기억에 있는 이름이야. 분명 거액의 의뢰를 걸었던 손님이었던 것 같은데….”

그는 잔을 입에 털어 넘기고 서류 더미를 뒤졌다.

그중 하나를 빼어 위쪽에 묻은 술 방울을 털어낸 뒤 펼쳤다.

“어디 보자. 궁금한 게 많으신 분이었군. 어떤 것부터 들으실 텐가?”

“블루서펜트의 간부들에 대한 것부터.”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류에 적힌 내용을 말해주었다.

라이카는 인공 숲이 있는 33번 구역을 떠나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보인다.

바마는 최근 53번 구역에 모습을 보였다 자취를 감추었으며, 이후의 행적을 파악 중이다.

파르테르는 40번대 구역을 떠나지 않고 있으며 이는 최근 급부상한 신흥조직 퍼틸랜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라크센은 마탑에 재학 중이며 학기 중 별다른 특이 사항은 보이지 않았다.

‘퍼틸랜드.’

카인의 기억에 있는 조직이었다.

40번대와 50번대 구역에서 활동을 시작한 조직으로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토지를 사들이고 있었다.

매입한 토지 대부분이 농토라 관련 기업이 뒷배로 있다는 소문이 정설처럼 돌았으며 40번대 구역에서 토지문제와 관련해 블루서펜트와 갈등을 빚고 있었다.

‘예상대로 분쟁이 아직 끝나지는 않았군. 퍼틸랜드 역시 만만치 않은 규모의 조직이니까.’

“일단 의뢰했던 내용은 이게 다인데, 더 궁금한 게 있으신가?”

잠시 생각에 잠겼고, 오래지 않아 머릿속에 그림 하나가 그려졌다.

나는 테이블 쪽으로 몸을 숙이며 말했다.

“최근 40번대 구역 내 블루서펜트와 퍼틸랜드의 움직임에 관해서.”

쿵!

그때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테이블 위에 누군가 착지했다.

“죽어!”

투두두두-!

뿌연 먼지 속, 침입자는 외마디 외침과 함께 잭을 향해 라이플을 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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