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64화 (64/227)

#064. 클랙필드 (2)

활짝 열린 창 앞에 커튼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도망친 것 같은데…. 바로 나가서 찾아볼까요? 시간을 줄수록 거리가 벌어질 거예요.”

방 안의 물건은 모두 그대로였다.

옷걸이에 걸려있던 겉옷 하나와 바마만 자리에서 사라졌을 뿐이었다.

“아니. 그럴 필요 없다. 어디로 갔는지 알 것 같으니. 먼저 식사를 하고 있어라.”

나는 따라오려는 에스텔에게 괜찮다는 말을 한 뒤 밖으로 나갔다.

건물과 사람들 사이 좁은 길을 따라 언덕을 내려갔다.

지리는 카인의 기억 속에 모두 입력되어 있고, 녀석이 갔을 만한 장소는 작가로서 가늠할 수 있다.

도착한 곳은 언덕 아래 강둑.

주변엔 버려진 폐자재나 부품이 가득했으며 나는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다리 아래를 순찰했다.

‘이쪽 다리는 부랑자들뿐이군. 분명 근처 어딘가에….’

다리의 그늘이 머리 위에 몇 번인가 졌다 사라지기를 반복했을 때 나는 익숙한 뒷모습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는 다가가 말을 걸었다.

“원하는 것이 강물에 있던가?”

“…….”

녀석은 생활 하수로 썩 깨끗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강물을 응시하고 있었다.

“흘러 떠내려갔지. 젠장, 이젠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아.”

“어딘가에 살아 있을 거다.”

“당연한 소리!”

나는 녀석이 떠내려 보냈다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녀석은 아주 어릴 때 동생과 함께 버려졌다.

뒷골목을 전전하다 클랙필드의 어느 마법사에게 실험체로 팔려갔고, 폭우가 내리는 날 배수관을 통해 탈출했다.

급류에 휩쓸려 여동생의 손을 놓쳐버린 것에 대해, 녀석은 죄책감을 가지고 살아오고 있다.

“네가 정말 내 여동생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 내가 십 수 년 찾아 헤맸어도 단서 하나 찾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적어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보여야 할 거다.”

“그 정도는 해 주도록 하지.”

어린 여자아이, 그것도 수인 혼혈이 슬럼에서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녀석도 마음속으론 알고 있다.

동생은 이미 한참도 전에 죽었으며 자신의 감정은 그저 죄책감으로 인한 미련에 가까운 것이라고.

「내가 살기 위해 일부러 손을 놓았었는지도 모르지.」

일종의 되새김, 혹은 미련.

녀석의 아지트가 이곳과 가까운 43번 구역에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였다.

나는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복잡한 표정을 하고 있는 녀석의 모습이 강물에 일렁였다.

‘나중에 재회했을 때의 얼굴이 볼만하겠군.’

녀석의 동생은 살아 있다.

그녀 역시 내가 설정한 인물로 소설 에피소드 중반부 조력자로서 주인공 일행에 합류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마법사가 되어서.

어린 시절 자신을 학대했던 바로 그 존재와 같이.

또한 후에 바마를 죽여야 할 상황에 놓인 주인공과 반목하게 된다.

물론 지금은 일어나리라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나로 인해 예정된 미래가 바뀌었을 수도 있으니.

다만 확실한 건 내가 그녀의 소재를 알고 있으며, 조금씩 정보를 풀어 녀석이 내 지시에 충실히 따르게 만들 것이란 사실이었다.

그리고 녀석의 이용 가치가 다 할 때쯤 만남을 이루게 해 줄 생각이었다.

“염병. 아무리 노력해도 머릿속이 정리되지 않아. 다른 녀석들을 죽이는 데 나를 써먹겠다고 했지. 지금 달려가 파르테르와 라이카의 목을 따 오면 되나? 응?”

“그럴 필요 없다. 일단 조직으로 돌아가라. 공장에서 있었던 일이 다른 간부들에게 알려지진 않을 거다. 현장에 있던 조직원들은 모두 죽었고, 경찰도 너를 놓친 사실을 여기저기 흘리고 다니진 않을 테니까. 그리고 며칠 내로 로우택틱의 사람이 찾아갈 거다. 요구 조건을 모두 들어주면 된다.”

“내 아지트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지 않나. 어떻게 찾아온다는 거지?”

“내가 이미 언질을 주었다.”

“…미친놈. 대체 언제부터? 다른 간부들의 아지트 위치도 알고 있나?”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구역 번호 뿐 아니라 세부적인 위치와 출입 방법까지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든단 말이지. 네가 정말 복수에 성공할지도 모르겠다고. 다른 두 녀석이 죽는 모습이 상상이 안 가는 데도 말이야. 특히 라이카 그 괴물 새끼는 더더욱.”

“심장에 칼이 꽂히면 모두 죽는다. 숨을 쉬는 생명체인 이상.”

나는 호흡을 고르고 말을 이었다.

“돌아가면 파르테르의 부하들 위치를 조사해라. 한 명도 빠짐없이 전부. 너와 파르테르 모두 40번대 구역을 거점으로 활동하니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다. 후에 내가 먼저 통신을 걸거나 직접 찾아가 보고를 받도록 하지.”

다음 목표대상은 파르테르였다.

녀석은 간부 중 가장 많은 부하를 부리고 있다.

그 숫자 어림잡아 이백여 명.

늘 수십의 호위를 대동하고 아지트 내에도 다수의 부하가 깔려 있어 정면으로 들어가는 건 큰 위험이 따랐다.

게릴라식으로 부하를 하나둘 제거해 전력을 약화시키며 천천히 숨통을 조여 나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한 가지 묻지.”

“말해.”

“내 부하들은 어떻게 되었나?”

“다 죽었다. 배신자의 졸개란 이름으로 모두 숙청당했지. 운 좋게 살아서 달아난 녀석들이 있지만 다섯 손가락도 안 될걸.”

카인의 부하는 총 스물둘.

파르테르와는 정반대로 간부 중 가장 적은 부하를 부리고 있었다.

‘모두 실력자들이었지만 불시의 기습은 피할 도리가 없었겠지.’

사건 당일 모든 인원이 카인의 아지트가 있는 34번 구역, 혹은 회합 장소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었다.

카인이 경찰에 사로잡히는 것과 동시, 혹은 그 이전에 불시의 기습을 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이가 있다면 찾아서 규합해야 했다. 그 존재만으로 적지 않은 전력이 될 터였다.

“적당히 쫓아다가 멈추진 않았을 텐데. 가장 최근에 추적이 이뤄졌던 곳은 어디지?”

“내 부하들이 쫓던 놈은 99번 구역에서 흔적이 끊겼어. 벌써 한 달 전 얘기지. 라이카의 부하들이 연락 두절되었다고 들은 적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그 녀석들이 쫓던 놈도 아마 살아 있지 않을까 싶군.”

막심을 이야기하는 듯했다.

118번 구역에서 내가 직접 눈을 감겨주기까지 했던.

“그 외에 알고 있는 것은 없나?”

“최근에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은 있다. 파르테르가 네 부하 하나를 잡아 투기장에서 노리개로 쓰고 있다고. 온갖 괴물을 상대하게 하며 천천히 말려 죽이고 있다고 하더군.”

파르테르는 30, 40번대 구역 일대에 온갖 유흥과 생산시설 외에도 십수 개의 지하투기장을 운영하고 있다.

엄연한 불법이지만, 해당 구역의 경찰들에게 거액의 뒷돈을 찔러 주어 유착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물론 자신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철저히 대리인을 운영자로 내세워.

나는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악취미는 여전하군.”

“그 녀석만큼 싸움에 미친 놈은 못 봤어. 눈동자가 풀려있지 않은 걸 본 적이 없다고.”

“투기장에 대한 조사도 맡기지. 내 부하가 몇 번 구역의 투기장에 있는지 파악하면 된다.”

40번대 구역을 돌며 파르테르의 부하를 줄여나가는 동시 각 투기장을 수색한다.

다음 행로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필요에 따라선 네 부하도 죽일 수 있지만 웬만하면 그 순서는 가장 마지막이 될 거다.”

“그거참 더럽게 고맙군. 일단 내가 너에게 협력은 하지만 ….”

그때 다리 밑의 부랑자들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다.

순간 바마가 몸을 움찔했다.

그러다 자신의 피부와 얼굴이 가려져 있음을 깨닫고는 긴장을 풀었다.

“거기 지금 누구 허락 맡고 강을 구경하고 있는 거야? 엉?”

남루한 행색에 술 냄새가 풍겨 왔다.

횡설수설했지만 어쨌든 결론은 자신들에게 먹을 것이나 돈을 내놓으라는 내용이었다.

“꺼져. 다 죽여 버리기 전에.”

바마가 사납게 으르렁거렸다.

온몸에 소름이 돋는 스산한 음성이었다.

평소라면 그 기세에 눌려 물러났겠지만, 안타깝게도 부랑자들은 술에 잔뜩 취해 있었다.

자신들의 숫자를 믿었는지 일제히 달려들었다.

콰직!

순간 바마의 모습이 부랑자들 사이에 번쩍였다.

바마의 단검이 부랑자들의 가슴을 꿰뚫으며 뼈를 부러트리는 소리를 냈고, 부랑자들은 순식간에 강물에 빠져갔다.

핏물이 올라온 것도 잠시, 부랑자들이 하류로 떠내려가고 강물은 곧 원래의 혼탁한 검은색을 되찾았다.

“지금도 인간이 증오스럽나?”

“다 마음에 안 들어. 인간이든, 수인이든. 가는 곳마다 손가락질받으며 자랐다면 너도 이렇게 되었을 거다. 내게 할 말이 더 남았나?”

“지시는 앞에 말한 것들이 전부다. 그 밖의 것이라면, 식사를 하고 가지. 프로이드가 저녁을 준비해 두었다.”

녀석은 고개를 젓고는 몸을 돌렸다.

“됐다. 어서 돌아가 쉬고 싶다. 근처에서 부하들을 부르지.”

아직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는지 녀석은 다리를 절뚝거렸다.

녀석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는 강물을 바라보다 다시 프로이드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 * *

저녁 식사를 마치고 프로이드에게 인공 힘줄의 점검을 받았다.

주홍빛 조명이 켜진 방 안, 외눈 안경을 쓴 프로이드가 혈관 사이 드러난 부품을 보며 말했다.

“일단 큰 이상은 없네만 부품의 소모도가 크네. 지난 한 달 반 동안 운동량이 상당했다는 얘기지. 이 정도 속도라면 3년이 아니라 1년 주기로 부품을 갈아야 할 걸세.”

“망가지지 않았다면 그걸로 되었다.”

프로이드가 다시 피부를 덮었고, 나는 절개부에 치유마법을 사용해 빠르게 피부가 아물도록 만들었다.

“출발은 내일이라고 했나?”

검사에 썼던 도구들을 정리하며 프로이드가 물었다.

“빠르면 새벽. 늦어도 정오에는 떠날 생각이다.”

“더 쉬다 가라고 하고 싶지만 바쁜 몸인 걸 아니 그럴 수가 없구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그때 더 오래 머물도록 하지.”

바마와 나눴던 이야기 중 필요한 부분은 에스텔과 공유가 끝났다.

「40번대 구역을 돈다고요. 당분간 조금 바삐 움직여야겠네요.」

그리고 출발 전 이곳에서 만나야 할 이가 있었다.

애초에 그럴 목적으로 클랙필드를 찾은 것은 아니었지만.

“바람을 조금 쐬고 오지.”

나는 외투를 걸치고 밖으로 나갔다.

찌르륵-

여름밤의 바람은 선선했고 주위론 풀벌레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언덕을 따라 깔린 공방엔 점점이 불이 켜져 있었고, 이따금 기계 소리나 사람들의 말소리가 밖으로 번져 나왔다.

달빛이 일렁이는 강 위, 다리를 건너 반대편 거리에 닿았다.

이십 여분 다시 걸음을 옮겨 내가 도착한 곳은 지하로 향하는 어떤 건물의 입구였다.

밭 밑을 비춘 조명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어느 정도 아래로 향했을 때 문이 나타났고, 나는 그 앞에 붙어 있는 센서에 손가락을 가져다 댔다.

「인식이 완료되었습니다.」

위잉-

조명이 쨍했다.

거대한 장들이 도서관의 서가를 연상케 하는 모습으로 정갈히 뻗어 있었다.

실내는 고요했다.

이런 밤중에 이곳을 찾은 이는 나밖에 없는 듯 보였다.

안쪽 깊숙이 들어가, 장 사이의 통로로 방향을 꺾었다.

격자형으로 나뉜 공간 중 하나 앞에 멈춰 서 그 아래 돌출된 버튼을 눌렀다.

위잉-

기계 장치가 움직이는 소리와 함께 투명한 합금으로 된 막이 열리고 안쪽에서 선반 하나가 천천히 밀려 나왔다.

누군가의 이름이 쓰인 위패와 유골함, 그리고 레코드 모양의 작은 장치가 그 위에 놓여 있었다.

[‘카인 리베르’와 동기화가 진행 중입니다.]

[현 동기화율 - 89.2%]

자석에 이끌리듯 손이 뻗어 나갔다.

느린 동작으로 위패를 매만지다 장치의 스위치를 눌렀다.

원반이 돌며 그 위에 작은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이십 대 후반에서 삼십 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인이었다.

그녀는 두 손을 앞쪽에 모은 채 따사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카인은 블루서펜트에 몸을 담그던 날 이곳을 마지막으로 방문했다.’

생의 목표를 이루기 전까진 찾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면서.

아주 어릴 적 카인과 그의 어머니가 살던 마을은 하급 조직 간의 전쟁에 휘말려 전소되었다.

지하실 바닥에 숨어있던 카인은 사위가 저문 뒤 빠져나와 까맣게 타버린 어머니의 시체를 끌어안고 울었다.

어머니의 사진은 단 한 장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층민이 가지기에 사진은 너무도 비싼 물건이었으므로.

후에 카인은 클랙필드의 마법사에게 의뢰해 자신의 기억 속에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마법으로 복원했다.

더 이상 나이 들지 못하는,

영원한 젊은 모습의 어머니를.

“…만나야 한다던 사람 중 한 명인가요? 그분이?”

고개를 돌리자 통로 끝에 서 있는 에스텔이 보였다.

따라오고 있는 건 진즉에 알고 있었다.

굳이 쫓을 이유가 없기에 내버려 두었을 뿐.

내 눈치를 조금 보는 모습으로, 그녀가 말했다.

“미안해요. 처음부터 따라올 생각으로 따라온 건 아닌데…. 대체 어디로 가는 걸까 궁금해져서….”

“괜찮다. 내 안위가 걱정되어 따라온 거라 생각하지.”

그녀가 조심스레 내 옆에 다가섰다.

“누구인지 물어보면 대답해 줄 건가요?”

“내가 세상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었다.”

“아.”

그녀는 복잡하고 미묘한 얼굴을 했다. 입술을 달싹이다 결심한 듯 말을 꺼냈다.

“전 연인을 가져본 적이 없어 당신이 지금 느끼고 있을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어요. 그래도 많이 슬퍼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무언가 오해를 하는 듯했지만, 설명이 길어질 것이 귀찮아 내버려 두었다.

밀려드는 감정을 모두 소화해 내는 데는 몇 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장 사이의 통로를 빠져나가려던 순간, 나는 앞서 걷던 에스텔의 어깨를 붙잡아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

그녀가 의문 어린 얼굴을 했고 나는 내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어 소리를 죽여야 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그리고 작게 속삭였다.

“우리 외에 누군가 이곳에 들어와 있다.”

조금 전의 한 순간을 제외하면 일체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다.

어떤 의도를 가진 누군가 우리를 따라왔다고 보아야 옳았다.

일반 방문객이라면 굳이 자신의 기척을 숨길 필요가 없으니까.

조심스럽게 장 밖으로 고개를 빼어 실내를 살폈다.

장 사이 어딘가에 숨어든 듯 상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마법을 사용해 안력을 강화한 순간 멀리 바닥에 떨어진 한 올의 머리카락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명에 반짝이는 푸른빛의 긴 머리카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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