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2. 몰이 (3)
“카인? 카인이라고…? 말도 안 돼! 너는 분명…!”
“
그래. 분명 너희들의 함정에 빠져 경찰에 붙잡혀 들어갔었지. 팔다리의 힘줄이 모두 끊긴 채로 말이야.”
혼란과 당황, 약간의 분노와 두려움까지.
녀석의 얼굴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떠올랐다.
“웃기지 마. 어디서 굴러먹던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마법 따위로 개수작을 부려!”
“마법으로 모조한 얼굴이라 생각하나? 섭섭하군. 우린 그래도 꽤 오랜 시간 서로를 알아 왔는데 말이야.”
내가 발을 내디딜 때마다 녀석이 한 걸음씩 뒤로 물러났다.
이내 벽에 막혀 더 이상 물러날 수 없게 되었다.
“묻지. 왜 나를 배신했지?”
“씹어 죽일 새끼가 어쭙잖게 흉내를 내!”
녀석이 빠른 동작으로 단검을 휘둘러왔다.
나는 곧바로 발밑의 이동마법을 발동해 녀석의 등 뒤로 이동했다.
챙!
녀석이 등을 돌려 대응하며 검과 검이 맞부딪혔다.
그 충격에 서로가 조금씩 뒤로 밀려났다.
챙!
창고 안에 각인을 통해 깔아 둔 이동마법은 수십 곳이 넘었다.
나는 곧장 다시 발밑의 마법을 발동해 녀석의 코앞으로 이동한 뒤 공격을 퍼부었다.
챙! 챙!
“다시 한번 묻지. 바마, 왜 나를 배신했나?”
피가 뜨겁게 끓어 오르고 머리는 팽팽히 돌아갔다.
한동안 울리지 않던 메시지가 귓가에 울렸다.
[‘카인 리베르’와 동기화가 진행 중입니다.]
[현 동기화율 - 88.8%]
“이 씨발…!”
“대답해라. 왜 나를 배신했지!”
챙! 챙!
공방은 더욱 격렬해져 갔다.
시선을 마주친 순간, 길게 찢어져 있던 녀석의 동공이 빠르게 확대되었다.
한 줄기 소름이 척추를 내달리고 온몸의 근육이 돌처럼 딱딱하게 굳는 감각을 느꼈다.
녀석의 거대한 눈동자가 실내를 가득 메우고, 그 앞에 나는 한없이 작아져 움츠러든 기분이었다.
허나, 정신을 집중하자 그 감각은 일시에 사라졌다. 마치 몸을 덮었던 얼음이 일시에 깨져버린 것처럼.
“사안(蛇眼)인가. 언젠가 직접 당하는 날이 올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지금이 될 줄은 몰랐군.”
“어떻게…!”
내가 계속해 몸을 움직이자 녀석은 적잖이 당황한 모습이었다.
‘불굴의 의지’ 특성 덕에 모든 종류의 정신 간섭에 면역이 있음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말해봤자 이해하지 못할 것이고.
나는 계속해 녀석을 몰아붙였다.
본래 내 무력으론 바마를 일대일로 상대할 수 없다.
녀석이 현재 빈사 상태이고, 또 설치해 둔 마법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챙!
녀석의 단검이 튕겨 날아갔다.
나는 몸을 회전해 팔꿈치로 녀석의 명치를 가격했고 녀석은 멀리 밀려 나가며 등을 보인 채 바닥에 쓰러졌다.
“하아. 하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녀석에게 다가갔다.
구둣발로 머리를 짓이기자 녀석이 부들부들 몸을 떨었다.
“이 창고는 비교적 최근에 지어져 바닥이 대리석으로 되어 있지. 어때, 옛날 실험실에 있을 때 생각이 나지 않나? 그곳도 바닥이 이런 식으로 되어 있다고 했었지.”
녀석은 대답이 없었다.
고통스러운 신음만을 흘리며 몸을 떨어댈 뿐이었다.
나는 발에 더욱 힘을 주며 외쳤다.
“대답해! 잡종으로 잡혀가 온갖 실험을 당하던 그때가 기억나지 않느냐는 말이다! 내가 준비한 선물이 마음에 들지 않나!”
녀석의 움직임이 멎었다.
이내 큭큭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다시 떨려오기 시작했다.
“…그래. 이제 알겠어. 사람을 극한으로 몰아붙여 존재 자체를 피폐하게 만드는 이 방식. 네가 애용하던 방식이었지, 카인.”
철컥.
나는 리볼버를 꺼내 녀석의 머리를 겨누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다. 왜 나를 배신했는지 말해라.”
“…그냥 나는 무서웠다. 너라는 존재가 말이야.”
녀석이 다시 한번 웃음을 흘렸다.
“네 행동은 예측할 수가 없었지. 눈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면 마음 깊은 곳 밑바닥까지 읽혀 버리는 기분이었고. 소름이 돋았다고. 봐! 지금도 감옥에 있어야 할 놈이 내 눈앞에 버젓이 나타났잖아! 그것도 마법을 쓰면서!”
“겨우 그딴 이유 때문이었나.”
“그딴 이유라니. 우리는 서로 같은 보스 자리를 노리는 경쟁자… 끄윽!”
카인은 바마를 동료라 생각했다.
떳떳지 못한 세계에서 만났지만, 그가 가진 가치관과 인생의 목표는 존중할 만하다고.
자신처럼 불우한 유년을 보냈기에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다.
‘분명 서로가 일종의 정신적 안식처로 기능했었지만.’
지난 감정은 현재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짙은 분노로 가슴이 끓어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큭, 크큭, 어서 죽여. 그러려고 밖에 나온 것 아닌가?”
나는 감정을 내리누르며 말했다.
“아니. 난 너를 지금 죽이지 않는다. 네가 한 일을 생각하면 방아쇠를 당기는 게 맞지만, 당장은 그러지 않겠다.”
외부에서 방호를 두드리는 소리는 격해져 갔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
“바마. 언젠가 네가 했던 말을 기억하나? 잃어버린 여동생을 찾고, 너와 같은 혼혈종이 차별받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구역을 만들고 싶다고 했지.”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갑자기 추억팔이를 할 생각인가?”
“그리고 난 네게 보스 자리에 올라 대륙의 모든 범죄 조직을 쓸어 버린 후 끝에는 블루서펜트마저 붕괴시키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말도 안 되는 헛소리지. 설마 아직도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하고 있나? 수작 부리지 말고 어서 죽여!”
“…….”
내게는 그 말이 ‘살려달라’는 외침으로 들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바마가 누구보다도 생의 의지가 투철한 인물임을 알고 있으니까.
“기회를 주지. 내게 복종을 맹세해라. 라이카와 파르테르를 죽이는 데 힘을 보태라. 그리고 마지막엔 죽어라.”
“뭐?”
“네 죽음을 유예해 주겠다는 말이다.”
녀석이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미쳤군. 감옥에 있다 돌아오더니 정신이 완전히 돌아버렸나?”
“이건 제안이 아니라 명령이다. 어차피 내 말에 따르지 않으면 너는 이 자리에서 내 손에 죽는다.”
“죽여! 죽이라고! 너에게 놀아날 바엔 지금 죽는 게 나으니까!”
죽이라고.
거짓이다.
녀석은 삶을 원하고 있다.
녀석의 눈빛과 악문 이, 파르르 떨리는 몸이 진실을 고하고 있다.
“네 숙원 중 한 가지는 확실히 이루어 주지. 네 여동생을 찾아 주겠다. 찾아서 남은 인생을 누구 하나 부럽지 않을 삶을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
녀석의 말이 순간 뚝 끊겼다.
정적 뒤 녀석의 입이 열렸다.
“거짓말. 네가 대체 무슨 수로. 또 약속을 지킨다고는 어떻게 장담하지?”
“나는 내가 뱉은 말은 모두 현실로 이루어 왔다. 네 앞에서 거짓을 말한 적도 없지. 다른 누구보다 네가 가장 잘 알 텐데.”
“…….”
창고 안에 침묵이 감돌았다.
서로의 숨소리, 외부의 병장기 소리만이 들려왔다.
“시간이 많지 않다. 선택해라. 내게 복종하고 죽음을 유예할지. 혹은 자존심을 지키고 이 자리에서 죽을지.”
한참이 지난 후 녀석이 씹어 뱉듯 말했다.
“…개자식. 처음부터 이럴 작정이었군.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우웅.
녀석의 말과 동시에 내 손바닥 위에서 검붉은 빛의 마나가 흘러나와 허공에 마법진을 그렸다.
“너는 지금부터 내 명령에 복종하며 내 안위에 해가 될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한다. 계약 위반의 대가는 죽음. 동의하나?”
“어디 네 마음대로 해 봐. 말해 두는데 약속을 안 지키면 가장 먼저 너를 찢어 죽이겠어….”
“계약 위반이라 그렇게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군. 어쨌든 여동생은 확실히 찾아줄 테니 안심해라.”
마법진은 반으로 갈라져 서로의 가슴에 스몄다.
나는 곧장 바닥에 깔아둔 이동마법을 발동했다.
방호가 깨지고 문이 열리며 경찰이 들이닥치는 것과 동시에, 바마와 나는 사라졌다.
풍경이 몇 번 바뀌고 낯선 건물 내부에 도착했다.
공장 단지 외곽에 있는 폐건물이었다.
원래라면 이대로 밖으로 나가 차를 끌고 대기 중인 에스텔과 합류하면 되었지만 지금 먼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급수탑 위에서 보았을 때 분명 외곽에도 경찰이 배치되어 있었지.’
공장 내부에 투입되었던 인원처럼 정예 병력이 아닌, 단순히 퇴로를 차단하기 위한 인원들로 보였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었다.
아공간에서 경찰 제복을 꺼내 옷을 갈아입었다.
뒷돈을 주고 구한 물건으로 사이즈별로 여럿 구비해 놓은 상태였다.
하나를 더 꺼내 바마에게도 던졌다.
“입어라.”
“무슨 의미지?”
“바깥에 경찰이 깔려 있다. 그리고 넌 피부가 드러나는 걸 싫어하지 않나?”
“…….”
녀석은 잠자코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나의 부축을 받아 함께 문을 열고 나갔다.
끼익-
밖에는 경찰차들이 경광등을 번쩍이며 서 있었다.
곳곳에 경찰들이 돌아다녔지만, 우리가 나오는 순간 이쪽을 보고 있던 이는 없었다.
모자를 눌러쓰고, 고개를 숙인 채 경찰들 사이를 지나 공장 단지의 출구로 향했다.
더러 쳐다보는 이는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각자의 할 일로 바쁜 데다 긴급상황이어서 제지하는 이는 없었다.
출구 바로 앞에 도착했을 때, 뒤쪽에서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오셨습니까! 자비르 경위님!”
뒤를 돌아보자 경례 자세를 취한 경찰들 사이를 지나 공장 쪽으로 향하고 있는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제르비아.
다른 경찰과 같은 제복이 아닌, 암행을 위한 평상복 차림인지라 눈에 더 띄었다.
“안쪽에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바마가 창고에 들어가 상황은 거의 종료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바마는 되었다. 혹 현장에서 수상한 마법사를 보지는 못했나?”
“예? 마법사 말입니까?”
“…아니. 되었다.”
아마 나를 추적하는 중 높은 확률로 흔적을 놓쳤을 것이다.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으로 블루서펜트가 나타났다는 현장을 찾은 것이고.
그녀에게 바마의 검거는 최우선목적이 아닐 것이다. 카인에 대한 그녀의 집착은 상상 이상이니까.
다시 몸을 돌려 출구를 빠져나왔다. 오래지 않아 경찰차 한 대가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위잉.
짙게 선팅된 창문이 내려가고 에스텔이 나타났다.
“서까지 함께 가셔야 하겠는데요?”
“…뒷자리를 열지.”
버튼이 눌리는 소리와 함께 뒤쪽 문이 열렸다.
어느새 기절한 바마를 던져 넣고 나는 에스텔의 옆자리에 탑승했다.
“저자가 바마인가요? 피가 섞였다고 들었는데 생각만큼 징그럽진 않네요?”
“인간과 수인의 혼혈을 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지 않나?”
“그렇긴 한데 보통은 인간보단 수인에 가까운 모습이었어요. 어쨌든 이제 어디로 가면 되죠?”
“55번 구역, 클랙필드로 가지. 응급조치는 해 두었으니 그때까지 목숨엔 지장이 없을 거다.”
에스텔이 고개를 끄덕이고 액셀을 밟았다.
중간에 다른 곳에 주차되어 있던 스포츠카로 차량을 갈아탔고, 우리는 클랙필드를 향해 나아갔다.
* * *
바마는 눈을 떴다.
가장 먼저 낯선 천장이 보였고, 몸 곳곳에선 욱신거림이 올라왔다.
‘병원? 아니 그것보다는….’
주위 풍경은 일반 가정집에 가까웠다.
하지만 왜인지, 탁상 위에는 메스나 가위 따위의 수술 도구들이 살벌하게 늘어져 있었다.
‘서, 설마.’
유년 시절의 트라우마가 되살아나며 바마는 공포에 휩싸였다.
사각거리는 가위 소리.
피부 위로 부어지던 약품들.
발보다는 머리에 닿을 때가 많던 대리석 바닥.
윽박지르며 채찍질을 하던 이름 모를 귀족.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사십 대 후반 정도의 남자가 들어왔다.
바마는 침대에서 뛰쳐 일어나 메스를 집어 사내를 향해 겨눴다.
“다가오지 마! 내 몸에 무슨 짓을 했지!”
사내는 당황한 얼굴로 양 손바닥을 어깨 위로 들어 올려 보여 공격 의사가 없음을 표시했다.
“어…. 상태를 보니 몸은 완전히 회복된 것 같네. 일단 진정하고 메스 좀 내려놓고 얘기하지.”
사내의 말은 바마의 귀에 들리지 않았다.
창문? 문? 빠져나간다면 어느 쪽으로? 밖에도 연결된 공간이 있나?
공황상태에 빠져 자신이 무사히 이 장소를 벗어날 수 있을 방법만을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때 사내 뒤로 또 다른 이가 나타났다.
흑발에 청안.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아, 카인. 자네가 데려온 저 친구가 조금 흥분을 해서 말이야. 진정 좀 시켜보겠나?”
“…….”
남자의 푸른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바마의 머릿속에 지난 모든 일에 대한 기억이 휘몰아쳤다.
손에 힘이 풀리며 메스는 바닥으로 떨어졌다.
“…꿈이 아니었군.”
“꿈이라 치기엔 너무 생생하지 않았나? 앉아라. 못다 한 얘기를 하지.”
행동에 뜸을 들인 순간 바마는 심장 한쪽에 통증을 느꼈다.
자리에 앉은 순간 통증은 사라졌다.
헛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알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의 목숨은 자신이 과거 배신했던 이 남자의 손에 달려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