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9. 제련 (2)
로브 차림의 노파였다.
이마에는 녹색 수정이 달린 머리띠를 하고, 손에는 여러 몽환적인 그림이 그려진 카드 뭉치를 들고 있었다.
“점 말입니까.”
그녀의 시선은 정확히 내가 쥔 잔을 향해 있었다. 나는 급히 마법을 중단하고 마나를 회수했다.
‘…그녀가 지금 왜 여기에. 아니, 방랑벽을 생각하면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닌가.’
나는 그녀의 정체를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노파의 모습이 진짜 그녀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 역시도.
“그래요. 걱정거리가 많아 보여 이 늙은이가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말입니다.”
그녀의 부드러운 미소를 마주하며, 나는 온몸의 긴장을 곤두세웠다.
내가 설정한 이 중 가장 위험한 인물로 행동을 예측하기가 불가능에 가까웠다.
“점을 보는 게 제게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요. 믿느냐 믿지 않느냐에 따라서요.”
“…….”
일단 어느 정도 행동을 그녀에게 맞춰 주기로 했다. 신경을 거슬려 좋을 것은 없으니.
나는 동전 몇 닢을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복채는 괜찮아요. 대신 따뜻한 차 한 잔 대접 받았으면 좋겠네요.”
나는 지나가던 종업원을 불렀고, 곧 김이 피어오르는 홍차 한 잔이 나왔다.
그녀는 카드를 서로가 반쯤 가린 형태로 하여 테이블 위에 뒷면으로 늘어놓았다.
“점은 여러 방식으로 보는 게 가능해요. 어떤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도 있고, ‘나’라는 인간에 대한 폭넓은 답을 얻을 수도 있지요. 그날그날의 운세를 알 수도 있고 말이에요.”
“어떤 것이든 상관없습니다.”
“그럼 젊은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것으로 하지요. 대개 현재의 고민거리는 나라는 인간을 아는 것에서 실마리가 잡히는 경우가 많답니다. 원하는 카드 3장을 골라 봐요.”
그녀는 내가 가리킨 카드들을 손가락으로 찍어 그대로 열에서 밀어냈다.
내 앞엔 카드 3장이 뒷면 상태로 놓이게 되었다.
“선택에 거침이 없네요. 젊은이. 가장 왼쪽부터.”
그녀가 카드를 뒤집자 사람의 팔을 타고 올라 어깨에 이빨을 박아 넣고 있는 뱀 그림이 나타났다.
“첫 번째 카드는 젊은이의 과거를 나타내요. 팔을 타고 오르는 뱀은 상승을, 박아 넣은 이빨은 성공을 의미하지요. 개인적인 목표의 성취이든, 사회적 성공이든요.”
그녀가 내 잔을 다시 흘긋 바라본 뒤 말을 이었다.
“하지만 카드가 뒤집혀 뽑혔으니 해석이 달라지지요. 이때 젊은이는 뱀이 아니라 뱀에 물리는 사람이며 이미지는 하강으로 바뀌지요. 뱀은 마음속의 응어리일 수도, 예측의 실패일 수도, 실제 주변의 지인을 의미할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그것이 원인이 되어 실패를 겪었다는 것이죠. 믿었던 동료의 배신이나 사업의 실패, 오랜 부정적 감정으로 인한 좌절 같은 것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네요.”
나는 묵묵히 그녀의 말을 들었다.
다음 카드가 뒤집히고, 구름 그림이 나타났다.
가운데 빈 곳을 중심으로 원을 그리며 바람과 함께 거세게 몰아치고 있었다.
“가운데 카드는 현재를 나타냅니다. 태풍이군요. 그것도 태풍의 눈. 잘 뽑히지 않는 카드인데…. 구름과 바람은 끝없이 발생하는 격변을 의미하지요.”
달각.
순간 찻잔이 흔들렸다.
허공에 위치한 그녀의 차 스푼 움직임을 따라, 잔 속의 내용물이 소용돌이치기 시작했다.
“가운에 있는 태풍의 눈은 언뜻 평온해 보이지만 가장 거센 바람이 부는 곳 한가운데이기에 가장 안전하면서 동시에 위험한 장소이지요. 처음에는 괜찮지만.”
달각. 달각.
찻잔이 점차 심하게 요동쳤다.
내용물은 이제 잔 밖으로 튀고 있었다.
“태풍이 완성된 후엔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빠져나갈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렇기에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폭풍이 자연적으로 멈추기를 기다리거나, 혹은.”
스푼이 멈추었다.
그와 동시 찻잔의 내용물도 거짓말처럼 멈추었다.
“직접 멈춰 세우거나. 쉽진 않아요. 보통은 본인이 폭풍의 눈이란 것을 자각 못 하고 설령 깨닫는다고 하더라도 멈추려 시도하다 바람에 말려 흐름의 일부가 되어 버릴 뿐이니까요. 어때요. 젊은이의 현재와 과거에 조금 대입이 되나요?”
“크게 와 닿지는 않는군요. 누구에게든 적용되는 말을 하는 게 점이라 생각은 합니다.”
실제 나와 카인 모두 근거 없는 믿음보다는 사실에 중시하여 움직이는 성격이었다.
“…그래요. 요즘 사람들은 단순한 미신이나 마음의 위안을 얻기 위한 용도 정도로 생각하더군요. 시대가 바뀌었는지, 논리적 사고를 중요시하는 마법사들은 더더욱.”
그녀의 눈빛이 나를, 정확히는 내가 마법을 사용했던 커피잔을 향했다.
‘역시 보았나.’
그녀의 본론이 나왔다.
나 역시 마법사이지 않으냐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마법사라 칭하기엔 보잘것없는 실력입니다.”
“그런가요. 마나를 움직이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던데 말이에요.”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고는 마지막 카드를 뒤집었다.
왕관을 쓰고 고급스러운 망토를 걸친 채 군중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내 그림이 나왔다.
“마지막 카드는 젊은이의 미래를 나타내요. 황제라, 아주 흥미롭네요.”
순간 공기가 바뀐 건 그때였다.
내 주위 대기에 분포되어 있던 마나가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원소들이 충돌하며 불쾌한 소리와 함께 다른 곳의 대기와 압력 차를 만들어 냈다.
거인의 손이 온몸을 쥐어짜는 것 같은 감각이었다.
식도를 타고 울컥 올라오는 피를 이를 악물고 다시 삼켜 내고는 아무렇지 않은 척 평온한 얼굴을 가장했다.
마나가 극히 민감한 자가 아니면 느끼지 못하는 일종의 고주파이자 불협화음이었다.
‘내가 마나를 사용해 대응하는 모습을 보기를 원하는 건가.’
반응하면 안 된다.
그 순간 내게 타고난 마나감응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는 꼴이니.
오히려 일반적인 수준의 마법사였다면 주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을 것이다.
“먼저 황제는 굉장히 고독한 인물이에요. 때론 오만하고 독단적으로 비치기도 하며 다른 이에게 쉽게 이해받지 못하지요. 황제와 왕관은 젊은이가 후에 오를 자리나 인생에서 찾고자 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해요. 하지만 왕관의 무게를 견뎌야 하니 목표를 이루는 과정에서 무언가로 인해 중압감을 느끼고, 무언가로 인해 적지 않은 피해를 보며, 또 거대한 목표의 달성을 위해 뭔가를 포기해야 하는 순간이 올 거예요.”
그녀가 흘긋 나의 안색을 살폈다.
그녀가 원소를 충돌시켜 가하는 압력은 점차 버티기 힘든 강도로 거세져 가고 있었다.
“…제 상황에 적용이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유념해 두도록 하겠습니다.”
여전히 평온하기만 한 나를 보고 그녀의 눈동자에 의구심의 빛이 떠올랐다.
그녀는 냉기가 커피잔을 감싸는 것을 보고 마법에 대한 내 재능을 가늠했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굳이 대응하지 않고 버틸 필요가 없겠지. 자신의 몸이 상해가며까지.’
내 선택은 순전히 내가 그녀의 정체를 완전히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 얼굴에 고민의 기색이 역력하지만 나올 수 있는 답은 한정되어 있다.
상대의 재능이 뛰어나나 자신의 기대에 미칠 정도는 아니라는 것.
연신 충돌을 일으키던 원소들은 곧 제자리를 찾아가 고요해졌다.
몸 주위를 옥죄던 압박감도 한순간 사라졌다.
그녀가 빙긋 웃었다.
“어쨌든 고마워요, 젊은이. 이 늙은이의 주절거림을 친절하게 들어 주어서.”
“별 것 아닙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작게 고개를 꾸벅였다. 카페 안으로 사라지는 그녀를, 나는 잠시 불러 세웠다.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뭔가요. 젊은이?”
“점을 믿습니까?”
“재밌는 질문이네요. 역으로 물어본 사람은 없었는데. 저는 믿어요. 운명이니 신이니 하는 것들도. 이 나이를 먹으며 살다 보면 그런 것들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되는 법이거든요.”
그녀는 그렇게 답하고 다시 카페 안으로 몸을 돌렸다.
그녀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는 입안 뒤쪽에 머금고 있던 피를 잔 안에 뱉어냈다.
순간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 그녀를 바마와의 일전에 끌어들인다면.
이내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집안의 해충을 잡고자 집 전체에 불을 놓는 꼴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행동의 예측이 불가한 만큼 그녀와 엮이는 일은 피해야 했다.
나는 남은 커피를 얼려 깨트려 버리며 조금 전까지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고대마도왕국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원죄를 지은 이들을 대신해 영생이라는 형벌을 받고.
자신의 숨을 끊어줄 재목을 찾아 대륙을 헤매고 있는 그녀가 앉아 있던 자리를.
* * *
3일 뒤 파이로에게서 총기의 제작을 완료했다는 연락이 왔다.
예상보다도 훨씬 더 빠른 시간이었다.
“즐거웠네. 3일 밤낮을 새웠지. 이렇게 몰입하며 작업한 건 정말 오랜만이야.”
그는 검은색 실크 커버로 된 상자를 건넸다.
안에는 전체가 은회색으로 이루어진 리볼버 한 정이 담겨 있었다.
에스텔이 옆에서 감탄을 터트렸다.
“엄청 고급스럽네요. 황제가 들고 다니는 호신용 무기라고 해도 믿겠어요.”
나는 손을 뻗어 리볼버를 집어 들었다.
끼릭. 철컥.
실린더를 열어 안쪽을 살피고 왼손과 오른손으로 번갈아 쥐어 보았다.
손바닥에 닿는 차가운 감촉이 나쁘지 않았다.
“어떤가?”
“훌륭합니다.”
“더 개선해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나름 고민했는데, 설계도에서 더 고칠 부분이 도저히 안 보이더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만들었네.”
실제로 리볼버는 내가 설계도에 그렸던 모습 그대로였다.
단순히 설계도를 이해하는 것과 그것을 현실로 구현해 내는 것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니, 그의 실력은 인정해야 했다.
“어서, 한 번 사격도 해 봐야 하지 않겠나?”
우리는 공장 밖으로 나가 고철 더미가 쌓여 있는 공터에 도착했다.
“전부 폐자재들입니까?”
“그래, 그래. 아무거나 맞춰 터트려도 상관없네.”
파이로는 자신의 작업 결과물을 어서 확인하고 싶은 듯 재촉하며 말했다.
끼릭.
약실은 총 여덟 칸이었다.
「화염폭발」의 출력을 조금씩 달리해 탄환에 각인한 뒤 약실에 한 발씩 끼워 넣었다.
마법사들 사이에 ‘각인’이 널리 활용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융합 직전의 원소를 박제한다는 행위의 높은 난이도, 그리고 ‘각인’과 함께 반감되고 마는 마법의 위력.
대개 사 분의 일에서 오분의 일로 위력이 떨어지며, 나조차도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으로 마법의 각인이 가능할 뿐이다.
‘하지만 전체가 미스릴로 이루어진 이 총을 통해 위력을 보정 받는다면.’
철컥.
팔을 쭉 뻗어 한쪽 눈을 감고 고철 더미를 겨냥했다.
탕!
한 발씩, 늘어선 고철 더미들을 향해 탄환이 다 떨어질 때까지 사격을 계속했다.
연이어 폭발이 일어나며 고철과 잡동사니가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쪽으로 날아드는 것들은 에스텔이 메이스를 휘둘러 쳐냈다.
사격이 끝나고 주위는 불에 그을리고 터져나간 고철들로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어떤가? 체감이 좀 되나?”
“만족합니다. 제가 머릿속에 그렸던 딱 그대로군요.”
각인된 마법의 위력은 거의 본래 그대로라고 보아도 좋았다.
수치상으로는 정제의 단계가 한 단계 상승한 정도였다.
게다가 그만한 사격 후에도 총신이 멀쩡했으니 내가 만족한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이 정도라면 지금보다 출력을 높여 마법을 각인해도 무리가 없겠어.’
기존에 사용하던 일반 총기들은 고출력 마탄을 몇 발 쏘고 나면 부서져 버려 전투 중 비효율적이었던 게 사실이었다.
“결과를 확인했으니 나는 좀 들어가서 눈을 붙여야겠네. 늙은 몸으로 무리를 좀 했거든.”
파이로는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공장 쪽으로 향했다.
수첩을 들고 다가온 직원을 윽박질러 쫓아내면서 말이다.
“다른 일을 하고 있어도 좋다. 나는 실험을 해 볼 것들이 조금 더 남아 있으니까.
“달리 할 일도 없는데 구경하고 있죠, 뭐.”
에스텔은 바닥에 떨어진 고철 몇 개를 주워 모아 앉을 자리를 만들었다. 다리를 꼬고는, 팔꿈치를 얹고 손바닥 위에 턱을 괴었다.
그녀는 새로 산 바지와 셔츠 차림이었다.
카드를 받았을 땐 백화점 전체를 쓸어 버릴 것처럼 말했지만, 막상 그녀가 산 것은 옷 몇 벌과 간식, 생필품 정도였다.
그동안 물욕이 의미 없는 삶을 살아 ‘소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일 터였다.
끼익.
다시 탄환에 마법을 각인해 넣고 있을 때 뒤쪽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고급 세단에서 내리고 있는 피에타가 보였다.
“시간에 잠깐 여유가 생겨서 찾아와 봤어요. 에반 님, 오랜만이에요. 사제님도 잘 지내셨나요?”
“며칠 안 지났는데 오랜만은 무슨요.”
“어머, 그새 조금 늙으셔서 시간이 많이 지난 줄 알았는데요.”
“회장님, 사제한테 매 맞아 본 적은 없죠?”
좋은 타이밍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피에타에게 전달할 이야기가 있던 참이었다.
그녀가 무기에 대해 묻기에 앞서, 나는 먼저 말을 꺼냈다.
“피에타. 나는 바마와의 접선일에 경찰을 끌어들일 생각이다.”