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65화 (65/227)

#065. 클랙필드 (3)

‘제르비아. 뒤를 밟는 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군.’

차량으로 이동할 때 분명 추적은 붙지 않았다.

그녀가 공장에서부터 쫓아 왔다면 뒤에 남은 바퀴 자국을 따라왔다는 이야기가 된다.

추적을 예상하지 못한 건 아니다.

다만 그 시기가 빨라 조금 놀랐을 뿐이었다.

‘분명 지형을 골라 주행해 바퀴 자국이 남는 것을 최대한 피했다. 그래도 이곳까지 쫓아 왔다는 건, 역시 추적술의 대가라는 건가.’

그녀는 모든 과목에서 만점을 받고 기사학교를 졸업했다.

「길치」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나, 일전에 내가 남겼던 죄수복과 같이 나침반 역할을 할 적절한 단서만 있다면 누군가의 뒤를 쫓는 것은 그녀에게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은 되지 못한다.

하물며 현장에는 그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을 테니까.

혹은 그녀 역시 누군가를 추모하기 위해 이곳을 방문했다가 나를 발견했을 가능성도 있었다.

클랙필드의 납골당은 전쟁에도 끄떡없는 내부 설계로 황실은 물론 수도의 인사들도 많이 찾는 곳이었으니까.

다른 구역에 비해 유독 치안이 좋은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제르비아에 대한 설정을 몇 떠올린 나는, 후자의 가능성에 힘을 조금 더 실었다.

‘혹은 둘 모두에 해당할 수도.’

“선반이 덜 닫혔군. 부탁하지.”

“알았어요.”

대화도 끊기고 밖으로 나가지도 않는다면 의심을 살 수 있었다.

시간을 끌려는 내 의도를 눈치챈 에스텔이 호흡을 맞춰 대사를 뱉고 통로 안쪽으로 향했다.

나는 몇 가지 변수를 더 검토했다.

밖에도 경찰이 깔려 있을 가능성과 프로이드의 집 위치가 파악 당했을 경우와 같은 것들.

“누구인지 짚이는 사람이 있나요?”

“자비르 경위.”

“네? 그때 그 교도관이요?”

“나 혼자 나갈 테니 일단 대기해라. 상대가 먼저 공격해올 경우에만 나타나 방어해라.”

“…알았어요.”

그녀는 대충 상황을 짐작한 표정을 지었다.

대처의 방향성을 잡은 나는 장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적막한 내부를 향해 외쳤다.

“치안국의 차기 국장이 남을 이렇게 졸졸 따라다니는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는데.”

곧 반대쪽 장 사이에서 제르비아가 나타났다.

그녀는 허리에 검집을 착용하고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얼굴로 이쪽을 쏘아보았다.

“오랜만이군. 황야는 나 없이도 잘 횡단했나?”

“닥쳐라.”

“뒤쫓아 오고 있는 건 알았지만 이토록 빨리 나를 따라잡을 줄은 몰랐는데. 성장한 건가? 칭찬해 주지.”

“그 더러운 입으로 나를 평가하지 마라! 그럴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지하실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그녀의 어깨가 크게 오르내리는 걸 보아 분을 삭이고 있는 듯 보였다.

“잠든 이의 물건을 훔쳐 달아나다니, 잠시나마 너를 다시 판단해 보려 했던 내가 우둔하게 느껴질 뿐이다.”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사람으로 주인이 바뀐 것뿐이지.”

아득.

“현장에 있던 대원들에게서 마법을 목격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급수탑에 검은 머리의 누군가 있었다는 이야기도. 카인, 너라는 걸 직감했다. 바마를 구하는 게 목적이었겠지.”

“훌륭한 추리군.”

접선을 알렸던 익명의 제보자가 나란 것까지는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곧바로 인근 지역의 수색을 시작했고 출동 명단에 없는 경찰 차량이 클랙필드로 향했다는 제보를 받았다. 바퀴 자국 역시 발견했다. 하지만 구역 안쪽에서 흔적이 끊겨 이곳에서 너를 찾는 데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스릉.

그녀가 검 끝을 내게 겨눴다.

“하지만 이토록 빨리 너를 발견하다니, 이건 분명 하루빨리 악을 멸하라는 하늘의 뜻이겠지.”

바마의 행방 따위, 지금의 그녀에겐 중요치 않아 보였다.

“일단 장소를 옮기지. 이곳에서 전투를 벌인다면 망자들에게 폐를 끼치게 되니까.”

“아니. 더 이상 네 말에 놀아날 생각은 없다. 오늘 넌 여기서 뼈를 묻는다, 카인.”

“정·재계 인사들의 유골이 보관되어 있는 곳에서 난전을 벌였다는 사실을 들키면 징계를 피하기 힘들 텐데.”

“징계 따위 상관없다.”

‘조금 곤란하군. 대화로 틈을 찾기는 힘들 거라 예상은 했지만.’

고개를 들어 천장에 달린 감시용 마법 카메라를 흘긋 보았다.

조금 전까지 작동하고 있던 센서의 불빛이 꺼져 있었다.

납골당의 관리자들에게 지시를 내렸을 것이다.

혹은 내 행동을 지켜보다 내려왔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직권을 이용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납골당의 실내가 웬만한 충격에도 끄떡없도록 설계되어 있다는 사실도, 그녀가 알고 있다고 보아야 했다.

그녀는 본래 계획적이며 철두철미한 인물이니까.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는 건 오직 카인을 마주할 때에 한해서다.

“마지막으로 남길 말 정도는 들어주겠다.”

시선을 옮겼다.

그녀 뒤편에 자리한 출입구.

거리가 짧지 않을뿐더러 통로의 폭이 좁다.

그녀의 공격을 피하며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아야 옳다.

제압한다는 선택지는 논외다.

세계관 열 손가락 내에 드는 그녀의 무력을 감안하면 공세를 버텨 내는 것만으로 버겁다.

‘지금 상황에 가능한 수는…. 달리 다른 방법이 없군. 아니, 슬슬 그녀를 쳐내야 할 타이밍임을 감안하면 이 편이 나을 수도.’

“마지막이라. 정말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제르비아?”

마지막 이름은 힘주어 발음했다.

탕!

그녀가 발을 구르는 소리는 총알이 격발되는 소리와 같았다. 다른 장소였다면 분명 바닥이 움푹 파였을 것이다.

동시에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고, 그 즉시 나는 준비하고 있던 방호를 전개했다.

챙!

방호가 완성된 순간 앞쪽에서 귀를 찌르는 쇳소리가 울렸다.

어느새 나타난 에스텔이 앞쪽에 방패를 세워 들고 있었다.

부웅-!

그녀는 방패를 뒤로 빼며 메이스를 휘둘렀다.

제르비아가 뒤로 몸을 날려 원래 자리에 착지했고, 메이스는 허공을 갈랐다.

“타이밍 좋군.”

“손목 얼얼한 것 봐. 이런 공격이면 몇 번 못 받아낼 거예요.”

방패를 쥔 그녀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의무관. 설마 했는데 정말 당신일 줄은 몰랐습니다.”

“…….”

“켄트락 교도소에 있어야 할 당신이 왜, 무슨 까닭으로 저자와 함께 있는 겁니까?”

“…난 이 사람을 지켜요. 다른 할 말은 없어요.”

제르비아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카인! 네가 흑마법을 사용하는 것은 그럴 수 있다 여겼다! 하지만 사제를 현혹해 종복으로 삼다니! 신의 분노가 두렵지 않은가!”

에스텔이 ‘허’하는 헛웃음을 터트리고는 내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뭔가 크게 잘못 알고 있는데요, 저 사람. 오해라고 좀 해 줘요. 너무 화가 나 있어서 나는 말을 못 걸겠으니까.”

“아예 틀린 말은 아니군.”

“…….”

잠시 여유가 생긴 틈을 타 마나를 끌어 올렸다.

현재 상황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강화마법을 에스텔과 나에게 걸었다.

그리고 에스텔의 귓가에 지금 그녀가 해야 할 일을 속삭였다.

“…알았어요. 주의를 끌면서 그 이름을 찾으면 되는 거죠. 노력해 볼게요.”

나는 곧장 자리를 박차고 장 사이로 뛰었다.

제르비아가 달려들었고 에스텔이 방패를 들어 그녀를 막았다.

─ 의무관! 교단이 이 사실을 알면 큰 처벌을 피하기 힘들 겁니다!

─ 처벌하라고 해요! 아예 파면시키라고 하지! 그 고리타분한 늙은이들!

뒤쪽에서 병장기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장 사이를 돌아다니며 수납공간 아래에 부착된 작은 명패들을 빠르게 살폈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은 안력을 강화해 이름을 읽었다.

‘일단 이쪽 구역에는 보이지 않는다. 다른 쪽인가. 그녀의 성격상 가장 아래층에 두었을지도.’

제르비아와의 조우.

언젠간 맞닥트려야 했을 순간이었다. 다만 그 순간이 지금 찾아 왔을 뿐이었다.

처음에는 그녀가 나를 쫓도록 유도해 특정 장소에서 이득을 취할 생각이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하지만 에스텔이 동행으로 합류한 지금, 제르비아의 필요성은 줄어들었다.

‘여기서 그녀를 떨쳐내야 한다.’

그리고 더 이상 나를 쫓지 못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애초에 그럴 생각이었다.

에스텔이 없었더라도.

카인이란 존재에 대한 제르비아의  집착은 점점 커지고 있고, 언젠간 내 통제와 예측을 벗어나는 순간이 닥쳐올 터였다.

‘지금 당장 그녀를 제압하는 건 불가능하다.’

세계관 열 손가락 내에 드는 그녀의 무력을 고려하면.

지금은 그녀가 손속에 사정을 두고 있을 뿐, 진심을 다한다면 몇 분 내로 에스텔의 목 아래에 검을 들이밀 수 있었다.

다른 방법을 써야 한다는 얘기였다.

가령 그녀의 심리적 약점을 파고드는 것과 같은.

쐐액!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에스텔을 제치고 따라붙은 제르비아가 검을 내리쳐 오고 있었다.

검이 닿자 방호는 순식간에 깨져 버렸고 나는 급히 몸을 틀었다.

끼기긱!

그녀의 검이 유리 긁는 소리를 내며 장을 타고 미끄러져 내렸다.

틀었던 자세를 되돌리며 그대로 피스톨을 꺼내 발사했다.

탕!

그녀의 모습이 사라졌고 탄환은 통로 바깥에 있는 기둥에 박혀 들었다.

쐐액!

다시 위.

고개를 들자 족히 십 미터는 될법한 수납장 꼭대기에서 그녀가 검을 내리찍어오고 있었다.

명백한 살의가 느껴졌다.

적어도 나에 대해서는, 그녀의 검은 진심이었다.

탕! 탕!

연속해서 피스톨을 쏘았다.

그녀는 앞선 탄환은 검으로 쳐 냈고, 뒤따른 탄환은 공중에서 수납장 벽을 박차 방향을 바꿔 피해 냈다.

그리고 그 순간 방패를 든 에스텔이 제르비아를 허공에서 덮쳐들었다.

둘은 한 덩어리가 되어 통로 안쪽 벽에 쑤셔 박혔다. 곧 몸을 일으켜 공방을 벌였다.

“의무관! 당신이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겁니까! 당신은 마법에 당해 세뇌당한 겁니다!”

“짜증 나게 자꾸 헛소리하지 마요! 내 의지, 내 뜻으로 결정한 일이니까!”

나는 두 사람을 뒤로하고 다른 쪽 통로로 뛰었다.

탐색을 계속하는 동안 제르비아는 쉼 없이 나를 쫓았고, 에스텔은 그런 그녀를 가로막았다.

살갗이 스치고 옷이 찢어지는 등 아슬아슬한 순간이 많았지만, 다행히 지형상 그녀의 공격이 제약되어 치명상은 피할 수 있었다.

지하 1층을 모두 돌았지만 내가 찾는 이름은 발견되지 않았다.

2층으로 내려가 탐색을 이어 갔다.

예상과 달리 제르비아와 에스텔은 곧바로 내려 오지 않았고, 덕분에 상당히 많은 구역을 돌아볼 수 있었다.

오 분 정도가 지났을 때, 제르비아가 전투 때문에 옷매무새가 조금 흐트러진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녀의 손엔 익숙한 모양의 유골함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녀가 실내를 향해 쩌렁쩌렁하게 외쳤다.

“카인! 도망을 멈추고 네 죗값을 치러라! 그렇지 않다면 이 물건을 부숴버리겠다!”

“…….”

나는 통로 밖으로 나가 제르비아를 마주했다.

때마침 에스텔이 뒤따라 내려왔고, 유골함을 들고 있는 제르비아를 보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섰다.

세 사람이 거리를 두고 일직선으로 서 있는 구도였다.

에스텔이 나를 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미안해요. 막지 못했어요.」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그녀는 분명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말해주겠나?”

“이 자리에서 죗값을 치러라. 그렇지 않다면 네 소중한 이의 유골함을 부숴 버리겠다.”

순간 헛웃음이 나왔다.

그녀는 지금 내가 하려던 짓거리를 그대로 하고 있었다.

유골함을 꺼내는 방법은 두 가지였다.

센서에 지문인식을 하거나, 관리자 카드를 이용하거나.

수납공간 앞의 특수합금으로 이루어진 강화 유리를 무력으로 부수는 게 불가능하진 않으나, 안쪽의 물건들까지 파손될 우려가 있다.

그러니 그녀는 관리자 카드를 사용했을 것이다.

유골함을 정확히 찾은 걸 보아 관리실에서 카메라를 통해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테고.

나는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읊조렸다.

“부숴라. 내겐 하등 상관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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