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1. 몰이 (2)
“처음 뵙겠습니다. 바마 님. 로우택틱의 기획실장 에반이라고 합니다.”
“…….”
선글라스 너머, 바마의 시선이 나를 위아래로 훑는 것이 느껴졌다.
녀석은 내 악수를 받지 않았고, 나는 내밀었던 손을 거둔 뒤 의자를 빼어 테이블 앞에 앉았다.
뒤따라온 호위들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내 뒤에 늘어섰다.
끼이― 텅!
문이 닫히고 정적이 흘렀다.
바마가 옆에 서있는 자신의 부하에게 귓속말을 했다.
“…전하겠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왜 원래 오던 이들이 오지 않은 거지?”
“소식은 들으셨겠지만 저희 회사에 최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피에타 전무이사님이 회장에 오르고 대대적인 구조 개편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다들 정신이 없어 제가 대신 나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준비했던 명함을 테이블 위로 밀었다. 피에타가 위조해 준 것이었다.
바마가 명함을 받아 살피는 동안 나는 곁눈질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바마의 등 뒤로 난 커다란 창.
햇살이 강렬히 비쳐들어 녀석의 모습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확실히 테이블은 예상했던 위치에 놓였다.’
공장 바닥 곳곳에 각인해 두었던 마법의 위치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녀석이 대동한 부하들은 모두 간부 후보생급 이상으로 상당한 무력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준비한 마법들을 이용한다면 상대하지 못할 것은 없었다.
거기에 시간을 끌어 줄 용병들도 이 자리에 있으니.
“바마 님은 바로 계약을 검토하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시죠. 서로 이 자리에 오래 머물러 좋을 것은 없으니까 말입니다.”
계약은 서류 없이 구두로 진행되었으며 바마의 말은 모두 부하를 통해 전달되었다.
“전하겠습니다. 70번대와 80번대 구역 일대는 납품가와 공급량을 기존과 같이 유지하고 90번대는 납품가는 유지하지만 공급량을 이십 퍼센트 줄여 받겠어. 인구가 줄어 물량이 소화가 다 안 되거든.”
“알겠습니다.”
“20번대 구역으로 밀반입되는 고가의 총기들은 공급량을 늘려 받지. 소문으론 경찰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어 개인 병력을 꾸리거나 호신 장비를 갖추는 게 높으신 분들 사이에서도 유행인 모양이야.”
“기존에 거래되던 모델들 모두 추가 공급이 가능합니다.”
바마가 각 항목에 대한 변경 사항을 일목요연하게 준비해 온 덕에 계약은 순식간에 끝나 버렸다.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2시 8분.
자리에 앉고 채 십 분도 지나지 않은 시각이었다.
아직 바깥에선 경찰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돌입할 타이밍을 재고 있는 듯했다.
“그럼 변경 사항은 모두 다음 달부터 적용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 만남은 이것으로 끝내는 것으로 하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던 바마가 멈칫했고, 나는 침묵으로 시간을 끌었다.
“어서 대답….”
“바마 님께 드리고 싶은 부탁이 있습니다.”
“이 건방진…! 어디서 감히!”
칼을 뽑아 나서려는 부하를 바마가 손을 뻗어 제지했다.
다음 이야기를 해 보라는 듯, 녀석의 시선이 내게 닿았다.
“개인적인 부탁입니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니 충분히 들어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나는 한 차례 숨을 들이쉰 뒤 말했다.
“마스크에 가려진 얼굴을 볼 수 있겠습니까? 성별도 불분명하고 나이도, 목소리도 알려진 게 없으니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더군요. 무엇보다 중요한 계약을 하는 자리에 그런 꼴로 나오는 건 예의에서 벗어나는 짓이라 생각하지 않습니까?”
순식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지, 지금 뭐라고….”
부하들조차 얼굴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질까 두려워하는 얼굴이었다.
저벅. 저벅.
모두가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있을 때 바마가 테이블을 돌아 내 앞에 다가섰다.
마스크 너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당돌한 놈이야. 전임자에게 주의사항 같은 걸 듣지 못했나?”
중저음의 탁성.
날붙이로 쇠를 긁어내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불쾌한 방식으로 신경을 자극하는 목소리였다.
의자에 앉은 자세를 바로잡고, 여차하면 녀석이 선 자리의 마법을 발동시킬 준비를 했다.
“주의 사항은 들었습니다만, 제 호기심이 남들의 배는 되어서 말입니다. 목소리로 보니 일단 성별은 남자인 것 같군요.”
녀석이 선글라스를 벗었다.
흰자위는 인간의 것이나 연녹색을 띤 눈동자의 동공은 파충류의 그것처럼 길고 가늘었다.
나는 공장 지붕과 벽 너머에서 느껴지는 기척을 감지했다.
“호기심은 고양이를 죽인다. 그 정도 격언은 들어 봤겠지.”
“과연. 흥미가 더 이는군요. 마스크도 벗어 보시겠습니까? 남에게 보이지 못할 흉측한 무언가가 있지 않은 이상은 가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가령 보는 것만으로 소름 끼치는 비늘이라던가.”
붕대에 감긴 녀석의 손이 높이 들어 올려졌다.
“다음 후임자는 조금 더 예의 바른 자로 보내라고 전하지.”
그 순간 공장 지붕과 벽, 사방의 창문이 깨지며 경찰이 돌입해 들어왔다.
─너희들은 포위되었다. 순순히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라.
총과 헬멧, 방호 슈트로 무장한 병력이 순식간에 사방을 에워쌌다.
“…네 놈 짓인가? 분명 경계를 세워 두었는데 나라의 개들에게 당했나 보군.”
나를 어깨를 으쓱해 보였고, 순간 녀석의 손이 내리쳤다. 즉시 녀석 발밑의 마법을 발동시켰다.
우드득!
바닥이 벽 형태를 이루어 솟아올랐고 녀석이 몸을 뒤로 날렸다.
벽에 스친 손의 붕대가 풀리며 녀석의 얇고 날카로운 손톱과 비늘 돋은 피부가 드러났다.
적어도 5미터 정도 높이의 벽이 나를 보호하고 있었지만 방심할 순 없었다.
어느새 벽 위로 도약한 녀석이 나를 향해 뛰어내리고 있었다.
까드득!
나는 몸을 굴리며 공격을 피했다.
조금 전까지 내가 있던 자리는 세 줄기 패인 자국이 남아 있었다.
“다 죽여. 배신자에겐 죽음뿐이다.”
녀석의 부하들이 움직였다.
호위로 데려왔던 용병들은 순식간에 목이 잘려나가거나 검에 심장이 꿰뚫려 쓰러졌다.
그 후 부하들은 바닥을 박차고 내게 뛰어들었다.
총 다섯 방향으로 공격이 날아들고 있었다.
─모두 무기를 버리고 동작을 멈춰라! 명령에 불응 시 발포하겠다!
경찰의 포위망 역시 점차 좁혀 오고 있었다.
‘시간이 많지는 않다. 여차하면 나까지 난전에 말려들 테니.’
나는 바닥에 새긴 마법을 일제히 발동시켰다.
지지직!
칼끝이 내게 닿기 직전의 순간, 거대한 바람기둥 주위로 솟아올랐다.
“마법사를 상대할 땐.”
바람이 걷히고, 자세가 무너져 날아가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이 드러났다.
마법의 파괴성이 약해 전혀 피해를 입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상관없었다.
“함부로 바닥을 박차고 뛰어오르는 게 아니다.”
애초에 목적은 사격을 위한 틈을 만들기 위함이었으니.
철컥.
리볼버를 꺼내 곧바로 자세를 취했다.
아주 짧은 순간, 부하들의 얼굴에 안도의 빛이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총 따위론 자신들의 보호막을 뚫지 못한다 생각하고 있으리라.
끼릭.
방아쇠가 당겨지며 실린더가 돌았다.
탕!
다섯 발의 탄환이 순식간에 각 방향으로 순식간에 쏘아졌다.
탄환은 마나로 이루어진 보호막을 우그러트리며 이마와 가슴을 꿰뚫었다.
바람이 완전히 사라지고 다섯 구의 시체가 실 끊어진 인형처럼 바닥에 떨어졌다.
그 광경을 본 바마의 동공이 더 없이 커졌다.
“교육을 더 시켜야 할 것 같군. 상대가 누구든 방심 따윈 하는 게 아니라고 말이야.”
“실력은 좀 있는 것 같은데. 경찰에 나를 넘기는 대가로 뭘 받았지? 로우택틱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나?”
녀석이 이를 갈았다.
태연한 척하지만 당황과 분노를 느끼고 있는 기색이 역력했다.
다음 공격이 쇄도했다.
아슬아슬하게 피해내며 이동 마법진이 새겨진 장소에 착지했다.
“그럼 어디 내가 초대한 손님과 잘 놀아보라고.”
“내 질문에 대답해!”
녀석의 손톱이 내 얼굴에 닿기 직전 나는 마법을 발동했다.
발밑을 포함해, 여러 장소의 새겨두었던 마법진이 연달아 작동하며 눈앞의 풍경이 수차례 순식간에 바뀌어 갔다.
마지막에 도착한 곳은 급수탑 위였다.
“…….”
지상을 내려다보았다.
경찰은 공장 지붕과 바깥에도 진을 치고 있었다.
장비 위에 새겨진 맹금류 표식이 그들이 치안국 소속임을 알리고 있었다.
‘이거 수도의 특무부대까지 투입될 줄은 몰랐는데. 경찰에서도 준비를 꽤 많이 했군.’
아무 기척 없이 잠복하고, 또 공장에 돌입했던 그 실력이 이제야 조금 납득이 되었다.
‘바마. 과연 네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공장 안에서는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부서지고, 깨지고, 무너지고, 충돌하고.
오래지 않아 벽 한쪽이 무너지며 바마가 뛰쳐나왔다.
모자와 선글라스가 벗겨져 연녹색 머리와 눈동자가 드러나고, 옷 또한 곳곳이 찢겨 피부가 보였다.
─인간 새끼들! 너희들은 늘 그랬어!
녀석이 악에 찬 외침을 질렀다.
앞쪽을 막아선 경찰의 방패를 밟고 뛰어올라 머리 위에 올랐다.
그리고 온몸을 이용해 헬멧을 통째로 우그러트리려 했다.
나는 스나이퍼 라이플을 꺼내 신속히 조립을 시작했다.
─끄, 끄윽! 사, 살려줘!
죽음의 공포에 휩싸인 경찰이 몸부림을 쳤고 그럴수록 녀석은 더 세게 헬멧을 조였다.
검과 봉을 든 다른 경찰들이 주변을 둘러쌌지만, 동료가 다칠까 섣불리 공격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철컥.
조립을 마치고 바닥에 몸을 밀착시켰다.
조준경에 눈을 가져다 댄 뒤 그대로 방아쇠를 당겼다.
탕!
탄환이 대기를 가르며 날았고.
순간 조준경 속 녀석의 눈동자가 이쪽을 향했다.
팟.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졌고 탄환은 허공을 갈라 그 너머의 바닥에 박혔다.
조준경에서 눈을 떼자 어느새 다른 곳으로 이동해 경찰과 전투 중인 녀석이 보였다.
명중시키진 못했지만, 이걸로 충분했다. 단순히 녀석의 움직임을 제한하는 것이 애초의 목적이었으니까.
몇 남지 않은 바마의 부하들이 무너진 벽으로 뒤따라 나왔지만, 이어진 내 사격에 모두 쓰러졌다.
남은 것은 오롯이 바마 혼자였다.
일 대 백의 싸움은 계속해 이어졌다.
라이카의 전투가 ‘힘’이라면 녀석의 전투는 ‘기술’에 가까웠다.
녀석은 빠른 속도를 이용해 빗발치는 총알을 모두 피해 냈고, 여의치 않을 때는 그대로 맞아 가며 경찰 사이를 날뛰었다.
─모, 몸이 움직이지 않아!
녀석과 눈이 마주친 경찰은 하나같이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마치 몸 전체의 근육이 굳어버린 것처럼.
두려움 가득한 눈빛.
포식자 앞에 선 피식자.
날카로운 손톱이 번뜩일 때마다 보호구 사이 드러난 경찰들의 목에서 피가 뿜어져 나왔다.
마나가 둘러진 검과 봉이 번번이 허공을 갈랐으며, 주위는 순식간에 시체로 즐비해졌다.
하지만 내가 개입하기 시작하며 전투의 양상은 조금씩 달라졌다.
나는 포위망이 뚫리거나 사상자가 발생하기 직전의 순간마다 방아쇠를 당겼고 그때마다 녀석의 움직임엔 제동이 걸렸다.
‘장기전으로 가면 불리하다는 걸 스스로도 알고 있겠지.’
실제로 녀석의 지구력은 썩 좋은 편에 속하지 못했다.
그 증거로 움직임이 점차 굼떠지고 몸 곳곳에 잔상처가 늘어나고 있었다.
탕!
승부수를 던진 듯 한층 가속된 움직임으로 녀석이 포위망 한쪽으로 뛰어들었지만, 내 방해에 가로막혀 다시 포위망 안쪽으로 급히 몸을 틀었다.
녀석은 이를 악물고 있었다.
답답할 터였다.
반격할 수 없는 공격이 계속 날아들고 있으니.
포위를 뚫기보단 경찰을 전멸시키는 쪽으로 전략을 바꾼 듯 녀석의 움직임이 한층 난폭해졌다.
마구잡이로 경찰 사이를 날뛰며 손톱을 휘둘렀으며 몸싸움을 벌이며 건물 벽을 무너트렸다.
하지만 여전히 포위망은 뚫리지 않았고, 녀석은 점점 공황 상태에 빠져가는 모습을 보였다.
─보지 마! 나를 보지 말라고 했다! 본 새끼는 다 죽여 버린다!
녀석의 손톱은 어느새 모두 부러져 손에는 단검이 대신 들려 있었다.
옷은 볼품없이 찢겨 비늘이 돋은 피부가 그대로 드러났으며 검에 베인 상처로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인간이라고도, 수인이라고도 할 수 없는 외모였다.
나는 사격을 계속해 녀석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갔다.
‘죽은 경찰은 절반 가까이. 녀석을 잡는 것치곤 싸게 먹혔군.’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녀석은 이제 당장 쓰러져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다.
몰리고 몰린 녀석이 창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나는 즉시 이동마법을 발동했다.
몇 번 풍경이 바뀌고 창고 지붕에 도착한 즉시, 창고의 문과 벽 전체를 둘러 새겨 놓았던 마법을 발동했다.
우웅.
족히 오십 센티미터는 될법한 두께의 검푸른 「방호」가 창고를 에워쌌다.
나는 단검을 꺼내 들고 창고 지붕 위에 새겨 놓았던 이동마법을 발동시켰다.
연결된 출구는 창고의 지붕 아래였다.
눈앞의 풍경이 바뀌고 녀석의 등이 보였다.
나는 그대로 낙하하며 녀석의 어깨를 향해 단검을 내리찍었다.
“……!”
챙!
녀석이 몸을 비틀며 단검을 받아쳤다. 나는 그대로 뒤로 몸을 날려 착지했다.
“아직도 그만한 힘이 남아 있다니, 역시 수인의 피가 섞여 있다는 건가 바마?”
내 이죽거림에 녀석이 거친 호흡을 고르며 말했다.
“닥쳐라. 이 씹어 죽일 인간 새끼….”
밖에선 검과 봉으로 방호를 깨트리려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씹어 죽일 인간이라. 그래도 자신이 수인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모양이군. 분명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했을 텐데.”
“하! 이런 짓을 작정한 걸 보면 나에 대해 조사를 했나 본데. 너 따위가 뭘 안다고 감히…!”
“알 수밖에 없지.”
나는 손바닥을 얼굴에 가져다 댔다.
변용마법을 풀어 본래 카인의 얼굴로 바꾼 뒤 손바닥을 내리며 말했다.
“네가 내게 직접 해주었던 이야기니까. 오랜만이군, 바마.”
“……!”
녀석의 얼굴에 더 없는 경악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