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63화 (63/227)

#063. 클랙필드 (1)

프로이드는 알아서 자리를 비웠다.

둘만 남은 방 안, 녀석이 체념과 혼란 등 여러 감정이 뒤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나를 이제 어쩔 생각이지?”

“말했던 대로다. 네 죽음은 유예되었다. 남은 두 배신자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조직에 복귀하는 것이 목적인가? 다른 간부들을 모두 죽이고 물갈이를 하겠다?”

끼익.

순간 문이 열렸고 녀석은 흠칫 몸을 떪과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공격 자세를 취했다.

“…뭐해요? 그 주먹으로 레이디를 때리려고요?”

에스텔은 바마를 보고 픽 웃었다.

테이블 위에 커피잔이 놓인 쟁반을 놓은 뒤 문을 닫고 나갔다.

“최근까지도 밤에 잠을 잘 이루지 못했나 보군. 간부란 그런 자리지.”

“…….”

녀석은 침대 주위에 놓여 있던 옷가지를 주워 피부를 가리고 마스크를 얼굴에 걸쳤다.

간부의 적은 외부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후보생들은 늘 간부 자리가 공석이 되어 자신에게도 기회가 찾아오기를 원하며 때로는 암살 따위의 과감한 선택을 하기도 한다.

따라서 신뢰할 수 있는 측근들을 호위로 두지 않는다면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도 없다.

하지만 녀석에게 그런 부하들이 있을 리 없었다.

애초에 인간에 대한 불신이 뿌리 깊은 녀석이니까.

“그래도 이번엔 오랜만에 깊은 잠을 자지 않았나?”

“…….”

녀석은 나를 쏘아보다 다시 자리에 앉았다.

“아직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어. 다시 묻지. 조직 복귀가 목적인가?”

“조직 따위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정말 복수 하나를 위해 이런 짓을 벌였다고?”

“그래.”

녀석이 주먹으로 테이블을 쿵 내리쳤다.

“개소리 하지 마! 내가 아는 너란 녀석은 절대 감정 따위에 휘둘려 움직이지 않아. 철저히 득과 실을 따져 움직이지. 말해! 네가 이 복수를 통해 얻는 건 무엇이지?”

나는 녀석의 성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잔을 들어 커피를 목뒤로 넘겼다.

‘복수를 통해 내가 얻는 것이라.’

현실로의 귀환.

그 밖의 것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현실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다음은…?’

내 글을 빼앗아 자신의 것으로 발표하려 했던 백진우를 찾는다.

그렇다면 현실로 돌아간 뒤 결국 내가 할 일도 복수가 되는가?

내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녀석이 자리에서 번뜩 일어나 손톱을 내리쳐 왔다.

녀석의 손톱은 진짜 수인들에 비하면 강도가 그리 높지 못했다. 경찰과의 전투로 볼품없이 부러져 있었다.

손톱이 내 얼굴에 닿기 직전, 녀석은 가슴을 움켜쥐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큭!”

“나를 해하고 싶나. 몇 번 시험해 봐도 똑같을 거다.”

“…염병. 현장에선 생각할 겨를이 없었는데 마법은 대체 어떻게 배운 거지? 넌 분명 마나를 다루지 못하는 일반인이었는데.”

“네가 궁금해할 바가 아니다. 네가 할 일은 내 말에 철저히 복종하는 것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의 얼굴을 마나를 실은 워커발로 꾹 밟아 내렸다.

창고에서와 상황은 같았다.

단지 이번엔 정신을 더 냉철히 유지하고 있을 뿐.

“아직 길이 덜 들었군. 다시 한번 인지시켜주지. 기억해라. 이게 너와 나의 위치 차이다.”

녀석이 신음을 흘리며 눈을 위로 치켜떴다.

“크윽, 난 널, 배신한 걸 후회하진, 않아. 약간의 미안함은 느낄지는 모르겠지만. 누가 봐도, 네가 차기 보스로 유력한 상황이었으니까.”

“그래. 보스도 나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고 말을 꺼냈을지도 모르지. 너희들이 한 짓거리로 회합 자리가 엉망이 되지 않았었다면 말이야. 너희를 순간이나마 동료라 생각했던 내 잘못이다.”

“동료! 웃기는 소리! 끅!”

워커에 힘을 더 주자 녀석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누가 보스가 되든 각자가 가진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 그 과정에서 충돌은 생기겠지만 최종적으론 가능할 거라고.”

“너무 이상적인 소리를, 끅! 하는데! 보스가 되어 얻은 권력을 나누기라도 할 생각이었나!”

어느 정도는 맞는 말이었다.

대수림의 복원과 혼혈들의 낙원.

카인은 라이카와 바마가 가진 숙원을 존중했고, 보스가 된다면 그들의 꿈을 먼저 이뤄준 뒤 자신의 계획을 실행해 나갈 생각이었다.

“그래. 보스가 되면 간부 때와는 차원이 다른 권력을 얻게 되니까. 혼자 쓰기엔 과하다 싶을 정도의 권력을 말이지.”

조직이 관여하고 있는 사업은 불법무기와 마약의 밀수와 밀매 외에도 구역 농토의 관리나 고급 주점과 카지노의 운영 등 다방면에 걸쳐 있다.

보스가 되면 숨만 쉬어도 어마어마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끅! 물러! 나눈다니, 혼자 먹을 것도 부족한데!”

녀석이 얼굴이 발에 밟힌 자세 그대로 웃음을 터트렸다. 몸의 떨림이 발을 통해 전해져왔다.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사람의 생각은 모두 다를 뿐이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조금 주지. 쉬고 있어라.”

나는 발을 떼고 문으로 향했다. 뒤를 돌아보자, 엎어진 자세 그대로 몸을 들썩이고 있는 녀석과 한 모금도 손대지 않은 녀석의 잔이 보였다.

끼익.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앞에서 어정쩡한 자세를 하고 있는 프로이드와 마주쳤다.

“미, 미안하네. 내가 들으려고 들은 게 아니고….”

나는 문을 마저 닫고 말했다.

“괜찮다. 어차피 내 밑에서 일을 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사실이니까. 내가 범죄자라 두렵거나 꺼려지나?”

“아, 아닐세. 우리 부녀의 생명의 은인인데 그런 게 있겠나.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큰 조직의 이름이 나와서 조금 놀랐을 뿐이네. 블루서펜트라면 나 같은 무지렁이도 아는 조직이니 말이야.”

“그렇다면 다행이군.”

할 말이 남은 듯 우물쭈물하는 프로이드에게 내가 말했다.

“할 말이 있다면 편히 해도 좋다.”

“아, 그. 레니에게는 자네의 정체에 대해서 당분간 비밀로 해 줄 수 있겠나? 눈치가 빠른 아이라 어느 정도 감은 잡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다른 구역에서 범죄자들에게 납치를 당했을 때의 기억이 남아있기도 하고…. 아, 아! 주제넘은 부탁이라면 흘려들어도 좋네!”

“그렇게 하겠다.”

대수롭지 않은 부탁일뿐더러 하나뿐인 딸을 가진 아버지로서의 그의 심정은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너무 쉽게 대답하자 프로이드는 잠시 멍한 얼굴을 했다가 반색하며 말했다.

“고, 고맙네! 나는 가서 마저 저녁을 준비할 테니 이따가 부르면 오게나.”

프로이드는 한층 밝아진 얼굴이 되어 부엌 쪽으로 사라졌다.

나는 잠시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 집 밖으로 나갔다.

하늘엔 노을이 지고 있었다.

미지근한 바람이 뺨을 스쳤다.

프로이드의 집은 언덕 꼭대기에 있었다.

아래로는 온갖 형태로 증축된 주택과 상업건물들이 다닥다닥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건물과 건물 사이 이어진 배관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공구를 든 주민들이 공중다리를 건너다녔다.

언덕이 끝나는 곳, 강과 다리가 나타났고 반대편엔 마찬가지로 평야에 가까운 완만한 언덕을 따라 건물들이 자라 있었다.

물끄러미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내 옆으로 에스텔이 다가와 시선을 같이 했다.

“처음 왔을 땐 뭐 이런 도시가 다 있나 했었거든요. 사람들은 이상하고, 어디를 가든 온통 기계가 딸깍거리는 소리뿐이고.”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했었나.”

“두 번? 세 번? 교단에서의 임무 때문에 전에 와본 적 있어요. 한참 윗사람들 말 잘 듣고 다닐 때죠.”

그녀는 샐쭉한 표정을 한 번 짓고는 손가락으로 언덕 아래 어딘가를 가리켰다.

“지금은 대륙 전체를 통틀어 이만큼 개성 넘치는 곳이 있을까 싶네요. 저런 걸 다른 곳 어디에 가서 볼 수 있겠어요?”

그녀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엔 프로펠러가 달린 작은 기계장치가 사람들 사이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그 용도와 미관성은 둘째 치고라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물건임은 분명했다.

“그런 얘기도 있더라고요. 저런 물건들이 적극 지원을 받아 상용화되지 못하는 건 황실이 마법에 우호적이기 때문이라고.”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말에 동의를 표했다.

이곳의 기계공들이 순전히 자신의 기술만으로 발명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다.

제작 중 어느 단계에건 마법의 도움을 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때 마법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주’가 아닌 ‘보조,’ 설계 중요도의 절대적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기계공학.

마법이 ‘보조’가 아닌 ‘주’가 되는 수도의 과학단체 라티움과는 정반대의 분위기라고 할 수 있었다.

하물며 이곳의 마법사들은 마법사보단 기술자에 가까운 취급을 받으니.

“참, 바마는 어떻던가요?”

“몸은 어느 정도 회복되었고, 방에 혼자 두고 나왔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을 조금 달라고 하더군.”

“어차피 맹약을 맺어서 선택을 무를 수도 없을 텐데, 무슨 생각씩이나.”

그녀가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계속해 말했다.

“사실 당신이 바마를 끌어들이겠다는 말을 했을 때 조금 놀라긴 했어요. 당신을 배신했던 사람이잖아요. 만나자마자 볼 것이 없이 죽일 줄 알았거든요.”

“사사로운 감정은 일을 진행하는 데 방해가 될 뿐이다. 녀석을 살려두고 이용하는 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더 이득이다.”

카인의 기억에서 발산되는 감정을 억누르고 이성에 따른 판단을 내린 결과였다.

구태여 녀석을 프로이드에게 맡겨 전통적 방식의 치료를 받게 한 것도 앞으로 여러 상황에 써먹을 녀석의 몸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치유마법은 회복 속도는 빠르긴 하나 세포의 재생을 가속해 장기적으론 신체에 무리를 주고 마니까.

“가끔 당신을 보면 살아있는 얼음 조각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조각 같이 잘생겼다거나, 그런 말은 둘째 치고 워낙 감정을 드러내는 법이 없어서. 사실 마법으로 움직이는 기계라거나 그런 건 아니죠?”

그녀의 내 손바닥을 끌어 자신의 손등 위에 얹고는 짐짓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느껴지는 체온을 봐서는 분명 사람이 맞기는 한데….”

그리고는 내 손바닥을 뒤집어 조물조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마법을 이용해 손의 온도를 높이자 그녀가 화들짝 놀라며 손을 뗐다.

“아, 깜짝이야. 뭐에요?”

“내 손은 점토가 아니다.”

“…….”

그녀의 시선은 다시 나와 같이 언덕 아래를 향했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그녀가 말했다.

“뭐 하나면 물어봐도 돼요?”

“쓸데없는 질문이 아니라면.”

“복수를 끝내면 그 뒤론 뭘 할 생각인가요? 다시 그쪽 세계로 돌아갈 건가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질문이었다.

복수를 이루고 원래의 세계로 돌아간다.

오직 그것만을 목표로 달려오고 있었기에.

‘쉽게 판단할 수는 없는 문제군.’

내가 원래 세계로 돌아간 후로도 이 세계는 그 형태를 유지하는가?

카인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되는가. 빈껍데기에 다시 영혼이 돌아오는가?

내가 구상해 둔 시점 그 이후 이 세계의 미래는?

“…잘 모르겠군.”

“그럼 나랑 여행 다니는 건 어때요? 지금처럼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게 아니라 천천히 관광 목적으로요. 뭐, 뭐에요? 사람을 갑자기 그렇게 쳐다보고.”

만약 이 세계가 나로서 존재한다면, 그래서 나의 부재와 함께 소멸해버린다면.

나는 떠날 수 있을 것인가.

깊은 애정을 가지고 주조한 인물들과 이제는 익어 버린 이 풍경과 대기를 뒤에 두고서.

‘감정이…. 동기화가 진행되고 있는 탓이겠지….’

나는 천천히 한쪽 손을 뻗어, 아직 열기가 남아 있는 손바닥으로 그녀의 뺨을 어루만지다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주었다.

순간 움찔했던 그녀는 작은 동물처럼 내 손길을 받아들이고는 의아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 따뜻해서 기분 좋긴 한데…. 아까 내가 기계 같다고 했던 말 때문에 그래요?”

“생각해 보지.”

“에? 뭐라고요?”

“조금 전 네가 했던 말, 생각해 보겠다.”

나는 손길을 거두고 등을 돌려 집으로 향했다.

멍하니 서 있던 그녀가 뒤늦게 말뜻을 이해하고는 뒤따라오며 말했다.

“진짜죠? 나중에 무르거나 그런 거 없어요?”

집안에는 저녁 식사가 차려져 프로이드와 레니가 기다리고 있었다.

스튜와 빵, 간단한 고기 요리와 와인. 소박한 식사였다.

“아저씨! 이건 제가 직접 만들었어요. 드셔 보세요!”

내가 고기 한 점을 먹고 고개를 끄덕이자 레니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레니가 걸린 병은 선천성 진폐증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폐가 말라붙어 기능이 멈춰 죽게 되는 질병.

내가 준 돈으로 수도 병원에 치료제를 신청해 놓았으며 앞선 대기인원이 빠지고 약 3개월 정도 뒤에 치료제를 수령할 수 있다고 했다.

사건 당시의 충격이 다 가시지 않아 외출을 하는 데 아직 망설임을 가지고 있으며 대신 집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있다고.

“바마를 부르지. 꽤 오래 의식을 잃어서 녀석도 배가 고플 테니.”

“내가 다녀올게요.”

에스텔이 사라지고 레니가 물었다.

“그 오빠는 괜찮아요? 많이 다친 것 같아 보였었는데.”

“목숨에 지장은 없다. 프로이드의 솜씨가 워낙 뛰어나니 후유증 같은 것도 걱정할 필요가 없지.”

“큼, 뭐 이 정도를 가지고.”

그때 이쪽을 향해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 왔고, 곧 에스텔이 나타나 외쳤다.

“사라졌어요! 그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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