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66화 (66/227)

#066. 클랙필드 (4)

“부숴라.”

“뭐라고? 지금 무슨….”

“어줍지 않게 악당 흉내를 내는군. 부수라고 했다. 내겐 아무런 상관없는 물건이니까.”

제르비아의 얼굴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에스텔조차 놀라서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제르비아, 그녀의 행동은 허세다.

나는 확신한다.

카인과 제르비아는 분명 서로가 닮아있다.

소중한 이가 범죄에 희생당해 세상을 떠났으며, 그것이 계기가 되어 근원적으로 악을 증오한다.

결은 다르지만, 대륙에서 범죄를 멸하겠다는 뜻을 자신의 숙원으로 삼았다.

하지만 성장 환경이 다르기에, 핵심 가치관과 행동 원리에선 큰 차이가 난다.

카인은 슬럼가에서 자랐다.

건달들과 결탁해 범죄를 묵인하거나 그에 준하는 행위를 직접 저지르고 다니는 구역 경찰과 관리들을 수도 없이 보아 왔다.

나라에선 자신 같이 힘없는 이들을 위해 절대 손을 써 주지 않는다.

유순한 방법만으론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했으며 살아남기 위해, 또 목표를 이루기 위해 손을 더럽혀가며 무슨 일이든 해왔다.

반면 제르비아는 수도의 대저택에서 자랐다.

그녀의 성격상 실제 그러하진 않았지만,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아도 되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정정당당함과 떳떳함을 삶의 기치로 교육받고 그렇게 살아왔다.

경찰에 임용되고 여러 현장을 돌며 성향이 거칠어졌다고는 하나 무의식에 뿌리내린 가치관은 변하지 않는다.

그녀가 누군가의 약점을 잡아 협박을 한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저건 그저 순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저질러버린 허세일 뿐이다.

“뭐 하고 있나? 부술 생각이 없다면 내게 건네라. 직접 부숴 주지.”

아드득.

그녀가 이를 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왔다.

무르다.

악을 상대하기 위해선 자신도 완전한 악이 되어야 한다.

진흙탕 속에 있는 상대를 잡기 위해서는 진흙탕 속에 발을 디뎌야 한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공권력이라는 유순하고도 물렁한 수단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고 있으니, 그녀는 아직 멀었다.

휙!

그녀가 입술을 질끈 깨물고는 유골함을 내게 던졌다. 그와 동시에 빠르게 달려들었다.

나는 유골함을 낚아채 품속 아공간에 갈무리한 뒤 방호를 펼쳤다.

챙!

내리그어지던 검이 방호에 튕겨 나갔다.

이제까지와 같은 출력의 방호였지만 이번엔 금이 조금 갔을 뿐 깨지지 않았다.

‘기세가 약해졌다. 그 물건이 확실히 지하 2층에 있는 게 맞나 보군.’

그녀가 뒤쪽으로 몸을 돌림과 동시에 내리 베었던 검을 회수해 횡으로 크게 휘둘렀다.

챙!

그녀의 검이 뒤따라온 에스텔의 메이스를 튕겨냈다.

잠시 생겨난 틈을 타 나는 수납장 사이를 향해 뛰었고, 다시 추격전이 벌어졌다.

탕! 탕!

피스톨을 쏘아 추격을 늦추며 수납장을 훑어나갔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목표했던 이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걸음을 멈추지 않고 계속 뛰며, 조금 전 시야에 담았던 이름을 떠올렸다.

「자비르 칼타」

제르비아가 대외적으로 쓰고 있는 이름의 진짜 주인이자.

경찰의 꿈을 품었지만, 실습 중 죽고 만 오빠.

그리고 지금 내가 찾고 있는 유골함의 당사자.

그녀 오빠의 존재는 그녀만큼은 대외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55번 구역, 클랙필드.

납골당의 지하 2층.

유골함이 이곳에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 역시 극소수다.

그녀의 기세가 약해진 이유였다.

정말로 전력을 다해 나를 쫓고 공격했다간 제 혈육의 유골함이 파손될 위험이 있었으니까.

“조심해요!”

에스텔은 검 손잡이에 복부를 맞아 무릎을 굽힌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잠시 방해가 사라지자 제르비아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왔다.

나는 리볼버를 꺼내 총신과 손잡이를 양손으로 쥐어 그녀가 내리치는 검을 막았다.

끼기긱!

미스릴과 미스릴이 맞부딪히고.

파지직!

마나와 마나가 충돌했다.

나의 마나는 흑(黑)에 가까운 암청색을, 그녀의 마나는 완연한 청색을 띠어 물과 기름처럼 경계선을 만들어냈다.

“공격이 느려졌군. 다른 생각을 하고 있나?”

“닥쳐라! 인간으로서 당연히 갖춰야 할 감정도 없는 더러운 범죄자!

순식간에 공방이 몇 번이나 오갔다.

그녀의 검은 아슬아슬하게 나를 비껴가거나 리볼버의 총신에 막혔다.

확실히, 그녀는 나와의 전투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녀의 정신을 이곳에 불러들일 필요가 있었다.

“내가 너를 왜 죽이지 않았는지 궁금하지 않나?”

“뭐?”

“내가 너를 왜 죽이지 않았는지 말이다.”

“지금 무슨….”

“그럴 만한 가치도 없었기 때문이지. 너같이 아무 신념 없이 황실 정부의 끄나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들을 보면 구역질이 나 견딜 수가 없다. 차마 내 손을 직접 더럽히기가 싫더군.”

그녀가 순간 동작을 멈칫했다.

이내 눈을 매섭게 치켜뜨며 외쳤다.

“내가! 아무런 신념이 없다고!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그녀의 분위기가 급변하고 검 끝이 매섭고 날카로워졌다.

일견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중에도 철저히 목과 심장 같은 급소만을 노리고 들어 왔다.

지직!

그녀의 검이 방호를 꿰뚫고 뺨을 스쳤다.

화끈한 통증과 함께 잘려나간 짧은 머리카락 몇 가닥이 허공에 날렸다.

나는 입꼬리를 밀어 올리며 말했다.

“그렇게 분노하는 걸 보니 정곡을 찔렸나? 네게 무슨 신념이 있지?”

“그 입 닥쳐!”

쿵!

그녀의 검이 내가 피한 자리를 지나 바닥을 내리찍었다.

특수 합금으로 된 바닥이 무너지며 사람 하나가 지날 수 있을 만한 구멍이 생겨났다.

“이 건물도 누군가의 사유 재산일 텐데, 경찰이란 작자가 그렇게 망가트려도 되는지 모르겠군.”

“남의 물건을 훔치고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범죄자 따위가!”

감정이 격해지며 공격의 파괴력은 늘었지만 예리함은 줄어들었다.

공격을 피하고, 원소의 정제를 시작하며 나는 그녀를 그녀 오빠의 유골함이 있는 수납장 통로로 유인해 갔다.

그 앞에 도착했을 때, 나는 뒤쫓아 오는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정제가 끝난 원소를 융합해 「바람덩굴」과 「가속」 마법을 발동했다.

정제 4단계.

가용한 최대치의 마나를 쏟아.

바람이 그녀의 몸을 옭아매고 검의 경로를 슬며시 비틀었다.

나는 가속된 움직임으로 그녀의 공격을 피했고, 목표를 잃은 검은 수납공간 옆, 세로로 이어진 모서리를 길게 긁어내렸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그녀보다 다음 동작이 더 빨랐다.

나는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 내 쪽으로 끌어당겨 자세를 무너트렸다.

곧바로 그녀의 엄지손가락을 펴 붙잡아 수납공간의 지문 인식부에 접촉시켰다.

위잉-

“……!”

그녀가 채 상황을 파악하기 전, 나는 안쪽의 유골함을 꺼내 품에 안고 뒤쪽으로 몸을 굴렀다.

내가 천천히 몸을 털고 일어나는 동안 그녀는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납골당에 들어온 순간 그런 생각이 들지 않던가? 이 더러운 범죄자가 내 오빠의 유골함 위치까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내 뒷조사를 대체 어디까지 한 거지!”

나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뒷조사를 한 적은 없지만 알 만큼은 알고 있지. 움직이지 마라. 한 걸음이라도 떼는 순간 이걸 부숴 버릴 테니까.”

무언가 움직임을 취하려던 그녀의 몸이 단번에 굳어 버렸다.

“더러운 자식…!”

“왜지? 너도 나를 멈추기 위해 시도하지 않았었나?”

“부수는 순간 너는 죽는다.”

“이 상황에서 우위에 있는 게 누구인지 아직 깨닫지 못한 것 같은데. 아니, 그 전에 나를 죽일 용기나 있는지 모르겠군.”

나는 손아귀에 힘을 주어 유골함 윗부분에 살짝 금이 가게 만들었다.

“명령을 내리는 건 나다, 제르비아 칼타. 당장 그 자리에서 비켜서라.”

순간 일변한 나의 싸늘한 목소리에 그녀가 움찔했다.

한참 입술을 잘근거리던 그녀가 주춤거리며 몸을 비켜섰다.

나는 언제든 유골함을 부술 수 있도록 손에 꽉 쥔 후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치욕감으로 얼굴을 물들인 채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 그녀 옆에 멈춰 서 말했다.

“제르비아. 너는 내 유골함을 부쉈어야 했다. 그대로 넘겨 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행동이 굼떠지길 바랐겠지만, 제약을 받은 건 오히려 네가 되었지. 같잖은 도덕심 때문이었나? 적에게 소중한 이라도, 범죄와 관련된 이가 아닐 수 있으니 망자를 욕되게 할 수 없다는?”

“…….”

“우습군. 세상의 모든 범죄를 없애겠다고? 그런 알량한 마음가짐으로? 경고하지, 제르비아. 지금 이 순간부로 나에 대한 추적을 멈추고 블루서펜트에 관한 모든 수사에서 손을 떼라. 현장에서 모습이 보였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네 소중한 물건을을 부수겠다.”

다시 걸음을 떼며 마지막 한 마디를 남겼다.

“정말 범죄를 뿌리뽑고 싶다면, 상대의 사정 따위 아랑곳 않고, 또 자신에게 소중한 무언가를 포기할 수 있을 정도의 각오를 갖춰라.”

이건 그녀를 위한 충고이기도 했다.

블루서펜트를 파고들면 들수록 그녀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게 된다.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아가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는 진실을.

제르비아는 아무 대답 없이 그저 분한 얼굴로 바닥의 한 점을 쏘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지나쳐 아직 한쪽 무릎을 굽힌 채 주저앉아 있는 에스텔에게 다가갔다.

“돌아가지. 이곳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잠깐만요. 지금 몸에 힘이….”

나는 그녀의 목과 무릎 뒤로 손을 넣어 번쩍 안아 올렸다.

그녀가 떨어지지 않기 위해 허둥지둥 양손으로 내 목을 끌어안았다.

“혼자 움직일 수 있는데….”

“되었다.”

그녀의 얼굴엔 아직 고통이 다 가시지 않아 있었다.

천천히 계단을 올라 나갔고, 아래층에서 제르비아의 외침이 들려 왔다.

─카인, 너는 언젠가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작게 입을 벌려 대답했다.

얼마든지 기다려주지.

***

밖은 초승달이 뜬 야심한 새벽이었다.

거리는 가로등만이 점점이 켜져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다.

걸음 소리만 울리던 중 아직 품에 안겨 있던 그녀가 말했다.

“수도에서 가장 강한 기사라고 듣긴 했지만, 저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분명 당신한테 마법까지 받고 싸웠는데.”

“너는 충분히 잘 싸웠다.”

“…….”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녀는 어딘가 분한 얼굴이었다.

프로이드의 집을 향해 계속해 걸었고, 몇 분 정도가 지나 그녀가 다시 입을 열었다.

“당신이 하는 모든 일에 의문을 품지 않기로 했지만, 그래도 궁금할 때가 많아요. 이 사람은 대체 무엇을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단지 타인을 관찰하고 조사를 하는 것만으로 그 사람에 관해 그렇게까지 많은 사실을 알아낼 수 있는 걸까.”

“상태가 괜찮아진 것 같군. 직접 걷지.”

“에, 이대로도 괜찮을 것 같은데.”

“무겁다.”

“아니…! 내가 대체 어디가! 미쳤어요?”

나는 그녀를 그대로 땅에 내렸고, 그녀는 엉거주춤 자세를 잡았다.

“내가 평균보다 키가 큰 편이긴 하지만 무겁지는 않잖아요. 오히려 날씬했으면 날씬했지. 평소에도 날 그렇게 생각…!”

“농담이다. 사과하지.”

“죽을래요?”

“내가 죽으면 네 병도 치료하지 못한다.”

“아 씨, 진짜. 무슨 말을 못 하게 하네.”

그녀는 툴툴대며 나와 걸음을 맞췄다.

“…확실히 더 이상 쫓아오지는 않네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빠의 유골함은 그녀에게 상상 이상으로 중요한 물건이었다.

그녀가 더 이상 내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모든 일이 끝난 뒤엔 제 자리에 돌려놓을 생각이었다.

“일단 앞으로 추적을 멈출 거라 생각하지만, 심경의 변화가 있을지 모르니 차가 있는 곳에 닿으면 다음 구역으로 바로 출발하지.”

“알았어요.”

언덕을 오른 지 얼마나 되었을까, 꼭대기에 있는 프로이드의 집이 나타났다.

프로이드와 레니 모두 이미 잠이 든 듯 집의 모든 불은 꺼져 있었다.

“인사도 안 하고 그냥 가요?”

“깨우는 것보단 그게 낫겠지.”

나는 문 앞 허공에 마법을 이용해 급한 일이 생겨 떠난다는 내용의 글을 써넣었다.

“운전은 내가 하지. 눈을 붙여 둬라.”

“고마워요.”

탁.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바퀴가 움직이고 스포츠카는 빠르게 언덕 아래를 향해 달렸다.

곧 구역의 외곽이 나타났고, 우리 뒤로는 깊은 잠이 든 클랙필드의 모습이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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