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탈옥한 천재마법사-60화 (60/227)

#060. 몰이 (1)

“경찰 말인가요.”

피에타가 손짓해 세단을 물렀다.

공터엔 우리 셋만 남게 되었다.

“생각만큼 놀라진 않네요?”

“에반 님이 하신 말씀이니까요. 일단 입 밖에 꺼냈다는 건, 그에 대한 계획을 전부 생각해 놓으셨다는 거겠죠.”

나는 근처에 두었던 상자에 다시 리볼버를 넣은 뒤 피에타를 보며 말했다.

“경찰을 접선 장소에 끌어들여 난전을 유도한다.”

“어떤 방식으로 말인가요?”

“일단 부탁했던 것은 가져 왔나?”

“아, 잠시만요.”

그녀가 가방에서 테이프 하나와 재생 장치, 수십 장의 사진이 담긴 파일철을 꺼내 내게 건넸다.

“녹취록이에요. 지난 것들은 분기별로 모두 폐기해서 가장 최근 것만 남아있고, 사진은 직원들을 시켜 이제껏 거래가 이뤄졌던 공장들의 내부를 모두 찍어 왔어요.”

“고맙군.”

테이프를 틀자 옷이 부스럭거리는 약간의 소리와 함께 두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오랜만입니다. 바마 님.」

「…인사 따위는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전하겠습니다. 바로 조건을 제시하지. 앞으로 중화기류는 납품단가를 10퍼센트 낮춰 받겠어. 요즘 외곽 쪽에 마물 출현이 잦아져서 전과 같은 비용으론 물류를 운반할 수 없거든.」

「그 부분은 저희도 인지하고 있지만 한 번에 10퍼센트라는 수치는….」

계속해 귀를 기울였다.

「다음 계약은 8월 15일. 53번 구역. 오후 2시. 구체적인 장소는 다시 통보하겠다고 하십니다.」

「알겠습니다. 바마 님.」

나는 그 부분에서 테이프의 재생을 멈췄다.

“이 부분만 잘라 경찰에 보내지.”

“장난식의 제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후보생 이상 조직원들의 목소리는 모두 경찰의 데이터베이스에 등록되어 있다. 녹음이 진짜란 걸 확인하고 분명 반응해 올 거다.”

“과연…. 그렇군요. 정보를 제한해 보내니 우리 쪽 신원이 노출될 염려도 없고요.”

잠시 생각에 잠겼던 피에타가 곧바로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선행 조건이 있어요. 정확히 어느 공장에서 계약이 이뤄지는지 경찰에 미리 알릴 수 있어야 해요. 53번 구역에 있는 폐쇄 공장은 100개가 넘어요. 그곳 모두에 경찰이 병력을 배치해 둘 수는 없을 거예요. 아무리 거대 조직의 간부를 잡기 위해서라 해도요. 그렇다고 장소를 통보받은 뒤 제보하는 건 너무 늦겠죠. 경찰도 녹음을 분석한 뒤 병력을 파견할 필요할 테고, 계약은 보통 1시간 내로 끝나니까요.”

그녀의 말은 옳았다.

직접 제보를 한 뒤 경찰의 미행을 붙이는 방법도 있긴 하나, 우리 쪽 신분 역시 노출될 위험이 커 사용할 수는 없었다.

“공장을 예측하는 게 아예 불가능하진 않다.”

나는 파일철을 털어 사진을 허공에 흩뿌렸다.

검푸른 마나에 감긴 사진들이 허공에 그대로 열을 맞췄다.

빠르게 사진을 훑었다.

사진 위쪽엔 구역 번호와 함께 날짜가 적혀 있었다.

‘아무 공장이나 계약 장소로 고르진 않았을 것이다. 나름 섬세한 구석이 있는 녀석이니.’

블루서펜트의 보스와 간부는 모두 내가 직접 설정한 인물들이다.

가치관.

욕망의 기제.

성장 환경과 콤플렉스.

전투 방식과 삶의 목표 따위.

모두 내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다.

이 요소들은 무의식중 녀석의 선택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고, 겉으로 드러났을 것이다.

가령 녀석이 피부와 얼굴을 감추고 반드시 대리인을 통해 말을 전하는 것과 같이.

사진을 훑던 나는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역시. 예상에서 크게 벗어나진 않는군.’

테이블이 놓였던 위치 모두 창을 통해 오후의 햇살이 비쳐들고 있었다.

정확히는 바마가 햇살을 등지게 되는 방향이었다.

“…녀석이 취향을 알 것 같군. 접선까지 시간이 남았으니 53번 구역에 미리 도착해 조건에 맞는 공장을 찾겠다.”

“그걸 사진만 보고 알 수가 있어요?”

내가 설명해 주자 피에타가 감탄을 터트렸다.

“확실히… 듣고 보니까 그러네요. 이제까지 저도 선글라스를 끼고 나가서 눈치채지 못했어요. 예상 장소를 굉장히 많이 좁힐 수 있겠네요.”

“그리고 접선 장소엔 나 혼자 나간다.”

“네? 호위가 아니라 완전 제 대리로 나가겠다는 말씀이신가요?”

“잠깐만요. 그건 나도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

피에타는 눈동자를 크게 떴고, 에스텔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말 그대로다. 피에타와 에스텔. 모두 접선 장소에 나갈 필요가 없다. 공장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하지.”

에스텔이 불만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경찰을 이용해 난전을 유도하고 그 틈에 바마를 죽이겠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당신은요? 당신도 경찰에 잡히면 안 되잖아요.”

“피에타, 호위들을 부탁하지. 죽어도 탈이 없는 놈들로. 돈을 쥐여 주면 뒷골목에서 쉽게 건달들을 구할 수 있을 거다.”

“아니, 나를 호위로 데려가는 게 아니라요?”

나는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

“…에스텔. 너를 데려가지 않는 건 너를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효율성의 문제다. 이번엔 준비할 시간이 많고, 나 혼자라면 빠져나올 수 있는 상황을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으니까. 인원이 많아지면 몸을 빼기가 힘들어진다.”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은 없지만…. 알았어요. 명령을 내리는 건 당신이니까.”

“저도 에반 님 의견을 따를게요. 지원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또 말씀해 주세요.”

나는 내 머릿속에 완성된 그림을 설명해 나갔고 그녀들은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여갔다.

“그럼 당일 53번 구역에서 뵈어요.”

피에타는 다시 업무를 위해 차에 올라타 사라졌다.

“우리도 바로 출발할 거죠?”

“그러지. 이곳에 더 이상 볼일은 없으니.”

지나던 직원을 불러 파이로에게 인사를 전해 달라고 부탁하고 우리 역시 차에 탑승했다.

그리고 곧장 액셀을 밟았다.

62번 구역에서 53번 구역으로.

짧은 거리는 아니었지만, 수도에 가까워질수록 구역 간 동선이 줄기에 늦은 저녁 53번 구역에 도착할 수 있었다.

호텔을 잡아 하룻밤을 묵고 다음 날부터 구역 전체의 폐공장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3층 높이 이상. 출입구는 넷 이상. 북쪽으로 창이 나 있고, 내부 공간이 최대한 넓은 곳을 찾으면 되는 거죠?”

“그래.”

모든 조건에 부합하는 곳은 많지 않았다.

세 곳이 추려 졌고, 바닥이 대리석이나 그 비슷한 소재로 되어 있는 두 곳을 제하자 단 한 곳이 남았다.

버려진 공업 단지 한 가운데에 있는 공장이었다.

벽면엔 페인트를 이용한 낙서가 가득했고 내부는 설비가 모두 철거된 상태로 황량하기 짝이 없었다.

‘햇빛이 들어오는 위치를 계산하면 테이블은 이쯤에 놓이겠군.’

“꽤 대규모 단지였던 모양이에요. 옆에 기숙사나 급수탑 같은 것도 있는 걸 봐서는.”

에스텔과 함께 급수탑에 올랐다.

일반 건물의 15층 정도 높이로 단지의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었다.

“만약 바마가 우리를 부르는 장소가 이곳이 아니라면 어쩌죠?”

“아니. 반드시 이곳이다. 내가 아는 녀석이라면 다른 장소를 택할 리 없다.”

“…당신을 보면 가끔 신기할 때가 있어요. 어떻게 자신의 선택에 저렇게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마치 미래를 전부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에요.”

“단지 생각이 많을 뿐이다.”

나는 단지 내 곳곳으로 시선을 옮기며 당일 벌어질 상황, 그리고 그에 대응한 나의 동선을 상정해 나갔다.

‘경찰이 잠복을 풀고 진입한다면 그 타이밍은 계약자 양쪽이 공장 안으로 완전히 들어간 걸 확인한 후. 예상 경로는….’

우웅.

나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원소를 정제해 급수탑 꼭대기 바닥에 마법을 각인해 넣었다.

삼 분의 일 이상의 마나가 삽시간에 빠져나갔다.

몇 시간 간격으로 마나가 가득 찰 때마다 공장 건물 내부와 단지 내 곳곳을 돌아다니며 같은 작업을 반복했다.

그동안 에스텔이 곁을 지켰다.

“공간이동마법이라고 했죠? 수도에 있는 포탈처럼 구역과 구역을 한 번에 오갈 수 있는.”

“그것보다 스케일은 훨씬 작지만 원리는 같다.”

공간이동.

「점멸」보다 상위 등급의 마법으로, 발동 좌표 위에 있는 모든 이가 함께 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었다.

다만 현재 내 마나 양으로는 비교적 근거리 밖에 이동이 불가하기에 삼십 미터 정도의 짧은 간격으로 진을 설치하고 있었다.

진을 연달아 발동시켜 장거리 이동과 같은 효과를 보기 위해서 말이다.

지금과 같이 준비 시간에 여유가 있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쓸 수 없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며칠간 숙소와 공장 단지를 오가며 작업을 마치고 마침내 접선 날짜가 다가왔다.

나는 약속된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 신문을 보며 커피를 마셨다.

주위로는 피에타가 붙여 준 호위 여섯이 둘씩 짝지어 마찬가지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겉은 슈트 차림으로 멀쩡하지만, 알맹이는 뒷골목을 떠돌던 건달들이었다.

그들은 오늘 거래의 내용이 정확히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단지 어떤 계약에서 의뢰인의 호위를 맡으면 큰돈을 받을 수 있다고 알고 있을 뿐.

‘…이제 슬슬.’

나는 신문 너머로 주위를 흘긋거리며 시계를 확인했다.

시침과 분침이 정확히 1시 30분을 가리킨 순간.

끼익.

테라스 앞에 검은 세단이 멈춰 서더니 정장 차림의 사내 한 명이 내렸다.

그는 이쪽으로 다가와 내 재킷 앞주머니에 꽂힌 파란 행커치프를 확인한 후 말했다.

“로우택틱에서 나오신 분이 맞습니까?”

선글라스를 슬쩍 내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나는 입꼬리를 밀어 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틀림없는 바마의 부하다.’

카인의 기억에 있는 인물이었다.

복수 대상에게 본격적인 접근을 시작했다는 생각에 작은 흥분과 희열이 일었다.

“맞다.”

“모시러 왔습니다. 가시죠.”

나는 그의 안내에 따라 호위 하나와 함께 세단의 뒷좌석에 탑승했다.

나머지 호위들은 잇따라 도착한 다른 세단에 나누어 올라탔다.

“…….”

차 안에서 일체의 대화는 없었다.

네 대의 세단은 조용히 달렸다.

도심에서 벗어날수록 창밖에 보이는 건물들의 높이가 낮아져 갔다.

이윽고 황야가 나타났고, 멀리 지난 며칠 출입했던 공업 단지의 모습이 보여 왔다.

정적을 깨고 내가 질문을 던졌다.

“바마라는 자는 옷으로 몸을 꽁꽁 가리고 나온다던데 사실인가?”

“…계약 자리에 처음 나오시는 것 같아 조언 드리지만, 바마 님 앞에서 외모나 옷에 관련된 언급은 하시면 안 됩니다. 최대한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노력해 보지. 내가 그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웃음을 흘렸고 옆자리 호위는 뭔가 짚이는 게 있는 얼굴을 하더니 불안한 목소리로 ‘설마 그 바마 말입니까?’하고 물었다.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창밖을 보았다.

차는 이제 단지 안쪽으로 진입하고 있었다.

‘확실히 잠복한 솜씨가 감쪽같긴 하군.’

경찰에는 녹취록의 뒷부분만을 잘라 익명으로 우편을 넣었다.

피에타가 심어 놓은 직원이 며칠 동안 공장 단지를 감시했고, 그에게서 어제 새벽 한 무리의 경찰이 들어와 단지 내 건물 곳곳으로 흩어졌다는 정보를 받았다.

그 인원은 어림잡아 100여 명.

아무리 바마라 해도 쉽게 상대하지 못할 숫자였다.

‘에스텔은 단지 외곽에 대기하고 있는 상태. 준비는 다 되었다.’

끼익-

세단은 단지 한 가운데 공장 앞에 멈춰 섰다.

기사가 먼저 내려 문을 열어 주었고 나는 천천히 차에서 내려섰다.

“들어가시죠. 바마 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대기하고 있던 바마의 부하 둘이 공장 문을 양옆에서 활짝 열었다.

바마라는 말에 호위들이 순간 술렁였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빠져나가긴 틀렸음을 알 눈치 정도는 그들에게도 있었다.

저벅. 저벅.

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갔다.

수 개의 구둣발 소리가 적막한 공장 안을 울렸다.

공장 한가운데, 이 더운 여름날에도 두꺼운 코트와 모자, 선글라스로 온몸을 가린 이가 철로 된 넓은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뒷짐을 진 채 늘어선 10명가량의 부하와 함께.

나는 단번에 테이블 앞으로 거리를 좁혔다.

선글라스를 벗은 내 얼굴엔 여러 감정이 뒤섞인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오랜만이군, 바마.’

나는 손을 뻗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바마 님. 로우택틱의 기획실장 에반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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